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전’ 민주당 비대위 시나리오

낙마자들의 반란 ‘사방이 적’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던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이 소리 없이 물밑으로 사라졌다. 대통령 부부만 때리던 더불어민주당의 손이 갈 곳을 잃었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는커녕 공천 파열음만 커지는 형국이다. 총선 전 ‘민주당 비대위설’에 또다시 연기가 오르는 이유다.

총선 레이스 초반부터 정부·여당에는 악재만 몰렸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부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승리까지 호재가 이어졌다. 안일했던 탓일까? 총선을 한달 반 앞두고 국민의힘이 각종 승부수를 띄우며 주도권을 당기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반격에 나섰지만, 여의도 담벼락을 넘는 요란한 집안싸움이 발목을 잡는 상황이다.

되든 말든
일단 고!

지난 6일, 정부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계획을 밝혔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고령인구와 상승하는 의료수요에 비춰볼 때 2035년에는 의사가 1만5000명 부족할 것으로 추산한 데 따른 것이다.

의료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필수 의료공백의 원인은 의사 수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무분별하게 의대 정원을 늘린 정부를 규탄하며 대한의사협회는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의료계의 협조를 당부했지만 양측의 갈등은 쉽게 진정되지 않는 모양새다.


지난 22일 정부에 따르면 전공의 대부분이 근무하는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8816명으로 추산된다. 수술이 취소되거나 지연되는 등 차질이 빚어지면서 의료 대란이 현실로 다가왔다.

윤 대통령은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서 현장으로 복귀하라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환자를 돌볼 의무를 저버린 의사’와 ‘국민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정부’ 프레임으로 비춰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지난 3주 동안 윤 대통령의 지지율을 소폭 상승시킨 데 기여했다는 평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이 집어 든 ‘사형 집행 논의’ 카드도 주목을 받는다. 어디까지 논의가 이뤄질지 미지수지만 민감한 주제를 탁자에 올려놨다는 것만으로도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게 한 비대위원장의 설명이다.

한 비대위원장은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을 언급하며 깊게 논의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그는 지난 20일 ‘시민이 안전한 대한민국’ 국민택배 공약을 발표하면서 “우리나라에는 사형제가 있고, 제가 (법무부)장관을 하는 동안 사형시설을 점검했고 사형이 가능한 곳으로 재배치했다”며 “그 자체만으로도 안에서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 그 부분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 책임 있는 사람들이 진지하고 과감한 논의를 해볼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그 부분에 대해 논의하다가 그만뒀다. 법에 따르는 집행도 충분히 고려할 때가 됐고, 그게 우리 사회를 더 안전히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공천으로 두 쪽 난 당심…리더십도 ‘휘청’
‘영장 기각’ ‘미니 총선’ 기세는 어디로?

민주당은 의대 정원을 콕 집어 ‘정치쇼’라고 지적했다. 충분한 논의 없이 총선 전 이목을 끌기 위해 성급하게 나섰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 “민생 국정 문제를 이렇게 전략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권력의 사유화”라고 꼬집었다.


갑론을박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슈적인 측면서 민주당이 뒤처지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지금까지 민주당은 ‘윤정부 심판론’을 내세워 총선을 준비했지만 판세가 뒤집히면서 불리한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을 시작으로 ‘미니 총선’으로 불렸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까지 민주당이 승리를 이끌어내면서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다. 여기에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담은 ‘쌍특검’을 윤 대통령이 거부하고, ‘명품백 수수 논란’까지 터지면서 점차 심판론에 무게가 쏠렸다.

기세를 이어가던 중 공천 문제가 뇌관으로 번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지난 19일 하위 20% 명단이 발표됐고, 비명(비 이재명)계 의원을 배제한 지역구 여론조사가 시행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천 갈등’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것이다.

첫 번째 타자는 민주당서 4선을 지낸 국회부의장인 김영주 의원이다. 김 부의장은 국회 소통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민주당이 저에게 의정활동 하위 20%를 통보했다”며 민주당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공천룰에 따르면 하위 10% 의원은 경선 시 득표율의 30%를, 하위 20% 의원은 20%를 감산하는 페널티를 받는다.

