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악랄한 추심 백태

급전 필요한 서민 ‘먹잇감’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을 대상으로 불법 사채업자들의 불법 추심이 급증하고 있다. 채무자가 상환기한까지 못 갚을 시 주변인에게 연락하거나 심한 경우 개인정보가 담긴 사진을 SNS에 유포하는 등 악랄한 협박을 일삼고 있다. 불법 대부 행위가 기승을 부리자 정치권에서는 불법 사금융 근절을 위한 법안을 내놓으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최근 불법 대부업체들의 채권추심 행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요구하거나 협박하는 등 피해자들의 고통이 늘어나고 있다. 불법 사채업자들은 대부업 등록도 하지 않은 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을 모집한 뒤 소액의 돈을 빌려주고 상환 불능 상황에 부닥친 대출자들에게 연 수천%에 달하는 과도한 연체료를 부과하고 있다.

사채 기승
불법 추심

1·2금융권을 비롯해 서민의 마지막 급전 창구 역할을 하는 3금융권인 대부업마저 신용대출을 조이면서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로 인한 피해가 커지자 불법 계약을 무효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지만, 무법지대에 있는 사채꾼들의 협박까지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반응이 많다.

이에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줄이겠다며 시작된 최고금리 인하가 도리어 서민들을 벼랑으로 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상 불법사금융업자·대부업자가 대부 시 이자율은 연 20%를 초과할 수 없다. 빌린 액수와 상관없이 원금의 20%에 해당하는 연 이자만 상환한다면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으나 불법 대부업체는 법정 최고이자율을 초과한 이자를 받고 있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채업자들은 돈을 빌려줄 때 채무자의 신분증과 가족·지인의 연락처 등을 대출 담보로 잡는다. 이들은 채무자가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할 경우 돈을 빌려줄 때 담보로 받았던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 메신저, SNS 등을 활용해 채무자의 채무 사실을 주변 지인 또는 불특정 다수에게 알리거나 심한 경우 개인정보가 담긴 사진까지 유포하는 등 협박을 일삼는다.

과거 대부업체는 명함을 돌려 홍보하거나 대면을 통해서 돈을 빌려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블랙박스나 CCTV 등이 발달하면서 돈을 빌려준 주체가 특정되는 걸 피하고자 비대면이 가능한 SNS로 대부 방법을 옮겨갔다. 

이들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에 계정을 만들어 금융기관을 사칭해 마치 정상적인 업체인 것처럼 광고한다. 어려운 경제 불황 시기에 돈이 필요한 나머지, 대부업체가 SNS에 광고한 글을 보고 혹해서 전화를 걸게 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대부업체는 연락해 온 사람의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는다. 

특정되는 걸 피해 SNS로 옮겨
누구한테서 돈을 빌린지 몰라

돈을 빌려준 주체가 특정될 수 있어 부재중 전화로 남겨둔다. 이후 부재중으로 기록된 전화번호에 대포폰으로 전화한다. 여기서부터가 개인정보가 빠져나가게 되는 시작점이다. 대부업체는 돈을 빌려주기 전, 하나씩 신상정보를 물어보기 시작한다.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고 잠적하는 상황까지 고려해 직업부터 회사, 명함, 연락처, 통장 거래 내역 등을 요구한 뒤 신용 정보를 확인한다. 

이후 채무자로부터 받은 연락처를 통해 주변인들에게 연락해 사실을 확인한다. 이때 대부업체라고 밝히지 않고 채무자에 대한 정보를 물어본 뒤 정확하게 채무자 정보를 인지한 후 돈을 빌려주는 구조다. 

대부업체는 타인 명의의 전화기로 광고를 하거나 타인 명의의 통장으로 돈을 수금해 채무자 대부분은 누구한테서 돈을 빌렸는지 모른다.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을 경우 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한 하나의 수단인 셈이다. 채무자가 불법 추심에 견디지 못해 경찰에 신고해도 돈을 빌려준 주체가 특정되지 않아 수사기관서 해결하기 어렵다. 

지난 7월 급전이 필요한 A씨는 불법 대부업체를 통해 100만원을 빌리게 됐다. 대부업체는 일주일 뒤 원금 100만원과 이자 80만원 등 180만원을 상환하는 것으로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나 A씨가 돈을 갚지 못하자 대부업체는 연체비를 요구했다.

원금과 이자 전액을 한꺼번에 상환하지 못할 시 별도로 하루마다 30만원을 내라는 것이었다. 

A씨가 연체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대부업체는 불법추심을 시작했다. A씨의 아내와 주변 지인들에게 연락해 돈을 갚으라고 하거나 아내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해 SNS 등에 공개하겠다며 협박했다. 

