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보 없는 여의도 풍항계

지금 부는 바람이 순풍? 역풍?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여의도가 심상치 않다. 졸지에 ‘내란 수괴 옹호당’이란 꼬리표를 단 국민의힘이지만 어째서인지 더불어민주당의 뒤를 바싹 쫓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광판 대신 유튜브를 택한 덕분일까? 여야 앞에 역풍과 순풍이 번갈아 들이닥치며 모두가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탄핵 열차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락가락 공수처+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회복+내란죄 철회 등이 연속적으로 일어나 동력이 떨어졌다는 평이다. 민주당은 열차의 액셀을 밟을 수도, 시동을 끌 수도 없는 처지다.

넘지 못한
권력의 벽

지난해 겨울부터 시작된 탄핵 정국 내내 기세는 야당의 편이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청구됐을 때 정점을 찍나 싶더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빈손으로 한남동 관저를 빠져나오면서 조금씩 꺾이기 시작했다.

앞서 지난 3일 공수처는 윤 대통령 체포영장과 대통령 관저 수색영장 집행을 시도했지만 대통령경호처 등에 막혀 약 6시간 만에 철수했다. 이날 한남동 관저 앞에 모인 탄핵 반대 시위대와 보수 단체는 공수처가 물러서자 환호하며 기뻐했다. “우리의 힘으로 대통령을 지켰다”는 생각에 결집력이 강해지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영장 집행이 무산된 데 대해 “집행 과정서 예측하지 못한 부분이 많이 발생했고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서 서울서부지방법원이 발부한 1차 영장까지 만료됐고 결국 지난 7일 체포 영장을 재발부받았다.


공수처는 “2차 집행이 마지막이라는 비상한 각오”라며 신병 확보 의지를 다졌다.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꼬였다. 경호처 뒤에 숨은 채 체포영장에 불응하는 윤 대통령도 문제지만, 일각에서는 공수처가 수사를 무리해서 밀어붙였기 때문에 이 사달이 났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윤 대통령 체포 영장 집행을 경찰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에 넘기려다 반발에 부딪혀 곧바로 철회한 것 역시 불신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우려는 공수처가 자처한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 초기부터 제기됐다. 수사 역량이 부족했을뿐더러 지난 4년 동안 공소 제기한 사건이 4건에 그치는 등 경험이 많지 않다. 무엇보다 차장을 포함한 검사가 15명에 불과해 현직 대통령이 연루된 대형 수사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화살은 민주당에 향했다. 문재인정부 시절 공수처가 처음 꾸려졌을 때 국민의힘은 “검찰의 힘을 빼겠다며 만든 조직”이라고 비판했다. 그런 공수처가 갈피를 못 잡자 “무능한 조직”이라는 프레임이 덧씌워졌고 아예 공수처를 폐지하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가 불투명해지자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공수처를 싸잡아 비판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은 민주당을 향해 “민주당 이재명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2심 판결 전 조기 대선을 치르겠다는 목표하에 정부·여당에 일방적 내란 프레임을 씌우고 법치 파괴행위를 불사하며 속도전을 내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욕심내다 결국…” 공수처 헛발질
지켜보던 보수 환호…지지율 급등

공수처를 향해서는 “내란죄 수사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는데도, 무리하게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을 강행하려고 한다”며 “현재 정국을 자신들 지위를 공고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며 사법체계 공정성을 크게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도 실망감을 내비쳤다. 민변은 입장문을 통해 “공수처는 체포영장 집행 과정서 너무나 무책임하고 무능하며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실제 수사 역량이 부족했다면 법치주의 실현을 위한 강한 의지와 결기라도 보여줬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며 “공수처는 이제라도 좌고우면하지 말고 국민의 뜻을 받들어 조직의 명운을 걸고 신병 확보에 매진하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 체포가 무산으로 돌아간 건 물리적 한계로 이해할 수 있다지만, 여당 지지율이 비상계엄 선포 이전만큼 회복한 건 이례적이라는 평이다. 여기에 윤 대통령에 대한 국정운영 지지율이 40%까지 올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보수 지지자들이 더욱 결집하는 양상을 띠었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2~3일 이틀간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1명을 대상으로 한 정당 지지도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34.4% ▲민주당 45.2%로 집계됐다.

