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몰래 내 집에…‘도둑 전입’ 고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5.07 14:14:38
  • 호수 1478호
  • 댓글 0개

이름도 모르는 ‘동거인’ 정체는?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어느 날 갑자기 알지 못하는 이름의 우편물이 집으로 도착했다. 전 세입자도 아닐뿐더러 임대인과도 상관없다. 카드 요금 체납 고지서 등 우편물은 끊이지 않는다. 확인해 보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현재 거주 중인 집에 전입신고를 한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집에는 동거인이 등록돼있었다.

“우리 집에 모르는 사람이 전입신고가 돼있었다. 나도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우연히 알게 됐다. 살면서 집 등기부등본을 떼볼 일이 없지 않나. 너무 황당하다. 어제 저녁에 이 사실을 알게 됐고 바로 주민센터에 왔다.”

임대인
바뀐 뒤…

지난 3월 말, 서울시 서초구의 한 주민센터서 만난 주민 A씨의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떼본 등기부등본에 자신이 모르는 이름이 있었다는 것이다. 친척이거나 지인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모르는 생판 남이었다. 현행 법령체계상 전입신고는 아무나 할 수 있다. 주민센터에 가서 임대차 계약서를 보여주고 전입신고만 하면 된다.

집주인에게 알리지 않아도 전입할 수 있고, 전입신고가 된다고 해서 집주인에게 연락이 가는 것도 없다. 빈틈이 너무 많은 것이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나 몰래 전입신고’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주민등록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통과시켰다.


시행령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전입신고 때 전입자의 확인 의무화 ▲전입신고 때 신분 확인 강화 ▲주소 변경 사실 통보 서비스 신설 ▲전입세대 확인서 개선 등이다. 이로써 ‘나 몰래 전입신고’ 방지를 위해 전입신고 때 전입자 확인을 의무화됐다.

기존에는 전입신고 시 ‘전입하려는 곳의 세대주’가 전입 당사자의 서명이 없더라도 ‘이전 거주지의 세대주’의 서명만으로 신고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전 세대주의 서명만을 받고 전입자를 다른 곳으로 몰래 전입신고한 뒤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전세 사기 사례까지 발생한 바 있다. 앞으로는 현 세대주가 전입신고할 때는 반드시 전입 당사자의 서명을 받도록 해 전입자의 확인 없이는 전입신고를 할 수 없게 됐다.

또, 전입자의 신분 확인이 강화돼 현 세대주를 포함한 전입자 모두의 신분증 원본을 제시해야 한다. 기존에는 전입 신고자에 대해서만 신분증 확인을 했는데, 앞으로는 현 세대주가 신고하는 경우 전입자의 신분증 원본을 제시해야 한다.

집주인 친척이 몰래 위장 전입
“보증금 쉽게 안 준다” 협박도

집주인이 현재 세입자 몰래 다른 집으로의 전입을 원천적으로 막은 셈이다. 반대로 집주인 몰래 다른 전입신고로 들어와 있는지의 여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다행히 주민센터서 ‘주민등록말소’ 제도를 이용해서 주소 말소를 시키면 된다. 보통은 세입자가 이사가면서 주소지 이전을 하지 않는 경우에 이용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모르는 사람이 전입신고가 돼있다는 것은 보통 우편물을 통해 알게 된다. B씨는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 중이었는데, 임대인이 한번 바뀌었다. 이 임대인은 기존 임대인과 행동이 많이 달라서 특이하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임대인이 바뀐 뒤 B씨 집으로 이상한 우편물이 발송되기 시작했다. 미납요금 통지서나 법원 안내문 등이었다. 이를 수상히 여겼던 B씨가 인근 주민센터를 찾아 전입세대 열람을 신청해 보니, 전혀 모르는 사람이 B씨 아파트로 전입이 돼있었다. 

평수에 따라서 두 명이 세대주인 집도 있지만, B씨가 거주 중인 아파트는 한 명만 가능한 집이었다. 전세 기간도 한참 남아 있었다. 주민센터도 해당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이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전입신고를 해준 것이었다. 세입자 몰래 위장전입한 것인데, B씨는 이렇게 몰래 전입신고가 가능하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B씨가 임대인에게 성명불상의 외부인이 전입세대로 올라가 있는지 묻자, 임대인은 “입주한 사람이 2명일 수도 있다”고 황당한 말을 했다.