A씨의 빚은 두 달 만에 2000만원 가까이 불어났다. 불법추심을 일삼은 대부업체를 더이상 참지 못한 A씨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담당 수사관으로부터 불법 사채업자의 연락처도 없고 추적이 쉽지 않은 SNS를 사용했기 때문에 검거가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살인적 이자
악랄한 협박

돈을 갚지 못하자 SNS에 사진과 영상을 게시해 이른바 박제까지 당한 피해자도 있었다. 지난해 B씨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한 대부업체서 10여차례에 걸쳐 총 300만원을 빌렸다. 신용도가 낮은 B씨는 일반 금융권서 대출이 어려워 대부업체까지 손을 대게 됐다. B씨가 처음 빌린 돈은 20만원이다. 

대부업체는 B씨에게 20만원을 빌려줄 테니 일주일 뒤 40만원을 갚으라고 했다. 이후 B씨가 상환기한에 맞춰 갚지 못하자 대부업체는 10분 늦을 때마다 연체료 50만원, 30분 늦으면 100만원을 요구했다. B씨가 요구받은 연체료의 연이율을 계산하면 무려 5000%가 넘는다. B씨가 갚아야 할 액수는 하루하루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사이 대부업체는 B씨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채무 사실을 폭로하거나, 자녀의 학교에 전단지를 뿌리겠다면서 협박했다. 대부업체는 B씨에게 돈을 빌려주기 전 특이한 영상을 찍으라고도 했다. 해당 영상에는 “제가 아버지 OOO, 누나 OOO, 친구 OOO 등 개인정보를 팔아서 이렇게 돈을 빌리게 됐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대부업체서 대본을 작성해 B씨에게 직접 읽으라고 지시한 것이다. B씨가 제때 돈을 갚지 않자 대부업체는 SNS에 이 영상을 그대로 게시했다. B씨는 살인적인 이자율과 협박에 시달리면서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심했다.

실제 불법 대부업체의 불법추심에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도 있다. 지난 9월 초 C씨는 인터넷 광고를 통해 한 대부업체로부터 40만~180만원가량 여러 차례 돈을 빌렸다. C씨가 돈을 빌린 이유는 딸과 생활하는 데 필요해서였다. C씨는 지방서 서울로 올라와 일하면서, 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홀로 키웠다. 

넉넉하지 못한 생활에 점차 힘들어진 C씨는 대부업체에 돈을 빌리게 됐다. 상환기한을 일주일로 잡고 C씨는 가족관계증명서, 휴대전화에 저장된 지인들의 연락처, 사진 등을 담보로 넘겼다. 짧은 상환기한에 C씨가 돈을 갚지 못하자 대부업체는 상환이 늦을 때마다 1분에 10만원씩 붙이는 등 불법추심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갔다. 

그사이 대부업체는 C씨에게 모진 협박을 하며 지인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C씨는 지인들의 개인정보를 팔고, 대부업체서 돈을 빌리고 잠수를 탔다”는 내용이었다. 비슷한 내용의 문자가 100통 가까이 날아온 지인도 있었다. 이 문자는 C씨의 딸이 다니고 있는 유치원의 교사에게도 갔다. 팔뚝을 문신으로 채운 남자들이 유치원에 찾아가기도 했다. 

대부업체의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C씨의 개인정보와 사진을 편집한 동영상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동영상 속 C씨가 들고 있는 종이엔 ‘50만원을 빌렸으며, 돈을 갚지 않을 시 가족, 지인, 회사 동료에게 연락해 채무독촉을 해도 무방함’이란 내용이 자필로 적혀 있었다.

해당 SNS 계정에는 다른 피해자들의 동영상도 함께 있었다. 

이후 C씨는 감당할 수 없이 불어난 연체료와 지속적인 불법추심에 지난 9월 중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C씨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된 지인 D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돌아온 말은 “해당 계정의 국적이 해외로 설정돼있어 범인을 잡기 어렵고, 해당 SNS 운영자가 외국 회사라 협조를 구하는 데 시간이 걸려 수사가 오래 걸린다”고 듣게 됐다.

늘어난 피해
미미한 처벌

현재까지도 C씨를 죽음으로 내몬 범인은 잡히지 않은 채 유치원에 다니는 딸은 홀로 남았다.

