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악랄한 추심 백태

급전 필요한 서민 ‘먹잇감’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을 대상으로 불법 사채업자들의 불법 추심이 급증하고 있다. 채무자가 상환기한까지 못 갚을 시 주변인에게 연락하거나 심한 경우 개인정보가 담긴 사진을 SNS에 유포하는 등 악랄한 협박을 일삼고 있다. 불법 대부 행위가 기승을 부리자 정치권에서는 불법 사금융 근절을 위한 법안을 내놓으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최근 불법 대부업체들의 채권추심 행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요구하거나 협박하는 등 피해자들의 고통이 늘어나고 있다. 불법 사채업자들은 대부업 등록도 하지 않은 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을 모집한 뒤 소액의 돈을 빌려주고 상환 불능 상황에 부닥친 대출자들에게 연 수천%에 달하는 과도한 연체료를 부과하고 있다.

사채 기승
불법 추심

1·2금융권을 비롯해 서민의 마지막 급전 창구 역할을 하는 3금융권인 대부업마저 신용대출을 조이면서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로 인한 피해가 커지자 불법 계약을 무효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지만, 무법지대에 있는 사채꾼들의 협박까지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반응이 많다.

이에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줄이겠다며 시작된 최고금리 인하가 도리어 서민들을 벼랑으로 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상 불법사금융업자·대부업자가 대부 시 이자율은 연 20%를 초과할 수 없다. 빌린 액수와 상관없이 원금의 20%에 해당하는 연 이자만 상환한다면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으나 불법 대부업체는 법정 최고이자율을 초과한 이자를 받고 있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채업자들은 돈을 빌려줄 때 채무자의 신분증과 가족·지인의 연락처 등을 대출 담보로 잡는다. 이들은 채무자가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할 경우 돈을 빌려줄 때 담보로 받았던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 메신저, SNS 등을 활용해 채무자의 채무 사실을 주변 지인 또는 불특정 다수에게 알리거나 심한 경우 개인정보가 담긴 사진까지 유포하는 등 협박을 일삼는다.

과거 대부업체는 명함을 돌려 홍보하거나 대면을 통해서 돈을 빌려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블랙박스나 CCTV 등이 발달하면서 돈을 빌려준 주체가 특정되는 걸 피하고자 비대면이 가능한 SNS로 대부 방법을 옮겨갔다. 

이들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에 계정을 만들어 금융기관을 사칭해 마치 정상적인 업체인 것처럼 광고한다. 어려운 경제 불황 시기에 돈이 필요한 나머지, 대부업체가 SNS에 광고한 글을 보고 혹해서 전화를 걸게 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대부업체는 연락해 온 사람의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는다. 

특정되는 걸 피해 SNS로 옮겨
누구한테서 돈을 빌린지 몰라

돈을 빌려준 주체가 특정될 수 있어 부재중 전화로 남겨둔다. 이후 부재중으로 기록된 전화번호에 대포폰으로 전화한다. 여기서부터가 개인정보가 빠져나가게 되는 시작점이다. 대부업체는 돈을 빌려주기 전, 하나씩 신상정보를 물어보기 시작한다.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고 잠적하는 상황까지 고려해 직업부터 회사, 명함, 연락처, 통장 거래 내역 등을 요구한 뒤 신용 정보를 확인한다. 

이후 채무자로부터 받은 연락처를 통해 주변인들에게 연락해 사실을 확인한다. 이때 대부업체라고 밝히지 않고 채무자에 대한 정보를 물어본 뒤 정확하게 채무자 정보를 인지한 후 돈을 빌려주는 구조다. 


대부업체는 타인 명의의 전화기로 광고를 하거나 타인 명의의 통장으로 돈을 수금해 채무자 대부분은 누구한테서 돈을 빌렸는지 모른다.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을 경우 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한 하나의 수단인 셈이다. 채무자가 불법 추심에 견디지 못해 경찰에 신고해도 돈을 빌려준 주체가 특정되지 않아 수사기관서 해결하기 어렵다. 

지난 7월 급전이 필요한 A씨는 불법 대부업체를 통해 100만원을 빌리게 됐다. 대부업체는 일주일 뒤 원금 100만원과 이자 80만원 등 180만원을 상환하는 것으로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나 A씨가 돈을 갚지 못하자 대부업체는 연체비를 요구했다.

원금과 이자 전액을 한꺼번에 상환하지 못할 시 별도로 하루마다 30만원을 내라는 것이었다. 

A씨가 연체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대부업체는 불법추심을 시작했다. A씨의 아내와 주변 지인들에게 연락해 돈을 갚으라고 하거나 아내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해 SNS 등에 공개하겠다며 협박했다. 

