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대통령실 따로 노는 내막

계엄 후…“용산, 윤석열 살리기만”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정부와 대통령실 간 파열음이 커질 전망이다. 12·3 불법 계엄 사태 이후 정책 및 정치적 대응 노선을 두고 엇박자인 모양새다. 대표적으로 ‘대왕고래’ 사업이 꼽힌다. 정부는 사실상 사업 실패를 인정했다. 대통령실은 정부의 공식 입장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스탠스를 취했다. 문제는 두 기관 사이의 갈등이 이제 시작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확실한 근거도 없이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게 너무 많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의 말이다. 정부 부처 안팎에서는 동해 심해 유전 탐사 ‘대왕고래’ 프로젝트에 대한 대통령실과 일부 여당의 비판이 정치적이라는 여론이 상당하다. 활화산이던 정부와 대통령실의 갈등이 폭발하기 시작한 모양새다.

나라는 뒷전
일손 놨다

대통령실은 지난 9일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가 진행한 ‘대왕고래’ 프로젝트 브리핑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앞서 산업부는 1차 탐사 시추 결과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공식 입장을 내고 “이번 잠정 결과는 대왕고래에 대한 단정적 결론이 아니며 나머지 6개 유망 구조에 대한 탐사 시추도 해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야권의 비판으로 대왕고래가 정치적 논란을 야기한 상황서, 발표 내용을 다듬어 밝혔어야 했다는 불만도 깔려 있다. 국민의힘도 대통령실의 입장과 큰 차이가 없었다.

정부 부처 안팎에서는 산업부를 향한 대통령실과 여당의 비판이 내부 총질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한 부처 간부는 “경제성이 있는지 없는지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서 발표해버린 대통령의 잘못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브리핑은 산업부서도 몰랐던 사안이다. 비판하려면 누가 먼저 사안을 ‘정치화’했는지 깊이 있게 고민하고 지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3일 첫 국정 브리핑을 통해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동해에 매장돼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고, 유수의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의 검증도 거쳤다”며 예고 없이 직접 대왕고래를 발표했다.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며 구체적 수치도 거론했다.

윤 대통령의 브리핑 직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던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현재 가치로 따져보면 최대 매장량은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통상 석유 시추사업과 같이 실패 가능성이 큰 사업은 대통령이 직접 발표하는 경우가 없다. 윤 대통령이 대왕고래를 직접 발표한 날은 여당의 22대 총선 참패 두 달 뒤였다. 실제로 정치적 위기가 닥치자 국면 전환을 시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총선 참패 뒤 ‘대왕고래 프로젝트’ 과장 발표
산업부, 사실상 사업 실패 인정 “경제성 없다”

윤 대통령의 참모 일부는 대왕고래가 지지율 상승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의견을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 측은 이후 야권의 대왕고래 관련 예산 삭감이 12·3 불법 계엄 명분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대왕고래는 시작부터 많은 의심을 받았다. 경북 포항시 인근 바다에 다량의 가스와 석유가 매장돼있을 가능성을 주장한 분석업체 ‘액트지오(Act-Geo)’의 전문성을 두고 의구심이 커졌다.

대왕고래는 지난 2023년 2월 한국석유공사가 액트지오에 대왕고래 유망 구조 데이터에 대한 분석을 의뢰하면서 시작됐다. 액트지오는 “대왕고래 유망 구조서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를 석유공사에 보냈다.

석유공사는 액트지오 분석 결과를 교차 검증하기 위해 국내외 자문단을 꾸렸고 해당 자문단에서는 ‘액트지오의 분석 방법론과 이를 바탕으로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합리적’이라는 의견을 냈다.

이를 근거로 석유공사는 지난해 4월 시추선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비슷한 시기 산업부는 내부 검토를 마무리하고 장관 보고까지 진행한 뒤 최종적으로 대왕고래 유망 구조에 대한 시추가 필요하다고 판단, 대통령실에도 진행 상황을 알렸다.

그러나 액트지오는 글로벌 자원개발회사가 아닌 소규모 분석업체였다. 액트지오 미국 본사 주소지가 일반 주택가인 점도 드러나면서 액트지오 분석 결과에는 의문부호가 따라붙었다. 이 분석을 진두지휘한 비토르 아브레우 박사가 윤 대통령 발표 이틀 만에 한국으로 들어와 기자회견을 여는 등 여론전을 펼쳤으나 의구심을 없애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유명 글로벌 자원개발기업 ‘우드사이드’가 이미 대왕고래 유망 구조를 검토했다가 철수했다는 소식까지 알려졌다.

폭발 직전
활화산

산업부는 우드사이드가 검토한 유망 구조 지역과 액트지오가 분석한 대왕고래 유망 구조 지역이 다르다고 해명했으나 여론은 액트지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산업부는 액트지오 분석 결과를 신뢰한다며 1차 시추를 밀어붙였다. 지난해 7월에는 사실상 매장 가능성이 큰 곳으로 첫 탐사 위치를 정했다. 이후 시추 관련 용역업체를 고른 뒤 지난해 12월 시추선이 1차 시추 지점으로 이동, 한 달 전인 1월 탐사 시추를 시작했다.

