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㉙푸른 하늘의 악마들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4.11.25 04:00:01
  • 호수 15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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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글은 거기서 끊어졌다. 조난당한 어떤 사람의 이야기 같았다. 더 읽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든 이유는 물론 용운 자신이 처한 형편도 그에 못하지 않다는 것 때문이었겠지만, 한편으론 그 빛바랜 종이 쪼가리가 누나로부터 주어졌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용운은 독백하듯 중얼거렸다.

원생들의 동요

“이 종이쪽지가…… 누나가 내게 주는 연애편지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창백한 손으로 내게만 주려고 쓴 것이라면…… 한 글자 한 글자 내 심장에 눈물처럼 새겨 넣을 텐데…….”


용운은 스스로 부끄러운지 쓴웃음을 지었다.

서둘러 선감학원으로 가보니 그곳엔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많은 원생들이 멀찍이 둘러서서 구경하는 가운데 ‘푸른 하늘의 악마’로 소문난 일심사 사장의 격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쌍새끼야! 아무리 꺼벙하기로 할 일과 못할 일을 구별도 못하냐? 이 쌍놈 새끼!”

“선새임, 잘못했떠요! 이제 더, 덩말 안 그럴께요!”

그건 일심사의 바보 판길이였다. 최 사장이 굵직한 몽둥이로 그를 사정없이 후려패는 중이었다.

“저 녀석 왜 저러냐?”

용운은 한 원생에게 물었다.


“마을 집에 들어가서 굿 지낼 음식을 훔쳐먹었나 봐.”

“뭐?”

용운은 마구 매타작을 당하는 판길이를 바라보며 착잡하게 대꾸했다. 대번에 보통 일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하기야 판길이 마을 집에 들어가 음식을 훔쳐먹은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낮이면 염전이나 농사 일로 거의 비어 있다시피 하는 마을 집을 드나들며 부엌을 뒤지곤 했던 것이다.

몇 번 들키기도 했지만 피해가 크지 않아 그냥 넘어가곤 했는데 이번만큼은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며칠 전부터 어렵게 준비해 온 굿 음식이 아닌가?

마침 굿 준비를 위해 일찍 들어온 주인에 의해 판길은 현장에서 잡혔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주인은 이장과 함께 선감원으로 찾아와 항의를 했던 것이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다급했던지 판길은 식당의 배수구 구멍으로 자꾸 머리를 쑤셔박았다. 매질을 피해 그 속으로라도 들어가려는 듯한 행동이었다.

사장은 매질을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그동안 별러 오기나 했던 것처럼 아주 뿌리를 뽑으려 하고 있었다. 

판길은 마구 괴성을 지르며 유리창을 들이받았다.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런데도 사장은 팔짱을 낀 채 눈 하나 깜빡 않고 바라보며 빈정대는 것이었다.

“얼씨구! 병신 새끼가 지랄하고 자빠지네.”

그는 옆에 붙어선 꼬붕을 향해 느긋하게 말했다.

“얘, 정말 불쌍해서 못 봐주겠지? 하하, 짜식. 약 좀 발라 주게 주방에 가서 소금 한 주먹 집어와라. 빨리 가서 가져와!”


소금을 가져오자 사장은 한 손으로 판길의 목덜미를 누르고 피가 흐르는 상처 위에 슬슬 뿌리며 말했다.

“어이구, 얼마나 아플꼬? 자, 치료해 줄 테니 조금만 참거라.”

판길은 피범벅이 된 머리를 움켜잡고 울부짖으며 땅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쯧! 금방 나을 테니 조금만 참아라, 응?”

미미한 불씨처럼 가물거리던 목숨
“누가 우리 몫 떼먹는 게 확실하다”

한동안 빈정대던 사장은 이윽고 손에 묻은 소금을 털고는 태연하게 본관 건물 쪽으로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간밤에 판길이 운동장에 피를 뚝뚝 흘려 놓은 채 탈출했다는 소문을 용운은 식당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잘 탈출하여 새 삶을 살기를 용운은 마음속으로 바랐다. 

하지만 며칠 후, 이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방파제 부근에서 그의 시체를 건져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탈출은 목숨과 똑같았다. 언젠가 한 탈출자가 시체와 같은 꼴로 바닷물에 떠밀려 왔었다. 인공호흡을 시도한 끝에 미미한 불씨처럼 가물거리던 그의 목숨이 극적으로 회생되었다.

탈출에는 실패했어도 죽음을 체험한 셈이었다. 

하긴 성공하는 사람도 간혹 있었다. 탈출의 성공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근거는 누구든 도중에 죽으면 시체가 물에 밀려 어김없이 되돌아온다는 사실이었다.

