‘강원도 발칵’ 레고랜드 밀약 파문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3.18 07:24:52
  • 호수 15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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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돈 1840억 빨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 사업 추진을 위해 도의회에 거짓 정보를 제공해 1840억원의 국고 손실을 입혔다고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했다. 앞서 검찰은 최 전 지사를 특정범죄가중법상 국고 등 손실, 업무상 배임, 위계공무원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강원 춘천 레고랜드 조성사업과 관련해 도의회서 사태의 책임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도의원들은 전임인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보단 김진태 현 강원도지사의 책임론을 강조했다. 국민의힘 도의원들은 ‘최 전 지사가 도의회 동의 없이 보증을 확대해 도민들에게 빚을 떠안게 하고, 이로 인해 재판을 받게 됐다’고 반박했다.

혈세 쏟고···

검찰은 31페이지 분량의 공소장에 ‘최 지사는 2014년 11월28일 국내·외 주요 인사를 초청해 레고랜드 개발 기공식을 열기로 결정했지만, 정작 영국 멀린사 대표는 서신을 통해 2050억원의 자금 대출, 자본금 증자가 이뤄져야 하고 사업비를 마련하지 못하면 기공식에 불참할 것이고 레고랜드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고 적시했다.

당시 레고랜드 개발을 담당한 엘엘개발(현 강원중도개발공사·GJC)은 강원도의 지급보증으로 210억원을 대출받았으나 재정이 악화돼 2차 금융 약정이 어려웠다. 이에 레고랜드 기공식 전날 강원도가 보증책임을 담은 합의서를 작성, 엘엘개발이 1840억원의 추가 대출을 받도록 최 전 지사가 지시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엘엘개발이 대출한 2050억원은 결국 2022년 보증을 섰던 강원도가 대신 갚았다. 검찰은 추가 대출 1840억원으로 발생한 강원도의 손해에 대한 책임이 최 전 지사에게 있다고 봤다.


앞서 레고랜드 개발 계획은 수차례 변경됐고 강원도는 총 사업비 2600억원 중 30.8%인 800억원을 직접 투자했다. 이 내용을 담은 총괄개발협약(MDA)을 추진하는 과정서 임대료 수익은 기존 협약(UA)에서 97% 삭감된 3% 수준으로 변경됐다.

강원도에 불리한 협약으로 최 전 지사는 멀린사에 서신을 보내 (MDA 체결에 대해)도의회 동의를 받는 것을 반대했다고 검찰은 적시했다.

하지만 멀린사는 자체 법률자문을 근거로 도의회 동의를 강하게 요구했다. 이에 검찰은 최 전 지사가 당시 담당 국장을 도지사실로 불러 임대수익료 등 민감한 부분을 삭제할 것을 지시했다고 봤다. 이에 따라 강원도는 도의회에 열람용 MDA 11부를 제공했고 최종 확정 임대료를 3%가 아닌 30.8%로 기재했다.

2018년 12월3일 강원도의회 경제건설위원회서 강원도는 도의원들에게 ‘수입의 30.8%에 해당하는 임대료를 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거짓 내용을 보고했다. 같은 해 12월14일 결국 도의회 동의를 받았다. 검찰은 최 전 지사 등이 도의원들의 정당한 직무집행을 방해하고 강원도에 재산상 손해를 가했다고 판단했다.

최문순 기소장 보니···
국고 손실 내용 적시

최재민 강원특별자치도의회 의원은 지난 12일 성명을 통해 “최문순 전 도지사는 ‘춘천 레고랜드 코리아 테마파크 조성사업’과 관련해서 2014년 도의회 의결을 받지 않고 채무보증 규모를 210억원에서 2050억원으로 늘렸다”고 강조했다.

2018년 도의회에 제출한 레고랜드 MDA 편집본을 MDA 원본이라고 주장했으나 원본에는 강원도의 임대수익이 3%이고 도의회에 제출한 편집본에는 30.8%로 거짓 내용을 보고했다는 주장도 더했다.