A씨의 빚은 두 달 만에 2000만원 가까이 불어났다. 불법추심을 일삼은 대부업체를 더이상 참지 못한 A씨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담당 수사관으로부터 불법 사채업자의 연락처도 없고 추적이 쉽지 않은 SNS를 사용했기 때문에 검거가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살인적 이자
악랄한 협박

돈을 갚지 못하자 SNS에 사진과 영상을 게시해 이른바 박제까지 당한 피해자도 있었다. 지난해 B씨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한 대부업체서 10여차례에 걸쳐 총 300만원을 빌렸다. 신용도가 낮은 B씨는 일반 금융권서 대출이 어려워 대부업체까지 손을 대게 됐다. B씨가 처음 빌린 돈은 20만원이다. 

대부업체는 B씨에게 20만원을 빌려줄 테니 일주일 뒤 40만원을 갚으라고 했다. 이후 B씨가 상환기한에 맞춰 갚지 못하자 대부업체는 10분 늦을 때마다 연체료 50만원, 30분 늦으면 100만원을 요구했다. B씨가 요구받은 연체료의 연이율을 계산하면 무려 5000%가 넘는다. B씨가 갚아야 할 액수는 하루하루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사이 대부업체는 B씨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채무 사실을 폭로하거나, 자녀의 학교에 전단지를 뿌리겠다면서 협박했다. 대부업체는 B씨에게 돈을 빌려주기 전 특이한 영상을 찍으라고도 했다. 해당 영상에는 “제가 아버지 OOO, 누나 OOO, 친구 OOO 등 개인정보를 팔아서 이렇게 돈을 빌리게 됐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대부업체서 대본을 작성해 B씨에게 직접 읽으라고 지시한 것이다. B씨가 제때 돈을 갚지 않자 대부업체는 SNS에 이 영상을 그대로 게시했다. B씨는 살인적인 이자율과 협박에 시달리면서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심했다.

실제 불법 대부업체의 불법추심에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도 있다. 지난 9월 초 C씨는 인터넷 광고를 통해 한 대부업체로부터 40만~180만원가량 여러 차례 돈을 빌렸다. C씨가 돈을 빌린 이유는 딸과 생활하는 데 필요해서였다. C씨는 지방서 서울로 올라와 일하면서, 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홀로 키웠다. 

넉넉하지 못한 생활에 점차 힘들어진 C씨는 대부업체에 돈을 빌리게 됐다. 상환기한을 일주일로 잡고 C씨는 가족관계증명서, 휴대전화에 저장된 지인들의 연락처, 사진 등을 담보로 넘겼다. 짧은 상환기한에 C씨가 돈을 갚지 못하자 대부업체는 상환이 늦을 때마다 1분에 10만원씩 붙이는 등 불법추심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갔다. 


그사이 대부업체는 C씨에게 모진 협박을 하며 지인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C씨는 지인들의 개인정보를 팔고, 대부업체서 돈을 빌리고 잠수를 탔다”는 내용이었다. 비슷한 내용의 문자가 100통 가까이 날아온 지인도 있었다. 이 문자는 C씨의 딸이 다니고 있는 유치원의 교사에게도 갔다. 팔뚝을 문신으로 채운 남자들이 유치원에 찾아가기도 했다. 

대부업체의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C씨의 개인정보와 사진을 편집한 동영상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동영상 속 C씨가 들고 있는 종이엔 ‘50만원을 빌렸으며, 돈을 갚지 않을 시 가족, 지인, 회사 동료에게 연락해 채무독촉을 해도 무방함’이란 내용이 자필로 적혀 있었다.

해당 SNS 계정에는 다른 피해자들의 동영상도 함께 있었다. 

이후 C씨는 감당할 수 없이 불어난 연체료와 지속적인 불법추심에 지난 9월 중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C씨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된 지인 D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돌아온 말은 “해당 계정의 국적이 해외로 설정돼있어 범인을 잡기 어렵고, 해당 SNS 운영자가 외국 회사라 협조를 구하는 데 시간이 걸려 수사가 오래 걸린다”고 듣게 됐다.

늘어난 피해
미미한 처벌

현재까지도 C씨를 죽음으로 내몬 범인은 잡히지 않은 채 유치원에 다니는 딸은 홀로 남았다.


