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마약상으로 몰린 소금상 풀스토리

선뜻 화물 받았다가 징역 10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섣부른 선의가 한순간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사업을 도와줬던 지인의 짐을 맡아주겠다고 했다가 마약 밀수업자로 몰려 감옥에 가게 된 것이다. 마약 대금을 결제한 정황도, 마약인 점을 인지하지 못한 정황도 있지만 재판부의 판결은 바뀌지 않았다.

평범하게 살던 A씨가 한순간에 마약 밀수업자가 됐다. 호형호제하던 지인들은 A씨의 진술을 모두 부인하거나 위증했고 수사기관과 재판부도 A씨가 거짓 진술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일요시사>는 A씨의 재판 과정서 이상한 점을 짚어봤다.

파키스탄
다녀온 후

지난 2023년 7월 인천지방검찰청은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상 향정이나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A씨를 구속 기소했다.

A씨는 지난 2023년 1월19일 멕시코서 미국을 거쳐 국내로 들어오던 중 필로폰 2827.34㎏을 몰래 반입하려 한 혐의를 받는다. 구체적으로 그는 풍선 속에 숨긴 필로폰을 국제 특송 화물로 인천공항에 들여오려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A씨는 검거 당시부터 지금까지 지인의 물건을 맡아줬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사건은 A씨가 소금 사업을 위해 파키스탄에 간 일부터 시작된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21년 2월경 지인인 B씨로부터 암염(핑크솔트) 사업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됐다. 이 말을 들은 A씨는 B씨와 그의 지인인 C씨와 함께 파키스탄을 방문하게 된다.

A씨는 파키스탄서 싸쿠라는 가이드를 만나게 된다. 싸쿠는 A씨 일행에게 암염 사업지를 비롯한 현지 사정 등을 친절하게 안내했으며 A씨는 이에 큰 고마움을 느꼈다고 한다. 이와 별개로 암염 사업은 실패했다.

이후 한국으로 귀국한 뒤 한 무역업체 취업 후 평범하게 살던 A씨는 B씨로부터 수원서 만나자는 제안을 받고 지난 2022년 9월3일 B씨와 C씨와 만났다. 이 자리서 C씨는 갑자기 “싸쿠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며 싸쿠가 10월에 한국에 가려고 하는데 짐이 많아 받아줄 수 있냐고 물으며 아이들이 먹을 사탕과 초콜릿을 주겠다고 했지만 자신(C씨)은 그때 한국에 있지 않고 아이들도 없어서 거절했다.

이틀 후 A씨는 한 통의 영어로된 이메일을 받게 된다. 해당 이메일을 번역한 결과 싸쿠가 짐을 미리 보내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만남서 C씨가 말한 바와 일치한 것이다. A씨는 싸쿠의 친절에 보답하는 차원서, 이틀 전 수원 회동 때 전해 들은 내용과 일치했기에 아무런 의심 없이 안부와 함께 주소를 알려 주는 답신을 보냈다.

집으로 온 사탕과 초콜릿
그 안에 필로폰 넣어 발송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A씨가 받은 이메일은 싸쿠로부터 온 것이 아닌 신원 불명자로부터 온 것인데, B씨가 번역해준 대로 싸쿠가 보낸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신원 불명자가 A씨 주소를 수신처로 사탕과 초콜릿과 함께 풍선 안에 필로폰을 넣어 발송했다.

멕시코서 출발한 화물은 미국을 경유하는 과정서 발각돼 압수됐으며, 이 사실이 한국 당국에 통보됐다. 한국 당국은 함정수사를 위해 압수 물품을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해외 탁송업체를 통해 수신인인 A씨에게 화물이 온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지난 2023년 1월10일 해외 탁송업체는 A씨에게 물품 설명과 용도를 기재해 개인통관 고유부호와 운송장 번호를 제목으로 회신해줄 것을 요청했다. 같은 날 A씨는 물품이 초코릿과 사탕이라고 회신했다.

이틀 후인 2023년 1월12일 A씨는 앞서의 신원 불명자로부터 두 번째 이메일을 받아 B씨에게 번역을 의뢰했다. B씨는 “자기(싸쿠)의 한국행이 연기되니 물품만 수령해 보관해달라”는 내용이라고 번역해 주면서 “그냥 내버려 둬”라고 해서 답신은 하지 않았다.

