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급발진 전문’ 자동차 명장의 두 얼굴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4.23 11:29:01
  • 호수 14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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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름 팔아 투자금 ‘꿀꺽’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유명 자동차 명장 A씨가 허위광고, 투자금 횡령 등으로 자동차 업계에 오명을 새기고 있다. ‘대한민국 자동차 명장’으로 알려진 그는 급발진 사고를 판독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다 어느새 명장의 품격은 상품화되기 시작했다. 최근 A씨는 실효성이 불투명한 자동차 제품을 홍보해주겠다며 수억원대의 광고비를 챙기기도 했다.

A씨를 둘러싼 비판의 목소리는 곳곳서 터져 나왔다. 그는 2020년 말 사업가 B씨에게 “불에 타지 않는 워셔액을 개발해 사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시중에 판매되는 에탄올 워셔액은 자동차 사고 발생 시 화재를 키우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기에 대체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앞서 2017년 A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워셔액에 불이 붙으면 안 되는데 너무 잘 붙는다”며 에탄올 워셔액 일부 제품이 화재에 취약하다고 비판했던 바 있다.

‘노파이어’
감감무소식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A씨는 불이 붙지 않는 워셔액인 이른바, ‘노파이어 워셔액’을 개발 중이다. A씨 측이 성능 실험 중인 ‘노파이어 워셔액’은 영하 25도서 얼지 않아야 하는 허가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을 뿐더러, 불이 붙으면서 생산화에 어려움을 겪는 모양새다.

그러나 A씨는 지인들에게 실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노파이어 워셔액’ 등으로 사업을 하자며 투자금을 유치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2020년 8월경 A씨는 동업자 B씨에게 “국토교통부서 좋은 제품이 있으면 법안을 개정해 사용하도록 제도를 만들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며 사업 참여를 제안했다. 그는 “불이 붙지 않는 워셔액, 자동차 엔진오일 첨가제, 미션 오일 첨가제 등을 판매하는 유통회사를 설립하자”고 말했다.


A씨는 사업자금 유치를 위해 “손해에 따른 피해액은 책임지겠다”며 투자자들에게 서약서를 쓰기도 했다. 이를 받아들인 B씨는 지인 두 명에게 각각 1억원씩을 받았다. 투자유치 끝에 사무실 건축비 등을 포함해 15억6500만원가량을 투자받은 A씨는 2020년 8월경 ㈜카로마니를 설립했다.

제보자에 따르면 A씨는 투자유치 당시 약속했던 워셔액 홍보를 단 1회도 하지 않았다. A씨는 자동차 명장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며 투자자들과 광고 협약 계약도 체결했다. 불이 붙고, 추우면 얼어버리는 ‘노파이어 워셔액’은 실효성이 검증되지 않아 홍보할 제품조차 없던 것이다.

그러다 설립 1년 만에 A씨가 투자금 일부를 횡령한 사실 등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경영 악화로 이어졌다. 2021년 4월경 A씨는 경영진의 승인 없이 수천만원의 공금을 유용했다는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품 양산 실패와 자잿값 미결제 등 5억원 이상의 채무가 발생하면서 ㈜카로마니는 지난 1월23일 파산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아직도 A씨에게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불 붙지 않는 워셔액? 투자금만 낭비
실험 결과, 불 붙고 꽁꽁 어는 워셔액

<일요시사>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A씨는 ㈜카로마니 계좌에 연결된 법인체크카드를 보관하던 중, 2020년 9월15일경 부하 직원에게 전달해 현금 300만원을 인출해 오라고 했다. A씨는 이 돈을 자신이 매입한 토지 잔금의 이자로 지급해 개인적으로 사용했고, 2020년 10월23일까지 총 5회에 걸쳐 3870만원을 임의로 사용했다.

혐의가 인정되면서 2022년 6월2일 인천지방법원은 업무상횡령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앞서 그해 3월17일 ㈜카로마니 대표 B씨는 A씨와 회사 통장관리를 총괄하는 이사 등에 대해 공금유용 혐의로 인천논현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B씨는 고소장을 통해 “자동차 명장 A씨와 이사 C씨는 회사의 지출결의 및 이사결의 등 회사의 공금 사용에 대한 승인을 받지 않고 3870만원을 임의로 출금했다”고 밝혔다. 이어 “자동차 명장 A씨는 회사의 공적 업무와 무관하게 인출한 돈을 개인적으로 사용해 회사에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A씨는 “개인적으로 회사의 돈을 사용했다는 주장은 말도 안되는 내용이다. 그 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게 아니고 연구개발비로 지출한 것”이라며 “경찰에 해명자료를 제출했다”고 반박했다.

현재 A씨와 C씨는 인천서 차량기술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이들은 <일요시사>와 통화서 “불이 붙지 않는 워셔액은 아직 연구 중”이라며 “불이 붙긴 하지만 금방 꺼지기 때문에 화재 위험이 적어 효과가 없다고 볼 순 없다”고 말했다.

A씨의 몰지각한 행위는 다양한 곳에서 일어났다. 그는 요소수 충전소를 운영하는 지인 D씨에게 수천만원을 빌려달라고 한 뒤 “가게를 홍보해주겠다”며 광고 계약을 제안했다. D씨에 따르면 A씨는 2021년 초부터 1700만원, 3900만원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계약 불이행
‘명장 훼손’

그러나 A씨는 한 푼도 갚지 않은 채 “돈을 갚을 여력이 안되니, 내 얼굴이 들어간 간판을 쓸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D씨는 A씨의 사진이 들어간 ‘A 명장의 요소수 충전소’라는 간판을 사용하기 위해 2021년 5월13일 A씨의 인천 사무실서 사용 계약을 체결했다.