조수 간만의 변화에 따라 멀리까지 밀려가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시체는 반드시 발견되었다. 따라서 탈출의 성공 여부는 며칠 정도만 지나면 알게 되었다. 

판길의 죽음은 원생들 간에 적잖은 동요를 일으켰다. 아무리 개판이더라도 어느 정도 견디게끔 해주는 게 원칙 아니냐는 거였다.

한 시간도 못 가 배가 꺼지는 보리밥에 시래깃국 한 그릇이 말이나 되느냐고 했다.

어린애 배도 채우지 못할 양으로 한참 자라나는 몸이 어떻게 견딜 수 있겠냐느며, 이번에 단합하여 처우 개선을 강력히 요구하는 게 어떠냐고 떠들었다.

“쓰벌, 말 나온 김에 한번 엎어 버릴까?”

원생들은 모이기만 하면 그 문제로 쑥덕거렸다. 

“글쎄, 그런다고 누가 우리 말에 귀나 기울이려고 할까? 아마도 폭력을 써서 더 쉽게 해결하려 할걸.”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명색이 국립 수용소인데 호락호락할 리가 있겠어? 하지만 소문에 의하면 누가 우리 몫을 떼먹는 게 확실하다는 거야. 우리 힘으로 증거를 잡기는 어렵지만, 정부에서 직접 조사해 보면 틀림없이 뭔가 나온다구. 만약 그렇다면 그놈들도 뒤가 구린 이상 우릴 함부로는 못하겠지.”

그런 의견들이 한동안 은밀하게 오고 갔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쑥덕공론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쉬쉬하며 말들만 오갔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계획은 좀처럼 나올 줄 몰랐다.

무엇보다 신분상의 약점도 그렇고 괜히 잘못 나섰다가 어떤 화를 당할지 두려웠을 터였다. 

불을 당기다

그러던 중 자칫 흐지부지될 뻔했던 그 일에 본격적으로 불을 당기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건 각심사의 어린 원생에 의해서였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그 아이가 어느 날 배고픔을 못 이긴 나머지 밭에서 밀을 따 급하게 비벼 먹다가 끈적끈적해진 덩어리와 까끄라기가 목에 걸려 어이없이 급사하고 만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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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지방선거 관전 포인트