김 부의장은 “지난 4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시민단체, 언론으로부터 우수 국회의원으로 선정될 만큼 성실한 의정활동으로 평가받아 왔다”며 “모멸감을 느낀다. 대체 어떤 근거로 하위 평가됐는지 정량평가, 정성평가 점수를 공개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밖에도 지난 22일 기준 하위권 통보 사실을 밝힌 의원은 김 부의장을 포함해 김한정·박영순·박용진·송갑석·윤영찬 의원 등 6명이다. 이들은 평가 결과를 향해 ‘비명계 공천 학살’이라고 주장하며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터져 버린
공천 화약고

민주당 임혁백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 위원장은 “비명계 공천 학살은 없다”고 일축했다. 아울러 “모든 공천 심사는 저의 책임 하에 이뤄지고 있다”며 “제가 아는 한은 비명계 공천 학살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파장을 일으켰던 ‘윤석열정부 탄생 책임론’ 발언에 대해선 “책임 있는 분은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으냐고 했지, 특정인을 거론하지 않았다”며 “일반적인 이야기고 문재인정권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민주당 원로인 김부겸·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공천 논란에 입을 열었다. 이들은 입장문을 내고 “이재명 대표가 지금의 상황을 바로 잡아야 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김·정 전 총리는 “지금처럼 공천 과정서 당이 사분오열되고 서로의 신뢰를 잃으면 국민의 마음도 잃게 된다”며 “국민의 마음을 잃으면, 입법부까지 넘겨주게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가 여러 번 강조했던 시스템 공천, 민주적 원칙과 객관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지금이라도 당이 투명하고 공정하며 국민 눈높이에 맞게 공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명계 의원이 현역으로 있는 일부 지역구서 의도가 불분명한 여론조사 실행된 것도 당내 갈등 요인으로 꼽힌다. 문제는 이 여론조사가 현역 의원을 제외한 채 이뤄졌기 때문이다. 민주당 공관위는 여론조사를 돌린 적이 없다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경선을 앞두고 공관위조차 모르는 여론조사가 진행됐다는 점을 두고도 양측이 격돌했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의 지역구인 인천 부평을에서는 홍 의원을 제외한 이동주 비례의원과 영입 인재 박선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가 이뤄졌다. 이 외에도 노웅래(서울 마포갑), 송갑석(광주 서갑), 이인영(서울 구로갑) 의원의 이름이 빠진 여론조사가 한차례 지역구를 돌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동작을 출마를 준비하던 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 의원은 “경쟁력도 없는 사람을 자꾸 (여론조사에 넣어)돌리면서 경쟁력 있는 후보를 흔드는 것은 해당행위”라고 비판했다.

앞서 민주당은 해당 지역구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등을 포함해 여론조사를 진행했는데, 오히려 갈등만 빚어진 셈이다.

멀고 험한
총선 승리


결국 이 의원은 “이 대표를 도운 것을 후회한다”며 “왜 후회하는지 이유는 곧 밝혀질 것” “지난주 백현동 판결을 보면서 이재명 대표가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등 폭로성 발언을 남기고 사퇴했다.

후폭풍이 불어닥치자 민주당은 지난 21일 국회서 비공개 긴급 의견총회를 열고 논의에 착수했다. 이날 이 대표는 의총에 참여하지 않았다. 의원들 사이서 ‘공천과 관련한 반발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자 최혜영 원내대변인은 “왜 참석을 안 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말씀드리기가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의총 도중 고성이 오가면서 한때 소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진화에 나선 홍익표 원내대표는 “공천관리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할 경우 공관위원장이 어떻게 평가가 진행됐는지 직접 설명하도록 요청하겠다”며 “신뢰성·투명성이 납득될 수 있게 설명하도록 요청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에만 세 차례 이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다. 이른 시일 안에 그가 당 대표직을 내려놓고 비대위 체제로 전환해 총선을 치를 것이란 예상도 비일비재했다. 그때마다 이 대표는 통합 메시지를 강조하며 봉합에 나섰다.

