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0주기> 풀리지 않은 사찰 의혹

그날의 진실은 그냥 그대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4·16 세월호 참사가 어느덧 10주기를 맞았다. 그간 법과 제도에 변화가 생겼으나 ‘정확한 진실’은 드러난 바 없다. 책임자 처벌은 민간에만 집중됐다.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의혹도 조용한 건 마찬가지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기무사 간부들 대부분은 윤석열정부서 사면됐다. 심지어 복권된 인사도 있다. 윤정부가 앞장서서 면죄부를 던져준 꼴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형사 책임을 묻는 사법부 판단은 지난해 모두 마무리됐다.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유죄가 인정된 정부 측 관계자는 단 한 명이다. 유가족 사찰 의혹을 받는 기무사 간부들도 유죄를 받았다. 그러나 윤석열정부가 사면·복권 처리하면서 유족들과 시민단체가 함께 노력한 10년의 세월은 수포로 돌아갔다.

정보당국 공개
안 하는 이유

검찰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이하 특수단, 단장 임관혁 현 대전고검장)은 2020년부터 1년 넘게 세월호 참사를 수사했다. 해경 지휘부의 구조 실패와 박근혜정부 청와대의 진상규명 방해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 했으나 사실상 실패했다. 10여개가 넘는 의혹 사건들을 무혐의 처분한 것이다.

인명구조에 실패한 해경을 수사한 검찰에 외압을 행사한 의혹을 받는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해서도 특수단은 “(외압)지시가 있었는지 여부를 단정하기 어렵다”며 ‘혐의 없음’ 결론을 내렸다. 참사 당일 발견 후 신속하게 이송되지 않아 사망했다는 고 임경빈군 구조 방기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은 사실이 아니라고 봤다.

특수단은 크게 ▲세월호 침몰 원인 ▲해경 구조 책임 ▲진상규명 방해 ▲증거 조작 은폐 ▲정보기관 사찰 등으로 사건 유형을 나눠 수사해 왔는데, 이와 관련된 17가지 의혹 사건 중 12개 사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법무부의 수사외압 의혹 사건도 여기에 포함됐다. 해당 사건은 2014년 7월 광주지검이 세월호 사건 현장서 인명 구조에 실패한 목포해경 소속 김경일 전 해경123 정장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려 하자, 법무부가 ‘해당 혐의는 빼고 영장을 청구하라’는 취지로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골자였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황 전 대표는 “법무부 검찰국으로부터 123정장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에 대해 법리검토와 보완조사가 필요하다는 보고를 들었을 뿐, 해당 혐의가 구속영장 청구 과정서 제외된 경위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다”고 해명했다.

우 전 수석도 “청와대 민정수석실서 법무부나 대검 등에 의견을 제시한 게 없었다”고 주장했다.

특수단은 여론의 공분을 샀던 임군 구조 방기 의혹도 상당 부분 사실이 아니라고 봤다. 이 의혹은 참사 당일 구조된 임군이 생존해 있었음에도, 해경이 헬기를 이용해 신속히 병원으로 옮기는 대신 함정으로 ‘지연 이송’해 임군을 사실상 숨지게 했다는 내용이다.

특수단 수사 불구 10개 넘는 의혹 무혐의
청와대 직접 개입 물적 증거는 확보 못해

특수단은 “해경 지휘부의 지시, 승인에 따라 임군이 헬기가 아닌 일반 함정으로 병원에 이송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임군이 구조 당시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임군을 처음 발견한 해경이 ‘구조 당시 얼굴은 물속에 잠겨있었고, 몸이 이미 굳어있었다’고 진술한 점, 발견 당시 해경 문자 대화방 등에서 피해자를 ‘시신’으로 지칭한 점 등을 그 근거로 들었다.

참사 후 기무사가 세월호 유족을 사찰했다는 의혹도 무혐의 처분됐다. 특수단은 해당 의혹으로 유가족들에게 고소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기무사로부터 세월호 유가족들의 동향이 일부 기재된 보고서를 받아본 사실은 인정됐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청와대와 국방부서 세월호 유가족 사찰을 지시, 논의하거나 보고받은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피의자들에게 대면 보고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사망해 구체적인 보고, 지시 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 전 비서실장은 참사 관련 감사원 감사를 중단시키는 등 무마 행위를 했다는 의혹, 참사 인지 시점을 거짓으로 밝혔다는 의혹 등도 받았지만, 모두 무혐의로 결론 났다. 국정원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의혹도 마찬가지다.

특수단이 기무사 간부들을 무혐의 처분했으나 대부분 1심서 직권남용죄가 인정됐다. 법원은 이 전 사령관이 불법 사찰을 지시했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특수단이 무혐의를 내린 것은 사찰 전반이 아니라 직권남용죄와 별도인 권리행사방해죄 등의 부분이다.

