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 빨린’ 셀피글로벌 대해부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11.21 15:21:44
  • 호수 15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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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사태 일당도 등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코스닥 상장사 셀피글로벌과 대규모 펀드 사기 ‘라임 사태’의 연결고리가 포착됐다. 거래정지 사태의 배후로 지목된 장영준 셀피글로벌 총괄감사위원장은 앞서 라임펀드 자금 19억6000만원을 건네받았다는 의혹을 받은 인물이다.

셀피글로벌의 거래정지 사태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이른바 ‘기업사냥꾼’들이 최근 별건의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동부지검 형사4부(조윤철 부장검사)는 지난달 23일, 안모 씨 등을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안씨는 2년 연속 감사 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셀피글로벌의 소액 주주들로부터 횡령·배임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사기 의혹
상폐 위기

지난 2022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지지단체인 ‘기본경제특별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장영준은 작전세력 개입 의혹에 휩싸인 코스닥 기업 사태에 등장한 바 있다. 장씨는 안씨와 손잡고 코스닥 상장사 디딤이앤에프와 셀피글로벌, 메탈바인 등 3개 회사의 총괄 감사위원장 직위가 각인된 위조 명함을 사용해 논란을 일으켰다. 

두 사람이 개입했던 디딤이앤에프와 셀피글로벌은 현재 거래정지 상태다. 특히 스마트카드 제조업체로 주식시장서 주목받았던 셀피글로벌의 경우, 지난해 3월 주식거래가 정지된 이후 2년 연속 감사 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위기에 놓여 있다.

이에 소액주주들은 조합을 결성해 경영 정상화에 나선 상태다. 소액주주들이 연대한 ‘셀피글로벌주주1호조합’은 지난 5월 9일 셀피글로벌 최대주주(11.29%) 자리에 올랐지만, 현 경영진으로부터 경영권을 가져오지는 못한 상황이다. 


윤정엽 셀피글로벌주주조합 대표는 “무자본 M&A를 통해 회사를 장악한 안씨 일당의 배임·횡령 등의 행위로 셀피글로벌이 거래정지됐다”며 “안씨 일당은 이미 멜파스, 유테크 등 많은 기업을 상장폐지 위기로 몰았던 전력이 있고, 이제는 셀피글로벌을 고의로 상폐시키려고 하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셀피글로벌 소액주주들은 현 경영진을 안씨가 앉힌 안씨의 측근들이라고 봤다. 지난 2010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셀피글로벌은 2022년 창업주가 떠난 이후 급격한 이슈가 불거졌다. 같은 해 7월 29일 창업주로부터 셀피글로벌 경영권을 인수한 프랜차이즈 업체 오름에프앤비는 2022년 8월12일 인수대금을 지급하기 위해 A 대부업체로부터 셀피글로벌 주식을 담보로 120억원을 차입한다.

특약으로 셀피글로벌 주가가 하락하면 반대매매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같은 해 8월16일에는 임시주총을 열어 대표이사 등 경영진을 교체하고, 사업목적에 전자화폐 제조·발급업, 가상세계 및 가상현실 서비스업, 이차전지 소재의 제조 및 판매업 등을 추가한다.

라임 사태 연결고리 재조명
이슬라카지노 소유주 장영준

이 시기 셀피글로벌은 최대주주 변경과 함께 신사업에 진출한다는 보도자료를 내면서 주가가 급등한다. 언론보도에는 ‘셀피글로벌이 기존 사업(카드제조 사업)과 연관성이 낮은 이차전지 소재 사업에 진출하는 것은 적자 기조를 탈피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소개됐다.

3000원대에 머무르던 주가는 2022년 8월 22일 종가 기준 5080원까지 급등했다. 주가가 오르자 오름에프앤비는 인수 한 달 만인 2022년 9월 7일 다시 셀피글로벌을 화장품 무역업체 로켓인터내셔널에 넘겼다. 이때에도 언론보도에는 ‘사업적 시너지 확대를 위해 최대주주를 변경한다’고 소개됐다.

