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5개월 전부터…’ 예견된 큐텐 사태 내막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8.06 08:39:53
  • 호수 1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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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부터 밀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큐텐과 입점 계약을 체결한 판매자들이 받지 못한 지난 5월 대금만 총 23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확인 결과, 큐텐 플랫폼을 활용해 컴퓨터 등 전자기기를 판매해 온 한 업체가 받지 못한 금액이 약 40억원 이상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는 지난 2월부터 7월까지 판매 대금을 받지 못했다. 

홍콩과 미국에 법인을 둔 전자기기 판매업체인 A사의 대표 박모씨는 큐텐을 상대로 미지급 정산금 및 지연이자 청구 소송에 나섰다. 큐텐이 A사와 정한 이용약관에 따르면, ‘물건을 판매하고, 배송이 완료된 다음 달 15일이 포함된 주의 금요일에 판매자(A사)의 통장에 지급된다’고 명시돼있다. 큐텐은 이를 스스로 어긴 채 지난 2월부터 7월까지 한 푼도 정산하지 않았다. 

무리한 확장

앞서 중국에 이어 싱가포르와 미국 등 해외 곳곳서 큐텐발 미정산 피해를 입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A사가 대표적인 피해 사례라고 볼 수 있다. A사의 2개 홍콩 법인의 미정산금은 한화로 26억4126만원과 7714만원이며, 1개 미국 법인은 13억6742만원을 받지 못했다.

문제는 A사가 큐텐에게 정산금을 지급하라고 요청한 시기가 지난 2월부터라는 것이다.

큐텐은 지난 2월 1억7300만달러(약 2300억원)에 북미·유럽 기반의 온라인 쇼핑 플랫폼 위시를 인수했다. 당시 큐텐이 티몬서 자금을 빌린 건 위시 인수 대금 납부 기한을 앞두고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A사의 판매 대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세를 확장하는 데 썼다는 의혹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현재 A사 측의 이성은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A사가 고객들에게 물품을 판매하고 배송까지 완료해 큐텐에 정산금액을 요청했지만, 지난 2월2일부터 7월11일까지 정산금이 지급된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며 “기한 내에 정산금이 지급되지 않을 경우, 손해배상청구소송 및 정산금 보전을 위한 큐텐 계좌 가압류 등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뢰인은 큐텐과 계약을 해지하기라도 하면 미정산금을 돌려받지 못하기 때문에 수개월간 물건을 납품하면서 버텼다”며 “의뢰인을 비롯한 해외사업자들은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일하다 말고 한국에 들어와 소송에 나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큐텐은 판매자에게 정산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상황서 행사를 진행하지 않거나, ‘기존 주문건 발송을 하지 않으면 정산을 해주지 않겠다’는 식으로 판매자 측에 패널티를 부여하려 했다”고 부연했다.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를 빚은 티몬과 위메프(티메프)의 모기업인 큐텐이 내부 절차나 규정을 무시하고 자금을 빼 쓴 정황은 명확해졌다. 큐텐그룹 내부 문서에 따르면, 큐텐은 지난 4월11일 위시 인수 자금 명목으로 티몬에서 200억원을 빌렸다. 이자는 4.6%, 만기는 1년이다.

이를 위한 내부 승인 절차는 비정상적이었다. 대여금 집행 문서의 기안일은 지난 4월11일이었으나 류광진 티몬 대표의 최종 승인이 난 것은 나흘 뒤인 15일로 확인됐다. 이미 티몬서 자금이 빠져나간 뒤 사후 결제가 이뤄진 셈이다.

홍콩·미국 업체 수십억 소송
올 들어 한 푼도 정산하지 않아

올 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큐텐은 또 지난 1월11일 금리 4.6%로 1년 만기 자금 50억원을 티몬서 빌렸다. 이 당시에도 대표의 승인은 자금 대여가 집행된 날로부터 19일이나 지난 1월30일에 이뤄졌다.


큐텐은 2022∼2023년 티몬과 위메프를 차례로 인수한 뒤 재무와 기술개발 조직을 해체하고 해당 기능을 큐텐테크놀로지에 넘겼다. 이 회사는 사실상 큐텐 한국 자회사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인 흐름을 보면, 큐텐 측이 이런 자금 이동을 사전에 류 대표와 상의하지 않았거나 류 대표가 대여금 집행 시점에 이를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짙다. 

