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로 변하는 ‘데이트폭력’ 백태

피로 얼룩지는 사랑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사랑하는 사람이 악마처럼 느껴졌다.” 데이트폭력 피해자가 한 말이다. 데이트폭력에 연인관계는 없다. 피의자와 피해자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법원은 ‘연인’이라는 특수한 관계에 집중해 판결을 내리는 모습이다. 법조계에서는 데이트폭력만을 위한 양형기준과 처벌 규정이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제19대국회서부터 8건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최근 ‘데이트폭력’이 살인까지 이어지는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연인’이었다는 이유로 법원의 형량은 매우 낮게 나오는 실정이다. 데이트폭력을 처벌하는 법안이 없다는 지적도 계속해서 나온다.

집유 47건

지난 6일 의대생 최모씨는 교제 중이던 여성이 결별을 통보하자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서 흉기로 여성을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최씨는 범행 2시간 전, 경기 화성의 한 대형 마트서 흉기를 구입했으며, 범행 후 옷을 갈아입는 등 계획범죄의 정황도 드러났다.

머그샷법 시행 이후 첫 신상 공개 대상자인 김레아씨는 지난 3월25일, 경기도 화성시에서 흉기를 휘둘러 여자친구 A씨를 살해하고, A씨 어머니 B씨에겐 전치 10주의 중상을 입혔다. 김씨는 A씨가 이별을 통보하려고 하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 거제에선 전화로 헤어진 연인과 다툰 다음 날, 미리 파악해둔 현관 비밀번호를 통해 무단 침입해 자고 있던 연인 C씨의 얼굴과 머리를 수차례 때리고 목을 조른 사건이 발생했다. C씨는 외상성 경막하출혈(뇌출혈) 등 전치 6주 상해를 입고, 병원서 치료받던 중 상태가 악화돼 지난 10일 오후 10시20분께 숨졌다.


이처럼 데이트폭력이 살인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데이트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2020년 8951명, 2021년 1만538명, 2022년 1만2828명, 지난해 1만3939명이다.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3월 발표한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 살해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교제 살인으로 숨진 여성은 49명, 미수에 그쳐 살아남은 여성은 158명이었다. 

하지만 데이트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 수는 매년 늘어가고 있으며 법원의 판결은 아직 미미하다. 대부분이 집행유예로 실형을 면했기 때문이다. 

<뉴스핌>이 지난해 9월부터 올 4월까지 데이트폭력 관련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양형 이유에 합의나 처벌불원이 포함된 경우는 58건으로 약 60%에 달했다. 선고 결과는 집행유예(47건)와 벌금형(23건)이 가장 많았다.

2023년 1만3939명 검거
실형은 단 15건에 불과

처벌불원으로 반의사불벌죄에 의해 공소가 기각된 경우가 13건으로 뒤를 이었다. 나머지 2건은 선고유예로, 결국 실형을 선고받은 판례는 15건에 불과했다.

피해자의 안전이 위험한데도 집행유예를 선고하거나 낮은 형량을 선고한 점도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수원지법은 지난 3월8일, 연인을 폭행해 이마 부위를 10바늘이나 꿰매야 할 정도로 상처를 입힌 남성 D씨에 대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D씨는 지난해 1월19일, 인천 부평구서 연인이었던 피해자와 말다툼하다가 주먹으로 피해자의 머리를 주먹으로 2회 때리고 프라이팬으로 이마 부위를 1회 내려친 것으로 조사됐다.

이유 없이 향초가 들어 있는 유리잔을 연인에게 던져 크게 다치게 한 남성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지난 2월 6일 부산지법 판례도 있다. 피해자가 광대뼈와 상악골이 골절되고 치아보철물이 파절돼 수술을 받은 점을 고려하면 처벌 수위가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자친구를 자동차로 들이받거나 척추뼈가 부러질 정도로 심하게 때린 데이트폭력 20대 남성도 1심과 2심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기도 했다.

재판부가 낮은 형량을 선고한 데에는 연인이라는 특수한 관계가 한몫하고 있다. 대부분 데이트폭력 판결문에는 피해자와 피고인의 관계 회복, 피해자와의 합의 등을 양형 이유로 꼽고 있다.

데이트폭력 사건서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이유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연인이라는 특수한 관계가 피해자가 피의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게 만드는 셈이다.

한국성폭력연구소 관계자는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갖는다”며 “그 사람하고 좋았던 기억도 있고, 나한테 잘해줬던 기억도 있으니까 경찰 신고도 하고 재판까지 갔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망설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피해자가 신고하더라도 가해자를 두려워한 나머지 가해자 의사에 따라 처벌불원의사를 표시하는 경우도 많다”며 “데이트폭력과 관련해 처벌불원의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연인이란 특수한 관계 주목
“명확히 적용되는 법 없어”

데이트폭력에 대한 형량이 낮은 이유엔 명확히 적용될 법안이 없다는 점도 있다. 현재 가정폭력범죄 처벌법, 스토킹 범죄 처벌법, 여성폭력방지기본법 등 폭력과 관련된 법에는 데이트폭력과 관련된 조항이 없다. 

가정폭력범죄 처벌법상 가정폭력의 대상은 배우자, 직계존비속관계 등 가정 구성원에만 해당한다. 스토킹 범죄 처벌법 역시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에게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등 스토킹 행위만을 규정하고 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상 여성 폭력은 ‘집단 따돌림, 폭행 또는 폭언, 그 밖에 정신적·신체적 손상을 가져오는 행위로 인한 피해’로 그 범주가 넓다.

데이트폭력은 법안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데이트폭력을 정의할 법안이 마련되고 다른 법과 차별화된 양형기준과 처벌 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지혜 경찰청 여성안전기획 계장은 “데이트폭력 같은 경우 법적 정의가 따로 없어 기존 형법에 있는 폭행·상해·감금 등이 연인 사이에 발생하면 이를 데이트폭력으로 정의하고 있다”며 “스토킹이나 가정폭력 같은 경우 피해자 보호하기 위해 접근금지명령을 내릴 수 있지만 데이트폭력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한 경찰 출신 변호사는 “상대방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여러 차례 했을 경우에 성립되는 스토킹처벌법은 연인관계서 입증이 어렵다”며 “이로 인해 단순한 특수폭행 등의 혐의만 적용해 데이트폭력 피의자를 기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데이트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국회에선 교제 폭력을 범죄로 규정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내용의 법률 제·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되거나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지난 19대 국회서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전 의원의 대표 발의로 ‘데이트폭력 범죄 처벌 특례법’이 발의된 이래 21대까지 총 8건이었다.

8건 발의

발의 법안들은 크게 ‘데이트폭력 범죄’를 특례법으로 별도 명시해 제지·처벌 등의 피해자 보호 대응이 가능하도록 하거나 현행 가정폭력범죄 처벌법상에 포함하도록 했다. 이 밖에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 조치 등의 적극 조치(신보라 전 의원 등)도 규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또 ‘반의사불벌조항’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법안(국민의힘 김미애 의원 등)도 발의됐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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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