같은 업체서 조사한 결과 비상계엄 발생 직전 국민의힘 지지율은 32.3%였다. 이후 지난해 12월1주차에 26.2%로 급격히 떨어졌다가 차례대로 ▲25.7% ▲29.7% ▲30.6% 등을 나타냈다. 비상계엄 해제 이후 더디지만 점차 회복세에 오른 것이다.

해당 여론조사에 대한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다. 조사는 무선(97%)·유선(3%) 자동응답 방식,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야당의 주도로 한덕수 전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이 잇달아 일어났다. 다음 타자인 최상목 권한대행을 향해서도 으름장을 놓자 보수 지지자들은 “야당이 국정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지율
왜 올라?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된다”는 현수막이 동네 곳곳에 걸린 것도 비슷한 시점이다. 지난 2일 윤 대통령은 관저 앞에 모인 지지자들을 향해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서면 메시지를 발표했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윤 대통령의 자신감과 야당의 연쇄 탄핵안이 결합해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원인이 됐다는 해석이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40%까지 급등한 것에 대해서는 여당도 고개를 갸웃했다. <아시아투데이>가 한국여론평판연구소(KOPRA)에 의뢰해 지난 3~4일 이틀 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40%(‘매우 지지한다’ 31%, ‘지지하는 편이다’ 9%)로 집계됐다.

해당 여론조사는 무선 RDD를 이용한 ARS 조사 방식으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응답률은 4.7%이며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10%대로 추락한 지지율이 한 달 새 회복한 것도 모자라 임기 초반에 가까운 숫자로 나타난 것이다. 지지율이 눈에 띄게 오르자 야당은 “편향된 조사”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국민의힘은 예상치 못한 수치에 당황스러운 눈치다. 구태여 말을 얹지 않았지만 먼저 나서서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고 있다.

대표적인 반윤(반 윤석열)인 국민의힘 중진 유승민 전 의원만이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착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 전 의원은 “저 여론조사가 진실이라면 계엄 한 번 더 하면 지지율이 올라가냐”며 “윤 대통령의 잘못을 엄호하고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들만 보고 정치를 하면 앞으로 모든 선거서 판판이 질 것”이라고 질책했다


40%라는 숫자가 나온 데에는 여론조사 문항이 편파적이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총 10개 문항으로 이루어진 해당 여론조사에서는 윤 대통령의 지지도와 정당 지지도를 물은 뒤 3번 문항부터 “윤 대통령 체포영장에 대한 불법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수처가 현직 대통령을 강제 연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중앙선관위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한 야당 관계자는 “응답 도중 중도·진보층은 중간에 대거 이탈 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 세력만 끝까지 남아 성실하게 답변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는 다소 신뢰가 떨어지는 여론조사로 보고 있지만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동기 부여가 됐다.

민주당
자충수?

민주당이 쏘아 올린 ‘내란죄 철회’ 수습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유서 내란 행위를 형법 대신 헌법 위반으로 재구성해 심판대에 올리겠다는 민주당과 이에 맞선 윤 대통령 측의 공방이 장기화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탄핵소추안을 재의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대통령의 법률대리인단 역시 “탄핵소추 사유서 내란죄를 철회한다는 것은 단순히 2가지 소추 사유 중 1가지가 철회되는 것이 아니라 무려 80%에 해당하는 탄핵소추서의 내용이 철회되는 것”이라며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기존 탄핵소추안에 명시된 내란죄 중 형사법적 위반 부분을 빼고 헌법 심판에 맞게 ‘재구성’하겠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탄핵소추의결서에 나오는 내란 행위는 조사 대상에 포함되고, 이에 따라 민주당이 주장하는 “내란 사유를 단 한 줄도 빼지 않았다”는 주장도 들어맞는다.

민주당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내란죄가 성립이 안 되니 이제와서 탄핵 사유를 고친 게 아니냐” 등의 의구심은 여전히 전파되고 있다.

탄핵 심판 변론일이 다가오면서 국회와 윤 대통령 측도 내란죄 철회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종국에는 야당이 여론전서 밀릴 수 있는 불리한 구도에 몰렸다. 이를 깨트리기 위해서는 탄핵안서 내란죄를 ‘삭제’한 것이 아닌 재구성했다는 부분을 여러 차례 부각하는 수밖에 없다.