그후 A씨는 해외 탁송업체 직원과 관세에 관한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A씨는 이에 이메일로 싸쿠에게 세금을 대납하고 나중에 청구해야 하므로 금액부터 알려달라고 했다. 이후 A씨는 14일 동안 물건이 배달되지 않았고, B씨를 통해 싸쿠에게 물건 도착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상황을 공유했다.

그러던 중 지난 2023년 2월6일 A씨는 배송 기사로 위장한 인천지검 수사관으로부터 화물을 전달받다가 긴급 체포된 후 구속 기소됐다.

“이용만
당했는데…”

1심 재판부는 A씨가 계획적으로 마약을 수입하려 했다며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향정)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마약류 수입 범행은 마약의 확산 및 그로 인한 추가 범죄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서 엄정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며 “A씨가 수입하려고 했던 필로폰은 그 무게가 약 2.8kg에 달하는 대량으로서, 이는 1회 투약분 약 0.05g 기준 5만6000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에 해당하므로 만약 위 필로폰이 계획대로 국내에 반입돼 유통됐다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해악은 대단히 컸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어 “한편 A씨는 이 사건 필로폰 수입 범행을 계획하면서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할 목적으로 공범과 짜고 이메일을 주고 받는 등 자신에게 유리하게 증거를 조작했고, 범행이 발각된 이후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이 사건 화물의 배송 조회를 한 이유, 이 사건 화물의 내용물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던 이유 등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회피하면서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또 “법원으로부터 A씨의 주장에는 여러 군데에 불일치, 모순이 있다는 지적을 받은 이후에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허위 내용이 담긴 사실확인서를 제출하는 등 이 사건 수사 및 재판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사건 범행의 중대성 및 이 사건 범행을 전후한 A씨의 태도 등에 비춰볼 때, 비록 피고인에게 이 사건 이전에 형사 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이 사건 범행이 미수에 그치고 필로폰은 모두 압수돼 시중에 유통되지 않은 점 등 유리한 정상을 참작하더라도 피고인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함이 마땅하다”고 설명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진술과 주장이 모두 허위라고 판단하고 마약 밀수범의 최대 형량을 넘어서는 형량을 선고한 것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마약류 수출입·제조 사범의 기본 형량은 최소 10월에서 최대 7년이다. 여기에 영리 목적 등의 의도가 더해진다면 최대 형량은 11년까지 늘어난다.


이에 A씨는 ▲화물이 필로폰인 사실을 몰랐던 점 ▲싸쿠를 사칭한 인물로부터 기망을 당해 필로폰이 담긴 화물의 수령인으로 이용당했을 가능성 ▲화물에 담긴 필로폰의 가액이 5000만원이 넘는다는 것을 인식했다는 충분한 증명 없이 가중처벌된 점 등을 들어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가 있으며 범죄 전력도 없고 경제적 이익도 없고 이용만 당한 상황에 징역 10년은 지나치게 과중하다며 항소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 역시 A씨의 주장이 허위라고 봤다.

2심 재판부는 ▲필로폰 밀수 범행은 그 성질상 밀행성을 수반하고, 이 사건의 경우 허위 이메일의 외관을 작출하면서 적발 시 빠져나갈 방법까지 마련하는 등 범행을 적극적으로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점 ▲A씨가 두 번째 이메일을 수령하기 이전에 이미 화물의 내용물을 알고 있었던 것을 보아, A씨가 실제 마약 상선과 따로 연락하면서 소통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중한 처벌을 감수하면서도 마약 밀수 범행을 감행한 이유로 필로폰의 가액이 5000만원 이상이라는 것을 A씨가 미리 알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 등을 들며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지난해 3월 A씨는 상고를 제기했지만 대법원서도 상고가 기각돼 결국 징역 10년형이 확정됐다.

