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장애인 상대로…’ 수상한 준강간 고소전

고소장 속 무서운 음모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경계선 지능 장애를 앓고 있는 무고한 사람들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불렸지만 법적 제재를 받지 않은 사례가 발생했다. 법적으로 보호될 사회적 약자지만 법은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가해자의 법정대리인이 전직 검찰 수사국장이라 아무런 피해가 없다는 피해자 측 이야기도 나오는 상황이다.

A씨 가족이 허위로 고소한 사건은 제대로 수사되지 않고 경찰서 검찰로, 검찰서 재판으로 넘어갔다. 이런 상황에 A씨는 새롭게 부동산 사기도 저질렀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A씨가 연루된 범죄(무고죄, 사기죄)에 관해서 불송치와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A씨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모두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지능이 낮은 경계선 지능 장애를 앓아 온 것으로 드러나 더욱 충격을 줬다.

경계선 
지능 장애

지난 2020년 2월경 인천서부경찰서에는 준강간 고소 사건이 접수됐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공소장에 따르면, 피해자 B씨는 고소인 C씨와 C씨의 딸인 A씨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정신을 잃은 C씨를 강간했다며 고소됐다.

C씨는 고소장에서 “사건 다음날 손녀들을 통해 영상통화했는데 사건 당일 알몸 상태였고 B씨도 벗은 상태였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후 음부 쪽에 통증이 느껴지고 팬티에 정액으로 추정되는 것이 묻어 있는 것으로 보아 피의자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은 것으로 의심된다”고 적시했다.

B씨는 고소당한 후 일관적으로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진술서에 따르면 그는 “C씨와 함께 안방서 술을 마시다가 보이지 않아 나가봤더니 작은 방 침대에 누워있었고 그가 ‘오바이트할 것 같으니 윗도리를 벗겨 달라’고 해 반팔 상의를 벗겨 줬고 이후 C씨의 손녀가 전화를 바꿔줘 전화통화한 후 귀가했다. 그 외에는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B씨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C씨 손녀의 진술이 결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C씨 손녀들은 “B씨가 술에 취한 C씨를 작은 방으로 안아 들고 갔고 B씨가 C씨의 손녀들에게 거실서 TV를 보고 있으라며 거실로 내보냈다”며 “이후 다시 작은 방으로 갔을 때 B씨가 나체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고 피의자가 바지와 팬티를 벗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어 “할머니 옷이 다 벗겨져 있고 피의자는 팬티와 바지를 벗은 상태인 것을 보고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빨리 오라고 했는데 B씨가 상의만 입고 하의를 벗을 상태로 거실로 와서 ‘전화 받지 마라’고 말했다”며 “이후 엄마한테 전화가 걸려 왔으나 무서워서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도 진술했다.

증거도 없이 성범죄 무고
교환 빌미삼은 토지 강탈

C씨가 고소 입장을 밝히고 B씨는 C씨 친언니의 사위이자 C씨가 다닌 교회 목사에게 “C씨와 원래 연인 관계로 수회 잠자리를 가져왔는데 C씨가 내가 몹쓸 짓을 했다고 하며 500만원을 요구하고 있다”며 중재를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됐다.

이에 B씨는 “C씨가 신고한다고 해서 해당 목사에게 중재를 요청한 것일 뿐 명예훼손의 고의가 없었고, 목사와 C씨는 가족관계이자 목사와 성도 사이기에 해당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면서 공연성이 없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B씨는 경찰서 준강간, 아동학대,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하지만 C씨와 그 손녀들의 진술 외에는 뚜렷한 증거가 없던 검찰은 ‘B씨가 C씨의 옷을 벗겼다’는 점만 활용해 준강간추행죄로 기소했다.

진술을 종합한 재판부는 C씨가 옷을 모두 벗은 채 침대에 누워 있고 B씨가 침대 옆에 하의를 모두 탈의한 채 있는 장면을 이들이 목격한 사실은 인정되면서도 준강간추행죄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구성요소로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 불능의 상태가 필요하며, 주관적 구성요건요소로서 B씨에게 위와 같은 피해자의 상태에 대한 인식 및 이를 이용해 추행한다는 고의도 인정돼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이같이 판단한 이유는 C씨의 진술이 계속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초 수사기관서 갑자기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제 몸에 올라와서 강간하는 건 느꼈다. 피고인이 위에서 성관계하려고 할 때 침대 위에서 ‘안 돼, 안 돼’ 그랬다. 정신이 없어도 아무리 필름이 끊겼더라도 저를 누르고 하면 안다. 느낌을 다 알고 있었다”고 이전과 달리 진술했다.

