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⑱짧은 인생의 주마등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4.09.24 08:12:59
  • 호수 14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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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숙사로 돌아가자 스라소니 눈이 인상부터 썼다.

“이 자식들, 너희들 왜 이제 와?”

“오다가 2반 얘들끼리 싸움이 붙었는데, 완전히 결투 영화의 한 장면 같았어요.”

피에로가 손짓 발짓을 섞어 넣으며 말했다.

콩고물 맛이…


“새끼, 채플린 아니랄까봐 영화 얘기냐.”

스라소니가 피에로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2반 새끼들 맛이 간 모양이군. 그건 그렇고 얼마나 얻어 왔냐?”

피에로가 용운의 것까지 합쳐서 건네었다.

“에게, 겨우 요거야? 너네들 몰래 처먹고 오리발 내미는 것 아냐?”

스라소니가 눈을 부라렸다. 

말은 그러면서도 그는 반장 앞으로 다가앉으며 뭉치를 풀었다. 여러 개의 눈이 침을 삼키며 바라보았다. 스라소니는 반장 앞으로 음식물을 공손히 밀어 놓았다.


“많이 드십시오, 백곰 형님.”

“흐흐흐, 그래. 모처럼 이런 날도 있어야 살지.”

백곰은 인절미를 하나 집어 입속에 넣고 오물거리며 말했다. 그는 의외로 욕심없이 손가락에 묻은 콩고물을 털더니 말했다.

“야, 너희들도 맛을 좀 봐.”

동시에 여러 개의 손이 갈고리처럼 뻗어나와 음식을 집었다. 그 소동을 못 본 척 백곰은 용운을 슬쩍 밖으로 불러내더니 물었다.

“그건 잘 전달했냐?”

“예.”

“그래, 뭐라고 하던?”

“급해서 금방 뛰어나왔어요.”

용운은 그 누나가 한 말은 가슴속에 넣어 숨겼다.

“짜식아, 답장을 받아와야지. 다음부턴 제대로 하라구. 흠, 그 절뚝발이 천사가 반지를 받긴 받았단 말이지? 흐흐, 그럼 일단 됐어.”

백곰은 둔중한 몸집과는 달리 재빠른 동작으로 건물 뒤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유쾌한 휘파람 소리가 흘러왔다.


고적한 밤이면 먼 바다 쪽에서 아스라이 해조음이 들려오고, 뒷산에서는 두견새가 애끊는 소리로 울곤 했다. 그 소리를 들으면 불현듯 가슴이 막막하고 구슬퍼졌다. 

용운은 자리에 누웠으나 쉬 잠들지 못했다. 낮에 벌어졌던 이런저런 일들, 특히 잔칫집에서 음식을 얻어먹던 원생들의 모습이 용운을 과거로 이끌어 갔다.

살아온 인생은 짧지만 지난날의 여러 가지 체험들이 주마등처럼 그의 작은 머릿속을 맴돌다가 스쳐갔다. 

지금 이곳엔 왜 와 있는 것인가? 하루빨리 엄마를 찾아나서야 할 때 여기서 무엇하는 것인가?

자꾸만 엄마가 마산포 어귀에 와서 부르는 것 같은 환청을 듣다가 입을 틀어막고 소리 죽여 운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침 삼키는 여러 개의 눈
청계천 다리 밑 오두막


‘아! 엄마…… 왜 저를 버리셨지요? 제가 그렇게도 미웠던가요?’

용운은 속으로 외치며 탄식했다. 눈물 한 방울이 돋아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물밀 듯이 덮쳐 오는 엄마 생각에 젖은 용운은 옛 추억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갈 곳 없는 어린 떠돌이에게 밤은 유난히 빨리 찾아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행인들의 왕래도 뜸해져 갔다. 무작정 밤거리를 헤매던 끝에 용운이 우연히 찾아든 곳은 청계천 다리 밑이었다. 