대금 결제
유통 없어

A씨의 형량은 확정됐지만 아직 증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A씨가 마약을 샀다면 마약 대금은 어떻게 결제했는지 ▲마약 대금의 자금 출처는 어디인지 ▲어떻게 유통하려 했는지 ▲A씨가 마약 상선과 계속 연락했다는 근거는 무엇인지 ▲공범과 증거를 만들기 위해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면 공범은 누구인지 등이다.


필로폰 2827g은 A씨가 검거됐을 당시 도매 가격으로 2억원에 달하며 소매 가격으로는 7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검찰 조사 과정서도, 재판 과정서도 마약 대금 결제를 어떻게 했는지는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 마약 대금을 결제한 방법을 조사하지 않았으니 마약 대금의 자금 출처 역시 전혀 밝혀진 바가 없다.

검찰과 재판부가 집중한 쟁점은 ▲화물에 무엇이 올지(사탕과 초콜릿) A씨가 먼저 알고 있었다는 점 ▲A씨가 화물이 언제 오는지 계속 확인했다는 점 ▲사쿠가 A씨한테 보낸 이메일이 영어 문법과 맞지 않아 한국인이 번역기를 통해 보냈다고 볼 수 없다는 점 ▲수사 과정과 재판 과정서 A씨의 진술이 계속 바뀌었다는 점 등이다.

멕시코 출발, 미국 경유 과정서 발각
압수 사실 한국에 통보…바로 체포

A씨처럼 마약을 택배로 받았다가 징역형 선고를 받은 사례는 많다. 하지만 다른 사례에서는 택배 수취인들이 마약을 유통하는 것이 드러나거나 마약을 투약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앞서 부산지법 형사5부(장기석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1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향정),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된 베트남 국적 유학생 D씨에 대해 징역 9년을 선고했다.

법원이 인정한 범죄 사실에 따르면, 대전 모 대학교에 재학 중인 그는 지난 4월 초 베트남에 있는 E씨와 공모해 1330여만원 상당의 케타민 205g을 국내로 밀수입한 혐의를 받는다.

E씨는 케타민을 비닐팩 20개로 소분해 라면 봉지 속에 넣어 과자, 국수 등과 종이상자에 담아 식품 배송인 것처럼 꾸민 국제 택배를 D씨에게 보냈고, D씨는 이 국제택배가 베트남서부터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기까지 운송 경로를 추적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D씨는 같은 달 4일에는 대전 동구 거주지 옥상서 F씨에게 15만원을 받고 신종 마약 9ml를 판매한 혐의도 받는다.

경찰은 다른 신종마약 판매 사건을 조사하던 중 한 피의자의 수사 협조를 받아 판매자 D씨와 현금 거래를 성사했고, 거래를 하기 위해 옥상에 나타난 D씨를 긴급체포한 뒤 현금 15만원과 D씨의 휴대폰을 압수했다.

또 광주지법 제13형사부(재판장 정영하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29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향정) 등 혐의로 기소된 G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약물중독 재활교육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했다.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태국인 노동자 H씨에게는 징역 1년을 선고했다.

G씨는 올해 초 태국에 사는 공범과 동남아서 유통되는 합성 마약류인 ‘야바’를 팔기로 공모, 태국서 시가 1억1769만원 상당의 야바 5898정을 건강보조제 용기에 숨겨 국제 우편물로 밀수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김 양식장서 일하던 태국인 노동자 H씨에게 2차례에 걸쳐 들여온 야바 중 일부인 20정을 60만원에 팔고, 판매 목적으로 1235만원 상당의 야바 247정을 소지한 혐의로도 기소됐다. H씨는 다른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G씨를 통해 야바를 구입하거나 여러 차례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G씨는 한국에 체류하다가 강제 출국된 태국인 공범과 공모해 현지산 야바를 국제우편으로 자신이 머물렀던 전남의 한 숙박업소까지 배송되게끔 수취지로 기재하고, 직접 받았다.

해당 사건과 A씨 사건의 차이점은 마약을 유통하고 마약을 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A씨의 사건에서 명확한 것은 화물에 A씨의 주소지와 전화번호가 적혀있다는 것뿐이다.