그러나 셀피글로벌 주가가 하락하면서 2000원대가 된 2022년 9월19일 반대매매가 이뤄졌다. 로켓인터내셔널이 오름에프앤비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서 담보계약도 그대로 승계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로켓인터내셔널 지분은 15.72%서 3.48%로 줄었고, 2023년 3월 또다시 한 차례 더 반대매매가 이뤄지면서 0%가 됐다. 로켓인터내셔널이 2022년 12월 셀피글로벌 주식을 담보로 B 대부업체로부터 13억원을 빌리면서 반대매매 특약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후 로켓인터내셔널은 종적을 감췄다. 결국 최대주주가 없는 무주공산 신세가 된 셀피글로벌은 지난해 3월21일 778원을 끝으로 거래가 정지됐다. 

M&A 업계 등에 따르면 안씨는 지난 2022년 초 셀피글로벌(당시 아이씨케이)을 무자본 인수하기로 마음먹고 평소 알고 지내던 박씨와 자금조달 계획을 세웠다. 안씨 측은 모 증권사의 자금을 끌어올 계획이었으나 실패했고, 박씨가 새로운 자금조달원으로 부동산 시행업 등을 하던 임모씨를 안씨에게 소개했다.

이에 임씨는 자신이 실소유하던 회사인 로켓인터내셔널을 통해 새날씨앤피와 씨지주택으로부터 각각 53억원과 70억원 등 총 123억원의 자금을 빌려왔다. 

새날씨앤피는 ‘철거왕’으로 유명한 이금열 다원그룹 회장이 지분 100%를 소유한 회사다. 씨지주택(구 이와소종합건설)은 이 회장의 부인 김모씨가 실소유하고 있는 두양종합건설의 자회사다. 철거왕의 자금이 무자본 M&A에 투입된 것이다.

익숙한 
얼굴들

안씨는 2022년 셀피글로벌 창업자로부터 경영권을 무자본 인수한 뒤 한 달 만에 로켓인터내셔널에 넘긴 오름에프앤비 등기부에 자신의 지인 박씨의 이름을 올렸다. 앞서 임씨가 빌려온 자금은 케이엔제이인베스트라는 대부업체에 투자됐고 케이엔제이인베스트는 이 자금을 다시 주식담보대출로 오름에프앤비에 대여했다.

오름에프앤비는 2022년 8월 이 회장으로부터 빌려온 돈과 모회사 오름에스엠씨로부터 투자받은 자금을 합쳐 총 191억원으로 셀피글로벌을 인수했다.

무자본 M&A 세력에 인수된 셀피글로벌은 ‘탭투페이(Tap to pay)’와 리튬 등 2차전지 사업에 진출하겠다는 등 현실성 없는 허위공시를 남발했지만 결과적으로 주가 부양에는 실패했다. 이에 2022년 9월 케이엔제이인베스트가 담보로 잡고 있던 셀피글로벌의 주식은 반대매매가 이뤄졌고 주가는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이후 셀피글로벌의 자회사인 플러스메터리얼즈서 횡령 사건이 발생하면서 셀피글로벌은 지난해 3월 결국 거래정지됐다. 이 회장 측은 셀피글로벌 인수 세력들에게 거액의 인수자금을 대줬지만 기대한 수익은커녕 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임씨와 다원그룹의 관계성은 인수 이후에도 포착된다. 임씨가 셀피글로벌의 자회사 플러스메터리얼즈를 통해 또 다른 다원그룹 관계사와 자금거래를 하려다 이사진들의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임씨는 셀피글로벌 인수 직후인 지난 2022년 8월 말 마론과 디와이디평택 등 다원그룹 계열사와 수십억원대 자금거래 계약을 맺었다가 이사진들의 반대로 계약을 철회하고 자금을 회수했다. 이들은 셀피글로벌을 인수한 뒤 안씨가 1명, 박씨와 임씨가 각각 2명씩을 이사진으로 선임했는데 안씨와 박씨 측 이사가 임씨의 이 같은 거래를 반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론과 디와이디평택은 두양종합건설의 자회사다. 두양종합건설은 마론·디와이디평택과 함께 로켓인터내셔널에 셀피글로벌 인수자금을 대여한 씨지주택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셀피글로벌 내부 관계자는 “임씨가 플러스메터리얼즈를 통해 총 68억원의 돈을 마론과 디와이디평택 등에 넘겼다”며 “이를 알게 된 이사진들이 제동을 건 것”이라고 전했다.


