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몰래 내 집에…‘도둑 전입’ 고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5.07 14:14:38
  • 호수 14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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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모르는 ‘동거인’ 정체는?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어느 날 갑자기 알지 못하는 이름의 우편물이 집으로 도착했다. 전 세입자도 아닐뿐더러 임대인과도 상관없다. 카드 요금 체납 고지서 등 우편물은 끊이지 않는다. 확인해 보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현재 거주 중인 집에 전입신고를 한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집에는 동거인이 등록돼있었다.

“우리 집에 모르는 사람이 전입신고가 돼있었다. 나도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우연히 알게 됐다. 살면서 집 등기부등본을 떼볼 일이 없지 않나. 너무 황당하다. 어제 저녁에 이 사실을 알게 됐고 바로 주민센터에 왔다.”

임대인
바뀐 뒤…

지난 3월 말, 서울시 서초구의 한 주민센터서 만난 주민 A씨의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떼본 등기부등본에 자신이 모르는 이름이 있었다는 것이다. 친척이거나 지인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모르는 생판 남이었다. 현행 법령체계상 전입신고는 아무나 할 수 있다. 주민센터에 가서 임대차 계약서를 보여주고 전입신고만 하면 된다.

집주인에게 알리지 않아도 전입할 수 있고, 전입신고가 된다고 해서 집주인에게 연락이 가는 것도 없다. 빈틈이 너무 많은 것이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나 몰래 전입신고’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주민등록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통과시켰다.


시행령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전입신고 때 전입자의 확인 의무화 ▲전입신고 때 신분 확인 강화 ▲주소 변경 사실 통보 서비스 신설 ▲전입세대 확인서 개선 등이다. 이로써 ‘나 몰래 전입신고’ 방지를 위해 전입신고 때 전입자 확인을 의무화됐다.

기존에는 전입신고 시 ‘전입하려는 곳의 세대주’가 전입 당사자의 서명이 없더라도 ‘이전 거주지의 세대주’의 서명만으로 신고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전 세대주의 서명만을 받고 전입자를 다른 곳으로 몰래 전입신고한 뒤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전세 사기 사례까지 발생한 바 있다. 앞으로는 현 세대주가 전입신고할 때는 반드시 전입 당사자의 서명을 받도록 해 전입자의 확인 없이는 전입신고를 할 수 없게 됐다.

또, 전입자의 신분 확인이 강화돼 현 세대주를 포함한 전입자 모두의 신분증 원본을 제시해야 한다. 기존에는 전입 신고자에 대해서만 신분증 확인을 했는데, 앞으로는 현 세대주가 신고하는 경우 전입자의 신분증 원본을 제시해야 한다.

집주인 친척이 몰래 위장 전입
“보증금 쉽게 안 준다” 협박도

집주인이 현재 세입자 몰래 다른 집으로의 전입을 원천적으로 막은 셈이다. 반대로 집주인 몰래 다른 전입신고로 들어와 있는지의 여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다행히 주민센터서 ‘주민등록말소’ 제도를 이용해서 주소 말소를 시키면 된다. 보통은 세입자가 이사가면서 주소지 이전을 하지 않는 경우에 이용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모르는 사람이 전입신고가 돼있다는 것은 보통 우편물을 통해 알게 된다. B씨는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 중이었는데, 임대인이 한번 바뀌었다. 이 임대인은 기존 임대인과 행동이 많이 달라서 특이하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임대인이 바뀐 뒤 B씨 집으로 이상한 우편물이 발송되기 시작했다. 미납요금 통지서나 법원 안내문 등이었다. 이를 수상히 여겼던 B씨가 인근 주민센터를 찾아 전입세대 열람을 신청해 보니, 전혀 모르는 사람이 B씨 아파트로 전입이 돼있었다. 

평수에 따라서 두 명이 세대주인 집도 있지만, B씨가 거주 중인 아파트는 한 명만 가능한 집이었다. 전세 기간도 한참 남아 있었다. 주민센터도 해당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이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전입신고를 해준 것이었다. 세입자 몰래 위장전입한 것인데, B씨는 이렇게 몰래 전입신고가 가능하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B씨가 임대인에게 성명불상의 외부인이 전입세대로 올라가 있는지 묻자, 임대인은 “입주한 사람이 2명일 수도 있다”고 황당한 말을 했다.

전입신고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임대인의 친척이었다. B씨가 임대인에게 “이 집에 들어와 있는 사람을 전출시켜 달라”고 요구하자, 임대인은 오히려 화를 냈다. 그는 “세입자가 2명이어도 상관없다. 집 주인이 문제가 없다는데 무슨 상관이냐? 왜 이렇게 까탈스럽게 구느냐. 집 나갈 때 편안하게 나가는 건 바라지도 말라”고 협박까지 했다.

