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어 산’ 윤석열 한가위 플랜

가시방석 앉아 밥상만 차려줬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반가운 얼굴과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추석 명절이 다가왔다. 예민하지만, 또 그만큼 흥미로운 정치 이야기도 한두 마디씩 오간다. 그래서인지 용산은 마냥 웃을 수 없다. 추석을 앞두고 연이어 리스크가 터졌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연휴 내내 야당이 추석 밥상을 독차지할지도 모른다.

물가는 오르는데 국정 지지율은 내림세다. 추석 연휴 동안 의료 대란은 예견된 문제였다. 야당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역풍 맞을 위기에 처한 마당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의 묘한 거리감도 신경이 쓰인다. 꺼야 할 급한 불이 한두 개가 아니다.

지지율 추락
30% 뚫렸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20%대인 29.6%를 기록했다. 지난 2022년 8월 첫 번째 주 29.3%를 기록한 이후 약 2년 만에 다시 20%대 지지율이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달 26∼30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이 같은 수치로 집계됐다.

부정 평가는 66.7%, ‘잘 모름’은 3.6%다. 해당 조사는 무선(97%)·유선(3%)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2.7%였다. 신뢰수준은 95%에 표본오차 ±2.0%p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정치권에서는 의료 대란을 비롯한 물가, 당정 갈등 등이 맞물린 결과라고 해석했다. 특히 추석을 앞두고 야당이 의료 공백 문제를 입 모아 지적하면서 크게 영향을 끼쳤다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의료개혁을 다루는 정부의 태도를 겨냥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서 의료개혁과 관련해 “의대 증원이 마무리된 만큼, 개혁의 본질인 ‘지역, 필수 의료 살리기’에 정책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기존의 뜻을 확고히 했다.

의료진과 대통령의 인식 차이에 대한 질문에는 “의료 현장을 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 “비상진료체제가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 등의 말을 했다. 이에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향해 “혼자서만 달나라에 사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3일 국회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 출석해 “중증·난치 환자를 떠나버린 전공의가 제일 먼저 잘못하는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응급실은 중증 환자만 이용할 수 있게 제도화할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정부가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지난 4일 윤 대통령은 심야 응급실을 방문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의료진이 ‘번아웃’되지 않도록 각종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지만 이미 갈등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길어지는 의료 대란, 사면초가 한동훈
영부인 공천 논란까지? 상다리 휘는 야

물가 문제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지난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물가상승률은 작년 동월 대비 2.0%로 집계됐다. 이는 1.9%이던 2021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상승률이다. 정부는 이 점을 강조하며 물가 안정세를 강조했지만 당초 지난달 물가가 높았던 탓에 국민이 체감하긴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난달 정부는 민주당이 발의한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에 대해 거부권을 썼다. ‘현금 살포’ ‘표풀리즘’이란 지적이 나와도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된다는데 싫어할 국민은 없다”며 “추석을 앞두고 (25만원 지원법을)딱 잘라 거절했으니 이에 맞먹을 대응책을 가져와야 한다. 지지율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법안이든 지원금이든 국민이 피부로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윤 대통령은 “기초생활수급자 167만명에게 지급하는 생계급여를 추석 전 조기 지급하라”고 지시하면서 민생경제 분야서 승부수를 띄웠다. 같은 날 민주당은 당론으로 추진하던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법(역화폐법 개정안)을 국회서 의결하면서 마찬가지로 이슈 선점에 나섰다.

이에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추진하던 25만원 지원법과 다를 바가 없다며 “내 세금 살포법”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대표적인 민생 법안을 정쟁 법안으로 활용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고 유감”이라며 맞불을 놨다.

용산을 향한 야당의 공세가 날로 거칠어지고 있다. 이에 맞서 검찰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야권 인사를 겨냥해 수사 속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공격 대상이 됐다. 김 여사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권오수 전 회장 등의 2심 선고기일이 오는 12일 예정된 만큼 이를 덮기 위한 ‘급발진 수사’를 진행한 게 아니냐는 점에서다.