배후 지목
인물 보니···

또 “이후 내용증명을 보내고 돈을 회수하라고 해서 돌려받았다”며 “임씨가 이 회장에게 빌린 123억원 중 일부를 갚으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검찰에 따르면 안씨는 지난 2019년 8월 창업투자사를 운영하는 박씨와 공모해 피해자 A씨에게 ‘박씨가 운영하는 면세점 송객수수료 사업체 M사의 전환우선주 2만주를 5억원에 매수하면 4개월 안에 코스닥 상장사의 전환사채 15억원으로 매각해 주겠다.

만약 그렇게 해주지 못하면 박씨가 실소유한 창투사에서 5억원에 주식을 매수해 준다고 한다”고 속여 투자를 권유, A씨와 그의 형 B씨로부터 총 5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또 박씨의 창투사 역시 경영건전성 요건 미달로 인해 시정명령을 받을 정도로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M사 주식을 5억원에 매수할 능력이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안씨의 사기 혐의 첫 재판은 지난 15일 오전 서울동부지법서 열렸다. 안씨와 함께 같은 혐의로 기소된 박씨는 지난 14일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박씨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박씨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회사가 지인 안씨가 경영권을 확보한 유테크와 주식 및 경영권 양수도 계약을 체결한 것처럼 피해자를 속여 투자하도록 했다. 판결문에는 ‘2020년 6월 최종적으로 유테크 경영권을 확보했다’는 안씨의 진술도 명시됐다.


셀피글로벌 사태로 인해 안씨 일당에 등장하는 장씨의 정체가 급부상했다. 그는 라임펀드 사태에 연루돼 해외 도피 중인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으로부터 라임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인 인물이다. 특히, 김영홍이 도주 중인 지난 2019년 11월과 2020년 1~2월에 라임 자금으로 인수한 필리핀 이슬라리조트를 장씨가 매각하러 발품을 팔았다는 증언도 쏟아졌다.

무자본 M&A 걸작 완성의 이면
속속 나타나는 ‘그놈이 그놈’

김영홍이 295억원을 주고 이슬라리조트를 매입했음에도 실소유주는 장영준, 전호철, 김판형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슬라리조트 총괄대표 김판형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선수 김민별의 부친이기도 하다. 지난해 춘천지방검찰청은 도박 공간 개설 등의 혐의로 고발당한 김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앞서 김씨는 아바타카지노송출 등 불법적 카지노 운영 행위로 지난해 강원경찰청서 춘천지검에 기소 송치됐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김씨는 항소했으나, 지난 10월17일 춘천지방법원은 김씨에게 원심대로 징역 2년을, 간부 손 모 씨와 이 모 씨 역시 각각 원심대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또 검찰은 장씨가 민주당과 가깝다는 점에서 라임 자금이 정치권에 흘러갔을 가능성도 확인하는 중이다. 민노총 출신 사업가로 알려진 장씨는 지난 3월 민주노총 위원장을 사칭해 피해자를 속이고 자금을 편취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2021년 사모펀드(PEF) JC파트너스의 회장 직함으로도 활동했지만, 최근 시장에서는 기업사냥꾼 일당으로 의심받고 있다.

장씨는 최근 안씨와의 관계로 인해 주목받았다. 안씨는 메탈바인의 실사주로 언급되는데, 장씨는 메탈바인의 감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또 셀피글로벌에는 장씨의 측근이자 A 장학재단 이사인 이모씨가 2022년 8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셀피글로벌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장씨와 안씨의 연관성은 디딤이앤에프의 최대주주와 전 경영진 간의 경영권 다툼 과정서도 제기됐다. 디딤이앤에프는 지난해 3월부터 주요주주가 된 슈퍼개미(거액의 돈을 굴리는 개인투자자) 김상훈의 독특한 공시로 개인투자자들 사이서 화제가 된 코스닥 상장사다.

