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산사태 위험’ 용인 실버타운 토사 반출 논란

용역 결과 다르게 내 맘대로 삽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인허가 과정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용인시 고기동의 노인복지주택 공사 현장서 또 논란이 발생했다. 신원 미상의 단체에 ‘중단된 공사 현장서 산사태 위험이 있으니 토사를 반출해야 한다’는 민원을 받은 용인시가 주민들의 반대에도 해당 계획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과 주민들이 협의해 토사 반출 외 방법을 검토했지만 그 결과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용인 고기동서 건립하다 공사가 중지된 노인복지시설의 공사 현장이 다시금 논란이 되고 있다. 산사태 위험으로 공사가 중단된 가운데 토사 반출을 하고 있었지만 이보다 안정화 작업을 하는 것이 좋다는 용역 결과가 나오면서다.

인허가 과정
특혜 의혹도

지난해 <일요시사>는 용인시 고기동 산20-12번지 일대 노인복지시설 건립에 대한 인허가 특혜 의혹을 보도했다. 설립 초기 계획된 노인복지시설 건립이 아니라 실버타운을 목적으로 하는 계획안이 인허가됐다는 것이 해당 보도의 골자였다.

인허가 이후 사업자는 시에 지난 2023년 8월 착공 신고했고 시가 ‘착공신고필증’을 교부했다. 하지만 일부 학부모들은 학생 통학로로 공사 차량이 진출입하는 것에 대해 안전상 우려 목소리를 내면서 공사는 사실상 중단됐다.

공사가 중단되면서 공사 현장에는 7만5000㎥ 토사가 적치됐다. 인근 주민들은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공사 현장은 산림청 산사태위험지도상 산사태 위험도 1~2등급에 해당하는 곳으로, 토사가 장기간 방치될 경우 산사태 위험 등이 있다.


토사 유출 우려가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해 8월 마을 주민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고기동실버타운비상대책위원회’라는 실체 불명의 단체가 “산사태 위험이 있으니 토사를 반출하게 해달라”는 민원을 용인시에 제출했다.

용인시 도시정비과는 민원인과 단체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 확인도 없이 노인복지주택 사업자에게 토사 반출 계획서를 사전에 제출받았으며 이를 근거로 고기초학부모회 등에 토사 반출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에 고기동생태안전주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와 고기초학부모회는 안전상의 이유로 해당 계획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비쳤지만 용인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토사 반출계획은 계속 진행됐다.

이에 국민의힘 이창식 용인시의회 의원은 지난해 11월29일 “현재 추정되는 공사 현장의 토사만 무려 7만5000㎥로 추정돼 하루 6시간가량을 3개월 동안 매일 반출해야 되는 규모로 다수의 주민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며 “토사를 빼내며 꼼수 공사가 이뤄지지 않는지 철저한 관리감독과 함께 사토 처리 과정에도 불법이 없도록 시가 제대로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시의원은 “2015년 노인복지법이 개정되기 직전 실시계획 인가와 건축허가를 받아내 개인이 분양할 수 있는 국내 마지막 분양형 실버타운이 될 이 곳에 대해 용인시는 사업자에게 법 개정 직전에 허가를 내줬고, 덕분에 사업자는 임대서 분양으로 개발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지적하면서도 “그러나 현재 고기동 실버주택은 공사조차 제대로 시작하지 못한 채 깎아내려진 산비탈과 가파른 경사면의 토사는 언제든 마을로 쏟아질 수 있는 상황서 주민들은 매일같이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체 미상 단체 민원에 반출 계획
시장·주민 협의해 안전점검 검토

계속된 반대 의견에 결국 이상일 용인시장은 대책위와 고기초학부모회와 ‘토사 반출을 전제하지 않는’ 사면 안정성에 대한 검토와 대책에 대한 용역 검토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 시의원은 합의 이후 시에 ▲용인시는 왜 진작 사업시행자에 안정성 검사를 주문하지 않았는지 ▲한 달 뒤에 나올 안정성 검토 결과에 따른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용역 결과에 따라 공사 차량의 운행이 재개되더라도 안전을 위한 보수·보강 공사 외에 본공사는 절대 진행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사업자에 받아낼 것 등의 대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시는 지난해 11월 주민 추천으로 안전점검 관련 전문업체를 선정했고 용역은 지난해 12월13일 최종보고를 실시했다.