검찰은 오는 9일 신 전 청와대 행정관에 대한 공판기일 전 이뤄지는 증인신문에 “문 전 대통령도 참석하라”고 통보했다. 법적으로 따졌을 때 출석 의무는 없지만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보고 있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진다.

다시 쥔
총자루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는 문 전 대통령과 딸 문다혜씨에 대한 수사를 두고 “추석 명절 밥상에 윤석열, 김건희 대신 다른 이름을 올리기 위한 국면 전환용 기획수사”라고 비판했다. 대통령 부부에 대한 혐의는 덮어주는 검찰이 전직 대통령과 가족에 대해서는 도의를 무시하는 수사를 전개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받는 김혜경 여사도 소환했다. 지난 5일 김 여사가 수원지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는 것을 두고 민주당은 “야당 대표로 모자라 배우자까지 추석 밥상머리에 제물로 올리려는 정치검찰의 막장 행태”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윤정부는 집권 후 추석 밥상마다 이 대표를 올리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며 “검찰은 이번에도 반성은커녕 야당 대표의 배우자마저 검찰 포토라인에 세우겠다고 한다. 야당 대표에 대한 정치 탄압 수사가 검찰의 추석 기념행사냐”고 직격했다.

야당의 사법 리스크가 추석 밥상에 올라오나 싶더니 김건희 여사에 대한 새로운 의혹이 나오면서 순식간에 분위기가 뒤집혔다. 김 여사가 지난 4·10 총선을 앞두고 당시 5선이었던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에게 ‘지역구를 옮겨 출마하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야당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김 여사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추석 밥상에 올리면서 명품가방 수수 의혹부터 공천 개입 논란까지 전 방향으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대통령실은 김 전 의원이 당초 컷오프된 점을 들며 반박했지만 논란이 쉽게 가라앉진 않을 전망이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소문이 무성하던 김 여사의 당무 개입과 선거 개입, 국정 농단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 되기 때문에 경악할 수밖에 없다”며 “‘김건희 특검법’에 이를 포함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엄포를 놨다.

혁신당 김보협 수석대변인도 “당시 총선을 진두지휘했던 한 대표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며 “두 사람 모두 대답하지 않을 경우 김건희씨의 국정 농단 의혹의 진상규명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야당의 발목을 잡나 싶었지만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이 등장하면서 한순간에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 형국이다. 용산이 코너에 몰린 상황서 여당이 난관을 헤치고 새로운 의제로 판을 엎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끝까지
시끌벅적

하지만 ‘N번째 윤-한 갈등’이 불거진 시점서 당에 큰 기대를 하기엔 어렵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여당이 합심해 추석 밥상을 차리고 싶어도 자꾸만 손발이 엇나가니 오히려 민주당만 득을 본다는 설명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국민의힘과 한 대표가 윤 대통령을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한 대표가 제3자 특검법을 입 밖으로 내뱉은 순간 야당에 꽃놀이패를 직접 쥐어준 것과 다름없다. 한 대표가 용산과 언제 또 충돌할까 지켜보는 당 입장에서는 조마조마하다”고 토로했다.

다음 달 재보궐선거가 치러질 부산 금정구서 만에 하나 국민의힘이 패배한다면 한 대표 사퇴 요구로 이어질 것이란 구설이 여의도 정가를 떠돈다.

지난해 강서구청장 선거서 국민의힘이 패배하자 김기현 전 대표가 책임을 지고 사퇴한 것처럼 한 대표 책임론이 불거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아직은 친한(친 한동훈)계 보다 친윤(친 윤석열)계 비중이 큰 만큼 당이 갈라지진 않겠지만 60%가 넘는 당원이 선택한 당 대표를 쫓아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적잖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정 갈등마저도 야당의 반찬으로 내어줬다. 용산이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 이 대표와의 영수회담 카드를 제시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용산은 이 대표와의 영수회담을 반기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국정 브리핑서도 이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에 대해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니라 제가 살아오면서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라며 국회 정상화를 조건으로 제시했다. 사실상 이 대표와의 만남을 거절한 셈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첫 영수회담은 지난 4월29일이었다. 윤정부 출범 이후 720일, 4·10 총선이 끝난 지 18일 만이었다.