공시에 자신의 직업을 ‘모험가’라고 소개한 김씨는 물타기(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평균 매수단가가 현재의 주가보다 높을 때 손실을 줄일 목적으로 일정 기간을 두고 계속 매수하는 것)하다 우여곡절 끝에 디딤이앤에프의 최대주주가 됐다.

그러나 올해 초까지 이전 경영진과 치열한 경영권 다툼을 벌이다가 지난 5월 경영권 분쟁 종결에 합의했다.

한편, 디딤이앤에프 전 경영진 측은 김씨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던 지난 1월 ‘주주님들에게 드리는 호소문’이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통해 김씨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기업사냥꾼 안씨 일당이 회사를 괴롭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위원장 사칭? 
정치권 연루설

최대주주로 오른 김씨보다는 안씨 등에 대한 폭로가 강조됐다. 사측은 회사를 괴롭히는 이들로 ‘멜파스, 유테크, 셀피글로벌 등 3개 회사를 상장폐지시킨 기업사냥꾼 안씨 일당’을 언급했다. 사측은 “‘안씨 일당’이 메탈바인 감사로 재직 중인 장씨에게 디딤이앤에프와 메탈바인, 셀피글로벌 등 3개 회사의 총괄 감사위원장 직위가 각인된 위조 명함을 제작해줘 메탈바인과 디딤이앤에프가 한 회사인 것처럼 보이게 한 후 이를 활용해 투자자들을 기망하는 사기행각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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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계엄 후폭풍> 윤석열의 무리수 미스터리