다리 아래에 누추한 오두막이 하나 보였다. 안에서 시시껄렁한 두런거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용운은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첫 번째 교각 아래로 내려갔다.

숨어서 밤을 보내기에 적당했고 가까이에 누군가 있어 덜 무서우리란 생각에서였다. 둑의 경사가 심했다. 용운은 겨우 앉아 교각 하나를 등받이로 삼았다. 무척 추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좀 앉았으니 다시금 고독과 서러움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음울하면서도 순정스러워 보이는 검은 눈동자에 눈물 한 방울이 맺혀 떨렸다.

엄마는 지금 어디 있는 것일까?

앞으로 이런 괴로운 날들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대체 어떻게 해서 내가 이 지경이 돼야 했던 것일까?

희미하나마 몇 가지 떠오르는 게 없지 않았다. 어느 이름 모를 개천과 산 언덕배기를 해 떨어지는 줄 모르고 쏘다니며 뛰놀던 추억이었다.

강물은 시리도록 맑았고 천왕산엔 유독 진달래꽃이 화려했다. 하지만 그런 추억은 아스라한 느낌일 뿐 뚜렷하게 가닥이 잡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누군가가 끈으로 자신을 목 졸라 죽이려 했던 것도 같은데, 그 또한 모호하고 희미해 긴가민가하긴 마찬가지였다.

기이하게도 겪은 지 얼마 안 되는 그런 일들이 마치 수십 년 전의 일이라도 되는 듯 까마득하고 아슴아슴했다. 

제풀에 코끝이 찡해진 용운은 훌쩍훌쩍 소리죽여 울기 시작했다.

“게 누구여?”

용운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두 번째 교각 옆에 웬 거지 하나가 누워서 고개를 빼들고 있었다.

교각에 가려져 머리만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늙은이였다. 용운은 맥없이 대꾸했다.

거지 아이

“저는 엄마를 잃어버렸어요.”

“엄마가 뭐여?”

“엄마요. 엄마가 빵 사온다고 해놓고 가더니 안 와요.”

“너 사는 디는 워딘데?”

“푸른 산이랑 강이 있는 데요.”

“산이랑 강은 어디에나 있지. 그래 그게 어디여?”       

용운은 도리질을 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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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선포’발 윤석열 탄핵 시계