2024년 현재, 금융감독원의 자료에 따르면 약 82만명이 불법대출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상반기 금감원 불법 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피해 상담·신고 건수는 6784건이었다. 2022년 한 해 동안 1만913건이 접수된 점을 고려하면 피해 건수가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접수 건수는 2019년 5468건, 2020년 8043건, 2021년 9918건 등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불법 사채 범죄에 대한 국내 처벌 수위는 낮다. 미등록 대부업의 형량은 5년 이하 징역 혹은 5000만원 이하 벌금에 그친다. 그나마 실형을 받는 경우도 드물다. 대법원이 공개한 대부업법 위반 형사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최근 2년 동안 14건의 유죄 판결이 내려졌고, 무죄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게다가 실형이 선고된 것은 3건뿐이었고, 이 중 2건은 항소심서 감형돼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또 지난 2019∼2022년 대부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람 가운데 1심서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9.1%에 불과했다. 91회에 걸쳐 최고금리 이상의 이자를 받고 채무자들에게 협박을 일삼았던 E씨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3년, 지속적 협박을 통해 연 이자 437%를 받아낸 F씨에게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각각 선고됐다.

이들은 불법 대부업체를 운영해 처벌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항소심서 감형됐다.

대부업체 설립 요건이 너무 간단하다는 것도 문제다. 대부업 등록은 최초 1000만원을 보유한 사실과 사무실 계약서, 18시간의 교육 이수증만 있으면 가능하다. 이렇듯 낮은 요건과 쉬운 절차로 인해 대부업 시장에는 최초 등록 시에만 요건을 맞추는 꼼수가 성행한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등록 대부업체수는 총 8597개에 달한다. 지방자치단체나 금융감독원이 관리·감독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이 중 5874개(68.3%) 대부업체가 개인사업자다. 또 부실 개인 대부업체가 경영난에 빠져 금융소비자가 불법추심 등의 위협에 노출되는 사례가 매해 잇따른다.

(사)한국사이버보안협회 김현결 대표는 “사금융에 대한 제한 조치나 제재가 많이 필요할 것 같다”며 “고금리 같은 규제가 많이 풀어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불법대부업체로부터 피해가 발생하면 증거물을 수집해 놓는 게 좋다”며 “데이터가 쌓이면 증거물이 되고 단서가 명확해져 범인을 검거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대부업체에 당한 피해가 기존에 있던 협박에 금융을 붙인 사이버 피싱에 가깝다”며 “금융 범죄 쪽에서는 피해 형태가 같아 소재만 바뀐 것뿐”이라고 말했다.

불법 사금융 제한·제재 필요
“대포폰·대포통장 근절이 먼저”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은 “모든 금융 범죄의 착발신으로 사용되는 대포폰이나 인출 도구로 사용되는 대포통장이 근절되지 않고는 막을 수 없다”며 “이를 개통한 사람이나 만들어준 사람을 특정할 수 없어 수사기관에서는 범인을 밝혀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불법 사금융은 개인정보를 받아놓고 돈을 편취하기 때문에 보이스피싱 같은 형태라고 볼 수 있다”며 “단순히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개념이 아니라 자신을 숨기기 때문에 계획적인 범죄”라고 지적했다. 

불법 대부 행위가 기승을 부리자 정치권서도 불법 사금융 근절을 위한 법안을 잇따라 내놨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은 대부업자로 등록하기 위해 필요한 자기자본 요건을 현행 1000만원서 3억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자기자본 요건이 너무 낮아 대부업을 수행할 만한 충분한 자격이 없는 곳도 대부업을 영위하기 때문에 금융 소비자의 피해 우려가 크다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도 미등록 대부업의 경우 금전대차에 관한 계약 전부를 무효화하고 지급된 원금과 이자에 대해 반환 청구할 수 있도록 명시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했다. 현재 500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물게 돼있는 대부업법 처벌 규정을 5억원 이하로 상향하는 내용도 담겼다. 

또 불법 대부업체와 등록 대부업체 간 명의를 사고 파는 문제를 막자는 취지의 법안도 발의됐다. 현재 대부업자 등록을 위한 문턱이 지나치게 낮아, 불법 대부업체들이 등록 대부업체 명의를 돈을 주고 거래한 후 범죄에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소비자들은 등록 대부업체라고 믿고 방문했다가 불법 대부업체에 피해를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쉽게 명의를 사고팔지 못하도록 자기자본 요건을 상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에선 정부가 불법 사금융 처단에 강력한 의지를 밝힌 만큼 이번 국회서 해당 법안들이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20%로 묶여 있는 법정 최고금리 규제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치권 시동
대부업 척결

금융위원회도 여야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금융위는 지난 9월 관계부처와 합동해 대부업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영세 대부업의 난립과 불법영업 등에 따른 금융 소비자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지자체 대부업자에 대한 등록요건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지자체 대부업자의 자기자본 요건을 개인 사업자는 기존 1000만원서 1억원으로, 법인 사업자는 5000만원서 3억원으로 대폭 상향하겠다는 방침을 담았다. 이미 금융위 등록 대부업자는 총자산을 자기자본의 10배 이내로 제한 중이지만, 지자체 등록 대부업자는 제한이 없기 때문에 규제 형평성 제고 필요성이 꾸준히 대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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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