검찰 공소장에 최 전 지사가 강원도에 1840억 이상의 손실을 입혔다는 점이 적시됐다는 언론 보도를 인용해 “도민의 대의기구인 도의회에 거짓 내용을 보고하면서까지 레고랜드 사업을 추진하면서 도민에게 계속적인 고통을 주고 있다”며 “최문순 전 도지사와 민주당은 도민 앞에 진정으로 사과하고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도의원들은 김진태 도정서 중도개발공사의 회생 신청 계획 발언으로 인해 ‘레고랜드 발 금융위기’가 발생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이날 제3차 본회의 도정 질문서 정재웅 의원(민주당·춘천)은 “2022년 김 지사의 GJC 회생 신청 계획 발언 파문으로 GJC는 BNK투자증권으로부터 빌린 2050억원을 강원도가 대위변제를 진행하게 됐다”며 “김 지사의 발언이 GJC의 중도개발사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이어 “결국 김 지사의 발언 파문 이후 기 매각 부지에 대한 계약해지와 계약 부지 일방 해지에 따른 소송 패소 등 때문에 중도금 반환, 계약금 반환소송 등으로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앞서 박기영 의원(국민의힘·춘천)은 전날 제2차 본회의 도정 질문서 “강원개발공사와 중도개발공사의 통합 논의에 앞서, 중도개발공사 부실의 결정적 이유인 레고랜드 사태에 대한 책임 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의회 동의 없이 2050억원으로 보증을 확대했던 것으로 인해 결국 강원도는 그 빚을 떠안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사태를 악화시킨 원인으로 최 전 지사가 사업 추진 당시 의회 동의 없이 보증채무 2050억원 확대, MDA체결, 멀린사에 투자금 800억원 송금, 컨벤션 부지 염가(105억원) 매도 후 고가(477억원) 재매입 행위 등을 꼽았다. 

영국 멀린사 “2050억원 내놔야”
무리한 사업 강행···고개 숙인 도

같은 날 이지영 도의원(민주당)은 춘천 레고랜드 사태 관련 성명서를 내고 “레고랜드 사태는 김진태 지사가 2022년 9월 개발 시행사인 GJC의 회생 절차를 신청하겠다고 밝히며 시작됐다”며 “김진태 도정 4년 차에 접어든 이 시점에도 전임 도정 탓만 하고 있는 무책임한 김 지사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레고랜드 개발 사업서 ▲도의회 동의 없이 보증채무를 2050억원으로 늘린 행위 ▲도의회에 허위 정보를 제공해 동의를 얻은 후 총괄개발협약을 체결하고 그 협약에 따라 시행사가 레고랜드 코리아에 800억원을 지급하도록 한 행위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한편, 올해로 개장 4년 차를 맞은 레고랜드는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개장 첫해 622억원이었던 매출은 2023년 494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서울서 먼 거리, 휴식 공간 부족, 식음료 부족, 스릴형 어트랙션 부족 등이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겨울철에는 운영일을 줄이고 운영시설도 축소하는 등 고정비 줄이기에 나섰지만, 수익 개선이 쉽진 않은 상황이다. 레고랜드는 파격적인 세일 행사를 벌이면서 모객에 발벗고 나섰다. 그동안 입장료가 다소 비싸다는 비판을 인식한 듯, 파격적인 연간회원권 가격을 들고 나왔다. 전 세계 레고랜드 연간회원권 가운데 가장 저렴한 가격이다.

레고랜드는 기존의 연간회원권 판매를 일시 중지하고 ‘엘리트 패밀리 패스’와 ‘엘리트 패스’ 2종의 연간회원권을 지난 14일까지 판매했다. 엘리트 패밀리 패스는 3인 이상 구매 가능한 연간회원권으로 1인당 9만9000원을 내고 1년간 날짜 제한 없이 입장이 가능하다.

여기에 식음료 할인 10%, 상품 할인 10%, 호텔 할인 20% 혜택까지 제공한다. 이는 국내 테마파크 연간회원 가격 중 가장 저렴한 수준이다. 정가 이용권 가격을 기준으로 2번만 방문해도 연간회원권 가격을 넘긴다.


눈물의 호객

레고랜드가 벌이는 할인 혜택은 업계서도 파격적인 수준으로 꼽힌다. 그만큼 레고랜드가 모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문제는 레고랜드가 연간회원권을 할인한다고 실적이 개선되느냐다. 연회원이 자주 방문하더라도 레고랜드 내 식음료와 상품 등을 적극 구매해야 매출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레고랜드는 식음료가 전반적으로 부진하다는 비판을 아직까지 피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또 레고랜드는 오는 22일 스릴형 어트랙션을 추가하면서 손님을 끌어들이겠다는 계획이다. ‘닌자고’ 구역에 스릴라이드인 스핀형 롤러코스터 ‘스핀짓주 마스터’를 오픈한다. 드래곤 코스터에 이어 롤러코스터가 1개 더 추가되는 셈이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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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