용역은 ‘노인복지주택 비탈면 안정성검토 용역 보고서’를 통해 “압성토 및 소일네일링(Soilnailing) 공법을 통한 보수·보강 방안으로 토사의 반출 없이 장·단기 비탈면의 안정성 확보가 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소일네일링 공법은 비교적 연약한 지반의 옹벽이나 절토 사면을 보강하기 위해 사용하는 공법이다. 흙막이 벽체를 설치하지 않고, 굴착면에 긴 강봉(네일)을 삽입해 이를 접착제로 고정한 후 굴착면을 보강해 보강 구조체를 형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소일네일링은 네일이 주변 지반과 일체화돼 전단 저항을 높이는 방식으로 지반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로 영구적인 지반 보강에 사용되며, 장기적인 안정성 확보가 가능하게 된다.

하지만 용인시는 보고서에 나온 검토의 전제조건인 ‘비다짐 성토재 및 일부 표토(붕적층)의 현장 외 반출과 경사 완화를 통해 근본적인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장기적 안정성 확보 차원서 가장 바람직하다’는 문구에 집중해 토사 반출계획서를 다시 주민들에게 배포했다.

뭐하러
맡겼나

이에 용역을 진행한 업체 책임자는 “본 용역의 결론은 토사 반출 없이 사면 안정화 보강공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라며 “검토 방향에 나오는 토사 반출에 대한 내용은 토사 반출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를 포함한 보수 보강을 검토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는 검토 방향을 설명하기 위해 쓴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초 토사 반출 이외의 방법으로 사면 안정화 가능 여부에 대해 검토를 요청했고 이외의 방법이 불가능할 때 토사 반출을 검토할 수 있다는 전제가 처음부터 깔려있었는데 해당 부분만 보고 이를 진행하는 것은 오독”이라고 덧붙였다.

대책위 한 관계자는 “용인시 도시정비과는 용역 결과에 대한 주민설명회를 개최하기도 전에 이미 ‘토사 반출’이라는 결론을 정하고 일정이나 방법까지 계획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며 “주민과 합의 없이 사전에 결과를 확정한 채 진행하는 주민설명회는 요식행위에 불과할 뿐 설명회로서의 의미가 없고 효력도 없다”고 일침했다.

그는 “용인시가 노인복지주택공사에 ‘공사 차량 운행 제한 조치’를 내려놓고 토사 반출을 위해 덤프트럭 약 1만대를 공사 현장으로 보내며 스스로 조치를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용역 결과를 왜곡하고 주민과의 협의도 없이 사전에 일방적으로 결정해 보전산지에 대한 불가역적 훼손을 초래했으며 고기동 주민의 생명권과 행복추구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이는 형법 제123조 ‘공무원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죄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며 “지금이라도 토사 반출을 즉각 중단하고 용역의 결과인 토사 반출 없는 안정화 조치를 확정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용역업체와 주민들의 의견에도 시 도시정비과는 지난달 27일 주민설명회를 개최하고 사업자가 작성한 ‘토사 반출계획서’를 주민과 학부모에게 나눠주고 “이번 용역 결과는 침사지가 없어져 실행이 불가능하니 토사 반출할 수 밖에 없으며 이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덤프트럭
1만대 투입

참석한 주민과 학부모들은 “이럴 거면 시 예산을 들여가며 용역할 필요가 무엇인가” “답정너로 용인시가 결과를 정해 놓은 것 아닌가” “전문가가 토사 반출 없이 공사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공무원이 왜 불가능하다고 하느냐” 등 분노에 찬 의견을 표출했다.

사업자가 작성한 토사 반출계획서에 따르면 현재 공사 현장의 토사 현황은 하루 평균 42대의 덤프트럭을 이용해 세 개의 구간서 적게는 2개월 동안, 많게는 2.5개월 동안 토사 반출을 진행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각 구간에 굴삭기 1대씩 투입해 평균 550㎥의 토사를 반출한다고 적혀있다.