미리 보는 지방선거 관전 포인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선이 끝났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승자와 패자가 뚜렷하게 갈렸다. 각 정당은 선거 결과에 따라 여당과 야당의 역할에 골몰할 것으로 보인다. 대형 선거를 치른 정치권은 숨 돌릴 새도 없이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지방 권력의 향방을 결정하는 지방선거가 채 1년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서 시작된 대선 정국이 마무리됐다. 2022년 5년 만에 정권교체를 당했던 진보 진영은 3년 만에 다시 여당의 지위를 되찾았다. 보수 진영은 비상계엄과 탄핵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번 대선이 대통령 궐위로 치러진 보궐선거인 만큼 당선인은 인수·인계 기간 없이 바로 임기에 돌입했다. 또 한 번 정권교체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6개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한 지 60일 만에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지난 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49.4%,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2%,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8.34% 득표율을 기록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0.98%, 무소속 송진호 후보는 0.1%였다. 지상파 3사(KBS·MBC·SBS)가 진행한 출구조사 결과와 차이를 보였지만 당락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는 한국리서치·입소스·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에서 본투표 당일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전국 325개 투표소의 투표자 8만146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0.8%포인트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는 이 대통령 51.7%, 김 후보 39.3%, 이 후보 7.7%였다. 출구조사와 비교해 이 대통령은 낮았고 김 후보와 이 후보는 더 득표했다. 이 대통령은 1728만7513표를 얻어 역대 대선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지만 과반 득표율에는 실패했다. 역대 대선에서 과반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선관위가 지난 4일 오전 6시21분 이 후보를 대통령 당선인으로 공식 확정하면서 이 대통령의 5년 임기가 시작됐다. 임기 개시와 동시에 국군 통수권을 비롯한 대통령의 모든 고유 권한이 이 대통령에게 자동 이양됐다. 이 대통령의 임기는 2030년 6월3일까지다. 비상계엄부터 대통령 탄핵, 대선까지 숨 가쁜 6개월을 보낸 정치권은 대선 후폭풍에 직면했다. 문재인정부 이후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던 민주당은 3년 만에 여당으로 복귀했다. 민주당 단독으로만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고 범진보 진영(192석)으로 보면 200석에 육박하는 ‘거대 여권’의 등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지난 총선에 이어 대선서도 패배하면서 존망의 갈림길에 섰다. 당장 대선 패배 책임론이 불거졌고 당권을 차지하기 위한 이전투구 양상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범진보 진영과 비교해 107석이라는 ‘초라한’ 국회 의석수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차지한 이재명정부를 견제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3년 만에 정권 탈환 국민의힘, 총선 이어 또 졌다 대선 후폭풍이 걷히면 정치권은 또다시 ‘선거 모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내년 6월3일 지방선거가 예정돼있다. 채 1년이 남지 않은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지 않았다면 내년 지방선거는 윤석열정부 임기 중에 치러질 예정이었다. 윤정부서만 두 번의 지방선거가 열리는 셈이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열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윤정부에 대한 평가이자 대선 전초전 격이었을 선거가 이재명정부의 첫 대형 선거가 된 것이다. 이미 여당이 행정과 입법을 완전히 장악한 상황서 지방 권력까지 확보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재명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이른바 ‘절대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가능성은 작지 않다. 대선 이후 몇 개월 만에 치러지는 선거서 여당이 진 적은 거의 없다. 바로 직전 지방선거서 국민의힘이 압승한 게 대표적이다. 2022년 6월, 윤정부 출범 한 달 만에 열린 지방선거서 국민의힘은 17개 광역단체장 중 서울·인천 등 12곳에서 이겼다. 민주당은 경기·광주·전남·전북·제주 등 5곳에서만 승리했다. 기초단체장 선거도 국민의힘이 완승했다. 전국 226곳 중 145곳에서 이겼다. 서울에서는 25개 자치구 중 17곳에서 승리했다. 2018년 지방선거서 서초구를 제외한 24곳에서 민주당이 이겼던 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 수준이었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열린 재보궐선거서도 7곳 중 5곳을 차지했다. 당시 이 대통령이 출마한 인천 계양을과 제주을을 제외한 대구 수성을·경남 창원의창·경기 성남시 분당구갑·강원 원주갑·충남 보령·서천 등에 국민의힘 깃발이 꽂혔다. 지난 지방선거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고 불릴 정도로 네거티브가 난무했던 20대 대선 직후에 열리면서 당시 투표율은 50%를 간신히 넘는 낮은 수준이었다. 역대 지방선거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낮은 수치였다. 새 정부 탄생과 거의 동시에 치러진 만큼 ‘허니문’ 성격이 강했던 점도 국민의힘 승리에 영향을 미쳤다. 민심이 새 정부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계엄·탄핵 보수 폭망 불과 3년 만에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대선 승리를 등에 업고 지방 권력까지 차지했던 국민의힘은 순식간에 야당으로 전락했고 민주당은 기세를 탄 상황이다. 이재명정부는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지방선거 승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한 호흡으로 같이 나가려면 기울어진 지방 권력 구도를 돌려놔야 한다는 취지다. 내년 6월3일 열릴 지방선거는 대선 이후 1년 뒤에 치러진다는 점에서 이전 허니문 선거와 비교해 기간이 긴 게 변수로 꼽힌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임기 초인 만큼 여당에 유리한 이슈가 많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두고 진행 중인 재판이 1년 내내 사회를 달굴 가능성이 크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4월14일부터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대통령직을 상실하면서 불소추특권도 사라졌기에 혐의가 더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 전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 심판 심리 때부터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에 대해 철저하게 부인해 왔다. 재판서도 같은 태도를 보여 1심 선고까지는 1년 넘게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당선 수락 연설에서도, 취임사에서도 내란 종식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오전 국회 본청 로텐더홀서 진행한 취임 선서에서 “국민이 맡긴 총칼로 국민주권을 빼앗는 내란은 이제 다시는 재발해선 안 된다. 