당시 총선서 국민의힘이 참패하자 국정 전환용으로 ‘소통하는 정부’를 내세웠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지금처럼 민주당이 온갖 리스크를 꺼내 들고 국정 지지율이 하락하는 시점서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영수회담에 응하지 않겠냐는 설명이 나오는 이유다.

꽉 막힌 국회 탄핵 거부권만 도돌이표
분위기 반전시킬 영수회담 카드 꺼낼까

이 대표는 지난 8·18 전당대회서 재임에 성공한 직후부터 줄곧 대화를 요청해 왔다. 윤 대통령 입장서도 제1야당 대표와의 만남을 무기한으로 미룰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첫 번째 영수회담처럼 ‘안 만나느니만 못하다’는 지적이 나올 경우, 오히려 용산의 실책으로 이어질 우려가 제시된다. 지난 1일 여야 대표 회담이 빈손으로 끝난 만큼 대통령조차 야당 대표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면 민주당이 “불통” “꽉 막힌 소통” 등 공격적인 논평을 쏟아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영수회담이 이뤄져도 꽁꽁 얼어붙은 정국이 풀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지난 5일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가 제22대 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여야정 민생협의체’를 제안했다. 하지만 연설 후반부에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조준하자 야당 측 의석서 반발이 터져 나왔고 민생협의체 논의는 뒷순위로 밀렸다.

야당 의원들 사이서 윤 대통령이 보내온 추석 선물을 거부하는 ‘선물 보이콧’도 일어났다. 민주당 이성윤 의원은 자신의 SNS에 추석 선물 사진과 함께 “용산 대통령로부터 배달이 왔다”며 “받기 싫은데 왜 또다시 스토커처럼 일방적으로 (선물을)보내시나”라고 글을 게시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스토커 수사’나 중단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혁신당 김준형 의원도 “‘선물 보내지 마시라’고 분명히 말했지만 외교도, 장관 임명도 마음대로”라며 “(국회)개원식 불참까지 제멋대로 하더니 안 받겠다는 선물을 기어이 보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은 “당장 눈앞에 택배기사님 고충을 생각하시는 것부터 시작하시라. 참고로 대통령실 명절선물은 지역주민들의 피땀으로 만든 특산품”이라고 말하는 등 국회 곳곳서 잡음이 일기도 했다.

한 차례 고비를 넘겨도 용산의 앞날이 순탄치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당장 눈앞에 놓인 국정감사와 예산 심사가 끝나면 수능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4대 개혁(연금·의료·교육·노동) 중 교육개혁이 다시 한번 주목받는 때이기도 하다.

이제 곧
수능이…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석에 의료개혁이 문제가 됐다면 그다음으로는 교육개혁이 화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교육개혁이든 의료개혁이든 취지는 좋은데 문제는 이 개혁안을 벌여놓고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니 사방서 문제가 동시에 터지는 것”이라며 “의대 증원으로 인해 올해 수능은 ‘초긴장 모드’다. 지난해 ‘킬러 문항’으로 사교육계가 크게 반발한 만큼 정부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의협 당직 병원 반발 “추석에 아프면 대통령실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정부의 추석 연휴 당직병원 운영 방침에 크게 반발했다.

앞서 정부가 추석 연휴 기간에 약 4000곳을 대상으로 당직 병·의원을 운영할 계획을 밝히자 “민간 의료기관에 부당한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고 반박한 것이다.

아울러 의협은 의사 회원을 대상으로 “대통령은 비상진료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며 “추석 연휴 응급진료 이용은 정부 기관이나 대통령실로 연락하시기 바란다”는 공지를 전송했다.