여당의 강경 대응이 이어지는 모습을 보자니 7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와 다르게 흘러가는 듯하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은 속수무책 끌려다녔지만 두 번째 탄핵 정국을 맞닥트린 국민의힘은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며 맞서 싸우는 편을 택했다.

탄핵소추안 표결 때도 국민의힘은 부결을 당론으로 택했다. 분열하기는커녕 가결파를 ‘배신자’로 낙인찍고 이른바 ‘쌍권(권영세·권성동)’ 체제로 빠르게 단일대오를 이뤘다.

대통령의 태도도 다르다. 박 전 대통령과 윤 대통령 모두 관저에 숨었다는 점은 같지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박 전 대통령과 달리 윤 대통령은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

야당 내란죄 철회·최 탄핵 딜레마
액셀에 발 올리고 잠시 숨 고르기

예상을 빗나간 모습에 민주당도 완급 조절에 나섰다. 먼저 민주당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탄핵이 아닌 고발을 택하면서 숨 고르기에 나섰다.

지난 7일 민주당은 최 권한대행을 직무유기 혐의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민주당은 ▲내란 상설특검 후보자 추천 의뢰 미시행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마용주 대법관 후보자 임명 연기 ▲대통령경호처를 통한 윤 대통령 체포 영장 집행 방해·방관 등을 직무유기 사유로 제시했다.

민주당이 한 단계 수위를 낮춰 고발을 택한 배경에는 한 전 권한대행에 이어 최 권한대행까지 탄핵 절차를 밟으면 국정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상계엄 선포로 정치·외교·안보·경제를 불안에 몰아넣은 것은 윤 대통령이지만, 민주당이 수습 대신 혼란을 가중한다면 역시나 책임이 따를 것이란 점에서다.

민주당은 국무위원 추가 탄핵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해 8인 체제로 만들어준 것은 인정해야 한다”며 “최 권한대행에게 굉장한 불만을 갖고 있고, 나도 SNS를 통해 비열한 태도를 비난했지만, 민주당서 최 권한대행의 탄핵을 얘기하는 건 성급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언제든지 탄핵을 추진할 여지는 남겨뒀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6일 중진 의원 간담회서 “주권자인 국민은 내란범이 침탈한 주권 회복을 위해 눈비를 맞으며 밤을 새우고 있는데, 수습해야 할 최종 책임자인 최 권한대행은 대통령 놀이만 해서 되겠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회는 국정 정상화를 위해 최 권한대행에 대해서 형사고발뿐만 아니라 탄핵이라는 국회가 가진 국정 정상화를 위한 마지막 수단까지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대로 당하지 않겠다는 여당과 내란 수괴 혐의자를 심판하기 위한 야당의 힘겨루기가 이어지면서 여의도 정가도 하루에 몇 번씩 뒤집히는 추세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저렇게 자신 있는 이유는 국민 10명 중 3명만 윤 대통령을 지지해도 승산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보수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또 정권을 잡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입으로 흥해
입으로 망해

이 모든 사태의 장본인인 윤 대통령의 입이 주목받고 있다. 그의 말 한마디에 보수는 환호하고 야당은 분노했다.

여론이 윤 대통령 쪽으로 기운다고 하더라도 결국 7:3이다. 분노의 파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면 종국에는 남은 세 명의 목소리 정도는 거뜬히 집어삼킬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야권발 대통령 도주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재발부되던 날 느닷없이 ‘윤석열 도주설’이 일파만파 퍼졌다.

해당 의혹은 윤 대통령이 한남동 관저에 칩거하던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됐지만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대통령 도주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여러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답해 논란이 커졌다.

관저 앞을 에워싼 탄핵 찬성 지지자는 물론 보수 단체까지 분노를 드러냈다.

탄핵 반대 시위의 경우 “이 추운 날 이제까지 아무도 없는 텅 빈 관저를 지키고 있던 거냐” 등 실망감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다수의 언론 보도를 통해 관저 입구 쪽에서 윤 대통령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포착돼 대통령 도피설은 일단락 됐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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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