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한동훈-이재명 서로 놓지 못하는 이유

돕고 돕는 적대적 공생관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적대적 공생관계’만큼 미묘한 단어가 있을까? 어제의 아군이 오늘의 적군이 되는 여의도에서는 특히 그렇다. 오로지 눈앞의 적을 없애기 위해 자신의 뒤를 노리는 또 다른 적은 살려둔다. 정치의 끝과 끝에 서 있는 양당 대표가 어떻게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의심을 사게 됐을까?

정치권이 연일 시끌벅적하다. 지난달을 기점으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을 흔들려는 이들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간의 둑도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갈등의 홍수 속에서 두 사람 모두 살아남기는 어려워 보인다.

밥 먹고
끝났다

한 대표와 용산 사이에 또다시 불편한 기류가 흐른다. 지도부 만찬 전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일대일 만남을 요구했는데 사실상 용산이 거절 의사를 내비치면서 형식적인 상견례 자리로 막을 내렸다.

앞서 지난 22일 한 대표가 24일 예정된 지도부 만찬을 앞두고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요구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나왔다. 당 지도부와 당직자가 다수 참여하는 자리에서는 최근 문제가 되는 사안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할 수 없다는 점을 내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요구에 친윤(친 윤석열)계에서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한 대표가 독대 요구를 일부러 언론에 흘려 용산을 압박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이유에서다.

“당 장악력이 시원찮은 상황서 독대를 통해 덩치를 키우려는 속셈이 괘씸하다”는 불만도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친윤계 사이에서는 “모두가 타고 있는 배에 한 대표가 구멍을 뚫고 있다”며 원망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한 대표가 공개적으로 이렇게 독대 얘기를 시키게 한 건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대통령께서 체코 방문하고 와서 원전 수주와 관련해 여러 가지 성과도 있고 얘깃거리가 많지 않은가”라며 “그건 어디로 다 없어져 버리고 여당 대표와 대통령 간의 견해 차이, 갈등 이런 부분만 부각이 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전 대표인 김기현 의원도 자신의 SNS를 통해 “당 대표가 대통령과의 독대 요청을 했다는 사실이 사전 유출돼 주요 뉴스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납득이 잘 되질 않는다”며 “차기 대권을 위한 내부 분열은 용인될 수 없는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여당은 윤석열정부를 성공한 정부로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덧붙였다.

한 대표가 만찬에 들고 올 것으로 예상됐던 의제는 의료 대란, 김건희 여사 논란 등이었다.

‘친윤 vs 친한’ 깊어지는 갈등 골
결국 밥상 두고 양쪽 모두 ‘찜찜’

윤 대통령이 한 대표의 요청을 거부한다면 당과 소통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불가피하다. 반면 독대에 응하더라도 한 대표 측에서 “진전이 없었다”는 메시지가 나온다면 역시나 소통의 부재라는 지적으로 귀결된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정부와 여당의 갈등이 봉합되긴 어려웠을 것이란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결국 지난 24일 독대 없이 지도부 만찬이 진행됐다. 대통령실에서는 윤 대통령과 정진석 비서실장, 성태윤 정책실장을 비롯한 수석급 참모진 전원 등 13명이 자리했다. 여당에서는 한 대표와 추경호 원내대표, 최고위원 등 지도부 소속 14명이 참석했다.

다수의 여권 관계자는 이날 만찬은 주로 윤 대통령이 체코 원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나머지 배석자가 호응하는 자리였다고 전했다. 의정 갈등이나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 다뤄질 분위기는 아니었었던 셈이다.

만찬 시작 전 한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거나 인사말 하는 식으로 윤 대통령에게 의견을 전할 것이란 이야기가 있었지만 90분 동안 진행된 이 자리서 한 대표에게 말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대변인 측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친 뒤 약 10분 정도 나란히 산책했지만 심각하거나 무거운 이야기는 나누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만찬은 한 대표가 전당대회서 당선된 이후 치러졌던 7월 만찬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당시 윤 대통령은 맥주를, 한 대표는 탄산음료를 든 채 ‘러브샷’을 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번 만찬에는 오미자차가 술을 대신했다.