D씨는 2021년 6월부터 경기도 평택시에 위치한 요소수 충전소에 A씨의 사진과 이름을 걸고 영업을 재개했다. 

이후 A씨는 D씨의 경쟁업체와 간판 사용계약을 체결하면서 영업에 피해도 입힌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2022년 9월경, 성주군서 요소수를 생산하는 사업자 E씨는 D씨를 찾아와 ‘A 명장의 요소수’ 상표 사용을 희망했다. 그러면서 2022년 12월부터 D씨에게 매출 3%를 지급하기로 계약했다.

그러나 E씨는 약 20만원 정도를 2개월만 지급하고 지급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초 E씨는 요소수 충전소가 아닌 요소수를 생산해서 판매하는 유통업자였다. E씨는 ‘A 명장 요소수’를 인터넷 쇼핑몰서 팔았고, 주유소에 전단지 광고를 배포하는 등 A씨의 유명세를 활용해 매출을 올렸다.

이후 지난해 4월경, E씨는 A씨와 별도의 상표계약을 체결하고 요소수 충전소를 개업했다. 문제는 E씨가 개업한 ‘A 명장의 요소수 충전소’가 D씨의 충전소와 불과 400m 거리였다는 점이다. 


내연녀에 
이별 선물?

결과적으로 E씨는 D씨의 충전소와 같은 차선과 방향에 같은 이름으로 업장을 세우고, 가격마저 D씨와 동일한 상태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D씨는 “A씨와 E씨로 인한 영업권 침해, 손실, 이중계약에 대한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D씨와의 채무 관계를 묻자 A씨는 “내가 재산이 100억이 넘는데 고작 몇 천만원이 없어서 손을 벌리겠냐”며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A씨의 어지러운 ‘돈 문제’는 언론에 보도될 만큼 유명하다. 그는 과거 내연녀에게 “빌려간 돈을 갚지 않는다”며 허위 사실로 형사 고소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2017년 11월13일, 인천지법 형사3단독 이동기 판사는 무고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당시 해당 사건은 <연합뉴스> 등에 보도돼 이목을 끌었다.

A씨는 2016년 9월8일 자신의 자동차 정비 사무실서 내연녀가 1000만원을 빌렸는데 갚지 않는다는 내용의 허위고소장을 작성해 수사기관에 제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조사 결과 A씨는 2015년 4월부터 내연녀와 오랜 기간 연인관계를 유지한 대가 등 위자료 명목으로 내연녀가 5000만원을 요구하자 “그렇게 하겠다”며 약속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5개월 뒤인 같은 해 9월 먼저 1000만원을 내연녀에게 줬으나, 나머지 4000만원은 지급하지 않았다.


배신감을 느낀 내연녀가 A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자 허위 사실로 맞고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판사는 “무고 범행은 피해자를 해할 뿐 아니라 국가의 형벌권 행사를 방해하는 중대한 범죄인 만큼, 엄한 처벌을 해야 한다”며 “피해자는 공탁금 수령을 거절하며 피고인의 엄한 처벌을 진정했다”고 판시했다.

횡령 혐의 과징금 300만원 추징
광고 모델료만 수억원

그러나 “피고인이 뒤늦게나마 범행을 시인하며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오랜 기간 자동차 정비업에 종사하며 산업훈장 등을 받았고 자동차정비 직종의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돼 다양한 사회활동으로 기여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제보자에 따르면 A씨는 2004년부터 내연녀와 교제를 이어오다가 2012년 다른 여성과 결혼했다. A씨는 결혼한 사실을 숨기고도 관계를 지속했다. 뒤늦게 알게 된 내연녀가 격분하자 A씨는 5000만원의 위자료를 준다고 구두 약속 후 1000만원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A씨는 해당 사건에 대해 “내연녀가 아니고 결혼할 여성이 생겨서 좋게 떠나보내기 위해 준 것”이라며 “아내가 알면 힘드니까 그동안 함구해왔다”고 밝혔다.

한편, A씨는 본인이 1999년에 세계 최초로 급발진 원인을 규명해냈다고 주장하면서 대중의 신뢰를 받았다. 실제로 공식적인 세계 최초의 규명 사례는 토요타 리콜 사태 당시 BARR그룹의 결함분석보고서로 뒤늦게 밝혀졌다.

그의 주장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이유는 재연 실험에 성공했을 뿐, 절차와 그 결과를 논문이나 보고서 등의 형태로 제대로 문서화, 체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BARR그룹의 보고서가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ECU 오류의 원인을 명백히 밝혀내고 실험 과정과 그 결과를 명백하게 기록해 교차 검증할 기회를 만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급발진 이슈가 잠잠해지자 최근 A씨는 연비효율 상승 장치 이른바, ‘자동차 와류기’ 실험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다. A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엔진 출력을 높이고 매연을 저감한다는 와류기 제품 5개를 나열하면서 효과 테스트에 나서기도 했다. 

급발진 전문
와류기 논란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와류기는 공기 흡입량과 배출량을 조절해주는 기능을 한다고 소개되고 있다. 이 과정서 완전연소로 인해 출력이 상승하고, 배기가스의 원활한 배출로 인한 매연감소 효과가 나타난다는 게 와류기 제조사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A씨가 주도한 5개 와류기 제조사 비교실험에 동참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실험 과정이 굉장히 비전문적”이라며 “와류기를 설치하기 전에 엑셀 페달을 강하게 밟고, 설치 후엔 살살 밟으면서 연비를 조작한 엉터리 실험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A씨는 명성을 이용한 과장광고를 통해 돈 버느라 급급하다”며 “주변인들의 채무 관계부터 정리하고 명장으로서의 명예를 회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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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