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7000억’짜리 낚시터 정체

배는 안 보이고 강태공만 득실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지난 2012년 2조6595억원을 투입해 조성된 인천 앞바다와 서울 한강을 잇는 경인아라뱃길이 화물과 여객 운송 기능을 상실한 채 불법 낚시터로 변모하고 있다. 아라뱃길은 낚시와 더불어 불법 캠핑·야영도 성행해 여러 골치 아픈 상황에 놓여 있다. 아라뱃길 주변에 불법행위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해결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인천 앞바다와 서울 한강을 연결하는 물길을 만들어 여객과 화물을 운송하겠다며 만든 수로인 경인아라뱃길이 낚시터로 전락했다. 인천시는 아라뱃길의 쾌적한 생태하천 환경을 조성하고 하천 오염을 예방한다는 취지로 낚시와 야영 등을 금지하는 지역으로 지정했다. ‘인천시 낚시 등의 금지지역 지정 고시’에 따르면, 경인아라뱃길(아라천) 주운 수로와 굴포천 연결 수로 등 전체 33.8km 구간에서는 낚시가 금지돼있다. 

무법지대

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낚시가 금지된 사실을 알면서도 단속반이 지날 때만 일시적으로 낚시를 중단했다가 재개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하천은 도심지와 인접해 있어 낚시객의 발걸음이 잦던 곳이다.

아라천서 낚시 행위가 적발될 경우 관계법에 따라 1차 100만원, 2차 200만원, 3차 이상은 300만원 이내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금지구역 내의 불법 낚시는 여전히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달 28일 <일요시사>가 찾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경인아라뱃길 굴포천1교 구간에서는 금지구역임에도 불구하고 불법 낚시가 행해지고 있었다. 이날 오후 4시께 계양대교 산책로서 아라뱃길 두리생태공원 방향엔 낚싯대가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인근에 다다르자 울타리 너머로 낚시객 2명이 보였다. 울타리에는 ‘낚시 금지 경고 안내’라는 문구가 새겨진 표지판이 곳곳에 부착돼있었지만, 이를 보고도 넘어간 듯했다.

낚시객이 울타리를 넘어 하천으로 내려간 길은 무성한 수풀이 아닌 패어있는 흙길이었다. 

이날 만난 낚시객 A씨는 “아라뱃길 내 하천서 낚시가 금지인 건 알고는 있었다”며 “강가나 저수지 같은 곳은 다 금지돼있고 어디 갈 곳도 없어 여기라도 찾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송을 틀거나 소형 배를 타고 와서 철수하라고 하지만 갈 사람은 간 뒤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또 “낚시하는 계절이 오면 금지구역임에도 20명 정도가 이곳에 나와 낚시한다”고 귀띔했다. 

제 기능 상실한 경인아라뱃길
강변 불법 캠핑·야영도 성행

그는 기자와 대화를 이어나가던 중 찌에 미끼를 갈아 끼웠다. 특히 A씨가 찌를 던진 곳 주위에는 가라앉은 떡밥 몇 개가 보였다. 이후 대화를 마치고 자리서 발걸음을 옮기던 찰나 낚시객은 한 명 더 늘어나 있었다. 

이처럼 아라뱃길 주변의 불법행위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한국수자원공사는 불법 낚시와 취사 및 야영 등의 단속권이 인천시와 관할 경찰서에 있어 계도만 할 뿐 손쓸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수자원공사 아라뱃길 지사의 한 관계자는 “불법 낚시나 야영하는 분들은 자회사를 통해 계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민원 외에도 아라천 내 낚시를 자주 하는 곳을 수시로 찾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원이 들어오면 곧바로 현장에 가서 대응하고 있지만 다른 쪽에서 민원이 들어오면 갈 수가 없어 한계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지자체서 하천을 담당하는 요원과 같이 계도하고 있지만, 과태료 부과나 단속 권한은 지자체가 갖고 있다”고 부연했다. 

아라뱃길은 불법 낚시와 더불어 불법 캠핑·야영도 성행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인아라뱃길(아라천) 청운교∼계양대교 24km 구간에서는 야영과 취사가 금지돼있다. 흔히 캠핑이나 야영은 일대 오염은 물론, 화재 위험마저 있는 만큼 주변 주민들의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더욱이 시와 구의 경고 및 철거를 유도하는 형태의 계도 위주 단속이 이뤄졌지만, 캠핑족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야영 또는 취사할 경우 하천법에 의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지자체가 할 수 있으나 캠핑족들은 늦은 밤에 일시적으로 텐트를 친 뒤 다음날 아침 일찍 철수하는 방식으로 단속을 피하고 있다. 

아라뱃길은 지난 2012년 2조6595억원을 들여 개장한 지 12년이 지났지만, 각종 문제가 드러나면서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특히 아라뱃길의 조성 목적이던 ‘화물과 여객 운송’ 기능은 사실상 상실된 것으로 나타났다. 

과태료·단속 권한 지자체에
초기 예측했던 물동량 밑돌아

지난달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인천서구을)이 한국수자원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아라뱃길 유지·관리 등 사업비로 매년 290억원이 투입되고 있다.

지난 2014~2023년까지 10년 동안 아라뱃길을 오간 화물 수송 실적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예측치의 7.7%에 불과했다. 여객 실적도 예측치의 12.2%에 그쳤고, 코로나19 사태 기간인 2020~2022년 사이에는 여객 운송이 거의 없었다.

실제로 <일요시사>가 아라뱃길을 찾은 당일 해당 지역 주민에게 “최근 유람선이나 화물선을 본 적 있느냐”고 물었으나 유람선 외에는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환경부는 지난 2018년 6월 물관리 일원화 이후 ‘경인 아라뱃길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물류와 하천환경, 관광 및 레저 등을 포함한 기능개선 방안을 검토했다. 이후 2020년 12월 공론화위원회는 주운 기능을 축소하고, 실적이 저조할 경우 주운 기능을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경인 아라뱃길 기능 개선을 위한 정책’을 마련해 환경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2021년 1월 권고문을 바탕으로 환경부 주관의 협의체가 구성돼 6차례에 걸쳐 회의를 벌였지만, 당사자 간 입장이 엇갈리며 실행되지 못했다. 이에 이 의원은 “경인아라뱃길의 핵심 기능인 여객·화물의 수송 경쟁력이 거의 없는 것을 인지하고도 시정할 의지가 없는 전형적인 탁상행정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점 투성이

한국수자원공사 아라뱃길 지사의 다른 관계자는 “현재 아라뱃길을 이용하는 화물 선박이 빈번하지 않다 보니 여객선에 비하면 김포 물동량이 미미한 건 사실”이라며 “KDI서 처음 예측했던 당시 물동량은 아라뱃길 현실 여건하고는 괴리감이 크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제4차 항만 기본 계획의 물동량 전망치를 보면 2030년에 93만2000t을 처리하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지난해 인천터미널과 김포서 처리한 물동량은 95만t으로, 현실 여건을 반영한 전망치 목표 물동량을 이미 초과했다”며 “한국수자원공사는 아라뱃길의 물동량 증대를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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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