두 사람이 다정하게 서 있는 모습은 물론 현장 분위기가 담긴 영상도 없었다. 정치권에서는 “두 달 사이에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랭해졌다” “너무 급한 거리두기”라는 해석이 나왔다.

“윤 대통령의 일방적 소통”이라는 친한(친 한동훈)계 측의 불만이 나오면서 용산이 진땀을 빼고 있다. 문제는 만찬 이후 한 대표가 다시 또다시 독대를 요청하면서 2라운드로 이어질지다. 앞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이 모습이 그대로 대중에 노출될 경우, 정부여당 할 것 없이 나란히 지지율 내림세에 접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별다른 말을 얹지 않았다. 지난 총선서 불거진 ‘김건희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부터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의 복권을 둘러싼 여당의 내분까지 온갖 갈등이 알아서 줄줄이 터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뿐이다.

손 안 대도
알아서 척척

그렇다고 민주당에 호재만 이어진 건 아니다. 지난 20일 검찰이 대선서 허위 사실을 발언한 혐의로 이 대표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으며 1심 선고는 다음 달 15일로 예정됐다. 여기에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한 1심 선고도 앞두고 있어 모든 시선이 법원에 쏠린다.

대권주자 행보를 걷는 도중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힌다면 중도층 이탈은 물론 최악의 경우 피선거권 박탈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부터 눈을 돌리고 ‘우클릭’ 논제를 끌어올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그 대상으로 윤 대통령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대표가 적합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앞서 한 대표는 7월 전당대회서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을 화두에 올렸다. 정부가 강경하게 밀고 나가는 의료개혁에 대해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을 1년간 유예하는 방안을 공식 제안하기도 했다.

모두 용산과 각을 세우거나 윤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는 내용인 만큼 여권 내에서는 적잖은 후폭풍을 예상했다. 결과적으로 제3자 특검법은 민주당과 충돌했고 강성 보수 지지층으로부터 뭇매를 맞기도 했다.

용산과 친윤계의 반응으로 미뤄봤을 때 한 대표가 현 정부를 대상으로 차별화 전략에 나선 것은 확실해 보인다. 성공 여부는 미지수지만 그동안 숱하게 거쳐간 다른 당 대표와 달리 야당과 협치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정치인으로서의 캐릭터를 잡아가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민주당은 용산과 한 대표의 틈새를 파고들어 정부의 힘을 뺄 기회를 보고 있다. 레임덕을 겨냥한 ‘윤석열 고립 작전’을 염두에 뒀다는 관측이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이 총선 전부터 벼르던 이른바 ‘한동훈 특검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이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5월 혁신당은 당론 1호 법안으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했다. 해당 특검법에는 ‘고발사주 의혹’을 포함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징계 취소소송 항소심에 대한 고의 패소 ▲자녀 논문 대필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요청 시 피의사실 공표 및 공무상 비밀 누설 ▲검사의 수사 개시 범위를 시행령 등으로 무리하게 확대함으로써 국회의 입법 취지 형해화 등의 의혹이 담겼다.

법안 발의 당시 민주당은 크게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이후 혁신당은 지난 7월 기존 특검법에 ’사설 댓글팀 운영 의혹‘을 담아 추가로 발의했고 법안 합의를 보기로 한 민주당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해당 법안을 상정했다.

다만 법안 통과의 목줄을 민주당이 쥐고 있는 상황서 한동훈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장 문턱을 넘을지는 알 수 없다. 이 대표 못지않게 한 대표 역시 자신을 겨냥한 특검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야권 관계자는 민주당에 있어 한동훈 특검법은 언제든지 꺼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결국에는
오월동주

결국 두 사람의 공생관계는 시한폭탄이다. 각자 한발씩 양보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맞서야 할 적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폭탄이 대선 레이스 전초전 시작과 함께 터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9월 두 사람은 첫 회동서도 주요 의제를 놓고 시각차를 보였다. 두 대표 모두 정치 복원에 있어서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지만 불체포특권, 금융투자소득세(이하 금투세) 문제를 놓고는 충돌했다.