공지 말미에는 ‘02-800-7070’라는 연락처를 덧붙였다.

이는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이 제기되던 당시 논란이 됐던 대통령실 번호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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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의장 오른팔’ 홍경의, 지금 조총련을 말하다

[단독 인터뷰] ‘의장 오른팔’ 홍경의, 지금 조총련을 말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성민 기자 = 일본에는 약 수십만명의 재일동포들이 살고 있다. 이들 중 약 2만명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나 계열 단체에 몸담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중 ‘조선적’으로 분류돼 무국적자인 이들도 있다. 일본서 이들은 ‘눈엣가시’다. 어딜 가나 차별과 혐오로 둘러싸일 수밖에 없다. <일요시사>는 일본 현지서 조총련 간부 출신과 복수의 재일동포들을 만나 조총련의 상황을 들어봤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조총련)는 일본서 북한 정부를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결성된 지 65년이 넘었으나 구성원이 2만5000여명 이하로 줄면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북한 경제가 어려워진 데 이어 조총련에 등을 돌리기 시작한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구성원들이 감내해야 하는 대북제재 압박 수위가 날이 갈수록 세지고 있다는 것이다. 퇴색된 위상 결집력 약화 홍경의 Free 2 Move(이하 F2M) 공동대표는 조총련 간부 출신이다. 과거 조총련 실세인 허종만 의장을 법적으로 보좌하며 10년 가까이 ‘브레인’ 역할을 담당했다. 북한을 수십차례 방문해 인권탄압 등을 지켜보기도 했다. 2000년 초, 홍 대표는 조총련 내부서 민주화 활동을 벌였다는 이유로 제명당해 인권단체인 F2M을 설립했다. 지난 15일 일본 오사카 현지서 <일요시사>와 만난 홍 대표는 조총련의 위상이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실제 지난 2018년 12월 기준 무국적자로 분류되는 ‘조선적’은 2만9559명이었으나 현재는 약 2만2000명 정도라고 한다. 지난 1965년 한·일 국교 수립 이후 일본에 거주하는 교포들의 생활 환경은 분열됐다. 먼저, 일본 당국은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있는 이들을 1947년 미군정 당시 편의상 만든 임시 국적인 조선적으로 분류했다. 현재 재일교포 중 대한민국 국적자는 41만여명이다. 조선적에 속한 이들은 해방 이후 분단된 조국 어느 한 편에 속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의 무관심 속에 북한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조총련과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현재 조총련 산하 학교로 알려진 조선학교는 해방 직후 조선말을 가르쳐야 한다는 1세대 재일동포들의 열망으로 시작됐다. 조선학교는 유엔군 최고사령부(GHQ) 군정과 일본 정부에 의해 한때 폐쇄됐다가 1950년대 중반 이후 재개됐다. 북한은 지난 1957년부터 교육지원에 나섰으나 한국 정부는 지원 요청을 거절했다. 조선학교는 조선적 인구 감소와 함께 줄어들어 2018년 기준 64개교, 7000여명의 학생이 남았다. 조선학교는 일본 전역에 유치원·초급·중급·고급학교가 있고, 대학은 도쿄에 조선대학교가 있다. 조총련 법적브레인 역할…20번 넘게 북한 출입 대북송금·마약 유통 행위 인권탄압 직접 확인 일본 내에는 3대 세습을 강행하는 김씨 일가의 독재정권을 지지하는 조선적 재일동포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남북 간 사상 대립이 과거보다 유연해지고 일본 귀화 혹은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조선적 규모도 적어지는 추세다. 