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장 뇌물 선거’ 새마을금고 복마전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2.13 15:13:11
  • 호수 1518호
  • 댓글 0개

바꾼다고 바꿨는데 말짱 도루묵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제1회 전국동시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서 부정선거 운동 정황이 노출됐다. 입후보 예정자들이 투표권을 가진 회원 다수에게 현금 등을 살포했다는 것이다. 이밖에 김인 새마을금고중앙회장이 내세운 혁신 과제들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는 3월5일 치러지는 새마을금고 이사장 전국 동시선거가 지난달 21일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본격화됐다. 사상 처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위탁해 치러지는 데다 첫 직선제 선거인 만큼 눈길을 끈다. 새마을금고중앙회와 선관위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부터 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 예비후보자 접수가 시작됐다. 

혁신 과제
살얼음판

후보자 등록일인 이달 18~19일 이전이라도 정해진 범위 안에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한 절차로, 사실상 본격적인 선거가 시작된 셈이다.

이번 선거는 무엇보다 과거 간선제서 만연했던 부정선거의 오명을 벗을 수 있을지가 관심거리다. 부정선거가 금고의 운영 부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새마을금고중앙회가 회원들이 이사장을 직접 선출할 수 있게 한 직선제와 선관위 위탁 방식을 선택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새마을금고 이사장을 간선제 방식으로 선출하면서 각종 부정선거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올해 처음 도입한 이사장 직선제가 의무적으로 적용되는 곳은 자산규모 2000억원 이상의 중대형 금고다. 소규모 금고는 기존처럼 대의원들이 모여 간선제로 이사장을 뽑는 게 허용된다.


직접·위탁 선거가 치러지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정선거가 뿌리뽑히지 않고 있다. 새마을금고법은 누구든지 자기 또는 특정인을 금고의 임원으로 당선되게 할 목적으로 회원에게 금품 및 향응 등을 제공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사장은 재임 중에 기부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은 위탁단체의 임직원은 지위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번 선거와 관련해 도내 위반 조치 건수는 고발 2건, 수사 의뢰 1건, 경고 1건 등 모두 4건으로 늘었다. 이미 전국 곳곳서 부정행위들이 적발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제1회 전국동시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를 공명정대하게 실시해 국민의 기대와 신뢰에 부응하자”며 혁신을 외친 김인 회장은 시작부터 험난한 길에 접어든 모양새다.

회원들에게 음식물을 제공하는 등 부정 선거운동을 한 의혹을 받는 충북지역의 한 새마을금고 이사장이 경찰 조사를 받게 됐기 때문이다. 충청북도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5일, 도내 한 새마을금고 이사장인 A씨를 기부행위와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A씨는 금고 회원들을 대상으로 20만원 상당의 음식물을 제공하고, 소속 직원에게 지지를 부탁하는 등 자신의 당선을 목적으로 기부행위와 지위를 이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중앙선관위 위탁 직선제 “의도 좋은데···”
간선제 일부 지역 ‘현역 프리미엄’ 우려

충북선관위는 지난 1월부터 이른바 ‘금권선거’가 발생하거나 발생이 우려되는 선거 과열 예상 금고 6곳을 특별관리금고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특별관리금고로 지정된 곳에 대해서는 선거 상황에 따라 일정 기간 충북선관위 광역조사팀이 현장 방문·상주하는 등 특별단속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충북선관위 관계자는 “금품 제공자는 강력 조치하고, 제공받은 자에게는 최고 50배의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라며 “입후보 예정자 및 금고 회원 모두 관행적 금품수수 행위 역시 불법임을 엄중히 인식해 깨끗한 선거문화 정착을 위해 적극적인 신고와 제보 등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대구에서는 입후보 예정자 매수 행위가 적발됐다. 대구시 선관위는 지난해 10월 입후보 예정자에게 상근이사 자리를 제안하며 출마를 포기하도록 요구한 모 금고 이사장 B씨를 경찰에 고발했다.