당초 이 대표는 한 대표의 만남을 적극 환영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이 당 대표 시절에 식사 회동을 제안하자 “밥 먹고 술 먹는 것은 친구분들과 하라”고 딱 잘라 거절했던 것에 비하면 한 대표와는 대화할 의지가 열려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회동은 빈손으로 끝났지만 협치의 물꼬가 트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레임덕 수순에 접어들면 두 사람의 공통분모는 사라진다. 이때부터는 ‘거대 야당의 수장’과 ‘검사 출신 정치인’의 진검승부다.

윤 대통령의 임기는 3년가량 남았지만 지지율은 벌써부터 20~30%대를 기록하고 있다.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리스크와 의료 대란 등이 지지율 하락 원인으로 꼽히는 가운데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부 지지율이 10%대, 극단적으로는 한 자릿수를 기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야권 내에서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 때문일까? 여야 막론한 대권주자들의 활동 시기가 앞당겨졌다. 지난 총선서 ‘비명횡사’ 당했던 민주당 박용진 전 의원은 추석을 기점으로 정치 활동 재개 의지를 드러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호남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혁신당 조국 대표 역시 꾸준히 정치기반을 넓히고 있다.

여권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잠룡으로 꼽힌다. 오 시장은 지난달 1일 민선 8기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서 “임기 반환점 도는 시점에 벌써 대권 운운하는 것은 유권자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여운을 남겼지만 꾸준히 대권주자 대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김 여사 공천 의혹에 엮인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돼 이번 논란을 어떻게 갈무리지을지 눈길이 쏠린다.

이 대표와 한 대표는 차기 대권주자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1,2위를 다투는 만큼 그 경쟁 역시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는 중도층을, 한 대표는 자신의 세력을 늘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우클릭’ 이재명 ‘좌클릭’ 한동훈
웃으며 만났지만…주머니엔 칼자루

중도층을 끌어안기 위해 이 대표는 금투세를 꺼내 들었다.

지난 24일 민주당은 금투세를 놓고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시행팀’과 유예해야 한다는 ‘유예팀’으로 나눠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전당대회서 이 대표가 금투세를 유예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당내 의견이 다소 갈렸는데, 이를 정리하고 당론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과정으로 읽힌다.

당내서 금투세 유예 기간을 3년으로 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을 두고 여권에서는 ‘대선을 염두에 둔 꼼수’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개미 투자자 사이에서는 금투세 문제를 당론으로 정하는 바람에 오히려 혼란을 가중했다는 불만도 나왔다.

여야는 물론 일반 투자자까지 얽혀 있어 금투세를 당론으로 정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반면 한 대표는 중도층을 흡수하는 데 조금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앞으로 3년, 살아 있는 권력인 윤 대통령과 제대로 차별화 전략을 세웠다는 걸 전제로 했을 때의 이야기다.

문제는 이 과정서 영남권 등 중진 의원이나 거물급 정치인의 신뢰를 잃어 입지가 확 쪼그라드는 경우다. 정치적 기반이 없던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통령으로 세운 것에 대한 불만을 가진 ‘전통 보수층’에게 또다시 전직 검사를 대권주자로 내세워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한다면 한 대표의 정치 생명은 보장할 수 없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한 대표가 취임한 지 100일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국민의힘 내에서는 차기 비대위원장 물색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실패한 당 대표’ 꼬리표는 대권주자로서 치명적이다. 정치적 부활도 쉽지 않다. 보수 기반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기도 전 용산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민주당과 ‘협력관계’라는 프레임에 갇힌 게 한 대표의 발목을 잡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적대적 공생관계는 두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런 관계성은 (두 사람보다는)이 대표와 조 대표, 그리고 윤 대통령과 이 대표 쪽이 그렇다고 본다”며 “특히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인해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가라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회를
위기로?

독대 요청을 거절당하는 등 지속적인 갈등을 겪고 있는 용산과 한 대표의 관계는 오히려 당의 지지율이 반등할 기회라고 내다봤다.

신 교수는 “사람들은 갈등이 나쁘다고 말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갈등이 필요하다”며 “정부와 여당 지지율이 하락하는 커플링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이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당정이 한 몸이라는 인식을 깨트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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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