홍 대표는 “재일동포 새세대들이 과거처럼 국적이나 민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재일동포 사회도 4세나 5세들이 다수를 차지하면서 일본인과 국제결혼 등을 통해 일본으로 귀화를 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조총련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해마다 수억달러의 자금을 북한에 송금했다. 한덕수 전 의장은 국회에 해당되는 최고인민회의 의원의 고위급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조총련계 기업들의 몰락, 일본 정부의 대북 제재와 감시, 탄압 강화 등으로 쇠락하기 시작했다. 북한 당국이 예전처럼 조총련을 대우하지 않는 이유다. 실제로 허 의장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면담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총련은 조직 운영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규모 채무로 인해 법적 권리를 내세울 수 없어 많은 본부 건물이 경매로 매각돼 협소한 장소로 이전되기도 했다. 특히 일본 정부가 북한과의 갈등을 겪으면서 조선학교를 고교 무상화 대상서 제외해 학교도 감소 추세에 접어들었다. 조총련 본부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도쿄에 위치한 본부서 근무하는 사람은 수십명이지만, 급여가 지급되지 않아 부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 정부는 경제적 위기에 봉착했을 때 조총련을 통해 불시에 필요한 자금을 ‘애국운동’으로 해결했다. 외화벌이 마이너스 예시로 대형 여객선 ‘만경봉 92호’와 ‘삼지연호’ 등이 있다. 일본 사행산업의 대표 격인 파친코도 조총련의 주요 사업 중 하나다. 홍 대표는 “1990년대부터 파친코를 통해 재정적 기반을 구축해 왔다. 조총련이 직접 운영한 파친코도 있으나 코로나 사태 이후 완전히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는 사실상 폐교된 조선학교 부지나 학교 자체를 일본 기업에 매각한다. 부동산 사업의 일환으로 활동자금을 마련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며 “대부분 조선학교가 인적이 드문 곳이 아닌 도심에 있다. 일본 기업들이 기를 쓰고 매수하려고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 조총련이 지난해 도쿄 중심지에 있는 조선학교를 이용해 700억원대 부동산 사업을 벌였다. 일본 당국이 행정적 지도권을 갖고 있어 조총련이 수백억원대 이익을 볼 수는 없지만 조총련 산하 부동산 회사 소속 관계자들이 수수료를 떼먹고 산다”고 주장했다. 홍 대표는 “일본 버블경제 당시 허 의장이 조총련 산하 금융기관인 조선은행을 통해 융자 받고 대북송금을 진행했다. 이때의 채권이 한국 원화로 따지면 5000억원에 육박하는 금액이었다. 일본의 경제 몰락 이후 조선은행도 빚을 졌다. 조총련 본부 건물 대부분은 융자의 저당으로 잡혀 있어 경매 등으로 소유권을 잃었다”며 “조총련 상근 직원들의 명의를 악용해 조선은행서 융자를 받아낸 경우도 존재한다”고 했다. 북한은 그간 내부서 생산한 금을 비롯한 희금속과 마약을 공개·비공개 경로를 통해 일본으로 반출한 후 외화로 전환해 반입했다. 희금속은, 함경남도 허천군에 위치한 상농광산이 대표적이다. 해마다 조총련에 보내는 교육원조비 명목 자금을 대기 위해 이 광산이 활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을 비롯한 국제시장서 아주 인기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금은 조총련으로 먼저 유입돼 일부가 교육비로 활용되고, 대부분은 김 위원장 비자금 조성을 위해 다시 현금으로 반환된다. 보위부서 마약 지령 북한은 조총련 계열 동포들을 통해 일본에 대량의 마약을 유통하는 방법으로 자금을 확보하기도 했다. 북한의 만경봉호, 삼지연호, 청천강호 등 중앙당 6부(이하 작전부)가 운영하는 선박이 맡아 수행했지만, 대북 제재 이후에는 일부 민간 상선과 물고기 가공 및 운반선(1000t급 정도)을 통해 반입시켰다. 실제 지난 2000년대 중반 정찰국 소속 30대 남성이 마약 운반 지령을 받고 일본 조총련 계열 동포들에 전달한 후 약 3일간 체류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북한 운반선의 기관실 엔진 아래 철통에 마약을 가착(용접)하고 도쿄 항구에 입항해 해양경찰 조사를 피했다. 