미심쩍은
‘무혐의’

법조계에 따르면 기무사에 설치된 ‘세월호 TF’라는 사찰 조직을 지휘·감독한 혐의(직권남용)로 재판에 넘겨진 기무사 간부 4명은 모두 1심서 유죄를 받았다. 소강원 전 기무사 610기무부대장, 김병철 전 기무사 310부대장의 1심 판결문을 보면,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2019년 12월 소 전 부대장에게 징역 1년 실형을, 김 전 부대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보통군사법원은 소 전 부대장 등에게 유족 사찰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손정수 전 기무사1처장(세월호 TF장), 박태규 전 기무사 1처1차장(세월호 TF 현장지원팀장)에게도 유죄를 선고했다. 이 전 사령관에게 유족 사찰을 지시받은 김대열 전 기무사 참모장은 지영관 전 기무사 참모장과 함께 항소심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에 사실오인·법리 오해가 없고, 양형 요소도 1심서 충분히 고려해 당초 선고된 형량이 적정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방어권 보장 등을 위해 보석을 취소하지는 않겠다”며 두 사람에 대한 법정구속을 면제했다. 이들은 2020년 10월 1심 선고 직후 법정구속된 뒤 올해 3월 항소심 도중 보석으로 석방됐다.

이들은 기무사 참모장 시절 휘하 부대원들이 세월호 유족 등 민간인의 정치적 성향과 경제적 형편을 수집하도록 지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기무사는 관련법에 따라 군사와 관련 없는 정보를 수집할 수 없다.

김 전 참모장은 경찰서 제공된 정보를 재향군인회 등에 전달해 집회 장소를 선점하거나 이른바 ‘맞불집회’를 개최하도록 한 혐의도 적용됐다. 지 전 참모장은 사드(THAAD) 배치에 찬성하고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여론을 조성하도록 기무사를 지휘하고 예산 3000만원을 지원한 혐의가 있다.

“사찰 행위
존재했다”

특수단이 무혐의 처분한 것은 1심이 유죄판단을 내린 직권남용죄가 아니라 유족이 추가로 고소한 권리행사방해죄 등이다.

앞서 서울중앙지검·국방부 보통검찰부는 2018년 6월 기무사 간부들이 부대원들에게 유족 사찰이라는 의무 없는 일을 지시했다고 보고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했다. 같은 해 12월 이 전 사령관이 수사 중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내려졌다. 이 전 사령관에게 사찰 지시를 받은 김 전 참모장 등 5명만 재판에 넘겨져 4명은 1심서 유죄를 받았다.


재판부는 “사령관 이재수는 부대원들에게 세월호 TF를 구성해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을 지시했고, 이에 따라 2014년 4월28일부터 참모장 김대열을 TF장으로 한 세월호 TF가 운영되기 시작했다”며 “세월호 TF에서는 수시로 예하 기무부대를 상대로 실종자 가족들의 분위기나 특이 여론 등을 추가로 파악해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고 했다.

또 “(기무사 사찰 등이)실종자 가족들의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을 초래했다”고 판시했다.

윤석열정부는 기무사 간부들의 혐의가 인정됐음에도 설 명절 특별사면 때 김 전 참모장과 지 전 참모장을 봐줬다. 소장(전 기무사 참모장)은 잔형 집행정지와 더불어 복권 처분을 받았다. 소 전 부대장은 지난해 8월 광복절 특사 당시 사면됐는데, 복권까지 됐다.

정부는 이들에 대한 사면·복권 이유로 “과거 잘못된 관행에 따른 직무수행으로 처벌된 전직 주요 공직자 등을 사면함으로써 갈등 극복과 화해를 통한 국민통합을 도모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기무사 간부들 혐의 인정…정부는 봐주기
논란 중심 국정원 수집 정보공개 비협조?

국정원은 유족 사찰 의혹과 관련해 문건 공개를 미루고 있다. 앞서 지난 2월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서울 중구 세월호 기억공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무사가 자행한 세월호 참사 피해자에 대한 사찰은 직권남용으로 기소돼 6인 이상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 사찰은 국정원의 비협조로 제대로 된 수사도, 조사도 못한 채 여전히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며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는 2022년 9월부터 총 3년6개월의 세월호 참사 조사활동 결과를 종합한 보고서와 백서를 발행하면서 공식적인 활동을 종료했다.

당시 사참위 보고서에 따르면, 국정원은 세월호 참사 발생 당일인 2014년 4월16일부터 2017년까지 최소 3년 이상 피해 가족들과 촛불을 드는 시민들과 시민사회단체, 네티즌과 언론을 감시·사찰해 동향을 파악해 보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독립적인 조사 기구인 사참위 조사에 국정원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수집한 68만건의 자료 중 겨우 2000여건만 제공하는 등 제대로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고, 해군은 아예 자료를 제공하지도 않아 사참위 조사활동을 방해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이 준 권력과 권한으로 오히려 국민을 감시하고 미행하고 사찰하는 국가의 정보기관들은 정권 유지와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권력의 하수인이 되는 이런 불법적인 행위를 중단하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라”며 “지금까지 불법적으로 수집한 정보를 당사자에게 즉각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정부가
면죄부

오민애 민변 세월호 대응 TF 변호사는 “국정원 개혁위서도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시민들에 대한 사찰이 직무 범위를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징계 여부를 검토하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권고했지만,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없다”며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와 전 특조위원과 조사관, 시민사회 단체 등이 당사자가 돼 국정원서 수집한 개인 관련 혹은 단체 관련 정보와 생산하거나 보고받은 정보의 공개를 청구한다”고 밝혔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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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