그날 밤
무슨 일이…

그러면서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깬 시점을 여러 번 번복해 진술하면서 수사기관서도 이 같은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으나 정신이 없어 말하지 못했고 딸에게도 창피해서 말을 못 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C씨의 계속되는 진술 번복으로 진술을 믿을 수 없는 점 ▲B씨와 C씨가 사건 직후 같이 살던 딸의 집에서 나와 다시 돌아가기 전까지 여러 차례 만났던 점 ▲어린 외손녀들과 딸, 아들이 사건 관련 장면을 목격했다는 것 자체로 강한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는 난처한 입장에 있어 진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는 점 등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가 항고했지만 2심 재판부도 ▲피해자의 옷이 벗겨진 경위에 대해서는 목격한 사실이 없는 점 ▲C씨가 수사기관서 당시 심신상실 상태에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하다가 원심 법정에서는 B씨가 관계를 시도하려고 했고 올라타는 과정에 밖에 있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는데, 이에 따르면 피해자는 당시 심신상실 상태에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이 사건 고소에 이르게 된 경위, 피해자가 사건 이후 피고인과 연락하며 만났던 점 등에 비춰 피해자가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껴 진술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는 점 등을 종합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B씨가 술에 취해 심신상실 상태에 있는 피해자를 추행한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며 기각했다.

A씨 가족의 기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A씨는 B씨와의 재판 시기에 부동산 사기도 벌였다. A씨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춘천의 임야 토지에 대한 절반의 지분과 부동산 사기 피해자 D씨와 그의 소유 토지 150평의 교환계약을 맺고 소유권이전청구권가등기(이하 가등기)를 설정했다.

법적 보호? 
법적 외면!

가등기 이후 A씨는 해당 토지에 관한 소유권을 D씨에게 주장했다. 

이 같은 소유권 분쟁은 결국 재판으로 넘어가게 됐다. 1심 당시 A씨는 재판부에 허위 사실확인서 및 위조 계약서 등을 제출함은 물론, 알콜중독상태인 D씨와의 여러 대화와 통화 녹취 중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을 편집하고 날짜까지 조작한 허위의 녹취록을 제출해 승소했다.


이후 D씨는 갑작스럽게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이 성년후견심판청구를 진행해 2심이 진행됐다.

2심서 D씨 아들은 ▲D씨의 진정한 의사에 의하지 않고 피고가 임의로 작성한 매매예약증서 등에 따라 마쳐진 원인무효인 등기며 ▲설령 매매예약이 유효하게 체결됐더라도 A씨가 매매대금 지급의무를 다하지 않아 해제됐으며 ▲교환계약에 교환목적물 등 계약의 주요 내용에 대한 합의가 없으며 ▲교환계약이 유효하게 체결됐더라도 A씨가 춘천 임야의 가치를 기망해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로서 취소돼야 하며 ▲D씨의 낮은 사리분별력을 이용해 체결한 불공정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했다.

반면 A씨는 “D씨와 교환계약이 제대로 체결됐지만 다만 당시 해당 사건의 토지에 근저당권과 지상권이 설정돼 있어 D씨가 이를 해소할 때까지 가등기한 것”이라며 “계약의 목적물인 토지 부분이 특정돼있고 계약의 주요 내용에 대해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D씨의 진의에 따라 체결된 계약이고 그를 기망한 적 없으며 불공정한 불법행위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무죄에도 무고죄 불송치
전직 검찰 수사국장 덕?

재판부는 “A씨와 D씨는 A씨가 취득하게 될 토지 면적이 150평인 것은 명시하고 있으나 그 구체적인 위치나 형상 등에 관해 특정했다고 볼 만한 사정은 확인되지 않는다”며 “특약사항에는 ‘D씨가 이 사건 각 토지 두 필지서 도로를 접한 면으로 150평을 경계측량하고 이를 필지 분할한다’고 기재됐지만 두 필지의 형상 및 개별공시지가의 차이를 고려해 볼 때 A씨가 소유권을 취득하게 될 150평 중 각 필지 별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고 두 필지 모두 도로에 접한 면적이 상대적으로 넓지 않아 필지 분할 형태에 따라 특정 필지가 맹지가 되어 버리거나 각 토지 사용 가능성이 상당히 제한되어 버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며 교환계약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해당 사건은 A씨의 상고로 대법원에 올라간 후 교환계약서 체결 전에 컨테이너를 설치한 것을 교환계약 이후 체결한 것으로 보는 오류를 범하면서 다시 인천지법으로 환송됐다.