[12·3 계엄 후폭풍] 윤석열의 무리수 미스터리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진짜 속내는 담화문서 깨알같이 발견되는 두 글자로 확인할 수 있다. 꼭꼭 숨기려고 했지만, 끝내 숨기지 못했던 두 글자 ‘특검’. 과연 그 두 글자가 군을 동원하려고 했던 진짜 이유였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오후 10시27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윤 대통령이 밝힌 비상계엄 선포 사유는 ▲야권의 정부 관료 탄핵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제1심 선고 전 대규모 시위(판사 겁박) ▲야권의 검사 탄핵(사법 업무 마비) ▲야권의 특활비 삭감(국가의 본질적 기능 훼손) ▲야권의 민생 예산 삭감(대한민국 국가 재정 농락) 등이다. 모르고? 알면서? 이 사유들을 열거한 윤 대통령은 “자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며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명분을 강조했다. 이어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고, 입법 독재를 통해서 국가의 사법 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 민주주의체제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 정국을 ‘범죄자 집단 소굴의 자유 민주주의체제 전복 기도’라고 규정한 것이다. 범죄자 집단 소굴로 규정된 야권은 곧바로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으로 ‘격상’됐다. 윤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며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야권을 일컬어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이라고 거듭 비난하면서 “반드시 척결하겠다”고 다짐했다. 윤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6시간 후인 지난 4일 오전 4시26분에 마무리됐다. 이날 우원식 국회의장은 경찰의 국회 통제에 담을 넘어 진입해 의원들의 긴급 소집을 발동했고, 야권 의원들 및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중립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0시29분 본회의를 개최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비상계엄 선포 후 약 19분이 지난 3일 오후 10시46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약속했다. “야권과 국민의힘 내 친한계 의원들이 모여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할 것”이라는 결말은 이때 이미 예측됐다. 국회의원 보좌진과 국회 직원들이 계엄군의 본청 진입을 막는 가운데, 의원들은 오전 1시경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1분 후 의원 190명은 만장일치로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계엄 선포 후 약 2시간35분이 지나 가결된 것이다. 행정부는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막을 권한이 없으므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이때 사실상 마감됐다. 계엄군은 국회 본회의 통과 후 약 10분이 지난 오전 1시11분부터 국회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대통령의 계엄 해제가 있을 때까지 계엄사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이 오전 4시26분 제2차 대국민 담화를 진행하고, 오전 5시4분 국무회의서 계엄 해제안이 의결되면서 약 6시간37분 동안 진행된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는 마무리됐다. 6시간 동안 이어진 충격과 공포 해제 의결에 적극 가담한 친한계 헌법 제77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전시·사변·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 발생 시 군사상 필요·공공의 안녕질서 유지 필요가 있을 때 한정해서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시 언급한 사유들이 과연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법률적 요건을 떠나, 윤 대통령으로서는 선포 당시 열거한 이유로부터 큰 위기감을 느꼈고,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전시·사변·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국회는 정부 출범 이후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소추를 발의했고, 22대 국회 출범 후 10명째 탄핵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2022년 12월11일 소속 의원 169명 전원이 참여해서 이태원 압사 사고에 대한 책임을 명분으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가결했다.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민주당과 정의당은 지난 2023년 2월 이 장관을 탄핵심판으로 넘겼다. 이는 헌정사상 최초의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였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같은 해 7월25일 만장일치로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를 기각했다. 야권의 탄핵소추는 이동관·김홍일·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이어졌고, 직무대행을 맡던 이상인 전 부위원장도 탄핵소추 대상이 됐다. 이 전 위원장·김 전 위원장·이 전 부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는 사퇴로 인해 폐기됐다. 사퇴하지 않았던 이 위원장은 탄핵안이 가결돼 현재 헌재서 탄핵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대선 출마 이후 윤 대통령과 줄곧 가까웠다. 