사업자는 해당 사토를 반출하기 위해 하루 평균 95대 덤프트럭(왕복 2.5분마다 1대)를 운영해 하루 평균 1200㎥를 반출하거나 65대의 덤프트럭(왕복 4분마다 1대) 꼴로 하루 평균 850㎥를 각각 3개월 동안 반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고기동 노인복지주택 부지는 공사 차량 경로를 확보하지 못해 현재 공사가 중단된 상황이다. 당초 사업자는 고기동 고기초 앞 왕복 2차선 도로를 통해 공사 차량을 통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학생 안전을 이유로 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해 용인시로부터 착공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이에 사업자는 고기초 방향이 아닌 반대편의 성남시 분당구 석운동으로 이어지는 소도로를 이용하는 공사용 도로 변경 계획안을 내놨다. 해당 계획안에는 편도 1차선 도로 800m 구간을 2차선으로 확장하겠다는 것도 포함됐다.

하지만 석운동 주민들과 성남시가 “서판교 대한송유관공사 판교저유소가 위치해 있는 석운동은 개발제한지역으로 공사 차량이 이용하려 하는 도로(석운로)의 폭이 7m도 안 되고 인도도 없다”며 반대했다.

용인시는 착공 허가만 내주고 대책을 세우기 전까지 공사 차량 운행을 제한했다. 이에 사업사업자 측은 지난해 11월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사업자는 행정심판서 “고기초를 지나지 않는 도로를 이용한 우회도로를 제시하고, 주민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는 운행계획을 제출함으로써, 이미 공사용 도로 관련 인가 조건을 모두 충족했다”며 “피청구인(용인시)의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한 부관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일네일링 공법 제안 무시
안전 계획도 신호수 배치만

하지만 도행정심판위원회는 용인시의 운행제한이 정당한 행정 절차라고 판단했다.

도행정심판위원회는 “건축 심의 및 실시계획인가 단계서 청구인에게 부여된 사항으로, 청구인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익을 제한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시의 통보가 지역주민의 공사 차량 운행 반대 문제 해결 방안을 수립해 재협의하도록 요청하는 것인 만큼, 사업시행자의 권리·의무에 어떤 변동을 초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행정심판이 각하되자 이번에는 고기초 앞 동막천 건너편 성남시 대장동 벌장투리마을을 통한 임시도로를 개설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해당 도로는 용인-서울고속도로(용서고속도로)의 회차로를 사용해 벌장투리마을을 지나 공사 현장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현재는 이마저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회차로를 지나 나오는 벌장투리마을 주민들도 공사 차량이 지나는 걸 반대하면서다.

시는 옹벽 설치 중 안전사고 및 재해 위험이 있다며 공사 차량 운행을 일시 허용한 적 있다. 시 관계자는 “지난해 4월 옹벽 설치 중인 현 시점서 공사 중지 시 옹벽 전도 및 절취사면 붕괴 우려로 인근지역 안전사고 및 재해 위험이 상존해 일시 허용이 부득이했다”며 “다만 당시에는 25t 트럭 대신 5t 이하의 차량으로 제한하고 새벽 시간을 이용해 운행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렇게 최소한으로 통제하는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공사 차량에 의한 위험 가능성이 높다고 꼽히는 초등학생들의 방학 기간을 노리고 최대한의 효율로 용량이 큰 차량으로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하려는 듯한 교통처리계획안을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사업자와 더불어 용인시에서도 ‘안전에 만전을 기하겠다’ ‘방학 기간에 하겠다’ ‘신호수를 배치한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하지만 초등생의 방학 기간은 사업자의 토사 반출계획보다 짧다. 게다가 토사 반출계획서에 안전과 관련한 계획은 그저 차량 운행 교차로마다 교통관리인을 배치한다는 내용뿐이다.

앞서 이 시장은 토사 반출 외 방법 검토를 위한 용역 협의 당시 “위험성에 대해서는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려를 제기하는 고기초 학부모들과 소통하며 사면 안정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용역에 들어갔다”면서 “실시계획인가가 이뤄졌을 때 ‘별도의 진출입 계획을 수립하라’는 조건이 부여된 만큼 사업자는 이 조건을 그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뒤 다른
시의 입장

이어 “토사 문제와 관련해서 안정성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 결과를 보고 깊이 검토해서 사면 안정화 공사 여부에 대한 시 입장을 정할 방침”이라며 “사면 안정성은 반드시 기해야 하고, 그 이후 문제는 원래 실시계획인가 기준에 맞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결국 원래 진행하던 토사 반출계획으로 진행되고 있다. 시장과 공무원의 입장이 다른 것인지, 아니면 이 시장이 주민들 앞과 뒤에서 다르게 행동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는 시점이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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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