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가 다시 꺼낸 신한은행 채용 의혹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3.14 11:07:18
  • 호수 14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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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야무야’ 모르쇠 묻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김영주 국회부의장의 ‘신한은행 채용 비리 사태’ 연루 의혹이 재조명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현역의원 평가서 하위 20%에 든 김 부의장이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옮겨가면서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김 부의장을 향해 “줄 서면 다 취업되는 거냐”고 꼬집었다. 사건의 핵심인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2022년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이지만, 석연찮다는 눈초리다.

지난 3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김영주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로 한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국, 김 부의장이 신한은행 채용 비리 연루 의혹에 관한 명쾌한 소명을 내놓지 못하면서 민주당서 컷오프 수순을 밟았다. 김 부의장은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은 적이 없고 ‘소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컷오프된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특이자 자녀 
리스트 관리

신한은행 채용 비리 사건은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윤승욱 전 신한은행 부행장을 비롯한 인사부장들이 2013년 상반기부터 2016년 하반기까지 총 8회에 걸쳐 반기별로 시행된 신입사원 채용 과정서 특혜를 제공하거나 점수를 임의로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검찰은 조 회장과 임원들이 면접위원의 공정한 심사 업무를 방해했다며 업무방해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2018년 10월 재판에 넘겼다. 양벌규정에 따라 신한은행 법인도 함께 기소됐다.

취재를 종합하면, 신한은행서 외부청탁 지원자와 신한은행 최고 임원·부서장 자녀 특별관리 명단이 발견됐다. 남녀 합격자 성비를 맞추기 위해 154명의 서류면접점수가 조작되기도 했다. 


서울동부지검 주진우 당시 부장검사는 조 회장 외 임원들이 면접위원의 공정하게 심사할 업무를 방해했다며 업무방해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손주철)는 2013년~2016년 신한은행 신입 지원자 중 26명이 채용 과정서 불공정한 혜택을 받았다고 판단했다. 26명 중 합격한 부정 입사자는 22명이다. 판결문에 언급된 부정 입사자들 중에는 김 부의장의 자녀도 포함돼있어 공분을 샀다.

신한은행은 김 부의장을 포함한 국회의원, 금융감독원 임직원, 고액 거래처, 신한은행 계열사 임직원 등이 포함된 이른바, ‘특이자 및 임직원 자녀’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다. ‘특이자’는 국회의원, 유력 재력가 등 신한은행 영업 및 감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집 자녀, ‘임직원 자녀’는 신한금융지주 부서장 이상의 자녀를 뜻한다. 

이 관리 리스트는 지원자별 경로, 비고 등을 나눠 작성됐다. ‘경로’란에는 특이자에 관한 전형 결과 등을 알려줘야 하는 사람을, ‘비고’란에는 특이자 및 임직원 자녀에 대해 취합한 정보를 적었다.

‘특이자 및 임직원 자녀’ 리스트 관리
취업난 허덕이는 청년, 박탈감 안겨

검찰이 압수수색한 2013~2015년 신한은행 내부 자료에 따르면 김 부의장(당시 민주당)과 정우택·김재경(당시 자유한국당)이 채용 청탁한 정황이 드러났다. 당시 김 부의장은 정무위원회 야당 간사, 정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 김 의원은 정무위원회 위원이었다.

자료에는 ‘2015년 上(상반기) 신입행원 특이자’란 제목의 문건이 있다. ‘비고’란에는 ‘thru 김영주, 정우택, 김재경 의원’이라 적혀있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thru’는 채용을 처음 부탁한 인물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먼저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김 부의장은 2014년 상반기 신입사원 채용 때 자신의 지역구인 정선희 영등포 구의원의 자녀인 오모씨의 채용을 청탁했다. 오씨는 1차 면접서 탈락 대상이었지만 ‘별도의 REVIEW(재검토)’ 절차를 거쳐 부정 합격했다.

오씨는 1차 실무자 면접 결과 ‘논리력, 언변 다소 부족, 질문의 의도, 상대방 의견의 핵심을 파악 못하는 느낌, 발표 시 설득력·논리력 부족’으로 탈락 수준인 DC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합격 지시가 내려오면서 면접 결과와 달리 합격했다.

2014년 상반기 신입사원 채용은 그해 4월29일부터 시작됐는데, 김 부의장은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의 정무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었다.

또, 압수수색 문건에는 정 의원이 당시 신한은행 고위층에게 김모씨의 채용을 청탁한 것으로 나와 있다. 신한은행의 2015년 상반기 신입사원 모집 일정은 2015년 4월15일부터 2015년 7월9일까지 진행됐는데, 당시 정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2014년 6월~2016년 5월)을 맡고 있었다. 

‘방탄 은행’
김 리스크

김 의원도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으로 있을 당시(2012년 7월~2014년 5월)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K 신문사 사주의 자녀에 대한 채용을 청탁했다. 2013년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 과정서 정모씨의 합격을 청탁했다. 

당시 신한은행은 학점과 나이 등을 기준으로 ‘필터링 컷(Filtering Cut)’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정씨는 연령 필터링 컷에 해당해 탈락했지만 청탁받은 지원자라는 이유로 특혜를 받아 부정 합격했다. 또 1차 실무자 면접 결과 DD 등급으로 탈락 대상이었지만, 평가자 몰래 등급을 임의 상향시켜 부정 합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전부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김 부의장은 “내가 은행 출신이긴 하지만 신한은행과는 전혀 친분이 없다. (공소장에)내 이름이 올라가 있다면 누군가 나를 사칭하고 다닌 것 아닌가 싶다”며 “채용을 청탁한 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정 의원과 김 의원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일관되게 답했다.

