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다단계 ‘워너비 저격수’ 예자선 변호사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7.15 15:32:50
  • 호수 14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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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질 끄는 수사…피해자만 늘어난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사기인 걸)모르고 당한 피해자가 잘못 아닌가요?” 다단계 사기 피해자들이 쉽게 듣는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 있다. 한국이 가상자산 사기의 ‘천국’이라는 것을. 예자선 변호사가 워너비데이터㈜ 피해자를 근거리서 보며 느낀 점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사기 공화국인 한국은 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요시사>가 예자선 변호사를 처음 만난 장소는 대전의 한 식당이었다. 이 식당에는 워너비데이터㈜(이하 워너비) 피해자 20명가량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 나이가 많았지만 젊은 사람도 있었고, 다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고 막막해했다.

중·장년층은 본인이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확인하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더 이상의 확산을 막고 응당한 처벌을 받도록 하기 위해 예 변호사가 선두에 섰다.

<일요시사>는 피해자를 한 명씩 만나 어떻게 워너비에 투자하게 됐는지, 당시 사용했던 통장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취재했다. 예 변호사는 피해자들을 만난 뒤에는 워너비 피해자들의 의견을 모아 피해 규모를 파악하는 한편, 다단계를 없애기 위해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 연구한 끝에 직접 고발장을 작성해 접수했다.

저서 <카카오는 어떻게 코인을 파는가? 지금부터 질문을 시작하겠습니다>와 <블록체인과 코인 누가 돈을 버는가>의 저자인 예 변호사는 수원지검 검사, 예금보험공사 변호사, 카카오페이 법률 실장 등을 거쳐 현재는 시민단체 경제민주주의21의 금융사기감시센터 소장이다.

지난 9일, 서울시 강남구의 한 카페서 예 변호사를 만나 워너비를 접하고 겪은 일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예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최근 워너비데이터㈜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는데?

▲워너비의 엑소좀 화장품으로 공정위 제재를 받은 것이다. 희소식이긴 한데, ‘죄명을 수집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발장 접수는 이미 지난 1월에 했는데, 아직 구속되지도 않았고 사기는 계속되고 있다. 이러니 다단계 사기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특히 공정위 심의 과정서 또 워너비가 사기 친 것을 알게 됐다. 워너비 지점장이란 사람이 자신이 피해자를 돕겠다며, 워너비에 가압류를 걸어 피해자가 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단다. 자기에게 맡기라고… 그런데 그 과정서 돈이 필요하다며 1억원을 받았다. 당연히 아무 절차도 진행되지 않고 돈을 떼어먹었다.

-워너비에 개입하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지난 2월에 소지섭이 광고했고 금감원이 수사 의뢰를 했다는 워너비 기사를 봤다. 이후 여름에 압수수색을 한다는 기사를 봤는데, 호기심에 찾아봤더니 변호사가 자문 변호사라고 돼있었다. 이러면 사기죄 공범이니까 황당했다.

이 같은 행태를 비판하는 A 목사가 있었는데, 워너비 대표가 그를 명예훼손, 손해배상으로 10억원을 청구했다. 원래 조직 사기는 제보자나 이탈자에게 명예훼손을, 담당 경찰을 직권남용죄로 고소하고 손해배상도 청구한다.

변호사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주장이지만, 어쨌든 대응해야 하는 사람에겐 상당한 부담이다. A 목사님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아 답변서를 써 드리는 과정서 워너비 피해자를 돕는 분들을 알게 됐다.


-피해자들을 돕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다양하다. 교회 신도인데 목사가 이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뛰어든 사람, 금감원에 사기 코인 공익제보를 한 사람, 워너비 대표가 사기치는 것을 알고 말리려고 한 사람 등이다.

-워너비를 겪은 뒤 느낀 점이 많다는데?

▲기사가 나오면 이미 폰지 구조는 무너진 것이다. 모집 수당을 주면서 유인을 하는 단계가 지나서 투자자에게 돈을 주지 못해서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금감원의 수사의뢰 기사 이후 1년이 되어 가도록 (담당자만 바뀌고) 아무 소식이 없었다. 계속 피해자들이 고소장을 써 달라고 하기에 수사와 처벌에 효과적인 방법을 생각했다.

