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리판’ 검찰총장 패싱 내막

검찰도 끝났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이원석 검찰총장이 두 번째 총장 패싱을 당했다. 지난 5월 인사에 이어 김건희 소환조사 사후 보고로 2개월여 만이다. 일각에선 도이치모터스 사건의 수사지휘권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용산에서 주도했다는 의견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의 아내인 김건희 여사가 검찰 고발 4년 만에 조사받았지만 오히려 내분이 일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조사가 시작된 지 약 10시간 만에 보고받는 일명 ‘총장패싱’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김건희 조사
전혀 몰랐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최재훈)와 형사1부(부장검사 김승호)는 지난 20일, 김 여사를 서울 종로구 창성동의 대통령실 경호처 부속청사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재임 중인 대통령 부인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 것이다.

이날 오후 1시30분부터 도이치모터스 사건 조사를 먼저 진행한 뒤 김 여사 측을 설득해 오후 8시30분쯤부터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김 여사 측은 대면조사 일정을 조율하면서 도이치모터스 사건에 한해서 제3의 장소에서 조사를 받겠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대검찰청은 조사 시점 등에 대해 사전에 보고를 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게다가 조사 시작 이후 10시간 만에 대검찰청에 보고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의 갈등이 시작됐다. 검찰의 실질적인 넘버 1, 2라고 할 수 있는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이 정면 충돌했다. 상명하복을 중시했던 검찰 조직에서 검찰총장과 일선 검사장이 사건을 두고 공개적으로 충돌한 것이다.

이창수 서울지검장은 지난 20일 밤, 김 여사 조사 사실을 보고할 때 이 총장이 “나를 무시했다”며 격노하자 이 총장 집을 찾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 총장이 응답하지 않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튿날 아침에도 “댁에 찾아뵙고 설명하겠다”고 했으나 이 총장은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고 한다.

이 총장은 지난 22일 출근길에서 한비자의 법불아귀(법은 귀한 자에게 아첨하지 않는다)를 언급하며 “우리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고 말씀드렸으나 대통령 부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수사팀을 직격하기도 했다.

이 지검장은 같은 날 오전 이 총장을 찾아 대검찰청에 사전 보고 없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명품 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해 김 여사를 조사한 경위를 설명하면서 “심려를 끼쳐드려 정말 죄송하다”고 여러 차례 사과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 시작 10시간 만에 보고 
총장 VS 서울지검장 정면충돌

이 지검장의 사과로 검찰 내부의 갈등은 봉합 수순으로 접어드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 총장이 진상 파악을 지시하고 같은 날 오후 명품가방 수사를 담당하던 김경목 부부장 검사가 사표를 제출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김 부부장 검사는 사표를 제출하며 동료들에게 “회의를 느낀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그는 “지지부진했던 사건을 맡아 열심히 수사한 것밖에 없는데, 진상조사의 대상이 되다니 화가 난다”면서 “조사 장소가 중요하냐.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든 조사를 마쳤는데 너무한다”는 말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지난 23일 이 지검장도 “수사가 진행 중이므로 곧바로 진상 파악에 들어갈 경우 수사팀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며 “1·4차장과 형사1부장·반부패2부장, 그리고 수사팀을 제외하고 나 홀로(조사에) 임하겠다”며 대검 방침에 반발했다.

대검 감찰부는 이 지검장은 물론 김 여사 사건을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1·4차장검사에 대한 면담도 시도했지만 불발되기도 했다.

감찰부의 면담 시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검찰 내부는 더 동요했다. 특히 형사1부에 파견돼 명품백 수수 사건을 수사했던 김 부부장검사에 이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반부패2부 검사들도 추가로 사의를 표명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 총장이 지난 22일 기자들을 만나 인용한 법불아귀를 겨냥해 “검사들을 아귀로 만들었다”는 반발도 나왔다고 한다.

동요가 확산되자 대검은 지난 24일 적극 진화에 나섰다.

대검 관계자는 “이 지검장의 요청을 일부 수용해 수사에 지장이 없도록 차분하게 진상 파악을 진행한다는 방침을 내부적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장도 대검 참모들에게 “감찰도, 진상조사도 아닌 진상 파악”이라며 “수사팀 개개인의 책임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귀띔도 
없었다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의 갈등은 닷새 만에 진화됐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이 총장이 지난 25일 열린 주례 정기보고에서 이 지검장에게 “현안 사건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할 것”을 지시하자 이 지검장은 이에 “대검과 긴밀히 소통해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답했다.

총장 패싱의 배경에는 지난 2020년 10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발동한 수사지휘권이 꼽힌다. 

당시 추 전 장관이 발동한 수사지휘권은 ‘라임자산운용 사건 관련 여야 정치인 및 검사들의 비위 사건을 포함한 총장 본인, 가족, 측근과 관련된 아래 사건에 대해 공정하고 독립적인 수사를 보장하기 위해 검찰총장은 서울남부지검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대검찰청 등 상급자의 지휘 감독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사한 후 그 결과만을 검찰총장에게 보고하도록 조치할 것을 지휘함’이라고 명시돼있다.

