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 군사기밀 유출 미스터리

군무원 혼자? 윗선 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일어났다. 중요한 군사정보가 다른 곳으로 넘어가면서 국가안보에 구멍이 생겼다. 정부 부처를 비롯해 정보기관까지 싹 다 뒤집혔다. 누구의 소행인가? 목적은 무엇인가?

군사기밀이 유출됐다. 음지서 일하던 이들의 정보가 누구인지 모를 사람 손에 넘어갔다. 당장 이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게 됐다. 유출된 정보의 범위와 규모, 유출 시점, 유출한 인물 등이 의문으로 떠올랐다. 

누구에게…
어떻게 왜?

지난달 30일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 소속 군무원 A씨가 구속됐다. A씨는 군사기밀누설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국방부 중앙군사법원은 지난달 29일 군검찰이 청구한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정보사 해외 공작 담당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A씨는 대북 정보수집을 맡는 정보사 요원들의 개인정보 등 수천건의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국군방첩사령부(이하 방첩사)는 지난달 A씨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하고 압수수색 등을 통한 강제수사를 진행해 왔다. 

군 당국에 따르면 A씨는 개인 노트북에 저장돼있던 대북요원 현황을 중국인에게 파일 형태로 전송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파일에는 각국 대사관의 외교관 등 합법적 신분으로 상대국 정보를 수집하는 ‘화이트요원’과 사업가 등으로 위장해 활동하는 ‘블랙요원’의 신상정보가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개인 노트북 해킹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군사기밀을 개인 노트북으로 옮긴 행위 자체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인 점으로 봤을 때 고의성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공범이나 조력자 여부, 정보거래 가능성 등도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유출된 2, 3급에 해당하는 기밀이 중국인을 통해 북한으로 향한 정황도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국인은 북한 정찰총국 첩보원일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우리나라 대북 첩보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실제 일부 블랙요원은 신분 노출 우려에 따라 현지 활동을 급히 마무리하고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분이 노출된 요원은 재파견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보망 손실을 피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블랙요원 신상정보 등 수천 건
중국인 통해 북한으로 간 정황

정보사는 “사건 인지 시점은 6월께로 유관 정보기관으로부터 통보받아 알았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국회 비공개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서 나온 발언이다. 정보위 국민의힘 간사인 이성권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간사인 박선원 의원이 한 브리핑에 따르면, 정보사는 이번 기밀 유출이 해킹에 의한 게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사 군무원의 군사기밀 유출 의혹은 정쟁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을 누가, 왜 막았느냐”고 비판했다. 이는 민주당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됐다. 

한 대표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SNS에 “중국 국적 동포 등이 대한민국 정보요원 기밀 파일을 유출했다”며 “황당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간첩죄로 처벌 못한다. 우리나라 간첩법은 적국인 북한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현행법은 국가기밀 정보를 ‘적국’에 넘길 때에만 간첩죄를 적용한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면서 “저걸(기밀유출 사건) 간첩죄로, 중죄로 처벌해야 맞나, 안 해야 맞나”라며 “이런 일이 중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 다른 나라서 벌어졌다면 당연히 간첩죄나 그 이상의 죄로 중형에 처한다”고 지적했다. 21대 국회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안이 4건 발의됐지만 무산된 점도 언급했다. 

한 대표는 “당시 4건 중 3건을 민주당이 냈다. 그런데 정작 법안 심의 과정서 민주당이 제동을 걸어 무산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22대 국회 개원 이후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형법 개정안도 소개했다. 해당 개정안은 해외 국가‧개인‧단체의 간첩행위에 대해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휴민트 박살
가능성 제기

그는 “격변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외국과 적국은 가변적이고 상대적인 구분일 뿐”이라며 “이번에 꼭 간첩법을 개정해서 우리 국민과 국익을 지키는 최소한의 법적 안전망을 만들자”고 촉구했다. 

한 대표의 발언에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반발했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이 법안(간첩법 개정안)이 추진되지 않은 것을 ‘민주당 탓’으로 돌리고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회의록을 한 번이라도 읽어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고 적었다. 

박 의원이 언급한 회의록은 21대 국회였던 지난해 9월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 내용이다.