‘비상계엄 선포’발 윤석열 탄핵 시계

[일요시사 정치팀] 강주모 기자 =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6당이 4일, ‘비상계엄령 선포’를 선언했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이날 탄핵안에 포함된 인사는 윤 대통령 외에도 김용현 국방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포함됐으며 내란죄가 적용됐다. 국방부에 따르면, 이번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김 장관의 건의로 이뤄졌다. 이날 국방부 관계자는 ‘김용현 장관이 계엄을 건의한 게 맞느냐’는 질의에 “맞다”고 답변했다.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제출됨에 따라 헌법 및 국회법에 따라 본회의 보고 및 표결 절차를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법상 탄핵소추안은 본회의 보고 후 24시간 이후부터 72시간 이내에 의결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날 오전 민주당은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긴급 의원총회 직후 결의문을 발표하면서 “윤 대통령이 사퇴하지 않을 시 즉시 탄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박성준 원내부대표는 “오늘 자정이 지난 시점에 국회 본회의를 개의해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을 보고할 예정”이라고 의원들에게 공지했다. 박 원내부대표는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의결해야 하니 토요일(7일)까지는 비상 대기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탄핵소추안의 의결 정족수는 재적 의원 300명 중 200명 이상으로, 민주당 및 범야권 의석(192석)만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정가에선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소수 야당들도 윤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고 있는 데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이탈표가 나올 수 있는 만큼 가결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만약 국민의힘서 8명 이상의 이탈표가 발생할 경우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며, 대통령의 직무도 즉시 정지된다. 물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해서 탄핵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론이 나올 때까지 정지되며,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헌재 탄핵은 재판관 9인 중 6인이 찬성할 경우 인용되나 현재 6인 체제인 만큼 즉시 탄핵 심리는 어려울 것이라고 법조계는 보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박근혜정부 당시 ‘국정 농단’이 화두가 되면서 인용됐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헌재의 탄핵 결정이 나오기까지 3개월1일이 소요됐지만, 윤 대통령의 경우는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앞서 지난 3일,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의 예산 폭거는 대한민국 국가재정을 농락했다. 예산까지도 오로지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런 민주당의 입법독재는 예산 탄핵까지도 서슴지 않았다”며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후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의원 전원을 긴급 소집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상정한 후 본회의 표결에 부쳐 190명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면서 선포 6시간 만인 오전 4시30분께 전격 해제됐다. 이날 계엄작전은 미리 계획돼있었다는 듯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졌다. 계엄령 선포와 함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됐으며 11시께 포고령 1호를 발령했다. 포고령엔 국회, 지방의회 등의 정당‧정치 활동은 물론, 파업, 태업, 집회 행위 등을 금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언론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을 것도 명했다. 이날 현장을 찾았다는 시민 등에 따르면, 국회에 투입됐던 경찰 병력은 더불어민주당 당직자 및 시민들의 경내 진입을 막아섰으나 자리를 지키는 정도로 격렬하게 대응하진 않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간혹 큰소리를 내며 국회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시민을 향해선 ‘지금은 출입이 통제된 상태니 자제해달라’고 고지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다만 공수부대, 특전사로 구성됐던 계엄군은 국회 본관 내 진입을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당직자 등에 따르면, 계엄군은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 등의 유리창을 깬 후 본관 안으로 진입했다. 하지만 이들은 국회 및 민주당 당직자들의 거센 저지를 받았다. 이러는 사이 우 의장 직권으로 비상계엄 해제 결의요구안이 본회의서 가결 처리됐고, 계엄군을 막고 있던 이들은 “당신들은 반란군”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국회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통과되자, 윤 대통령도 4시29분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 해제를 선언하면서 긴박했던 12·3 비상계엄 6시간은 막을 내렸다. 의아스러운 부분은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해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내용이었다. 또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이날 계엄군은 경기도 과천시 소재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도 투입됐다. 매체는 제보받았다는 영상을 근거로 “어젯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 본청 뿐 아니라 또다른 주요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까지 장악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오늘 새벽 비상등을 켠 버스서 내린 무장 군인들이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로 진입하는 장면이 담겨있다. 중앙선관위 청사에 투입된 2~30명의 계엄군은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10시20분경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더불어민주당의 예산 폭거는 대한민국 국가재정을 농락했다. 예산까지도 오로지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런 민주당의 입법독재는 예산 탄핵까지도 서슴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자유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고 지적하면서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탄핵과 특검, 야당 대표 방탄으로 국정은 마비 상태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고, 입법 족대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며 “자유민주주의 기반이 돼야 할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저는 북한 공산 세력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또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낼 것이며, 이를 위해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며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의 준동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안전, 그리고 국가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며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계엄 선포로 인해 자유 대한민국 의 헌법 가치를 믿고 따라주신 선량한 국민들게 다소 불편이 있겠지만, 자유 대한민국의 영속성을 위해 부득이한 것이며 대통령으로서 오로지 국민 여러분만 믿고 신념을 바쳐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낼 것”이라고 약속했다. 워딩 어디서도 의료나 전공의라는 단어는 물론 관련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이날 비상계엄 후폭풍의 영향으로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은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한편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탈당 요구, 내각 총사퇴 입장을 청와대에 전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한 대표는 서울 여의도 국회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서 “내각 총사퇴, 국방부 장관 해임, 대통령 탈당을 요청해야 한다”며 “최고위원들도 이 의견에 공감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위기를 통과하지 못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kangjoomo@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