A씨의 기망 행위는 금전적인 것에서 비롯됐다. 피해자들의 신뢰관계인인 정모씨는 “B씨의 사건에서는 합의금을, D씨의 사건에서는 토지를 노렸다”며 “B씨와 D씨 모두 경계선 지능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으로 사회적 약자를 이용한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하지만 A씨의 가족은 아무런 법적제재를 받지 않았다. B씨가 무죄가 나온 후 무고죄로 고소한 건도 경찰서 불송치됐다. 또 민사재판 이전에 접수된 D씨 토지 교환계약에 대한 사기건도 불송치됐다.

이 때문에 정씨는 A씨와 경찰, 검찰과의 유착관계를 의심하고 있다. 정씨는 “A씨의 법정 대리인인 이모 변호사는 전직 검찰 수사국장이었다”며 “증거없는 B씨 사건을 C씨의 부탁으로 벗긴 옷을 꼬투리 잡아 준강간추행으로 기소하고 허위 계약서 등을 내세워 기망한 D씨의 토지 관련 사기 사건도 불송치한 것을 보면 유착관계가 있을 것이라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모두 불송치
“유착 의혹”

정씨는 “경찰과 검찰은 수사 과정서 상호 잘못된 점을 밝히고 보완하기 위해서 명분상으로나마 수사권 조정이 된 것”이라며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서로의 비리를 ‘상호 보완해 은폐하기 딱 좋은 시스템’으로 바뀌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형사사법시스템서 억울한 ‘피해자가 된 국민은 절대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사실이 개탄스럽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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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지방선거 관전 포인트