이밖에 은행권 관리·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 임직원도 판결문에 나왔다. 1심 판결문 기준, 금융감독원 기획조정국장 김모씨, 대외협력팀장 박모씨, 부원장 조모씨, 비서실장 이모씨 등이 부정 입사자와 연루됐다. 신한은행 채용 비리 사건은 인사담당자 등 실무진만 형사 책임을 지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재판부가 조 회장의 직접적 관여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이들에게 유죄판결을 했다. 조 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윤 전 부행장과 인사부장 김모씨는 각각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과 벌금 200만원을 확정받았다. 다른 기간 인사부장으로 일한 이모씨에게도 벌금 15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이 확정됐다.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조카손자, 금융감독원 임원 아들 등 3명을 채용하기 위해 면접위원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를 인정한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이로 인해 다른 지원자가 피해를 보지는 않았던 점 등을 고려해 조 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나머지 청탁 의혹 등에 대해서는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로 판결했다.

이어진 항소심은 3명의 채용 비리 혐의마저 무죄판결했다. 대법원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022년 6월30일 업무방해·남녀고용평등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조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조 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윤 전 부행장과 인사부장 김모씨는 각각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과 벌금 200만원을 확정받았다.

찜찜한 판결
정치권 비화

다른 기간 인사부장으로 일한 이모씨에게도 벌금 15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이 확정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기업에 헌법상 채용의 자유가 있으며 ▲이들이 상위권 대학 출신에 기본적 스펙을 갖췄고 ▲별도의 채용비리처벌법이 없는 점 등을 무죄로 판단한 이유로 들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일정 수준의 스펙을 갖춘 지원자는 청탁을 받아 채용하더라도 현행법상 문제삼기 어렵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기업의 채용 심사 단계별 재량은 폭넓게 보장돼야 하며 일정 범위서 점수를 보정하는 것은 문제삼을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 또 특이자의 합격 과정서 조 회장이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성비 관련 남녀평등고용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1·2심 모두 “여성에게 불리한 기준을 일관하게 적용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 중 일부 지원자들의 부정합격으로 인한 업무방해 부분 등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고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 자유심증주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2심 판단을 유지했다.

결국, 채용 청탁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사기업의 채용의 자유’ 등을 내세워 무죄 판결한 2심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thru 김영주’ 부탁 의미?
김 “누군가 나를 사칭했다”

이는 동종 채용 비리 사건에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왔던 판례와 배치되는 판결로 해석됐다. 앞서 대법원은 2020년 3월 비슷한 구조의 채용 비리가 문제됐던 ‘우리은행 채용 비리’ 사건서 업무방해 혐의를 인정해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에게 징역 8개월 실형을 확정한 바 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대법원 판결로 권력층의 채용 청탁이 용인되는 근거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앞서 채용 비리 대상자의 입사를 취소한 우리은행의 경우처럼, 채용 비리 연루자의 채용을 취소하도록 요구하는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 회장이 대법원서도 무죄 확정판결을 받자 기득권층의 채용 청탁을 사법부가 용인한 것 아니냐는 거센 비판도 쏟아졌다. 특히, 2017~2018년 고용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김 부의장이 채용 청탁 의혹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논란이 가중됐다. 취업난에 허덕이던 청년들에게 채용 비리는 박탈감을 불러 일으켰다.

김 부의장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와 징계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금융정의연대, 정의당 청년본부 등은 2020년 6월10일 오전 국회 소통관서 ‘국회의원 채용 비리 의혹 진상규명 및 징계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서 김 부의장에 대해 형사처벌과 별개로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날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신한은행 채용 비리 공소장과 판결문에 김영주 의원의 실명이 기재돼있음에도 단 한 번의 검찰 조사도 받지 않은 것은 의아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하승수 변호사도 “(김영주 의원은 당시)정무위원회 간사였기 때문에 금융기관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였다. 검찰이 의지를 갖고 수사하면 업무방해죄 교사범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문제는 검찰이 이 사건에 대해 수사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 공천서 컷오프되고 국민의힘에 입당한 김 부의장은 자신의 채용 청탁 비리 의혹을 부인했다. 앞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3일 “민주당의 평가 기준 중에 채용 비리·음주운전·성비위 등에 해당할 경우 50점 감점을 하게 돼있다. 채용 비리 부분에 대해서 (김 부의장이)소명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50점을 감점하는 바람에 0점 처리됐다고 한다”고 말했다. 

도의적 책임론
무죄면 그만?

김 부의장이 2014년 연루된 신한은행 채용 청탁 비리 의혹에 관해 제대로 소명하지 못해 컷오프됐다는 내용이다.

그러자, 김 부의장은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고 “2014년에 신한은행 채용 비리가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지만 채용 비리와 관련해 경찰조사를 받은 적도 없고 검찰서 연락받은 적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KBS <시사직격>에 제가 마치 연루된 것처럼 기사가 나왔지만 한참 뒤에 보도 관계자들이 와서 사과했다”면서 “이 대표가 내가 채용 비리를 소명 못한 것처럼 얘기했지만 난 소명했다”고 반박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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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