그러면서 임대인은 끝까지 B씨에게 위장전입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모르는
우편물

물론, B씨가 직접 전출시키는 방법은 있다. 주민센터에 연락해서 해당 전입자가 실거주하지 않는다고 알리면 확인 과정을 통해 등록된 주소를 말소시켜 준다. 신문고나 해당 부서에 신고해도 된다. 하지만 임대인이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주지 않는다”고 협박까지 하니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B씨는 “알아 보니 집주인이 집을 팔려면 실거주를 몇 년 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안 그러면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고 했다. 본인이 이득을 보려고 그렇게 한 것이고 차라리 설명이라도 제대로 하면 되는데, 그러지 않으니 화가 난다”고 하소연했다.

그렇다고 전입신고 소멸이 쉬운 건 아니다. 현행 규정에 따라 몰래 신고된 전입자에게 거주지 불명 신고로 구청이 직권말소할 수도 있다. 구청은 해당 전입자에게 통보하고 통보를 받았음에도 불이행 시 한 달 후 현장 조사를 거쳐 거주가 확인되지 않으면 직권말소하는 절차를 거친다.

문제는 직권말소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몰래 전입한 전입자가 통보를 받지 않을 경우, 시간은 한없이 소요되는데, 길면 4~6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실거주자가 있는 집에 전입신고해도 집주인 또는 실거주자에게 통보하지 않고, 특별한 서류를 떼지 않는 한 인지할 수도 없다는 점은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집주인이나 세입자도 모른 채, 장기간 살고 있는 사람이 많다. 특히 몰래 전입은 아파트보다 빌라서 많이 목격된다. 건축물대장, 집합건물 등기부등본과 같은 공부상 지하층이나 반지하층은 지하로 표기되지만 실제 빌라는 지하 또는 반지하 층은 1층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탓이다.

이런 경우 지하 1층 세입자가 공부상에 기록된 101호로 전입신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즉 단순 실수로 인한 몰래 전입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몰래 전입에 관용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세입자 보호 때문이다. 집주인이 부동산투기 등을 목적으로 세입자의 전입신고를 막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미전입신고 시 해당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게 되면, 세입자들은 대항력을 발휘할 수가 없어진다. 실제 오피스텔 같은 비주택 주거 상품의 경우, 주택 수 산정 회피나 세금 회피를 위해 집주인들이 계약 시 특약사항을 작성해 전입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멸도
쉽지 않아

임대인과 임차인이 바로 전입신고가 가능한 고시원과 원룸에 거주하지 않은 채로 전입신고하는 이른바 ‘계획적 위장전입’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고시원 등 저렴한 원룸 매물이 주로 올라오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비거주 전입신고’라고 검색하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물이 올라온다.

해당 글에는 “풀옵션 원룸텔이다. 3개 지하철 라인과 대중교통이 있어 엄청 편리하다. 무보증에 계약 기간이 자유롭다. 단기도 가능하다. 모든 요금이 포함돼있고, 방 크기에 따라 45만~65만원이다. 장기 거주 시 할인 혜택이 있고, 주차도 가능하다”고 안내돼있다. 

이어 “모든 방은 창문이 다 있어 햇빛이 잘 들어온다. 방과 욕실은 개별 공간, 주방과 세탁실은 공용이다. 출장이나 교육으로 방이 필요하면 연락 달라. 거주하지 않아도 전입신고가 가능하다”고도 설명했다.

서울·수도권서 고시원이나 원룸에 위장전입을 시도하는 목적은 대부분 새 아파트 청약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서울의 경우 1년 이상 거주해야 당해 지역 1순위 청약 자격이 주어지는데, 이 같은 거주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비거주 전입신고가 가능한 방을 찾는 수요자들은 하나같이 ‘1년 단위’ 계약을 요구한다. 이런 수요에 맞춰 “비거주 전입신고가 가능하니 언제든 문의 달라”며 홍보하는 업체들도 있다. 어차피 원룸이나 고시원을 주로 이용하는 계층은 대학생이나 고시생들이다. 이들은 전입신고 비율이 매우 적어 집주인 입장에선 전입신고비를 챙기는 이득을 보는 셈이다.

보통 월세는 2만~5만원 정도로 책정하며, 6개월이나 1년 단위 선납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같은 위장전입 수요를 노린 ‘먹튀’ 사기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1년 월세 계약금이 20만~30만원 선에 불과해 계좌로 계약금을 바로 송금하는 위장전입자들이 많은데, 집주인들이 돈만 챙기고 연락을 끊는 식이다.