이후 보트를 타고 접근한 조총련 관계자를 만나 마약을 전달하고 사례금 3000달러를 받았다고 폭로한 바 있다. 홍 대표는 “사례를 하나 들자면 90년 중반에 재일교포 5명 정도가 마약 유통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다. 당시 일본 수사당국이 발견한 마약은 수십kg이었다. 체포됐던 한 관계자는 북한 보위부의 지시였다고 진술했다”며 “1990년대 무역사업을 하던 조총련 관계자들이 야쿠자를 끼고 마약을 팔아왔으나, 예나 지금이나 북한 정부 차원서 조총련에 조직적으로 마약을 유통하라고 직접 지시하지는 않는다. 북한의 활동 거점을 잃을 수 있는 그런 무모한 범죄행위는 시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홍 대표는 “이런 북한과 조총련의 긴밀한 관계 때문에 내각정보조사실을 포함해 여러 일본 정보기관이 조총련 관계자들을 매수하고 포섭하려 안간힘을 쓴다”며 “일본 정보기관에 포섭된 것으로 의심받는 이들은 북한 보위부의 성격을 지닌 조총련 감사위원회 소속 직원들에게 미행과 감시를 당한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북한 정부가 조총련을 과거처럼 대우하진 않지만, 관계를 포기하진 못한다고 단언했다. 일본과 북한 간 수교를 맺지 않은 상황서 관계까지 끊어버리면 외교·안보적 측면서 큰 손해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일본 정부는 조총련을 통해 북한과 물밑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허 의장이 창구 역을 담당한다. 최근 조선대학교 학생 140명이 북한을 방문한 것도 무관치 않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파친코 망하면서 자금난 “가족 못 본다” 북송 동포들 인질로 협박 그는 “재정위원장도 방문했다. 조총련 간부 활동자금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대북송금 등 경제 지원책에 대해 지시 받을 가능성이 있고 조총련이 얼마나 많은 외화를 확보했는지 윗선에 보고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방북 학생들이 1인당 500만엔이라는 큰돈을 들고 갔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 정도로 부유하지 않다. 학생 전부가 가족들을 만났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평가했다. 복수의 취재원들은 조선대 학생 일부만 가족을 만날 수 있게 허용됐고 친척의 자택을 방문하는 건 금지됐다고 전했다. 특히 일반 호텔이나 여관서의 생활도 금지됐다고 한다. 이동할 때는 조선대 관계자를 제외한 이들은 동행할 수 없다. 섣불리 이동하지 못할 정도로 경계를 철저히 해 외부와의 소통을 원천 차단한 셈이다. 홍 대표는 조선대 학생들이 방북했다고 해서 김 위원장에게 무조건적 충성을 각오했을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보고 있다. 홍 대표는 “조선학교와 조선대 학생의 절반 이상이 대한민국 국적자다. 무국적자인 이들도 일본 영주권을 갖고 있다. 단지 말과 역사를 배우기 위해서 조선학교를 다닌다. 물론 학내서 주체사상과 김정은 일가 찬양으로 가득한 교육이 진행되고 있으나 일상생활을 하면서 민주주의가 몸에 익는다. 현재 재일교포 10대와 20대는 정체성 혼란을 겪는 세대”라고 말했다. 한편, 조총련 내부에서는 북한 정부가 코로나 이후 일부 재일동포의 방북을 허용한 것을 두고 불만이 커지고 있다. 조총련 출신의 한 탈북민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북한 정부는 애초 재일동포를 지원할 생각이 없다. 그들이 가진 자원과 돈에만 관심이 있다”며 “아이들을 조선대학에 보내지 않겠다고 밝히는 부모들도 상당히 많다”고 했다. 포기는 못해 정체성 혼란 해당 관계자는 “북한 정부가 조총련을 포기하지 못하는 상황서 지원이라도 제대로 이뤄져야 하는데 그저 자금줄과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기 때문에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라며 “일본이나 한국 국적을 취득하려는 학생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