한 마약 전문 변호사는 A씨의 사건에 대해 “해당 사건서의 주요 쟁점은 필로폰 밀수를 계획했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해 보인다”며 “A씨가 수사기관과 재판서 말이 달라지는 것과 증인 진술과 A씨의 진술이 맞지 않는 부분은 상당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필로폰 2.8kg을 혼자서 유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공범에 대한 조사가 전혀 없다는 것이 의아하다”며 “조사 과정서 A씨의 집, 차량, 회사 근처 숙식을 하던 친척집 등을 전방위로 압수수색하는 반면, 진술 초기부터 등장한 B씨와 C씨는 참고인 신분으로 대질심문만 진행한 것도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재심 신청
결과는?

A씨도 이상한 점을 느끼고 현재 재판부에 재심을 신청할 예정이다. 재심이란 형사소송법과 민사소송법에 의해 확정 판결이 있은 사건에 대해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 등 중대한 하자가 있음을 이유로, 확정 판결이나 이에 준하는 결정적 증거로 다시 재판해 재판의 취소나 변경 등을 요구하는 신청으로서 비상의 불복신청을 말한다.

A씨는 재심 사유로 민사소송법 제451조 7항에 나와있는 ‘증인·감정인·통역인의 거짓 진술 또는 당사자 신문에 따른 당사자나 법정대리인의 거짓 진술이 판결의 증거가 된 때’를 꼽는다. A씨는 A씨의 진술을 허위로 판단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인 B씨의 진술이 위증이라고 말한다. A씨는 B씨를 위증죄로 고발하기도 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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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처럼’ 한덕수<br> 막가는 진짜 노림수