비슷한 시기 부산에서는 회원과 대의원 등에게 상품권을 제공한 모 금고 이사장 C씨가 고발당했다. 부산시선관위는 C씨가 지난해 설 명절 즈음, 회원·대의원 등에게 5만원권 상품권 26장을, 추석 명절 즈음에는 대의원 7명에게 5만원권 상품권을 제공한 사실을 적발했다.

C씨는 정기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대의원 5명의 여비 명세서에 대리 서명하고 여비를 수령해 제공한 혐의도 받고 있다.

또 전북특별자치도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입후보 예정자 D씨는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단체의 청년회장과 공모해 회원 10명에게 지지를 호소하면서 약 30만원 상당의 식사를 제공했다.

청년회장은 이사장 선거 당선을 위해 회원 10여명을 해당 금고 회원으로 가입하게 하기도 했다. 전북선관위는 D씨와 청년회장을 경찰에 고발하는 한편, 단속 역량 강화에 좀 더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최근 경기 남부권 일대서도 회원 약 1만여명에게 각각 현금 9만원가량을 건넸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시작부터
비리 얼룩

이처럼 부정·불법 행위가 근절되지 않자 수사당국이 집중단속에 나섰다.

경찰청은 지난 1월21일 예비후보자 등록 신청일을 기해 전국 경찰관서에 선거사범 수사전담반을 편성해 불법 행위 첩보 수집과 단속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경찰은 금품 수수, 허위 사실 유포, 임직원 불법 선거 개입 등을 3대 선거범죄로 규정하고 엄정하게 단속할 방침이다.

지난 2일 기준 도내 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가 열리는 지역 총 51곳(직선제 28곳·간선제 31곳) 가운데 11곳에서 15명만 출마 의사를 공식화했다. 현 이사장 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 현직 이사장들은 입을 닫고 서로 쉬쉬하는 분위기다.

관계자는 “누가 준비한다느니, 나오느니 하는 소문들조차 안 들리다 보니 많은 이사장이 좌불안석인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이번 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도 ‘현역 프리미엄’이 발휘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인들보다 선거인에 대한 정보력이 우위에 있는 데다 각종 인맥과 현재 지닌 지위 등 다방면서 유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출마 예정자들은 일찌감치 출마 선언을 하고 얼굴 알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한 달 남짓한 예비후보자 등록 기간은 도전자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첫 직선제인 데다 그간 낮았던 새마을금고 투표율 특성상 별다른 고민 없이 선거인들이 현역에 대한 관성적인 투표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현역 이사장은 “새마을금고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선거인이 많고 투표율도 지역이나 금고 사정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며, “평소 친분이나 정보력 등의 이유로 현 이사장들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무조건 선전하리란 보장도 없다”고 일축했다.

현역들의
눈치게임

그러면서 “대부분 현 이사장들은 예비후보 등록을 최대한 늦추거나 본 후보 등록 기간인 18∼19일에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광주·전남지역 금고 86곳의 이사장은 직·간선제로 선출된다. 지난달 30일 광주시·전남도선관위에 따르면 예비후보 등록은 지난달 21일 시작돼 오는 17일까지 진행된다.

중앙선관위 동시 이사장 선거 통계 시스템 집계 결과 현재 광주지역서 등록을 마친 예비후보는 동구 4명, 남구 2명, 북구 1명 등 7명이다. 전남지역은 광양 2명, 보성 1명, 해남 1명, 무안 2명, 영광 2명 등 8명으로 양 지역 모두 설 연휴를 앞둔 데다 초반이라 등록률이 저조했다.

광주와 전남에선 86개 금고(전남 51개·광주 35개)서 이사장을 직·간선제로 뽑는다. 이번 선거는 지난달 21일 기준 이사장 임기가 남아있는 일부 금고를 제외한 전국 1116개 금고서 진행된다.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는 이사장 선거와 함께 4월 실시하는 ‘상반기 재보궐선거’ 등을 앞두고 중점 대책 논의에 나섰다. 도 선관위는 지난달 22일 구·시·군 선관위 사무국·과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2025년도 주요업무계획 회의’를 진행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올해 주요 목표를 ‘국민에게 신뢰받는 공정한 선거관리’와 ‘민주정치 발전을 위한 기반 공고화’ ‘미래지향적 조직역량 강화’로 정했다. 이를 기반으로 빈틈 없는 선거관리를 위해 ▲법과 원칙에 따른 완벽한 선거 사무 관리 ▲자유와 공정이 조화되는 준법선거 실현 ▲국민 신뢰도 제고를 위한 조직 쇄신 등을 중점 추진 사항으로 정하고 모든 역량을 집중해 나가기로 했다.