티몬과 위메프 안팎에서는 대표의 최종 결제 없이 큐텐으로 자금이 넘어간 사례가 있으며 두 회사 대표조차 정확한 이전 자금 규모를 알지 못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티몬과 위메프서 큐텐으로 빠져나간 자금 중에는 A사를 포함한 판매자들에게 정산해야 할 결제 대금이 섞였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구영배 큐텐 대표는 지난달 30일, 국회 정무위 긴급 현안 질의서 “티몬과 위메프 자금 400억원을 위시 인수 대금으로 썼으며 이 중에는 판매 대금도 포함돼있다”고 인정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 수사에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임의대로 자회사 자금을 빼 쓴 사실이 확인될 경우 횡령·배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를 중심으로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본격 수사에 들어간 상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국회 정무위원회의 긴급 현안 질의에 출석해 “큐텐 자금 추적 과정서 강한 불법 흔적이 드러나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주요 대상자 출국금지 등을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원장은 지난달 30일 정무위서 ‘구영배 큐텐 대표는 자금이 없다고 하는데 금감원은 자금 추적을 하고 있느냐’는 윤한홍 정무위원장의 질의에 “수사 의뢰 과정서 주요 대상자들에 대한 출국금지 등 강력한 조치를 요청해 놓은 상태”라고 답했다.

이 원장은 “(자금흐름을)지금 확인 중”이라며 “가급적 선의를 신뢰해야 하겠지만 최근 금융당국과의 관계서 보여준(큐텐 측의) 행동이나 언행을 볼 때 상당히 양치기 소년 같은 행태들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윤 위원장이 “최대 1조원 가까운 판매 대금이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데(큐텐은) 자금이 없다고 하니 해외를 포함해 금감원서 자금을 추적하는 게 가장 급한 것 같다”고 강조하자 이 원장은 “20명 가까운 인력을 동원해 검찰에도 이미 수사인력을 파견해 놨다. 공정거래위원회와도 같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미정산금 받으려 ‘울며 겨자 먹기’
‘헉’ 부랴부랴 귀국한 해외 사업자 

한편, 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태는 구 대표의 지나친 사세 확장이 불러일으킨 결과라는 분석이다. 2009년 G마켓을 이베이에 매각한 구 대표는 이듬해부터 글로벌 이커머스를 꿈꾸며 해외로 눈을 돌렸다. 2012년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큐텐을 설립하고 지난 14년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국, 홍콩 등에 진출하며 몸집을 불려 왔다.

구 대표는 아마존과 알리바바에 견줄 수 있는 글로벌 디지털커머스 플랫폼 구축을 비전으로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왔다. 지난 2월 북미와 유럽을 커버하기 위해 미국 쇼핑 플랫폼 위시를 2300억원에 인수하는 등 무리하게 확장하면서 밑천이 드러났다.

위메프의 판매자 정산기일이었던 지난달 7일 정산금 지급이 일부 지연되면서 곪아 있던 문제가 터져 나왔다. 불안감에 휩싸인 판매자들이 위메프에서 빠져나가면서 자금 사정은 더 악화했고, 이는 티몬으로도 옮겨붙었다.


티몬과 위메프서 돈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한 여행사들이 상품 판매를 중단하면서 결제를 마친 기존 고객들의 환불 요구도 이어졌다. 성난 피해자들은 강남에 있는 티몬·위메프 사무실로 몰려갔지만, 먼저 온 일부 피해자들만 현장 환불을 받았다.

구 대표는 전날 오전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함께 사재 800억원을 털어서라도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오후 들어 티몬·위메프는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소상공인들은 지난달 31일 “티몬·위메프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는 구 대표가 판매 대금 지급을 위해 약속한 사재 출연을 즉시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티몬과 위메프의 지난 5월 미정산금액만 이날 기준 2264억원에 달하는 만큼 피해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티몬·위메프 피해 입점 업체 대표는 “일부러 회생을 유도하려는 것 같다. 800억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말을 하는 게 어디다가 재산을 감췄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구 대표는 70억원 상당 서울 반포동 아파트와 통장에 든 10~20억원이 전부라고 언급했다. 큐텐 지분도 38% 보유하고 있지만, 그룹 전체가 경영난을 겪고 있어 지분가치는 담보로 인정받기가 어렵다.

티몬 측은 이날 오후 판매자들에게 정부지원자금과 계열사 위시를 통해 자금 500억원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알렸다. 밀린 대금이 1억원 이하인 판매자들에게 우선 정산하고, 추가 자금을 확보하면 1억이 넘는 판매자들에게 순차 정산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국제 망신

하지만 법원의 자산 동결 결정으로 원칙적으로는 채무 변제가 불가능해 판매자들을 상대로 또 희망고문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터파크커머스와 AK몰은 최근 판매자들에게 정산 지연 사실을 공지했다. 인터파크도서도 최근 티몬, 위메프의 미정산 영향으로 서비스를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는 공지를 올렸다.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 여파가 큐텐의 다른 계열사들로 번지면서, 판매자들의 불안이 확산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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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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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