‘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며 ‘월권 논란’ 등이 불거졌다. 이에 한 권한대행이 남은 임기 동안 취할 행보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해 논란이 일고 잇다. 또 한 권한대행이 특임공관장도 임명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며 논란에 더 불을 지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한 권한대행이 새로운 정부가 가질 임명권에 초를 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스로 지피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4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윤석열 파면에 따른 차기 대통령 선거일을 6월3일로 확정하고, 이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날 국무회의서 한 권한대행은 “정부는 선거관리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선거관리에 필요한 법정 사무의 원활한 수행과 각 정당의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오는 6월3일을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일로 지정하고자 하고 선거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언급하며 “지난 4개월간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걱정을 끼쳐 드리고, 대통령이 궐위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선거관리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해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관련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당부드린다”고 언급했다. 이날 한 권한대행은 국무회의에 앞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을 통해 이제껏 임명을 미뤄온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고, 마용주 대법관도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4월18일에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지명했다. 그는 담화문을 통해 “임기 종료 재판관에 대한 후임자 지명 결정은,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 또 경찰청장 탄핵 심판 역시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각각 검찰과 법원서 요직을 거치며 긴 경력을 쌓으셨고,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 신망이 높다”며 “두 분이야말로 우리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동시에 나라 전체를 위한 판결을 해주실 적임자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보류했었다. 당시 한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둑이기 때문”이라고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바 있다. 갑작스레 헌법재판관 지명 황교안도 하지 않은 일을? 그랬던 그가 100일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사례는 헌정사상 전무한 일이다. 앞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법원장 몫인 이선애 재판관을 임명한 반면, 대통령 몫이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 후임자는 지명하지 않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월권’이라며 거세게 반발 중이다.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 권한을 대행하는 직일 뿐이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행할 수 없는 권한인데, 한 권한대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헌만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완규 법제처장에 대해 “내란 직후 대통령 안가 회동에 참석한 사람이다. 내란의 아주 직접적인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 법체처장을)지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내란의 불씨가 안 꺼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민주당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완규 법제처장은 가장 대표적인 친윤석열 검사다. 법제처장을 하며 완전히 윤 전 대통령 개인의 로펌 역할을 해왔다”며 “이것은 파면된 윤석열의 의중이 작용된 지명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 권한대행이 갑작스레 재판관을 임명한 이유로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헌재 구성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을 미리 앉혀두려 했을 가능성이 우선 거론된다. 6·3 대선 전 이·함 후보자가 임기 6년의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차기 대통령은 임기 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할 수 없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를 차지하고, 헌법재판관 2명까지 임명하면 헌재까지 진보 성향 재판관이 다수가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정치적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알면서 선택 왜? 한 헌법학자는 이번 임명은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이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민주당과 이 전 대표의 위험을 처리할 계획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 권한대행이 그 전에 선수 친 것으로 보인다”며 “어차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권한대행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박수”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 권한대행이 혼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해서 얻을 실익이 하나도 없다”며 “지금 관저서 아직도 나가지 않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김과 그 다음에 어떤 부탁이 있지 않고서는 굳이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남동 관저서 서울 서초동으로 이주를 완료했다). 이어 “아마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 미리 후임자들을 미리 검증했지만 파면이 돼 한 권한대행에게 지명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파면 전에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파면 이후 해당 결정 사안은 중지돼야 하는데 한 권한대행이 이어서 권한 행사를 한 것”이라며 “이는 진짜 사장이 있는데 사장이 잠깐 유고나 궐위 상태라서 권한대행 사장이 왔고, 그는 단순한 결제를 통해서 회사가 돌아가게 해야 되는데 갑자기 사장이 해결해야 할 보유 주식을 본인이 알아서 처분을 하고 심지어는 오버를 해서 사장 딸이나 아들의 어떤 사위나 뭐 이런 며느리 될 사람까지 본인이 다 결정을 해 주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남은 두 가지 다음 수는?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외에 시도할 법한 일은 ▲특임공관장 임명 ▲미국 관세 허용 등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한 권한대행이 재외공관의 특임공관장도 임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17년 황 권한대행이 당시 특임공관장으로 분류됐던 국가정보원 출신의 변영태 전 주미국공사참사관을 주상하이총영사로 임명한 전례가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임 공관장은 정부의 판단에 따라 직업 외교관이 아닌 인물에게 공관장 임무를 맡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통 대통령의 국정기조 이행을 명분으로 주로 정무직 인사가 임명된다.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주중국,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 임명이 진행될 수 있냐는 질문에 “공관장 인사가 필요에 따라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해당 국가의 공관장 인사에 대해서는 “현재 공유드릴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로, 윤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대기 전 실장은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로 내정된 바 있다. 특임공관장이 정무적 판단이 반영되는 인사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과 무관하게 임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탄핵 결과에 따라서는 임명 강행이 상대국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작용해 이들은 임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이후 지난 4일 탄핵에 이르는 과정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월31일 재외공관장 임명을 실시한 바 있으나, 이 때도 두 명의 특임공관장을 제외한 11개국 대사가 대상이었다. 다만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권한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특임공관장을 비롯해 다른 인사 임명을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임공관장·관세 등 무기 남아 트럼프와 통화 때 대선 이야기도 한 권한대행은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며 무역 문제와 조선 산업 협력, 북핵 공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논의했다. 그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등 무역수지 개선 의지를 강조하며 상호관세 문제 해결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대행은 이날 오후 9시(미국 오전 8시)가 넘어 약 28분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이 같은 입장을 공유했다. 한 권한대행은 전화 통화에서 “미국 신정부 하에서도 우리 외교안보 근간인 한미 동맹관계가 더욱 확대·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면서 특히 조선, LNG 및 무역 균형 등 3대 분야서 미국 측과 한 차원 높은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삼아 상호관세를 부과한 만큼,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을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해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권한대행의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드러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국과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다면서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문제는 이 같은 한 권한대행의 행보로 새로운 정부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과 상호 관세는 앞으로 90일 동안 미뤄졌기 때문에 조기 대선이 끝난 후 차기 정부가 다시 미국과 협상할 시기가 아직 남은 셈이다. 한 권한대행의 이런 행보에 ‘한 권한대행이 차기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외교 분야서 5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거친 정통 관료라는 점, 개헌 변수를 고려한 ‘관리형 대통령’으로 적격이라는 얘기가 보수 진영 일각서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대선주자 직접 뛰나 한 권한대행의 배경에 더해 보수 진영 잠재 대선후보군의 지지율이 이 전 대표에게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맞물려 출마론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 권한대행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8일 통화하면서 한 권한대행에게 대선에 나갈 것인지 묻자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 고민 중이다. 결정한 것은 없다”는 취지로 말하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 권한대행의 대선출마설에 더욱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