미리 보는 지방선거 관전 포인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선이 끝났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승자와 패자가 뚜렷하게 갈렸다. 각 정당은 선거 결과에 따라 여당과 야당의 역할에 골몰할 것으로 보인다. 대형 선거를 치른 정치권은 숨 돌릴 새도 없이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지방 권력의 향방을 결정하는 지방선거가 채 1년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서 시작된 대선 정국이 마무리됐다. 2022년 5년 만에 정권교체를 당했던 진보 진영은 3년 만에 다시 여당의 지위를 되찾았다. 보수 진영은 비상계엄과 탄핵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번 대선이 대통령 궐위로 치러진 보궐선거인 만큼 당선인은 인수·인계 기간 없이 바로 임기에 돌입했다. 또 한 번 정권교체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6개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한 지 60일 만에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지난 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49.4%,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2%,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8.34% 득표율을 기록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0.98%, 무소속 송진호 후보는 0.1%였다. 지상파 3사(KBS·MBC·SBS)가 진행한 출구조사 결과와 차이를 보였지만 당락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는 한국리서치·입소스·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에서 본투표 당일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전국 325개 투표소의 투표자 8만146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0.8%포인트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는 이 대통령 51.7%, 김 후보 39.3%, 이 후보 7.7%였다. 출구조사와 비교해 이 대통령은 낮았고 김 후보와 이 후보는 더 득표했다. 이 대통령은 1728만7513표를 얻어 역대 대선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지만 과반 득표율에는 실패했다. 역대 대선에서 과반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선관위가 지난 4일 오전 6시21분 이 후보를 대통령 당선인으로 공식 확정하면서 이 대통령의 5년 임기가 시작됐다. 임기 개시와 동시에 국군 통수권을 비롯한 대통령의 모든 고유 권한이 이 대통령에게 자동 이양됐다. 이 대통령의 임기는 2030년 6월3일까지다. 비상계엄부터 대통령 탄핵, 대선까지 숨 가쁜 6개월을 보낸 정치권은 대선 후폭풍에 직면했다. 문재인정부 이후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던 민주당은 3년 만에 여당으로 복귀했다. 민주당 단독으로만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고 범진보 진영(192석)으로 보면 200석에 육박하는 ‘거대 여권’의 등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지난 총선에 이어 대선서도 패배하면서 존망의 갈림길에 섰다. 당장 대선 패배 책임론이 불거졌고 당권을 차지하기 위한 이전투구 양상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범진보 진영과 비교해 107석이라는 ‘초라한’ 국회 의석수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차지한 이재명정부를 견제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3년 만에 정권 탈환 국민의힘, 총선 이어 또 졌다 대선 후폭풍이 걷히면 정치권은 또다시 ‘선거 모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내년 6월3일 지방선거가 예정돼있다. 채 1년이 남지 않은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지 않았다면 내년 지방선거는 윤석열정부 임기 중에 치러질 예정이었다. 윤정부서만 두 번의 지방선거가 열리는 셈이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열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윤정부에 대한 평가이자 대선 전초전 격이었을 선거가 이재명정부의 첫 대형 선거가 된 것이다. 이미 여당이 행정과 입법을 완전히 장악한 상황서 지방 권력까지 확보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재명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이른바 ‘절대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가능성은 작지 않다. 대선 이후 몇 개월 만에 치러지는 선거서 여당이 진 적은 거의 없다. 바로 직전 지방선거서 국민의힘이 압승한 게 대표적이다. 2022년 6월, 윤정부 출범 한 달 만에 열린 지방선거서 국민의힘은 17개 광역단체장 중 서울·인천 등 12곳에서 이겼다. 민주당은 경기·광주·전남·전북·제주 등 5곳에서만 승리했다. 기초단체장 선거도 국민의힘이 완승했다. 전국 226곳 중 145곳에서 이겼다. 서울에서는 25개 자치구 중 17곳에서 승리했다. 2018년 지방선거서 서초구를 제외한 24곳에서 민주당이 이겼던 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 수준이었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열린 재보궐선거서도 7곳 중 5곳을 차지했다. 당시 이 대통령이 출마한 인천 계양을과 제주을을 제외한 대구 수성을·경남 창원의창·경기 성남시 분당구갑·강원 원주갑·충남 보령·서천 등에 국민의힘 깃발이 꽂혔다. 지난 지방선거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고 불릴 정도로 네거티브가 난무했던 20대 대선 직후에 열리면서 당시 투표율은 50%를 간신히 넘는 낮은 수준이었다. 역대 지방선거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낮은 수치였다. 새 정부 탄생과 거의 동시에 치러진 만큼 ‘허니문’ 성격이 강했던 점도 국민의힘 승리에 영향을 미쳤다. 민심이 새 정부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계엄·탄핵 보수 폭망 불과 3년 만에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대선 승리를 등에 업고 지방 권력까지 차지했던 국민의힘은 순식간에 야당으로 전락했고 민주당은 기세를 탄 상황이다. 이재명정부는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지방선거 승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한 호흡으로 같이 나가려면 기울어진 지방 권력 구도를 돌려놔야 한다는 취지다. 내년 6월3일 열릴 지방선거는 대선 이후 1년 뒤에 치러진다는 점에서 이전 허니문 선거와 비교해 기간이 긴 게 변수로 꼽힌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임기 초인 만큼 여당에 유리한 이슈가 많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두고 진행 중인 재판이 1년 내내 사회를 달굴 가능성이 크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4월14일부터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대통령직을 상실하면서 불소추특권도 사라졌기에 혐의가 더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 전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 심판 심리 때부터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에 대해 철저하게 부인해 왔다. 재판서도 같은 태도를 보여 1심 선고까지는 1년 넘게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당선 수락 연설에서도, 취임사에서도 내란 종식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오전 국회 본청 로텐더홀서 진행한 취임 선서에서 “국민이 맡긴 총칼로 국민주권을 빼앗는 내란은 이제 다시는 재발해선 안 된다. 