철저한 진상 규명으로 합당한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책을 확고히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제 문제도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현재 안팎으로 상황이 좋지 않다. 내수 시장은 ‘폭망’ 상태에 접어들었고 외부에선 관세 등으로 시장을 흔들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경제 이슈는 선거판을 늘 좌지우지했다. 텃밭 빼고 다 뒤집혀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먹사니즘’이라는 표현으로 먹고사는 문제, 즉 민생 회복을 첫손에 꼽았다. 특히 이 대통령은 국가 재정 투입을 예고했다. 취임 선서에서도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돌리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이재명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다. 통제하고 관리하는 정부가 아니라 지원하고 격려하는 정부가 되겠다”며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기업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규제는 네거티브 중심으로 변경하겠다. 기업인이 자유롭게 창업하고 성장하며 세계시장서 경쟁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고 구상을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비상계엄 사태 극복과 경제 회복을 전면에 내세워 민심을 다잡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야당이 된 국민의힘 등 보수 진영은 ‘견제론’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크다. 의회 권력과 행정부를 장악한 이재명정부를 지방 권력으로 견제하고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총선은 2028년, 이 대통령의 임기 중반 이후에나 치러진다. ‘거대 야권’ 국면이 이 대통령의 임기 내내 지속된다는 뜻이다. 그사이 판을 흔들만한 대형 선거가 없기에 보수 진영으로선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처지다. 특히 총선이 지방의회 상황에 영향을 받는 만큼 국회 의석 상황을 바꾸려면 지방선거 결과가 중요하다. 문제는 내부 상황이 지나치게 어지럽다는 점이다. 보수 진영서 배출한 대통령이 벌써 두 번째 파면됐고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국민에게 외면받았다. 보수 세력을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총선 때부터 나왔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대선서 두드러진 존재감을 보여준 윤 전 대통령 측 세력과 결별하는 과정서 보수 진영의 주도권을 둘러싼 혈전이 예상된다. 새 정부 1년 만에 맞대결 3년 전에는 여당이 압승 대선을 완주한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 의원은 비록 한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대선 기간 내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상당한 존재감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고 있다. 결국 이런 상황을 모두 처리하고 난 뒤에야 보수 진영은 지방선거에 몰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대선 과정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선거에 임하거나 지지층만 믿고 막무가내식 행보를 보이면 총선, 대선서 이어 지방선거까지 3연패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대선과 8대 지방선거, 이번 대선서 각 정당 후보가 얻은 표를 보면 보수 진영의 상황이 얼마나 ‘최악’인지가 드러난다. 국민의힘 후보로 윤 전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로 이 대통령이 나선 20대 대선 당시 승부를 가른 건 ‘서울’이었다. 민주당은 선거를 치르면서 서울서 진 적이 많지 않았는데 2022년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로 민심을 까먹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50.6%, 이 대통령은 45.7%를 받았다. 표수로는 31만표 차이였다. 윤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전체 표 차인 24만7000표(0.73%p 차이)보다 컸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을 필두로 강원·대전·충청·TK(대구·경북)·PK(부산·경남)·울산서 승리해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지방선거 때에는 대선서 패했던 인천과 세종에서도 국민의힘이 이겼다. 서울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국민의힘)이 민주당 송영길 후보를 무려 20%p 차이로 이겼다. 대선서 45.6%(윤 전 대통령) 대 50.9%(이 대통령)로 5.3%p 차이가 났던 경기도조차 48.9%(국민의힘 김은혜 후보) 대 49.1%(민주당 김동연 후보)로 초접전 양상을 보였다. 그로부터 3년 뒤 이번 대선서 국민의힘은 강원·TK·PK·울산을 제외한 모든 지역서 졌다. 지역별로 보면 6곳에서만 김 후보가 이 대통령에 앞섰다. 국민의힘 텃밭이라고 불릴만한 지역과 보수세가 강한 지역서 선전했을 뿐 수도권과 표심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충청권서 모조리 패배했다. 여러 차례 대통령을 배출한 전국 정당이 ‘영남당’으로 쪼그라든 순간이다. 안정론? 견제론? 발 빠른 인사들은 벌써부터 지방선거를 정조준하고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대선 패배 연설서 “저희가 잘했던 것과 못했던 것을 잘 분석해 정확히 1년 뒤 다가올 지방선거서 개혁신당이 한 단계 약진할 수 있기를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어느 정도 승부가 예측됐던 이번 대선과 달리 내년 지방선거가 진짜 대결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개헌 국민투표 가능성 ‘동시에 진행될까?’ 이재명정부는 개헌을 할 수 있을까? 대선일로부터 꼭 1년 뒤인 내년 6월3일 열리는 9대 지방선거서 개헌 이슈가 다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대선 이후 첫 대형 선거인 만큼 이날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를 동시에 진행하자는 의견은 대선 기간 내내 나왔다.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은 지난 4월 “2026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로 제7공화국의 문을 열자”며 “대선후보들은 개헌을 약속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정 회장은 “느닷없는 계엄령이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가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는지를 절감했다”며 “다가오는 대통령선거는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설 결정적 기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87체제’ 종말 초읽기? 그러면서 “개헌 시점은 늦더라도 2026년 6월이어야 한다”며 “이번 대선 이후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협력 아래 정부가 지원하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국민투표에 부칠 개헌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대선후보 당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국무총리 국회 추천 등을 골자로 한 개헌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에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제안했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