일부 비명계가 ‘원칙과상식’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집단 탈당했지만 당시 민주당에는 큰 타격이 없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처럼 공천이라는 예민한 주제를 놓고 내홍이 커진다면 이 대표의 거취를 장담할 수 없다. 공천을 계기로 ‘탈당 러시’가 이어질 경우 단순한 친·비명간의 계파 다툼이 아닌 조기 선대위가 꾸려질 수 있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지금 상황대로라면 이 대표가 총선 전 물러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판도를 봤을 때 자기네(민주당)가 불리하다고 판단하면 (이 대표는)뒤로 빠지고 친문(친 문재인)계 비대위원장을 내세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사분오열 안으로 굽어버린 칼날
“툭하면 사퇴” 뼈 있는 한마디

이 관계자는 현재 공천 파동의 핵심인 ‘친명 민주당’이 꾸려지는 이유 역시 비대위 가능성을 열어놨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차기 비대위원장 등 ‘포스트 이재명’을 찾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승리가 불확실한 상황서 1열에 나섰다가 총선 패배의 원인을 몽땅 뒤집어쓴다면 추후 정치 생명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파도처럼 밀려올 사퇴 요구를 얼마나 빠르게 수습하는지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지도부를 향한 불신과 공정성 시비가 매우 크다”며 “이를 해소하지 않은 채 이 대표가 앞으로만 나아간다면 후폭풍은 불가피하고, 또 국민이 봤을 때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고 말했다. 당에 대한 불신이 쌓이는 것은 곧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고 결국 총선 패배로 귀결된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당의 원로를 비롯한 핵심 관계자들 역시 우려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사표가 아닌 불출마 요구도 하나의 시나리오로 제시된다. 당 대표 임기가 막바지에 접어든 지금으로서는 대표직을 내려놓더라도 크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대표는 21대 대선을 노리는 만큼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한다면 ‘혁신의 아이콘’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제시된다.

논란의 당사자인 이 대표는 대표직 사퇴 요구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난 22일 국회서 기자들과 만나 “툭하면 사퇴하라 소리 하는 분들 계신 모양”이라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365일 대표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시스템에 따라서 합리적 기준으로 경쟁력 있는 후보를 골라내고 있는 중”이라며 “환골탈태 과정서 생기는 진통이라고 생각해 주기 바란다”고 전했다.

쌍특검
이번엔?

공천 논란을 잠재울만한 확실한 ‘한 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민주당은 일찌감치 쌍특검 재표결을 띄우면서 여론 형성에 나섰다. 민주당은 오는 29일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쌍특검 재표결에 나설 예정이다.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김건희 리스크를 끌어 올려 한 번 더 도마 위에 올리겠다는 셈이다.

홍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정당한 이유 없는 거부권 행사는 자신과 가족의 죄를 숨기는 데 권력을 남용한 것”이라며 “국회서 꼭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국민의힘의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후퇴’ 원희룡 반응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사퇴 요구와 관련해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입장을 밝혔다.

원 전 장관은 인천 계양을서 이 대표와의 매치가 성사되기를 기대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이 대표의 2선 후퇴설에 관해 “불출마를 전제로 여론을 떠보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문제는 이런 간 보기에 계양은 없다는 것”이라며 “임기 내내 아무것도 안 해도, 또 아무나 공천해도 당선되는 곳이 계양인가”라고 비꼬았다.

아울러 “원희룡은 다들 어렵다는 계양을 스스로 찾아왔다”며 “계양의 변화에 대한 믿음과 각오가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박>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12·3 비상계엄 수사’ 스텝 꼬이는 내막