워너비 사기 피해 알리던 목사
10억 고소 돕다 아예 뛰어들어

또, 피해자가 고소하면 유사수신행위 위반으로 수사가 진행되는데 이건 겨우 징역 5년이다. 하지만, 본질은 투자사기로 회사 사업 설명해서 돈 받은 거 전체를 사기죄로 고발하면 된다. 어차피 국내 형법은 죄명이 여러 개라도 가장 무거운 죄를 기준으로 형량이 정해진다. 사기가 형량이 더 높으니 경찰이 유사수신행위를 추가하느라 불필요한 업무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경찰 수사가 바뀌어야 하는 점이 있다고?

▲워너비처럼 다단계 사기는 투자설명회를 여는데, 이를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간이 지나 사건이 터지고 전국서 고소장이 접수되는데, 고소가 한참 모이면 수사가 시작된다. 이 기간 동안 사기꾼들은 피해자에게 “오해다. 아무 일 없을 것”이라며 다시 사기를 친다. 정말 사업장에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수사 담당자는 채팅방 메시지를 수집하고, 설명회 녹취록을 따고, 계보도를 작성하느라 진땀을 흘린다. 일은 많고, 효과는 없다. 업무가 이렇게 짜여 있는 것이지, 경찰이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다. 재판으로 넘어가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린다. 어쨌든 겨우 몇 명이 재판에 넘겨지면, 큰 사건은 기사화되지만, 재판도 질질 끌고 솜방망이 판결이 나온다.

-어떻게 바뀌는 게 좋을까?

▲방법은 있다. 조직적인 데다 피해자도 많고 난이도가 있는 범죄인데, 특성에 맞는 방법을 쓰지 않아 (수사가)더 어려운 것이다. 마약은 범죄 특성상 인지 수사를 한다. 다중 대상 투자 사기는 성격상 인지 수사로 사업자를 털어야 한다. 수사의 개시, 증거를 피해자 진술 중심으로 하는 것이 문제다.

투자 사기의 특징은 외부서 인지하기 쉽다는 것이다. 경찰은 제보를 받고 사업자의 설명 내용이 사기인지 확인하고, 법원은 사기 혐의가 있는 경우 구속영장을 발부해 추가적인 행각을 중단시킨다. 피해자별 범죄일람표에 시간 낭비하지 않고 사업의 사기성을 입증하는 데 집중하는 효과적 수사를 한다. 법원은 중형을 선고한다는 시나리오가 현행법상 충분히 가능하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단일 사기 범죄가 5억원 이상이면 징역 30년, 50억 이상이면 무기징역이 가능한데, 조직적 사기는 ‘상습’으로 볼 수 있어서 이런 경우 전체 피해금액을 단일 범죄로 볼 수 있다. 

-수사 방식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법원이 단순히 양형만 하는 것이 아니다. 형사 사법 시스템은 판결을 목적으로 수사업무가 짜여지는 일련의 과정이다. 경찰, 검찰, 법원이 머리를 맞대고 조직 사기를 없애기 위한 적용 법조, 입증 정도, 영장 발부 등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업무 방식과 인력 배치도 거기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같이 논의를 하지 않으니 바뀔 수 없다. 기관 간 논의는 정책적 문제로 대통령과 정치인의 영향이 크다. 공무원이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치권은 워너비 같은 다단계 사기 문제엔 관심이 없고, 근본적 원인에 대한 이해도가 없어서 오히려 사기를 적극적으로 돕는 지경이다.

-사기를 돕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워너비는 가상자산 사기다. 블록체인 사업이라고 홍보하면서 지점에 가면 가상자산을 주겠다고 시작한다. 그렇게 돈을 모아 교수를 영입해 줄기세포 사기(엑소좀)를 추가한 것이다. 국낸에 가상자산 사기가 왜 이렇게 많을까? 거래량이 세계 1위 수준으로, 외신서 걱정하고 있을 정도인데 사후적으로 부정거래 행위를 감시해서 과연 막을 수 있겠나? 