전입신고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임대인의 친척이었다. B씨가 임대인에게 “이 집에 들어와 있는 사람을 전출시켜 달라”고 요구하자, 임대인은 오히려 화를 냈다. 그는 “세입자가 2명이어도 상관없다. 집 주인이 문제가 없다는데 무슨 상관이냐? 왜 이렇게 까탈스럽게 구느냐. 집 나갈 때 편안하게 나가는 건 바라지도 말라”고 협박까지 했다.

그러면서 임대인은 끝까지 B씨에게 위장전입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모르는
우편물

물론, B씨가 직접 전출시키는 방법은 있다. 주민센터에 연락해서 해당 전입자가 실거주하지 않는다고 알리면 확인 과정을 통해 등록된 주소를 말소시켜 준다. 신문고나 해당 부서에 신고해도 된다. 하지만 임대인이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주지 않는다”고 협박까지 하니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B씨는 “알아 보니 집주인이 집을 팔려면 실거주를 몇 년 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안 그러면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고 했다. 본인이 이득을 보려고 그렇게 한 것이고 차라리 설명이라도 제대로 하면 되는데, 그러지 않으니 화가 난다”고 하소연했다.

그렇다고 전입신고 소멸이 쉬운 건 아니다. 현행 규정에 따라 몰래 신고된 전입자에게 거주지 불명 신고로 구청이 직권말소할 수도 있다. 구청은 해당 전입자에게 통보하고 통보를 받았음에도 불이행 시 한 달 후 현장 조사를 거쳐 거주가 확인되지 않으면 직권말소하는 절차를 거친다.

문제는 직권말소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몰래 전입한 전입자가 통보를 받지 않을 경우, 시간은 한없이 소요되는데, 길면 4~6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실거주자가 있는 집에 전입신고해도 집주인 또는 실거주자에게 통보하지 않고, 특별한 서류를 떼지 않는 한 인지할 수도 없다는 점은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집주인이나 세입자도 모른 채, 장기간 살고 있는 사람이 많다. 특히 몰래 전입은 아파트보다 빌라서 많이 목격된다. 건축물대장, 집합건물 등기부등본과 같은 공부상 지하층이나 반지하층은 지하로 표기되지만 실제 빌라는 지하 또는 반지하 층은 1층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탓이다.

이런 경우 지하 1층 세입자가 공부상에 기록된 101호로 전입신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즉 단순 실수로 인한 몰래 전입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몰래 전입에 관용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세입자 보호 때문이다. 집주인이 부동산투기 등을 목적으로 세입자의 전입신고를 막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미전입신고 시 해당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게 되면, 세입자들은 대항력을 발휘할 수가 없어진다. 실제 오피스텔 같은 비주택 주거 상품의 경우, 주택 수 산정 회피나 세금 회피를 위해 집주인들이 계약 시 특약사항을 작성해 전입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멸도
쉽지 않아

임대인과 임차인이 바로 전입신고가 가능한 고시원과 원룸에 거주하지 않은 채로 전입신고하는 이른바 ‘계획적 위장전입’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고시원 등 저렴한 원룸 매물이 주로 올라오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비거주 전입신고’라고 검색하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물이 올라온다.

해당 글에는 “풀옵션 원룸텔이다. 3개 지하철 라인과 대중교통이 있어 엄청 편리하다. 무보증에 계약 기간이 자유롭다. 단기도 가능하다. 모든 요금이 포함돼있고, 방 크기에 따라 45만~65만원이다. 장기 거주 시 할인 혜택이 있고, 주차도 가능하다”고 안내돼있다. 

이어 “모든 방은 창문이 다 있어 햇빛이 잘 들어온다. 방과 욕실은 개별 공간, 주방과 세탁실은 공용이다. 출장이나 교육으로 방이 필요하면 연락 달라. 거주하지 않아도 전입신고가 가능하다”고도 설명했다.