명절 맞물려 금품과 음식 살포
5만원짜리 1구좌 만들어도 투표

또 최근 사회 일각에서 무분별하게 제기되고 있는 부정선거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도내 모든 직원이 각자의 업무에 더욱 최선을 다해 올 상반기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할 방침이다.

도선관위는 “공정한 선거관리라는 헌법적 책무를 더욱 깊이 새겨, 모든 선거를 법과 원칙에 따라 정확하고 투명하게 관리함으로써 국민의 확고한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한편, 김인 회장의 경영 책임론은 지속적으로 거론될 전망이다. 지난해 새마을금고 이사장들의 위탁선거를 위해 중앙선관위에 내는 돈이 49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소규모 단위 금고까지 선거 위탁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비용을 의무적으로 지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시사저널>이 중앙선관위와 새마을금고중앙회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선관위는 전국 동시 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 관리 경비로 총 490억원을 산출했다. 이는 단위 금고가 관할 지역 선관위에 위탁선거를 위해 내야 할 비용을 모두 합한 금액이다. 각 금고들은 비용의 절반가량을 중도금으로 집행한 상태다.

또 선관위 자료에 따르면, 직선제 선거를 하는 금고의 경우 선거인당 평균 7990원을 부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체적으로 직선제를 진행할 때 3250원인 것에 비해 비용이 2배 이상으로 뛴다. 간선제인 대의원회 방식도 선거인당 7만5330원에서 20만4190원, 총회 선출 방식은 1470원에서 9780원으로 늘어난다.

이에 따라 1개 금고 평균 부담액은 직선제 5940만원, 대의원회 2450만원, 총회 3305만원이다.

좌불안석
혁신 불똥

새마을금고의 경우 선거권은 있지만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회원도 많다. 금고가 대도시에도 널리 퍼져 있는 특성상 투표율도 금고 사정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평균 5만원 수준의 출자금 1좌 이상을 6개월만 유지하면 되기 때문에 선거권을 갖기 위한 문턱도 상대적으로 낮다. 이 같은 ‘허수’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조합원 전체를 근거로 비용을 정하다 보니 비효율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창립 이래 최악의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새마을금고의 비용 부담은 한층 커지고 있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통합 슈퍼앱 ‘MG더뱅킹’ 첫날부터 먹통

통합 슈퍼앱 ‘MG더뱅킹’이 개통 첫날부터 접속 장애를 겪으면서 새마을금고 경영진이 진땀을 뺐다. 

지난 1월 금융권에 따르면 디지털 혁신 전략에 차질이 생겼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MG더뱅킹은 기존 간편거래 중심의 ‘MG상상뱅크’와 ‘MG스마트알림’ 앱을 통합한 새마을금고의 슈퍼앱이다.

새마을금고는 앞서 MG더뱅킹의 경쟁력을 은행권 수준으로 단숨에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앱 출시를 준비했다.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금융사들이 슈퍼앱 경쟁을 펼치며 고객 확보에 힘을 싣는 상황서 새마을금고도 그에 못지않은 수준의 슈퍼앱을 구축해 은행권과 나란히 경쟁하겠다는 포부를 내놓은 셈이다.

하지만 MG더뱅킹이 첫날부터 약점을 드러낸 만큼 기대치에 맞는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예상보다 더 많은 시일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MG더뱅킹은 지난달 13일 앱 출시를 위해 새벽 0~6시 고객 접속을 차단하고 업데이트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앱을 개시한 뒤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약 8시간 동안 접속 지연 등 현상이 나타났다. 

김인 회장은 “접속 지연 등의 문제로 회원 여러분들께 불편을 드린 점 양해 바란다”고 말했다. <성>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