김 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검사 재직 당시 상관인 서울중앙지검 3차장을 지냈다. 이 전 부위원장도 BBK 특검보를 지냈고, 윤 대통령은 당시 파견검사였다. 이후엔 윤 대통령과 가깝게 지냈던 검사들이 집중적으로 탄핵 소추됐다. 손준성·이정섭·강백신·김영철·엄희준·이창수·최재훈·조상원 등 탄핵 소추된 검사 대부분은 윤 대통령과 근무연으로 묶여있다. 이 중 강백신·김영철·조상원 검사는 윤 대통령이 ‘스타’로서의 위상을 굳혔던 ‘최순실 특검’에 함께 파견됐다. 손 검사는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재임 당시 핵심 요직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을 맡았고, 이정섭 검사는 윤 대통령의 대검 중수2과장 재직 당시 검찰연구관이었다. 엄 검사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재임 중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요직 배치를 요구했다. 이창수 검사는 윤 대통령의 총장 재직 당시 대변인이었고, 최 검사는 정보관리담당관이었다. 이들이 탄핵 소추되는 것을 보는 윤 대통령의 기분을 대변하는 옛 드라마 대사가 있다. 지난 2007년 방영된 KBS2 드라마 <한성별곡-정>의 임금은 수도 이전과 개혁을 추진하다가 독살당했다. 독살당하는 순간, 임금은 “신료들도 백성들도 나를 탓하기에 바쁘고, 나의 간절한 소망을 따랐다는 이유로 소중한 인재들이 죽어 나간다”고 한탄했다. 윤 대통령에게 그들은 ‘소중한 인재들’이었을 것이고, 그들에 대한 탄핵소추는 ‘죽어 나가는’ 것이었을 개연성이 있다. 특활비 삭감 표면적 이유 자신의 국정운영은 ‘간절한 소망’이었을 가능성이 크고, 국민과 야권의 비판은 ‘나를 탓하기에 바쁜’ 일이었을 것이다. 임금은 세자에게 양위한 후 자신은 수원 화성으로 옮겨 친위부대 장용영을 끼고 한양을 압박하는 친위 쿠데타를 기획했다. 윤 대통령과는 달리, 임금은 “반대하는 신하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내가 백성들을 설득하지 못해 지는 것”이라는 자기반성도 잊지 않았다. 측근 탄핵 못지않게 큰 위기감을 느꼈을 사안은 예산안이었다.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달 8일 2025년도 검찰 예산안을 확정하면서 특수활동비(이하 특활비) 80억9000만원과 특정업무경비(이하 특경비) 506억91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정청래 법사위원장(민주당)은 “내역이 입증되지 않는 것은 전액 삭감하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고 주장했다. 법사위 내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장경태 의원도 “이렇게 성역과 예외와 특혜가 많은 부처는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서 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대통령실 특활비 82억원 ▲경찰 특활비 약 31억 원 ▲감사원 특활비·특경비 60억원도 전액 삭감됐다.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필요한 활동에 소요되는 경비라서 영수증을 남기지 않는다. 사실 그동안 특활비는 적잖은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 2017년 4월엔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 서로의 휘하에 있는 후배 검사들에게 1인당 100만원 상당 돈 봉투를 건넨 정황이 밝혀져 정국이 발칵 뒤집혔다. 이 돈의 출처는 특활비였다. 인터넷언론 <뉴스타파>와 시민단체들은 검찰의 특활비 사용명세를 확인하기 위해 정보공개청구와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이어 큰 파문이 발생했다. 원래 밀봉해 보관해야 할 특활비 자료 중 사라진 명세들이 다수 확인됐고, 특활비가 기밀수사와 무관하게 정기적으로 후배 검사들에게 지급된 정황이 확인됐다. 큰 수사가 있을 때마다 지출이 있었다는 것을 토대로 “포상금으로 사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증빙 없이 특활비를 무단 사용한 정황과 별도 계좌·이중 장부가 사용된 정황도 확인됐다. 업무 추진비 사용명세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특활비의 정당성을 재차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특활비 전액 삭감 처리에 대해 “국가 본질 기능과 마약범죄 단속, 민생 치안 유지를 위한 모든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서 국가 본질의 기능을 훼손했다”며 “대한민국을 마약 천국, 민생 치안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성토했던 것은 ▲재해 대책 예비비 1조원 삭감 ▲아이 돌봄 지원 수당 384억원 삭감 ▲청년 일자리·심해 가스전 개발사업 등 4조1000억원 삭감 ▲군 간부 처우 개선비 제동 등이었다. 표적은 민주당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지난 1일 기자간담회서 “역대 정부서 예비비는 1조5000억원 이상 사용한 예가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소속 예산안심사소위 위원들도 지난 2일, 아이 돌봄 지원 수당·청년 일자리 예산 삭감에 대해 “여야가 이미 감액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94년 2월부터 2021년 3월까지 변호사로 활동한 1년을 제외하고 약 26년 동안 검사로 재직했다. 윤 대통령도 특활비가 친숙하게 여겨졌을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도 담화 중 특활비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했다.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즉위하기 전엔 많은 땅을 거느린 ‘땅 부자’였다. 그를 즉위시킨 이성계 세력은 토지개혁을 시도했다. 정도전은 가족 수에 따라 백성들에게 토지를 나눠주는 계민수전을 주장했다. 조준은 경기도 내 토지에 한정해 관리들에게 수조권을 부여하고, 다른 지역 토지는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과전법을 주장했다. 