추 전 장관이 윤 총장에게서 도이치모터스 등 사건의 지휘·감독을 배제한 근거는 이 사건에 김 여사가 연루됐기 때문이다. 그 뒤로 법무부 장관은 박범계·한동훈·박성재로 바뀌었고 검찰총장은 김오수·이원석으로 바뀌었지만 추 전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4년 동안 유효한 상태인 것이 문제가 됐다.


이 지검장은 “도이치 사건은 총장의 지휘권이 배제된 사건이므로, 조사 형식에 대한 최종 결정 권한도 총장 지휘권 밖에 있다”고 판단해 김 여사 소환을 사후에 보고했다.

반면 이 총장은 추 전 장관의 2020년 지휘권 발동으로 도이치모터스 사건에 대한 총장 수사지휘권이 사라졌어도 조사 방식은 총장과 상의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총장은 검찰청법상 여전히 검찰사무 총괄 및 지휘 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용산서…
‘식물’ 취급?

이런 상황에 이 총장은 최근 들어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수사지휘권 회복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장관은 수사지휘권은 극도로 제한해 행사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이 총장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같은 정황이 공개되면서 사후보고가 예정된 총장 패싱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이 총장이 대검 중간 간부들과 그동안의 경과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박 장관이 ‘김 여사 조사 문제는 중앙지검과 용산 대통령실이 소통하니 관여하지 말라’는 취지의 말도 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의도적인 총장 패싱 의혹은 더욱 커졌다.

검찰 출신 법조인들은 상황이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문재인정부에서 검찰총장의 도이치모터스 사건 수사지휘권이 박탈된 상태가 지금껏 방치된 데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수사 지휘권이 특정 사건에만 배제돼있는 것부터가 문제"라며 "어디부터 어디까지 보고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 문제부터 꼬여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검장 출신 변호사도 “추미애 전 장관이 잘못해놓은 것을 왜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풀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지금까지도 법무부 장관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지휘권을 회복해 놓고 지혜롭게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하는데 검찰총장 손을 묶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수사 지휘를 받지 않더라도 조사 사실 정도는 미리 귀띔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우세했다.

한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지휘권이 배제됐더라도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정치권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김 여사 조사에 관해 총장이 상황을 아는 것 자체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사지휘권 없어도 보고 해야” 
지난 5월 인사 패싱 이어 수사 패싱

다른 고검장 출신 변호사도 “(중앙지검이 대면조사를 성사시키기 위해)나름대로 고육지책을 낸 것으로 보이지만, 총장에게 보고도 하지 않은 것은 잘못됐다”며 “‘지휘는 받지 않겠지만 보고는 드리겠다’는 방식도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한 현직 검찰 간부는 “수사 지휘권이 배제된 사건을 핑계로 명품 가방 사건에 대한 지휘까지 회피한 것 아니냐”며 “국민적 관심이 큰 명품 가방 사건의 조사 방식·시기 등을 사전에 말하지 않은 것은 보고 누락이고 감찰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한 지방검찰청 간부는 “수사의 공정성은 물론 조직의 존재 의미까지 의심받을 수 있는 사안”이라며 “아무리 지검장에게 수사지휘권이 있다 해도, 검찰의 가치나 명운까지 마음대로 정할 권한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총장 패싱이 용산에서 주도한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이미 지난 5월 검사장 인사에서 총장과 협의 없이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 및 1~4차장검사 전원을 교체하면서 차곡차곡 쌓아온 패싱이라는 분석이다.

두 번의 패싱은 이 총장과 윤 대통령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발생했다. 원래 이 총장은 윤 대통령의 검사 재직 시절 항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측근으로 2022년 5월 윤정부 출범과 함께 검찰총장 직무대행을 거쳐 석 달 뒤 검찰총장에 취임했다.

그러다 지난해 9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며 대통령실에서 이 총장의 ‘수사지휘 능력’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같은 해 11월 말 김 여사 명품백 수수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영부인 리스크’가 본격화되자 “도이치 사건은 왜 아직도 종결하지 않느냐”며 용산에서 이 총장을 질책했다.

그와 동시에 김 여사 소환 문제가 수면 아래 대통령실과 검찰의 갈등이 표면화됐다. 지난 1월 당시 송경호 중앙지검장이 법률비서관실을 통해 김 여사 검찰청 ‘비공개’ 소환조사를 타진하자 대통령실 내부에선 “검찰총장이 대통령 부부를 겨누고 있다”는 분노가 터져 나왔다.

이 같은 용산의 반발에 송 지검장이 사표를 냈고, 이를 막기 위해 이 총장도 사표를 내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때는 일단 중앙지검장 원포인트 인사는 하지 않는 것으로 양측 갈등이 무마됐다. 다만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명품백 의혹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한통속’이란 대통령실의 불만은 커졌다.

나갈까
버틸까

이런 상황에 이 총장이 지난 5월2일 명품백 수수 의혹을 수사하는 전담수사팀 구성을 지시하며 김 여사 수사에 속도를 내자 용산도 같은 달 12일 검찰 인사로 중앙지검장을 포함해 수사 지휘부를 전원 교체했다. 이후 용산 주도하에 김 여사 조사 사후 보고를 하면서 이 총장의 리더십에 한 번 더 흠집을 남겼다는 것이다.

이번 총장 패싱 이후 이 총장의 리더십을 문제 삼으며 대통령실에서는 이 총장의 후임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후임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심우정 법무부 차관, 최경규 부산지검장 등이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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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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