철저한 진상 규명으로 합당한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책을 확고히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제 문제도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현재 안팎으로 상황이 좋지 않다. 내수 시장은 ‘폭망’ 상태에 접어들었고 외부에선 관세 등으로 시장을 흔들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경제 이슈는 선거판을 늘 좌지우지했다. 텃밭 빼고 다 뒤집혀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먹사니즘’이라는 표현으로 먹고사는 문제, 즉 민생 회복을 첫손에 꼽았다. 특히 이 대통령은 국가 재정 투입을 예고했다. 취임 선서에서도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돌리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이재명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다. 통제하고 관리하는 정부가 아니라 지원하고 격려하는 정부가 되겠다”며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기업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규제는 네거티브 중심으로 변경하겠다. 기업인이 자유롭게 창업하고 성장하며 세계시장서 경쟁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고 구상을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비상계엄 사태 극복과 경제 회복을 전면에 내세워 민심을 다잡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야당이 된 국민의힘 등 보수 진영은 ‘견제론’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크다. 의회 권력과 행정부를 장악한 이재명정부를 지방 권력으로 견제하고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총선은 2028년, 이 대통령의 임기 중반 이후에나 치러진다. ‘거대 야권’ 국면이 이 대통령의 임기 내내 지속된다는 뜻이다. 그사이 판을 흔들만한 대형 선거가 없기에 보수 진영으로선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처지다. 특히 총선이 지방의회 상황에 영향을 받는 만큼 국회 의석 상황을 바꾸려면 지방선거 결과가 중요하다. 문제는 내부 상황이 지나치게 어지럽다는 점이다. 보수 진영서 배출한 대통령이 벌써 두 번째 파면됐고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국민에게 외면받았다. 보수 세력을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총선 때부터 나왔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대선서 두드러진 존재감을 보여준 윤 전 대통령 측 세력과 결별하는 과정서 보수 진영의 주도권을 둘러싼 혈전이 예상된다. 새 정부 1년 만에 맞대결 3년 전에는 여당이 압승 대선을 완주한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 의원은 비록 한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대선 기간 내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상당한 존재감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고 있다. 결국 이런 상황을 모두 처리하고 난 뒤에야 보수 진영은 지방선거에 몰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대선 과정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선거에 임하거나 지지층만 믿고 막무가내식 행보를 보이면 총선, 대선서 이어 지방선거까지 3연패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대선과 8대 지방선거, 이번 대선서 각 정당 후보가 얻은 표를 보면 보수 진영의 상황이 얼마나 ‘최악’인지가 드러난다. 국민의힘 후보로 윤 전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로 이 대통령이 나선 20대 대선 당시 승부를 가른 건 ‘서울’이었다. 민주당은 선거를 치르면서 서울서 진 적이 많지 않았는데 2022년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로 민심을 까먹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50.6%, 이 대통령은 45.7%를 받았다. 표수로는 31만표 차이였다. 윤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전체 표 차인 24만7000표(0.73%p 차이)보다 컸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을 필두로 강원·대전·충청·TK(대구·경북)·PK(부산·경남)·울산서 승리해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지방선거 때에는 대선서 패했던 인천과 세종에서도 국민의힘이 이겼다. 서울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국민의힘)이 민주당 송영길 후보를 무려 20%p 차이로 이겼다. 대선서 45.6%(윤 전 대통령) 대 50.9%(이 대통령)로 5.3%p 차이가 났던 경기도조차 48.9%(국민의힘 김은혜 후보) 대 49.1%(민주당 김동연 후보)로 초접전 양상을 보였다. 그로부터 3년 뒤 이번 대선서 국민의힘은 강원·TK·PK·울산을 제외한 모든 지역서 졌다. 지역별로 보면 6곳에서만 김 후보가 이 대통령에 앞섰다. 국민의힘 텃밭이라고 불릴만한 지역과 보수세가 강한 지역서 선전했을 뿐 수도권과 표심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충청권서 모조리 패배했다. 여러 차례 대통령을 배출한 전국 정당이 ‘영남당’으로 쪼그라든 순간이다. 안정론? 견제론? 발 빠른 인사들은 벌써부터 지방선거를 정조준하고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대선 패배 연설서 “저희가 잘했던 것과 못했던 것을 잘 분석해 정확히 1년 뒤 다가올 지방선거서 개혁신당이 한 단계 약진할 수 있기를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어느 정도 승부가 예측됐던 이번 대선과 달리 내년 지방선거가 진짜 대결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개헌 국민투표 가능성 ‘동시에 진행될까?’ 이재명정부는 개헌을 할 수 있을까? 대선일로부터 꼭 1년 뒤인 내년 6월3일 열리는 9대 지방선거서 개헌 이슈가 다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대선 이후 첫 대형 선거인 만큼 이날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를 동시에 진행하자는 의견은 대선 기간 내내 나왔다.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은 지난 4월 “2026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로 제7공화국의 문을 열자”며 “대선후보들은 개헌을 약속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정 회장은 “느닷없는 계엄령이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가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는지를 절감했다”며 “다가오는 대통령선거는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설 결정적 기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87체제’ 종말 초읽기? 그러면서 “개헌 시점은 늦더라도 2026년 6월이어야 한다”며 “이번 대선 이후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협력 아래 정부가 지원하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국민투표에 부칠 개헌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대선후보 당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국무총리 국회 추천 등을 골자로 한 개헌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에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제안했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