두 안 모두 분명한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고려의 모든 사전(私田)을 빼앗아 국유화한다”는 것이었다. 고려에선 많은 전란을 극복하는 과정서 공신들에게 나눠줄 땅이 부족해져 같은 땅을 여러 사람에게 반복해서 나눠주는 사태가 발생했다. 따라서 땅 하나에 2명 이상의 주인이 각자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백성으로부터 반복해서 세금과 소작료를 가져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성계 세력에 반대했던 보수파 이색도 최소한 소유권을 분명하게 정리하는 일전일주제를 주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보수파엔 정예 사병 가별초 2000여명을 거느린 이성계에게 대항할 수 있는 무력이 없었다. 최영은 위화도회군 이후 축출됐다. 이성계를 견제하던 조민수와 변안열도 위화도회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퇴출됐다. 정도전과 조준은 이성계의 무력을 기반으로 토지 몰수를 시도했다. 이성계의 선택은 과전법이었다. 과전법이 발표돼 많은 백성이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 공양왕은 슬퍼 눈물을 흘렸다. 개인 소유 토지가 모두 몰수됐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사유로 특활비 삭감을 내걸었다는 것은 두고두고 회자될 가능성이 크다. 특활비에 대한 국민적 비판 여론이 높은 가운데, 윤 대통령은 반대로 “특활비가 삭감돼 민생 치안 공황 상태가 됐다”고 성토했다. 혹시 ‘윤석열 검사의 특활비’는 ‘공양왕의 개인 소유 토지’와 비슷한 의미였던 걸까? 고려 멸망 공민왕·공양왕 윤 대통령도 같은 길 걷나 비상계엄이라는 뜬금없는 선택을 하게 된 진짜 역린은 두 글자 안에 숨어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 두 글자는 ‘특검’이다. 특검은 딱 1번 언급됐다. 꾹 참고 숨기려다가 참다못해 터져 나왔던 1번이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띈다. 야권이 끈질기게 발의했던 특검의 대상자는 김건희 여사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다. 이 중 김건희 특검법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국회로 돌아와 오는 10일 재표결이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지난 7일, 본회의서 부결 처리됐다. 그렇다면 담화 중 언급된 특검은 김건희 특검법일 가능성이 높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는 지난 10월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카카오톡 갈무리 사진 1장을 올렸다. 김 여사와의 대화였다. 김 여사는 대화서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를 용서해달라”며 “무식하면 원래 그런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사과드린다”며 “오빠가 이해 안 간다, 지가 뭘 안다고”라고 덧붙였다. 이 ‘오빠’를 두고 “김 여사의 친오빠를 가리키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문제 제기도 있었다. 명씨는 “내가 김 여사의 친오빠와 토론했겠느냐”고 주장하다가 “친오빠가 맞다”고 번복했다. 하지만 다수설은 여전히 윤 대통령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수설대로 해석하면, 윤 대통령이 김 여사를 향한 반복적인 특검법 발의에 왜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로부터 부부의 굳건한 잉꼬 금슬을 확인할 수 있다. 김 여사가 취임 기념 만찬서 윤 대통령의 샴페인 음주를 눈짓으로 막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이 영상과 명씨가 공개한 카톡에 대한 다수설을 조합하면 자연스러운 흐름이 보인다. 아울러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와 통화했던 ‘황금폰’을 민주당에 제출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 부부의 금슬에 비견할 수 있는 부부로는 고려 공민왕·노국공주 부부가 확인된다. 공민왕은 즉위 후 아내의 지지를 기반으로 고려를 통치했다. 노국공주는 원나라 공주였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반원 정책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또 원나라 공주라는 신분을 반대파 압박에 사용했고, 부정부패도 저지르지 않았다. 공민왕은 아내의 강력한 지지를 토대로 친원파를 숙청했고, 북진정책을 추진했다. 측근 김용의 반란 당시 공민왕을 지킨 사람도 노국공주였다. 그런 노국공주가 출산 중 사망하자, 공민왕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후 공민왕은 무명의 승려 신돈에게 국정 일체를 맡기고, 자신은 아내의 영전 공사에 몰두하는 등 기이한 행각을 일삼다가 암살당했다. 윤 대통령의 아내 사랑에 대해선 2개의 반응이 있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5월14일 “자기 여자 하나 보호 못하는 사람이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겠느냐”면서 윤 대통령을 두둔했다. 국민들 막았다 하지만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지난 2023년 12월14일 <폴리뉴스> 칼럼서 “자식을 사랑했기에 자식을 법의 심판대에 세워 속죄의 기회를 마련해줬던 YS(고 김영삼 대통령)·DJ(고 김대중 대통령)·MB(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하는 것이 진정 아내를 위한 길이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아내를 너무 사랑하고 의존했던 공민왕은 고려의 문을 닫았다. 반대로 가혹하게 처남들을 숙청했던 태종 이방원은 조선왕조 500년 기반을 닦았다. 따뜻한 남편의 길과 훌륭한 대통령의 길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아내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분노가 군을 동원한 진짜 이유였을까? 공민왕과 고려의 몰락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