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로 변하는 ‘데이트폭력’ 백태

피로 얼룩지는 사랑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사랑하는 사람이 악마처럼 느껴졌다.” 데이트폭력 피해자가 한 말이다. 데이트폭력에 연인관계는 없다. 피의자와 피해자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법원은 ‘연인’이라는 특수한 관계에 집중해 판결을 내리는 모습이다. 법조계에서는 데이트폭력만을 위한 양형기준과 처벌 규정이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제19대국회서부터 8건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최근 ‘데이트폭력’이 살인까지 이어지는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연인’이었다는 이유로 법원의 형량은 매우 낮게 나오는 실정이다. 데이트폭력을 처벌하는 법안이 없다는 지적도 계속해서 나온다.

집유 47건

지난 6일 의대생 최모씨는 교제 중이던 여성이 결별을 통보하자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서 흉기로 여성을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최씨는 범행 2시간 전, 경기 화성의 한 대형 마트서 흉기를 구입했으며, 범행 후 옷을 갈아입는 등 계획범죄의 정황도 드러났다.

머그샷법 시행 이후 첫 신상 공개 대상자인 김레아씨는 지난 3월25일, 경기도 화성시에서 흉기를 휘둘러 여자친구 A씨를 살해하고, A씨 어머니 B씨에겐 전치 10주의 중상을 입혔다. 김씨는 A씨가 이별을 통보하려고 하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 거제에선 전화로 헤어진 연인과 다툰 다음 날, 미리 파악해둔 현관 비밀번호를 통해 무단 침입해 자고 있던 연인 C씨의 얼굴과 머리를 수차례 때리고 목을 조른 사건이 발생했다. C씨는 외상성 경막하출혈(뇌출혈) 등 전치 6주 상해를 입고, 병원서 치료받던 중 상태가 악화돼 지난 10일 오후 10시20분께 숨졌다.


이처럼 데이트폭력이 살인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데이트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2020년 8951명, 2021년 1만538명, 2022년 1만2828명, 지난해 1만3939명이다.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3월 발표한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 살해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교제 살인으로 숨진 여성은 49명, 미수에 그쳐 살아남은 여성은 158명이었다. 

하지만 데이트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 수는 매년 늘어가고 있으며 법원의 판결은 아직 미미하다. 대부분이 집행유예로 실형을 면했기 때문이다. 

<뉴스핌>이 지난해 9월부터 올 4월까지 데이트폭력 관련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양형 이유에 합의나 처벌불원이 포함된 경우는 58건으로 약 60%에 달했다. 선고 결과는 집행유예(47건)와 벌금형(23건)이 가장 많았다.

2023년 1만3939명 검거
실형은 단 15건에 불과

처벌불원으로 반의사불벌죄에 의해 공소가 기각된 경우가 13건으로 뒤를 이었다. 나머지 2건은 선고유예로, 결국 실형을 선고받은 판례는 15건에 불과했다.

피해자의 안전이 위험한데도 집행유예를 선고하거나 낮은 형량을 선고한 점도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수원지법은 지난 3월8일, 연인을 폭행해 이마 부위를 10바늘이나 꿰매야 할 정도로 상처를 입힌 남성 D씨에 대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D씨는 지난해 1월19일, 인천 부평구서 연인이었던 피해자와 말다툼하다가 주먹으로 피해자의 머리를 주먹으로 2회 때리고 프라이팬으로 이마 부위를 1회 내려친 것으로 조사됐다.

이유 없이 향초가 들어 있는 유리잔을 연인에게 던져 크게 다치게 한 남성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지난 2월 6일 부산지법 판례도 있다. 피해자가 광대뼈와 상악골이 골절되고 치아보철물이 파절돼 수술을 받은 점을 고려하면 처벌 수위가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자친구를 자동차로 들이받거나 척추뼈가 부러질 정도로 심하게 때린 데이트폭력 20대 남성도 1심과 2심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기도 했다.

재판부가 낮은 형량을 선고한 데에는 연인이라는 특수한 관계가 한몫하고 있다. 대부분 데이트폭력 판결문에는 피해자와 피고인의 관계 회복, 피해자와의 합의 등을 양형 이유로 꼽고 있다.

데이트폭력 사건서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이유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연인이라는 특수한 관계가 피해자가 피의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게 만드는 셈이다.

한국성폭력연구소 관계자는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갖는다”며 “그 사람하고 좋았던 기억도 있고, 나한테 잘해줬던 기억도 있으니까 경찰 신고도 하고 재판까지 갔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망설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피해자가 신고하더라도 가해자를 두려워한 나머지 가해자 의사에 따라 처벌불원의사를 표시하는 경우도 많다”며 “데이트폭력과 관련해 처벌불원의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연인이란 특수한 관계 주목
“명확히 적용되는 법 없어”

데이트폭력에 대한 형량이 낮은 이유엔 명확히 적용될 법안이 없다는 점도 있다. 현재 가정폭력범죄 처벌법, 스토킹 범죄 처벌법, 여성폭력방지기본법 등 폭력과 관련된 법에는 데이트폭력과 관련된 조항이 없다. 

가정폭력범죄 처벌법상 가정폭력의 대상은 배우자, 직계존비속관계 등 가정 구성원에만 해당한다. 스토킹 범죄 처벌법 역시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에게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등 스토킹 행위만을 규정하고 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상 여성 폭력은 ‘집단 따돌림, 폭행 또는 폭언, 그 밖에 정신적·신체적 손상을 가져오는 행위로 인한 피해’로 그 범주가 넓다.

데이트폭력은 법안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데이트폭력을 정의할 법안이 마련되고 다른 법과 차별화된 양형기준과 처벌 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지혜 경찰청 여성안전기획 계장은 “데이트폭력 같은 경우 법적 정의가 따로 없어 기존 형법에 있는 폭행·상해·감금 등이 연인 사이에 발생하면 이를 데이트폭력으로 정의하고 있다”며 “스토킹이나 가정폭력 같은 경우 피해자 보호하기 위해 접근금지명령을 내릴 수 있지만 데이트폭력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한 경찰 출신 변호사는 “상대방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여러 차례 했을 경우에 성립되는 스토킹처벌법은 연인관계서 입증이 어렵다”며 “이로 인해 단순한 특수폭행 등의 혐의만 적용해 데이트폭력 피의자를 기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데이트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국회에선 교제 폭력을 범죄로 규정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내용의 법률 제·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되거나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지난 19대 국회서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전 의원의 대표 발의로 ‘데이트폭력 범죄 처벌 특례법’이 발의된 이래 21대까지 총 8건이었다.

8건 발의

발의 법안들은 크게 ‘데이트폭력 범죄’를 특례법으로 별도 명시해 제지·처벌 등의 피해자 보호 대응이 가능하도록 하거나 현행 가정폭력범죄 처벌법상에 포함하도록 했다. 이 밖에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 조치 등의 적극 조치(신보라 전 의원 등)도 규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또 ‘반의사불벌조항’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법안(국민의힘 김미애 의원 등)도 발의됐다.

<kcj5121@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