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어벤져스 ‘개헌파’ 시나리오

기세 좋았지만…뭉칠 수 있을까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최근 정치권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개헌이다. 매번 대선 때마다 돌림노래처럼 개헌을 외치지만 한 목소리로 모이지 않는다. 1987년 이후 개헌을 성공한 대통령이 아무도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일까? ‘탄핵 물타기’부터 ‘이재명 흔들기’까지, 개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두고 갖가지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개헌에 소극적이던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 이후 눈에 띄게 빠른 걸음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맞서 비명(비 이재명)계도 “절대권력 분산”을 외치며 개헌 논의에 올라탔다. 여야 할 것 없이 동상이몽을 꿈꾸기엔 덥석 손을 잡기에는 망설임이 더 크다.

너도나도
급 띄우기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서 ‘87체제 극복을 위한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를 열고 개헌을 언급했다. 정작 본인은 대권 행보와 선을 그었지만, 국가 개조의 핵심 키워드로 ‘지방 분권’을 제시한 만큼 정치권에서는 조기 대선을 의식한 행보로 해석했다.

이날 오 시장은 중앙집권적 구조로 인한 지역 간 불균형과 지방 소멸을 언급하며 “중앙정부가 예산을 나눠 주고 일부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방식으로는 지역의 자생적 성장을 촉진할 수 없다. 각 지역이 독자적인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권한을 지방에 이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산과 인력, 규제라는 3대 권한을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중앙정부는 이를 지원하는 조력자로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며 “특히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조정하고 자원과 행정 인력을 균형 있게 재배치하는 등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보다 앞선 지난 3일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분권형으로 개헌하고 선거구제를 개편해야 한다”며 2026년 지방선거 실시와 함께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또 다른 보수 잠룡인 홍준표 대구시장 역시 4년 중임제를 비롯한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과 한동훈 전 대표 역시 개헌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힘을 실었다.

야권서도 활발하게 개헌 논의에 군불을 때고 있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행정수도 세종 이전의 추진 방안과 과제’ 토론회에 참석해 행정수도 이전을 주장했다. 개헌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국토 균형 발전을 통한 초광역 단위 지방정부 시대를 열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제대로 된 지방정부를 위한 개헌이 따라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외 비명계 모임 ‘초일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양기대 전 의원이 꾸린 ‘희망과 대안 포럼’은 지난 18일 출범식을 통해 “87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개헌을 통해 중앙집권적 정치 구조를 분권형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실현하는 연대의 틀을 만드는 데 포럼이 선도적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이날 출범식에 자리해 “헌정 질서를 짓밟는 절대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 견제가 가능한 권력구조로의 개편을 포함해 국민소득 3만5000불 시대에 맞는 헌법, 지방분권이 포함된 헌법을 위해 개헌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그 로드맵을 제시하고 약속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금 당장” 개헌 밀어붙이는 잠룡들
이 “빨간 넥타이만 좋아해” 선 긋기

지난 전당대회서 이재명 대표의 대항마로 떠오른 김두관 전 의원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개헌 1인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제왕적 대통령, 5년 단임제가 제도상 허점이 많다는 게 여실히 증명됐음에도 7공화국을 열 개헌을 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우리 당의 주류나 시민사회 일부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중요하지, 개헌이 무슨 소리냐’는 분들도 계신다”며 “정치인들이 이런 혼란스러움을 빨리 정리해야 한다. 사회권, 기본권, 광주 민주화운동 정신 등 너무 많은 것을 한번에 담기보다 원포인트 4년 중임제에 초점을 맞추고 단계적으로 나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광재 전 의원도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탄핵이 인용된 이후 개헌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본다”며 “계엄, 특히 불법 계엄이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게 최우선이다. 두 번째는 위협받는 국민의 삶을 안정화하고 배고프지 않은 나라, 배 아프지 않은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야 정치 원로도 한목소리로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정대철 헌정회장을 비롯해 ▲김원기·박병석·정세균 전 국회의장 ▲김부겸·이낙연 전 국무총리 ▲여야 당 대표를 지낸 서청원·김무성·손학규·황우여 전 대표 등이 함께하는 ‘나라를 걱정하는 원로모임’은 “국회의장 및 여야 대표는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추경과 함께 개헌 과제를 여야정 협의체에 조속히 상정해 본격 논의하고 이른 시일 내 국회 헌법 개정특위를 구성해 즉시 가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여야 모두 7공화국의 문을 여는 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87년 체제를 극복하고 더 나은 나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개헌을 논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쯤에서 민주당 이 대표의 입에 이목이 쏠린다. 개헌에 침묵하는 민주당이 여야의 압박을 언제까지나 모른 척하긴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 이 대표는 “지금은 내란 극복에 집중할 때다. 개헌 얘기를 하면 이게 블랙홀이 된다. 빨간 넥타이 매신 분들이 좋아하게 돼있다”고 밝힌 게 전부다.