탐사 시추 이후에는 1차 지점서 얻은 ‘시료’ 분석에 들어갔다. 유망 구조 내에 가스나 원유 성질의 물질이 얼마나 묻혀 있는지, 경제성이 확보될 정도의 규모 인지를 조금이라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현장 물리 검층·이수 검층 결과 가스, 석유 매장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부는 “대왕고래 시추 작업 과정서 가스 징후가 잠정적이나마 일부 있었음을 확인했지만 그 규모가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고 발표했다.

1차 탐사 시추 실패 가능성이 제기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애초에 밝힌 시추 성공률이 20%였기에 최소 다섯 번은 뚫어야 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프로젝트를 성급하게 발표하면서, 사업에 의구심과 정치적인 논란만 키웠다는 비판이 거세다.


산업부도 “정무적인 영향이 많이 개입” “첫 시추서 성공 확률은 로또보다 작은 데 많은 부담을 안고 있었다” 등의 해명을 내왔다. 사실상 대통령실 등 정치권의 책임론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윤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도 윤 대통령 측으로부터 야당의 대왕고래 예산 삭감 관련 질문을 받자 “중국이나 일본은 근해서 해저자원 개발을 많이 하고 있다”며 “두 나라를 따라가려면 바다서 많이 시추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열음
정면 충돌

나머지 유망 구조 6개가 있는 만큼 전체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예단하긴 이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석유공사는 이번 시추서 얻은 시료 등을 전문 분석 기업으로 보내 약 6개월간 정밀 분석과 실험을 진행한다. 오는 5~6월께에는 중간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산업부 외에도 대통령실과의 갈등 조짐을 보이는 정부 부처는 기획재정부다. 추경 편성 자체를 반대하는 데 이어 여당의 협조를 얻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중국 딥시크로 인해 AI에 대한 관심이 커진 만큼 산하 분과들이 경쟁적으로 여러 제안들을 내놨다. 그러나 예산 벽에 부딪혀 추경 편성에 희망을 걸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도 추경을 통해 AI 관련 예산을 추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상임 과기부 장관은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서 국가AI컴퓨팅센터에 쓰일 GPU(그래픽처리장치) 조기 확보 필요성을 강조하며 “추경을 하면 AI 분야에선 반드시 GPU 구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내에 국가AI위원회의를 주재할 계획이다. 국가AI위는 이 자리서 지난해 12월부터 진행해 온 워크숍과 내부회의를 통해 마련한 시그니처 프로젝트를 보고할 예정인 만큼, 추경을 통한 예산 확보 건의도 이뤄질 계획이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회의적이다. 국민의힘은 추경 논의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전액 삭감된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사업(대왕고래 프로젝트) 예산 등을 복구하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향후 추경을 통해 대왕고래 프로젝트 예산을 복구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딥시크 대응 AI 예산 필요한데…
대화도 안 하고 당국과 거리두기

국정협의체 본회담이 삐거덕거리면서 추경 편성이 무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여야 모두 반도체특별법과 국민연금 개혁안을 둘러싼 안팎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탓이다. 구체적으로 반도체법상 주52시간 근로제 예외와 국민연금 구조·모수개혁 병행 여부를 두고서다. 여당은 삭감예산 복구에, 야당은 AI와 R&D 예산 추가 편성에 방점을 찍었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계엄 이후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 간 소통이 확연히 줄었다. 추경과 관련해서도 야당과 입장이 비슷하다. 대화를 해야 의견이 모이거나 좁혀지는데 양보도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대통령실과 국무위원의 주장이 충돌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 권한대행은 지난 6일 국회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지난해 불법 계엄 당시 국무회의를 “국무회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자리서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국무회의의 본질이 부정당하는 시간은 아니었다”며 다른 주장을 폈다. 윤 대통령은 계엄 당일 최 권한대행에게 전달된 ‘비상입법기구’ 쪽지를 부인하고 있지만, 최 권한대행은 당시 윤 대통령이 직접 자신을 부른 뒤 옆에 있던 참모가 자신에게 ‘비상입법기구’ 쪽지를 전달했다고 재차 주장했다.

각 정부 부처는 지난해 말 올해 업무계획 추진을 위한 보고서 작성을 끝마쳤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구속되면서 모든 업무계획이 늦어졌다. 통상 정부와 각 부처는 12~1월쯤 다음 연도 업무계획을 위해 부처별, 국·과별로 업무보고를 받는다.

정부는 출범 이래 교육개혁 3대 정책인 ▲국가 책임 교육·돌봄(유보통합 등) ▲디지털 교육혁신 ▲대학 개혁과 국정과제로 추진한 의과대학 정원 증원 등 추진 계획 등을 밝혔다. 행정안전부 산하서도 ▲지방행정체제 개편 ▲인구전략기획부 신설 등 조직개편과 관련한 굵직한 정책들이 예고된 바 있다.

예산 두고
갈팡질팡

대통령실 근무 경험이 있는 한 정부 인사는 “국정 동력에 상당한 타격이 가해진 상황이고 대통령실이 모든 정책과 예산 및 계획을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는 게 문제”라며 “‘어떻게 하면 윤 대통령을 살릴 수 있을까’가 아니라 국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외교와 경제가 파탄 나기 직전인데 대화도 하지 않으려는 건 직무유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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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 전 국방부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