원룸·고시원 ‘비거주 신고’
“실거주자에게 사실 통보해야”

실제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비거주 전입신고가 된다고 해서 집주인에게 1년 치 월세를 송금했는데, 당초 전입신고가 안되는 방인데다가 대포폰을 사용하는 사람이라 연락이 끊어져 신고할 수 없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위장전입의 발각 가능성은 없을까? 이에 대해 서울 종각역 인근의 한 고시원 관계자는 “전입신고 시 정확한 호수를 적지 않아도 된다. 관할구청서 ‘해당 세입자가 실제로 거주하는 게 맞느냐’는 전화에 ○○호에 살고 있다고만 대답하면 넘어갈 만큼 검증이 허술한 편”이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구청서 직접 위장전입 조사를 나와도 경찰을 대동하거나 큰 사건·사고가 나지 않는 한 방 문을 마음대로 열 수 없어 위장전입자의 실거주 여부를 파악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신용불량자가 은행 등으로부터 빚 독촉을 피하기 위해 주소지를 엉뚱한 곳으로 옮기는 사례도 있다. 이 때문에 엉뚱한 가정에 대금납부 독촉장, 법원 압류장 등이 날아들면서 이웃으로부터 신용불량자로 오인받는 등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회사원 C씨는 “지난 3월 말부터 은행, 새마을금고 등 10여곳으로부터 온 각종 독촉장이 아파트 우편함에 쌓여 이웃들로부터 신용불량자로 오인받는 고충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양육비를 주지 않으려고 위장전입하는 경우도 있다. 부부는 이혼 후 아이 양육자에게 양육비를 지급해야 한다. 상당수의 이혼 판결문에는 ‘전 배우자에게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적혀 있지만 사실상 아무 효력이 없다. 양육비를 받기 위해선 양육비 이행명령을 신청해야 하고, 그럼에도 세 차례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감치명령을 신청해야 한다.

그러나 위장전입 등 편법을 통해 감치명령을 피하는 이들이 많고, 감치명령 이후에도 1년 동안 양육비를 받지 못할 경우, 그제서야 형사 고소가 가능하다.

양육비를 지급해야 하는 부모가 양육비를 주지 않기 위해 위장전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단, 형사 고소를 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양육자는 양육비 지급 상대가 어디로 위장전입했는지 찾기도 힘든 실정이다.

세입자
보호는?

이같이 세입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집주인도 아닌 실거주자가 모르는 전입신고가 이뤄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나온다. 아울러 과거 노무현정부서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응하기 위해 위장전입을 엄격히 제한한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위장전입이 지속해서 이뤄지고 있는 것은 정부 방침과 배치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세입자 보호 목적이 있다고 해도 실거주자도 모르는 전입이 이뤄진다면 이는 제대로 된 주민등록제도가 아닐 것”이라며 “최소한 실거주자 전입 사실을 통보하고 적절한 전입인지를 확인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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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면 철퇴’ 대법정 417호의 저주