이 대표가 처음부터 개헌을 외면한 것은 아니다. 그는 지난 2022년 대선후보이던 시절 “임기 내 개헌을 추진하겠다. 책임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4년 중임제가 세계적인 추세, 권력이 좀 분산된 4년 중임제로 가야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알맹이 없는
말, 말, 말…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서 ‘개헌에 합의할 경우 임기를 1년 단축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리 어려운 일이겠느냐”며 “국가 백년대계, 경국대전을 다시 쓰는 것이다. 국민에 필요한 제도를 만드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개헌 중에서도 대통령 임기 단축 문제는 매번 대선 때마다 화두에 오르는 주제다. 후보들은 앞다퉈 개헌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행동에 옮기기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겪는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모두 개헌을 약속했지만 임기 내 실현되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2016년 민주당 전 대표이던 시절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을 막기 위한 개헌론에는 원론적으로 공감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다만 “개헌의 방향을 특정해 임기 단축을 말하는 것은 다분히 정치공학적 얘기다. 이해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한다면 다음 정부는 과도정부밖에 되지 않는다”며 “촛불 민심이 요구하는 대청산과 개혁을 해내려면 5년 임기도 짧다”고도 주장했다.

이는 당시 비문(비 문재인)계로 불리는 이들이 개헌을 압박 카드로 제시하고 나선 때다. 이른바 ‘개헌파’로 불리던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를 비롯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마찰을 겪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 문 전 대통령도 2017년 대통령 후보가 되자 “4년 중임 대통령제 개헌은 5년 단임제의 폐해를 극복하는 방법”이라며 “차기 대선을 2022년 전국동시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서 이 때부터 4년 중임제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막상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이후 개헌안은 당시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전직 야권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서 “대통령이든 뭐든 후보가 되면 일단 다 개헌을 하겠다고 약속한다. 특히 야당이 그렇다. 그러고는 막상 집권하면 흐린 눈으로 외면하는 현실”이라며 “권력구조와 정치권의 의지 문제다. 어렵게 얻은 권력을 조금이라도 단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직은
각개전투

이 대표가 개헌 논의에 확답을 주지 않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라고 해석했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선두주자는 안정적인 현 체제를 유지하길 원하지만, 나머지 주자는 개헌 등을 차별화 포인트로 판을 흔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신 개헌파’의 목적이 정말 개헌인지 의문스럽다는 눈빛을 보낸다. 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이재명이라는 대권후보를 압박하기 위한 요소로 개헌을 쥐고 흔드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한 현직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모두가 개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알맹이가 없다. 정확히 어떤 내용을 언제 어떤 식으로 처리할 것인지 뚜렷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며 “특히 국민의힘이 앞다퉈 개헌을 주장하는데, 국면 전환용이라는 의심을 받기 좋은 상황이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인 만큼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무책임한 제안”이라고 지적했다.