서울·수도권서 고시원이나 원룸에 위장전입을 시도하는 목적은 대부분 새 아파트 청약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서울의 경우 1년 이상 거주해야 당해 지역 1순위 청약 자격이 주어지는데, 이 같은 거주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비거주 전입신고가 가능한 방을 찾는 수요자들은 하나같이 ‘1년 단위’ 계약을 요구한다. 이런 수요에 맞춰 “비거주 전입신고가 가능하니 언제든 문의 달라”며 홍보하는 업체들도 있다. 어차피 원룸이나 고시원을 주로 이용하는 계층은 대학생이나 고시생들이다. 이들은 전입신고 비율이 매우 적어 집주인 입장에선 전입신고비를 챙기는 이득을 보는 셈이다.

보통 월세는 2만~5만원 정도로 책정하며, 6개월이나 1년 단위 선납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같은 위장전입 수요를 노린 ‘먹튀’ 사기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1년 월세 계약금이 20만~30만원 선에 불과해 계좌로 계약금을 바로 송금하는 위장전입자들이 많은데, 집주인들이 돈만 챙기고 연락을 끊는 식이다.

원룸·고시원 ‘비거주 신고’
“실거주자에게 사실 통보해야”

실제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비거주 전입신고가 된다고 해서 집주인에게 1년 치 월세를 송금했는데, 당초 전입신고가 안되는 방인데다가 대포폰을 사용하는 사람이라 연락이 끊어져 신고할 수 없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위장전입의 발각 가능성은 없을까? 이에 대해 서울 종각역 인근의 한 고시원 관계자는 “전입신고 시 정확한 호수를 적지 않아도 된다. 관할구청서 ‘해당 세입자가 실제로 거주하는 게 맞느냐’는 전화에 ○○호에 살고 있다고만 대답하면 넘어갈 만큼 검증이 허술한 편”이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구청서 직접 위장전입 조사를 나와도 경찰을 대동하거나 큰 사건·사고가 나지 않는 한 방 문을 마음대로 열 수 없어 위장전입자의 실거주 여부를 파악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신용불량자가 은행 등으로부터 빚 독촉을 피하기 위해 주소지를 엉뚱한 곳으로 옮기는 사례도 있다. 이 때문에 엉뚱한 가정에 대금납부 독촉장, 법원 압류장 등이 날아들면서 이웃으로부터 신용불량자로 오인받는 등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회사원 C씨는 “지난 3월 말부터 은행, 새마을금고 등 10여곳으로부터 온 각종 독촉장이 아파트 우편함에 쌓여 이웃들로부터 신용불량자로 오인받는 고충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양육비를 주지 않으려고 위장전입하는 경우도 있다. 부부는 이혼 후 아이 양육자에게 양육비를 지급해야 한다. 상당수의 이혼 판결문에는 ‘전 배우자에게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적혀 있지만 사실상 아무 효력이 없다. 양육비를 받기 위해선 양육비 이행명령을 신청해야 하고, 그럼에도 세 차례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감치명령을 신청해야 한다.

그러나 위장전입 등 편법을 통해 감치명령을 피하는 이들이 많고, 감치명령 이후에도 1년 동안 양육비를 받지 못할 경우, 그제서야 형사 고소가 가능하다.

양육비를 지급해야 하는 부모가 양육비를 주지 않기 위해 위장전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단, 형사 고소를 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양육자는 양육비 지급 상대가 어디로 위장전입했는지 찾기도 힘든 실정이다.

세입자
보호는?

이같이 세입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집주인도 아닌 실거주자가 모르는 전입신고가 이뤄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나온다. 아울러 과거 노무현정부서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응하기 위해 위장전입을 엄격히 제한한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위장전입이 지속해서 이뤄지고 있는 것은 정부 방침과 배치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세입자 보호 목적이 있다고 해도 실거주자도 모르는 전입이 이뤄진다면 이는 제대로 된 주민등록제도가 아닐 것”이라며 “최소한 실거주자 전입 사실을 통보하고 적절한 전입인지를 확인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alswn@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