당연히 사전 발행에 앞서 신고 절차를 두고 지키도록 하는 등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사기는 ‘남의 돈을 받을 때, 겉으로 A를 말하면서 실제로는 B인 것’인데, 가상자산을 팔려고 표방하는 사업은 그것으로 돈을 벌 가능성이 없다. 사업자의 비즈니스 구조 자체가 가상자산을 발행해 파는 것이 수입이다. 워너비처럼 모든 돈은 가상자산을 사는 사람들의 주머니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고소장 제출 7개월 ‘감감무소식’
“다단계 사기 설명회부터 막아야”

7월부터 시행되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는 발행 규제, 거래소의 상장에 대한 책임 부분이 아예 없다. 거래소가 고객 예탁금과 개인정보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수사기관서 가상자산을 수사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대형 거래소, 상장회사의 코인들은 다 봐주면서 잡 코인과 다단계 코인만 잡는 방법은 없다. 둘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거래소가 사업계획을 심사하거나 상장 폐지됐다고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다. 코인은 다단계 방법을 선택하지 않아도 사기칠 수 있다.

상장기업 코인인 위믹스 코인도 상장 폐지됐고, 카카오의 클레이 코인도 실컷 팔고 나서 네이버 코인 핀시아와 합병한다는 명분으로 없어졌다. 워너비의 경우, 전영철은 내세울 간판이 없으니까, 피해자를 유인하기 위해 오프라인 조직을 이용해 “다른 사람 데리고 오면 모집수당 준다”고 했던 방법만 다른 것이다.

설명하는 내용을 보면 “코인 생태계가 확대될 것”이라고 말하는 게 완전히 똑같다. 이러니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코인을 팔 때는 그냥 두고, 피해자 고소가 들어와야 고소를 모아서 수사하게 되는 것이다. 행정기관에서 ‘가상자산은 신고 후 팔도록’ 절차를 만들어야, 수사기관에서 미신고 가상자산의 ‘사업설명 사기’에 대해 인지 수사하기 편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워너비 사기가 일반 다단계가 아닌 가상자산 사기로 보는지?

▲소지섭이 출연했던 광고도 블록체인 광고였다. 블록체인은 가상자산을 발행하고 거래하는 프로그램을 말하는데, 이걸 대단한 기술처럼 내세우고 출석 체크하면 가상자산을 줬다. 요즘 다단계는 다 가상자산이다. 워너비가 기사화되니까 소지섭 측이 항의했다고 보도자료를 내던데, 단순히 광고 활용 범위에 관한 것 같아 보였다. 사기인 줄 뒤늦게 알아서 계약을 취소하고 돈을 돌려줬다는 내용은 못봤다.

-시민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사기는 직접 투자한 피해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당하게 쌓은 부로 인해 경제 불평등의 심화, 사법 시스템의 붕괴라는 국가 파괴력이 크다. 하필 가상자산 사기가 제일 많은 나라가 한국이다. 이 같은 현실은 투기를 좋아하는 국민성이나 디지털 기술의 발달 같은 이유가 아니다.

조직적인 투자 사기를, 거기에 맞는 수단을 사용해서 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문제점은 국민 다수가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면 바꿀 수 있다. 사기라는 게 아예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거짓말이 비난받는 것과 사업가 행세를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현재 경제민주주의21서 활동 중인데, 거짓말이 혁신으로 포장돼 정책이 되는 것을 포착해서 알리고자 한다. 이곳에는 여러 전문가가 있지만, 우리도 우리 분야만 안다. 겉으로는 멀쩡한 세미나인데 내용은 다 거짓말이라서 충격받았다. 세미나에 참석했던 교수, 변호사, 정치인들이 축사를 하지만 (문제에 대해)전혀 인식이 없다.

워너비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은 책으로도 낼 생각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고 하지만, 바위라고 알고 있었던 게 바위가 아니고 대형 스크린일 수도 있다. 나 말고도 함께 계란을 던질 사람이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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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