개헌을 고리로 폭넓은 연대를 구축하는 시나리오가 여의도 곳곳서 풍문으로 들려온다. 여당과 비명계가 동시에 개헌 논의를 띄운 만큼 이들 중 일부가 빅텐트를 세워 제7공화국 청사진을 제시할 것이란 예측이다.

김 전 의원은 희망과 대안 포럼을 주축으로 ‘탄핵과 개헌연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향후 50년, 미래 100년의 대한민국 운명을 건 개헌을 통해 7공화국을 이뤄내야 한다”며 “이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는 내란 세력 제압이 먼저라고 말을 하지만 조기 대선에 승리해 민주 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결코 등한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여야 빅텐트는 어렵다” “의미 있는 통합이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 등의 이유로 선을 그었다. 분권형 대통령제, 이원집정부제 등 각자 원하는 방향이 달라 같은 당에서조차 손을 잡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는 이유다.

번갯불에 콩 굽듯…우후죽순 쏟아지는 안건
충돌하는 이해타산…똑 떨어지지 않는 답

당장 민주당만 하더라도 저마다 개헌을 외치지만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있다. 개헌 방안이 중구난방인 만큼 최종 개헌안을 제시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의원은 분권형 대통령제 방식의 개헌을 주장하며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내각과 국회로 나누는 분권형 4년 중임제, 대통령 권한을 총리와 나누는 책임총리제로 개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승자독식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꿔 적대적 공생관계인 양당 체제를 다당체제로 바꿔야 한다”고도 설명했다.

반면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국민 컨센서스가 높은 분권형 4년 중임제로 개편된다면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선거 주기를 일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다음 대통령의 임기를 3년으로 2년 단축해 2028년 총선과 대선을 함께 치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사정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은 당 개헌특위를 꾸려 자체 개헌안을 만들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아직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행정·입법권력 견제와 균형을 위한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양원제를 제시한 것에 그쳤다.

여권서 가장 눈여겨보는 건 오 시장과 안 의원 간의 연대 가능성이다. 지난 12일 안 의원은 오 시장의 개헌 토론회에 찾아간 만큼 정치권에서는 두 사람이 개헌을 교집합 삼아 손을 잡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안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대선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연대 이야기하는 거는 너무나도 앞서 나간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이런 가운데 야5당이 함께하는 원탁회의가 또 다른 연결고리가 될지 이목이 쏠린다. 지난 19일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은 ‘내란 종식 민주 헌정 수호 새로운 대한민국 원탁회의’ 출범식을 열고 내란 종식과 정치·사회·권력기관 개혁 및 민생경제 살리기를 기치로 내걸었다.

또 다른
연결고리

이날 개헌은 논의 대상서 빠졌다. 개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임에도 협의 테이블에조차 오르지 못하면서 동력이 저하될까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권력기관 개편과 불법 계엄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는 개헌은 사실상 수순”이라면서도 “국민의힘 개헌 논의에 말리지 않기 위해 수위 조절을 하겠지만 결국 논의할 수밖에 없다. 추후 개헌 관련 합의구조를 만드는 과정서 야권연대 후보 선출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야5당 원탁회의 차기 집권 노림수?

야5당이 뭉친 원탁회의의 목적과 지속 가능성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조기 대선이 사실상 확정되는 분위기 속에서 차기 집권여당으로서 발돋움을 하기 위한 준비가 아니냐는 해석이다.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내란 수괴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포함한 극우 내란 세력의 헌정 파괴 행위를 막아낼 것”이라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뜻을 모아 나가겠다. 그 과정에서 늘 광장의 민심에 주파수를 맞추겠다. 시민사회와도 연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야5당 대표들은 “광장의 민심에 주파수를 맞추고 시민사회와도 연대하겠다”고 밝힌 만큼 다음 달 1일 원탁회의 차원서 공동집회를 여는 데 합의했다.

다만 조기 대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범야권 연대’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혁신당 김보협 수석 대변인은 “대선 혹은 대선 준비·야권 단일 후보 이런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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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