‘12·3 비상계엄 수사’ 스텝 꼬이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2·3 비상계엄 시태를 수사하는 검찰과 공수처의 스텝이 꼬이고 있다. 국무위원들에 대한 내란죄 적용 여부를 두고 법리 검토에 나섰으나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직권남용 미수도 문제다. 현행법상 처벌이 불가하다. 비상식적 지시와 명령을 내린 혐의를 받는 전·현직 장관들의 신병을 확보하기 이전부터 사건이 꼬이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 공소장에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포함한 국무위원들의 그릇된 판단이 적나라하게 적시돼있다. 윤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했다면 내란 동조 또는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지시를 듣기만 했다면 다르다. ‘미수’에 그치기에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증언 거부 모르쇠로 <일요시사>가 입수한 윤 대통령의 공소장에 따르면, 그는 이 전 장관에게 특정 언론사와 여론조사 업체 봉쇄 및 단전·단수를 지시했다. 이 전 장관은 경찰 조사에서 이 내용은 빼놓고 진술했다. 단전·단수 지시 의혹에 대한 국회 질의에도 증언을 거부한 채 ‘모르쇠’로 일관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국무회의를 소집한 자리서 집무실로 들어온 이 전 장관에게 ‘24시경(자정에)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MBC, JTBC, 여론조사 꽃을 봉쇄하고 소방청을 통해 단전, 단수하라’는 내용이 기재된 문건을 보여주는 등 계엄 선포 이후 조치사항을 지시했다. 이 전 장관은 이에 포고령이 발령된 직후인 3일 밤 11시34분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전화해 경찰의 조치 상황 등을 확인한 다음 3분 뒤 허석곤 소방청장에게 전화해 “자정쯤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JTBC·MBC, 여론조사 꽃에 경찰이 투입될 것인데 경찰청서 단전·단수 협조 요청이 오면 조치해줘라”라고 지시했다. 허 청장은 소방청 차장에게 같은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공소장 내용은 경찰이 확보한 이 전 장관의 진술과 대조적이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16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단장 우종수 본부장) 조사에서 조 청장과 허 청장에게 연이어 전화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따로 지시를 내린 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물어보려 조 청장에게 전화했는데, (전화를 받은 조 청장이)다른 누구와 대화하는 것 같았다”며 “아무 응답이 없어 조금 기분이 나빠서 대화도 전혀 하지 못한 채 제가 일방적으로 끊었다”고 했다. 또 “이후 소방청장에게 전화해 ‘사건 사고 들어온 것이 있느냐? 때가 때인 만큼 국민 안전을 각별히 챙겨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장관은 ‘사전에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비상계엄에 관한 준비나 필요한 조치를 지시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취지의 경찰 질문에도 “전혀 없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이상민에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범죄 시도했는데 실패 미수범 처벌 불가?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전 한덕수 국무총리와 조태열 외교부 장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의 만류에도 “종북 좌파들을 이 상태로 놔두면 나라가 거덜나고 경제든 외교든 아무것도 안 된다. 국무위원의 상황 인식과 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다르다.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하며 계엄을 강행했다. 이후 조 장관에게 ‘재외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켜라’는 내용이 기재된 문서를 건넸다. 윤 대통령 곁을 거의 내내 지켰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 첫 증인으로 출석해 “최 대행에게 전달된 ‘비상입법기구’ 쪽지와 조태열 장관에게 건넨 문건 외에도 한덕수 총리와 이 전 장관 등에게도 쪽지를 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무위원 대다수는 윤 대통령이 최 대행과 조 장관에게 쪽지를 주는 걸 보지 못했고 윤 대통령으로부터 문건을 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와 연결된 직권남용 혐의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에 애를 먹었다. 공수처는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수괴)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공소제기 요구’ 의견으로 검찰에 이첩한 후 이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법리 검토에 집중했다. 공수처는 이 전 장관 수사 역시 직권남용 혐의를 고리로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등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했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공수처는 내란죄에 대한 직접수사 권한이 없다.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되는가 여부를 검토해도 수사에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권남용죄는 범죄를 시도해 성공한 기수범 외 범죄를 시도했지만 실패한 미수범에 대해서는 별도 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갈리는 의견들 실제 단전·단수 의혹의 경우 이 전 장관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허석곤 소방청장은 지난달 13일 국회서 이 전 장관으로부터 “특정 몇 가지 언론사에 대해 경찰청 쪽에서 (단전·단수)요청이 있으면 협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지만,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공수처는 이 전 장관 사건을 다시 경찰에 이첩했다. 경찰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관계자는 지난 3일 브리핑을 통해 “계엄 선포 당시 언론사 단전·단수 의혹을 포함해 경찰이 이 전 장관 사건을 넘겨받아 조사하기로 공수처와 협의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국수본 관계자는 “공수처로부터 자료를 받아 분석하고, 이 전 장관에 대한 소환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국수본은 지금까지 계엄 사태와 관련해 이 전 장관을 포함해 총 53명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이 중 당정 관계자는 28명, 군 20명, 경찰 5명 등이다. 