박 의원은 “한 분께서는 새로 외국을 위한 간첩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을 뒀을 때 특별법 규정은 어떻게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하셨고 다른 분도 국가기밀의 범위에 대한 우려를 말씀하신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소위서 ‘적국’을 ‘외국’으로 넓힐 경우 일명 ‘산업스파이’ 같은 사례도 간첩죄로 처벌한 것인가 등의 논의가 이어졌고 결론 내지 못하고 계속 심의하게 된 것”이라며 “이것을 ‘민주당이 제동을 걸어 무산됐다’고 하기엔 자당 의원님들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니냐. 이런 식의 가짜뉴스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강유정 원내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당시 개정안을 완강하게 반대한 건 법원행정처였다. 개정안을 심사한 속기록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라며 “국민의힘 소속 소위 위원들도 입법적인 검토가 필요하니 다음에 다시 논의하자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간첩법 논란
입장 엇갈려

이어 “형법 개정안을 발의한 우리당 의원들은 개정안 심사와 통과를 위해 수년 동안 거듭 노력해 왔다. 19대, 20대, 21대 국회 매 임기마다 발의해 왔다”며 “미비한 법률 개정을 위해 법무부에 도움을 구했을 때 한동훈 (당시)법무부 장관은 그때 매듭을 지었어야 한다. 장관일 때 놓치더니 왜 애먼 책임을 이제 와서 민주당에게 떠넘기냐”고 되물었다. 


민주당의 반발에 한 대표는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은 지난 21대 국회 법사위 제1소위서 3차례나 논의됐지만 처리되지 못했다”며 “민주당 의원들은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신중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며 법안 처리를 막았다”고 거듭 주장했다.

민주당 김민석 의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시절 법원행정처가 강력하게 반대해서 여야 의원들이 공히 법 보완을 주문했던 정황이 국회 속기록에 다 나와 있다”며 “책임이 있다면 본인이 더 크고 그리 통과시키고 싶었다면 본인이 장관 시절 노력했어야 할 일”이라고 공격했다. 

한 대표는 지난 1일에도 “이 사건을 단순한 기밀보호법으로 처벌하기에는 대단한 중죄”라며 “이 정도로 간첩이 되지 않는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주는 것으로는 우리 안보를 지킬 수 없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이날 열린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서 “문재인정부는 국군 기무사령부를 안보지원사로 바꾸면서 요원의 30%를 감축했다”며 “민주당은 2020년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기능을 폐지하는 법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국정원의 방첩 역량을 무너뜨렸다”고 문정부를 겨냥했다. 

한 대표의 주장에 민주당이 반발하고 또다시 한 대표가 재반박하면 민주당이 입장을 내는 양상이 계속되면서 정작 사건의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20~30년 동안 구축한 휴민트(인적 네트워크)가 붕괴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 책임 공방만 벌이는 정치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해킹 주장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책임 공방 중


특히 앞서 ‘수미 테리 사건’으로 이미 한 차례 정보 구멍이 드러난 시점에 또다시 군무원의 군사기밀 유출 의혹이 일어난 점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달 30일 정보위서 간사인 국민의힘 이성권 의원은 “수미 테리 사건에 이어 해외 정보수집 부문서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보 역량을 복구해야 한다.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보위가 경고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난달 16일 미 연방 검찰은 중앙정보국(CIA) 출신 대북 전문가인 수미 테리를 기소했다. <뉴욕타임스>는 뉴욕 연방 검찰의 소장을 인용해 한국계인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고가의 저녁 식사와 명품 핸드백 등을 대가로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수미 테리는 2013년부터 10여년간 주미 한국대사관 소속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파견관과 만나 비공개 정보 등을 제공했다. 뉴욕 연방 검찰은 그 대가로 수미 테리가 루이비통 핸드백, 3000달러 상당의 돌체앤가바나 코트, 3만7000달러 상당의 금전 등을 수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미 테리가 한국 정부의 입장을 사실상 대변하는 언론 기고나 발표, 접근이 쉽지 않은 인사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한 행위를 지적했다.

미 정부 관료와의 비공개 모임 등에서 획득한 정보를 한국 정부에 넘긴 부분도 기재했다. 또 뉴욕 연방 검찰은 수미 테리가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에 등록하지 않은 채 사실상 한국의 요원으로 활동했다고 규정했다. 

미국은 외국대리인등록법에 따라 외국 정부나 정당, 회사 등의 정책 및 이익을 대변하거나 홍보하는 사람은 법무부에 신고해 활동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수미 테리는 2016~2022년 사이 최소 세 차례 의회 증언을 위해 선서하는 자리서 자신은 신고 대상이 아니라고 답했다. 

정보 구멍
국정원도?

이 문제에 대해 국정원은 “한미 동맹의 훼손은 일절 없다”고 강조했다. 정보 협력에도 큰 문제가 없고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 현안 보고서 “안보 협력에 문제가 있다면 협력이 축소·파기될 수 있는데 전혀 그런 점이 없다”며 “이 건을 양국 안보 협력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문제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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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