‘걸리면 철퇴’ 대법정 417호의 저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법원은 내란 혐의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에게 철퇴를 내렸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400여일 만이다. 이날 선고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는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악명을 이어가게 됐다. 5명의 전직 대통령에게 가해진 ‘대법정의 저주’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지난달 19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운명의 날’이었다. 각종 혐의로 받는 재판 중에 가장 핵심 사안에 대한 법원의 첫 번째 판결이 이날 나왔다. 1심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앞서 관련자들에 대한 판결이 나오는 족족 유죄였기에 반전이라고 할 만큼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443일 걸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 지귀연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선고 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내란 우두머리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로 윤 전 대통령은 최고형을 피해갔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이 형법상 내란죄가 맞다고 판시했다. 지 판사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자체는 헌법상 권한 행사로서 내란죄에 해당할 수 없고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그 목적에 따라 내란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했다. 비상계엄의 목적이 국회나 행정·사법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했다면 내란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사실관계의 핵심으로 군을 국회로 보낸 점을 꼽았다. 지 판사는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국회를 제압해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게 실체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결국 군을 국회로 보낸 행위 자체가 내란죄 성립 요건인 ‘국헌문란 목적’과 ‘폭동’에 부합한다는 취지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은 국회에 군을 보내 봉쇄하고 주요 정치인 등을 체포하는 방법으로 국회 활동을 저지·마비시켜 국회가 상당 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하려는 목적을 내심으로 갖고 있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며 “군대를 보내 폭동을 일으킨 사실도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야당의 연이은 탄핵, 예산 삭감 등에 따른 국가 위기를 타개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비상계엄이었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에는 “명분과 목적을 혼동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지 판사는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고도 언급했다. 전두환·노태우·박근혜·이명박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 5명 국가 위기 상황 타개는 명분에 불과할 뿐 본질은 헌법기관의 마비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공수처가 내란죄를 수사할 권한이 없다며 수사의 적법성을 문제 삼아 왔다. 재판부는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고 하더라도 검찰은 공수처 송부 기록 외 다른 증거들을 종합해 기소한 것으로 보이고 공수처가 수집한 증거를 다 빼더라도 피고인에 대해 유죄 판단을 할 증거가 충분하다”고 정리했다. 검찰과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이하 내란 특검)의 주장 중 윤 전 대통령이 장기 독재를 하기 위해 2023년께부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제압할 의도로 내외적 여건을 조성했다는 공소 사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보기엔 지나치게 준비가 허술했다는 것이다. 또 국회를 무력화할 계획 등에 관한 별다른 증거나 자료,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 무기징역 선고 외에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내란 중요임무종사죄가 인정돼 징역 30년,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은 징역 18년, 조지호 전 경찰청장은 징역 12년, 김종식 전 서울경찰청장은 징역 10년, 목현태 전 서울경찰청 국회경비대장은 징역 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최고형 피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선고 닷새 만인 지난달 24일 항소했다.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법정의 기록은 물론, 훗날 역사의 기록 앞에서도 이번 판단의 문제점을 분명히 남겨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검의 무리한 기소, 그 전제 위에서 이뤄진 1심의 모순된 판단과 그 정치적 배경에 대해 저희는 결코 침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이 중형을 선고받으면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의 ‘저주’가 이번에도 나타났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법정 417호는 150석 규모의 형사 법정이다. 대법정 417호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곳에서 윤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직 대통령 5명이 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별칭이 생길만한 대목이다. 전두환씨, 노태우 전 대통령의 하늘색 반팔 수의 차림은 국민의 뇌리에 깊게 남아 있다. 최고 권력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이 법정에 서서 판결을 듣고 있는 모습 자체가 충격인 시대였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항쟁 관련 내란 우두머리(당시 내란 수괴) 등 혐의로 넘겨진 전직 대통령은 대법정 417호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1996년 당시 검찰은 반란 및 내란 수괴 외에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 등 총 10개 죄목으로 전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9개 죄목으로 기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전 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노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징역 22년6개월, 2심에서 징역 17년, 이후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국정 농단 다스 재판 그로부터 30여년 뒤 윤 전 대통령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검찰 측 구형도 사형으로 같았다. 내란 특검은 지난 1월13일 “법률가로서 검찰총장까지 지낸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 누구보다 앞장서 헌법을 준수하고 헌법 질서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헌법 질서 파괴로 나아간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피고인은 반성하지 않는다. 양형에 참작할 사유가 없고 오히려 중한 형을 정해야 한다”고 구형 배경을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의 1심 선고도 대법정 417호에서 이뤄졌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으로 지위를 잃고 구속 기소됐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등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으로 남용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국민의 공분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2018년 4월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는 대기업 등으로부터 231억9427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2016년 10월 이후 불거진 국정 혼란의 장본인으로 박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박 전 대통령이 국정 농단 사태에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국정 혼란과 대통령 파면의 주된 책임은 피고인과 최순실에게 있다”며 “그럼에도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책임을 주변에 전가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받던 18개 혐의 중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 16개를 유죄로 봤다. 150명 규모 방청석 역사적 재판의 현장 이명박 전 대통령도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 자금을 횡령하고 삼성 등에서 거액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은 2018년 10월5일 1심 재판에서 징역 15년, 벌금 130억원을 선고받았다. 법원이 다스의 실소유주를 이 전 대통령으로 결론 내리면서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논란에 종지부가 찍힌 순간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2007년 대통령선거 기간 내내 피고인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됐지만 피고인의 결백을 믿는 다수의 국민 덕분에 피고인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며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의 막강한 권한을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 전체를 위해 행사해야 할 책무를 부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재판 결과 피고인이 친인척 명의를 빌려 다스를 설립해 실소유하면서 246억원가량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범행 기간이 길고 이득액이 상당하며 범행 당시 이미 국회의원, 서울시장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비판했다. 또 “의혹만 가득했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대통령 재임 시절 저질렀던 다른 범행이 함께 드러남으로써 당시 피고인을 믿고 지지했던 국민은 물론 사회 전반에 큰 실망과 불신을 안겼다”며 “그런데도 친인척이나 측근이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등 책임을 전가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되풀이된 30년 역사 전직 대통령 관련 재판 등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이 대법정 417호에서 열리는 건 규모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이 방청을 원하기에 대형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5명의 전직 대통령은 방청석의 150여명과 실시간으로 중계된 재판을 본 국민 앞에서 단죄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