지금까지 8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11명을 공수처 및 군 검찰에 이첩했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별동대 성격인 사조직 ‘수사2단’ 의혹을 받는 방정환 2기갑여단장과 구삼회 국방부 혁신기획관도 지난달 22일 검찰에 송치했다. 공수처는 경찰에 한 총리와 이 전 장관의 사건을 이첩한 데 이어 검찰에도 이 전 장관 사건을 이첩했다. 한 총리 사건을 재이첩하는 이유에 대해선 “중복 수사 방지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이 지난해 12월 한 총리 조사를 한 차례 진행하고 계속 수사 중인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수처가 사건을 다시 넘긴 것을 두고 법조계에선 거센 비판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 체포·구속에 전념한다며 속도를 내지 못하던 이 전 장관 사건도 결국 별다른 성과 없이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지난달 14일 허석권 소방청장 등 소방청 간부들을 조사한 게 사실상 전부였다. 이 전 장관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실제로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는 지적에도 직권남용죄의 ‘관련 범죄’로 수사할 수 있다며 윤 대통령 사건을 건네받으면서 논란만 키웠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구속했지만, 이후엔 성과도 내지 못한 채 후 사건을 검찰에 돌려보냈다. 진행은 했는데… 윤 대통령에 대한 1차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하자 경찰과 협의도 없이 “집행을 경찰에 일임하겠다”고 밝혔다가 하루 만에 철회하기도 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첩 요청해서 받은 사건을 다시 돌려보내며 두 피의자에 대한 수사가 지체됐다는 비판에 대해 “이 전 장관의 단전·단수 의혹이 국회서 불거지자마자 관련자 진술을 받았고 자료도 검토했기 때문에 지체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두 수사기관에 각각 사건을 반환하는 이유에 대해선 “경찰은 사건을 이첩할 때 3가지 혐의를 적시한 반면, 검찰은 군형법상 반란 혐의를 포함해 8가지 혐의를 이첩했다”며 “검찰이 보는 혐의점이 많고 현재 군 검사들이 함께 수사하는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반란 혐의를 수사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공수처는 비상계엄 태스크포스(TF)를 유지하며 경찰 간부 등 남은 수사 대상에 대한 수사에 총력을 모으기로 했다. 경찰이 공수처에 이첩한 피의자 총 15명 중 경찰 간부는 조 청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김준영 경기남부경찰청장(치안정감), 목현태 전 국회경비대장(총경) 등이다. 조 청장과 김 전 청장은 이미 구속 기소된 상태인 만큼, 김 청장과 목 전 대장만 남았다. 공수처 관계자는 “경찰 간부는 저희가 직접 기소할 수도 있어서 최선을 다해 수사력을 모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는 경무관 이상 경찰 공무원에 대한 기소권을 갖는다. 공수처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국무위원들과 군·경찰 간부들을 상대로 내란죄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형법상 내란죄는 ‘우두머리’ ‘중요임무종사’ ‘부화수행’ 3단계로 구분해 처벌할 수 있다. 공수처, 사건 검경 재이첩 “시간만 날려” 중요임무종사·부화수행 혐의 적용 관건 나머지 수사는 ‘부화수행하거나 단순히 폭동에만 관여한 자’에 대한 처리가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피의자들이 계엄을 위헌·위법이라고 인식했는데도 적극적으로 막지 않거나 가담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우선 검찰은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직전 소집한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 11명을 수사선상에 올려놨다. 검찰은 한 총리, 최 대행(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 장관 등이 계엄에 반대했다고 보고 있다. 국무회의 자체도 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계엄을 통보했을 뿐 실질적 논의도 없었던 데다 회의록도 없을 만큼 졸속으로 진행됐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들이 계엄에 대한 후속 조치나 사전 준비를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면 부화수행이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검찰은 최근 정성우 전 국군방첩사령부 1처장을 비롯한 군 중간급 간부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다. 정 전 처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 확보를 지시하자 군법무관 회의를 거쳐 강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항변했다. 방첩사 병력을 출동시키긴 했지만 고무탄총·가스총만 가진 사실상 비무장 상태로, ‘선관위 청사 내부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지휘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정치인 체포조’ 지원 의혹에 연루된 경찰 간부들도 피의자로 입건해 지난달 31일 압수수색했다. 이들이 방첩사의 요청을 받고 체포조 지원을 지시하거나 묵인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고위직은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중간직은 부화수행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국회 주변 계엄령 위반자 체포인 줄 알았지 특정 정치인 체포인 줄 몰랐다는 입장이다. 머리 아픈 남은 수사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부화수행 혐의를 어떤 사람에게 적용해야 할지가 고비가 될듯하다. 계엄 관련 위헌·위법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 이들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로 받을 수 있는 문제도 고려 대상이다. 일부 참작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내란죄가 중대범죄인 만큼 부화수행도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해진다. 공무원·군인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파면되고 연금이 절반으로 깎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