2024년 현재, 금융감독원의 자료에 따르면 약 82만명이 불법대출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상반기 금감원 불법 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피해 상담·신고 건수는 6784건이었다. 2022년 한 해 동안 1만913건이 접수된 점을 고려하면 피해 건수가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접수 건수는 2019년 5468건, 2020년 8043건, 2021년 9918건 등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불법 사채 범죄에 대한 국내 처벌 수위는 낮다. 미등록 대부업의 형량은 5년 이하 징역 혹은 5000만원 이하 벌금에 그친다. 그나마 실형을 받는 경우도 드물다. 대법원이 공개한 대부업법 위반 형사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최근 2년 동안 14건의 유죄 판결이 내려졌고, 무죄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게다가 실형이 선고된 것은 3건뿐이었고, 이 중 2건은 항소심서 감형돼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또 지난 2019∼2022년 대부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람 가운데 1심서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9.1%에 불과했다. 91회에 걸쳐 최고금리 이상의 이자를 받고 채무자들에게 협박을 일삼았던 E씨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3년, 지속적 협박을 통해 연 이자 437%를 받아낸 F씨에게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각각 선고됐다.

이들은 불법 대부업체를 운영해 처벌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항소심서 감형됐다.

대부업체 설립 요건이 너무 간단하다는 것도 문제다. 대부업 등록은 최초 1000만원을 보유한 사실과 사무실 계약서, 18시간의 교육 이수증만 있으면 가능하다. 이렇듯 낮은 요건과 쉬운 절차로 인해 대부업 시장에는 최초 등록 시에만 요건을 맞추는 꼼수가 성행한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등록 대부업체수는 총 8597개에 달한다. 지방자치단체나 금융감독원이 관리·감독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이 중 5874개(68.3%) 대부업체가 개인사업자다. 또 부실 개인 대부업체가 경영난에 빠져 금융소비자가 불법추심 등의 위협에 노출되는 사례가 매해 잇따른다.

(사)한국사이버보안협회 김현결 대표는 “사금융에 대한 제한 조치나 제재가 많이 필요할 것 같다”며 “고금리 같은 규제가 많이 풀어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불법대부업체로부터 피해가 발생하면 증거물을 수집해 놓는 게 좋다”며 “데이터가 쌓이면 증거물이 되고 단서가 명확해져 범인을 검거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대부업체에 당한 피해가 기존에 있던 협박에 금융을 붙인 사이버 피싱에 가깝다”며 “금융 범죄 쪽에서는 피해 형태가 같아 소재만 바뀐 것뿐”이라고 말했다.

불법 사금융 제한·제재 필요
“대포폰·대포통장 근절이 먼저”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은 “모든 금융 범죄의 착발신으로 사용되는 대포폰이나 인출 도구로 사용되는 대포통장이 근절되지 않고는 막을 수 없다”며 “이를 개통한 사람이나 만들어준 사람을 특정할 수 없어 수사기관에서는 범인을 밝혀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불법 사금융은 개인정보를 받아놓고 돈을 편취하기 때문에 보이스피싱 같은 형태라고 볼 수 있다”며 “단순히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개념이 아니라 자신을 숨기기 때문에 계획적인 범죄”라고 지적했다. 

불법 대부 행위가 기승을 부리자 정치권서도 불법 사금융 근절을 위한 법안을 잇따라 내놨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은 대부업자로 등록하기 위해 필요한 자기자본 요건을 현행 1000만원서 3억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자기자본 요건이 너무 낮아 대부업을 수행할 만한 충분한 자격이 없는 곳도 대부업을 영위하기 때문에 금융 소비자의 피해 우려가 크다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도 미등록 대부업의 경우 금전대차에 관한 계약 전부를 무효화하고 지급된 원금과 이자에 대해 반환 청구할 수 있도록 명시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했다. 현재 500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물게 돼있는 대부업법 처벌 규정을 5억원 이하로 상향하는 내용도 담겼다. 

또 불법 대부업체와 등록 대부업체 간 명의를 사고 파는 문제를 막자는 취지의 법안도 발의됐다. 현재 대부업자 등록을 위한 문턱이 지나치게 낮아, 불법 대부업체들이 등록 대부업체 명의를 돈을 주고 거래한 후 범죄에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소비자들은 등록 대부업체라고 믿고 방문했다가 불법 대부업체에 피해를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쉽게 명의를 사고팔지 못하도록 자기자본 요건을 상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에선 정부가 불법 사금융 처단에 강력한 의지를 밝힌 만큼 이번 국회서 해당 법안들이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20%로 묶여 있는 법정 최고금리 규제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치권 시동
대부업 척결

금융위원회도 여야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금융위는 지난 9월 관계부처와 합동해 대부업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영세 대부업의 난립과 불법영업 등에 따른 금융 소비자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지자체 대부업자에 대한 등록요건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지자체 대부업자의 자기자본 요건을 개인 사업자는 기존 1000만원서 1억원으로, 법인 사업자는 5000만원서 3억원으로 대폭 상향하겠다는 방침을 담았다. 이미 금융위 등록 대부업자는 총자산을 자기자본의 10배 이내로 제한 중이지만, 지자체 등록 대부업자는 제한이 없기 때문에 규제 형평성 제고 필요성이 꾸준히 대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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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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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