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뻔뻔한’ 박진성 시인의 두 얼굴

허위라더니…결국 철창신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미국서 처음 일어난 불씨가 한국서도 크게 타올랐다. SNS에 해시태그(#)를 단 단어가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 SNS를 중심으로 번지기 시작한 불길이 지나간 자리에 피해자가 알린 추악한 진실만이 남았다. 

미투 운동은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음지에 숨어 있던 성폭력 피해자들을 수면 위로 이끌었다. 피해자의 자발적인 고백은 미국 문화계를 뒤흔들었다. 오랜 시간 권력을 쥐고 군림하며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가해자는 여론과 법의 철퇴를 맞았다. 트위터에 달린 해시태그(#) ‘Me Too’가 해낸 일이었다. 

미투보다
빨랐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7년 ‘올해의 인물’에 미투 운동을 촉발한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선정했다. 그러면서 이들을 ‘침묵을 깬 사람들’로 명명했다. 당시 <타임> 편집장 에드워드 펠센털은 “공공연한 비밀을 밖으로 표현하고, 속삭이는 네트워크를 사회적 네트워크로 이동시켰다. 우리 모두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는 것을 멈추도록 독려했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2017년 10월 미국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2018년 1월 서지현 전 검사의 글을 시작으로 한국에 상륙했다. 서 전 검사는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과거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서 전 검사의 폭로는 이후 문화계를 비롯해 전 방위로 확산돼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눈여겨볼 부분은 서 전 검사가 검찰 내 성추문 의혹을 폭로하기 전 트위터를 중심으로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목소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문단 내 성폭력’ 폭로 사건이다. 미투 운동이 한국서 촉발되기 전 불거진 일로 이후 문화계 전반서 일어난 성폭력 고발 사건의 단초가 됐다. 


2016년 10월 트위터에는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거나 의혹을 제기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당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문인이 성폭력 가해자로 줄줄이 거론되면서 문단 내 권력구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피해자는 작가 지망생 등 문단 내에서 상대적으로 약자로 분류되는 이들이었다.

명예훼손 혐의로 실형 확정
민사 소송에서도 배상 나와

박진성 시인에 대한 폭로가 나온 것도 이 시기다. 박 시인은 자신에 대한 성폭력 의혹 제기를 두고 ‘허위 미투’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 과정서 피해자의 주민등록증을 SNS에 공개하고 실명을 언급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최근 박 시인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다. 

2016년 트위터를 통해 처음 사건이 공론화된 지 8년여 만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는 박 시인에게 징역 1년8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박 시인은 2015년 9월 말 인터넷으로 시 강습을 하다 알게 된 여고생 A씨(당시 17세)에게 이듬해 10월까지 ‘애인 안 받아주면 자살할꺼’ ‘내가 성폭행해도 안 버린다고 약속해’ 등의 메시지를 여러 차례 보내고 ‘애인하자’고 요구하는 등 여러 차례 성적 수치심을 주는 메시지를 보냈다. 

A씨는 이 같은 내용을 문단 내 성폭력 피해 폭로가 이어지던 2016년 10월 트위터에 공개했다. 박 시인은 2019년 3월29일부터 같은 해 11월26일까지 자신의 SNS에 ‘무고는 중대 범죄’ ‘허위로 누군가를 성폭력범으로 만드는 일이 없길 바란다’ 등의 표현으로 11차례에 걸쳐 허위 내용을 게시하는 등 A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보다
무거웠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실명을 포함한 인적 사항을 공개하는 등 피해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일으켰지만 피고인이 관련 민사사건의 항소를 취하한 점을 고려했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과 박 시인 모두 항소해 진행된 2심에서는 원심보다 무거운 형량이 나왔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다 공소가 제기된 후에야 트위터를 폐쇄하고 선플 달기 운동을 하는 등 반성했다고 주장하나 피해자에 대한 터무니없는 인신공격을 막으려는 행동을 한 적도 없고 공감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며 징역 1년8개월을 선고했다. 법정 구속된 박 시인은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A씨의 폭로 이후 박 시인이 대법원서 확정판결을 받을 때까지 8년여 동안은 소송전의 연속이었다. 박 시인은 A씨를 상대로 소를 제기했고 언론사와 법정 공방을 벌였다. 박 시인은 언론사를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서 줄줄이 이겼다. 일부 언론사는 합의금을 지급하고 정정보도문을 게시했다. 

이후 A씨에게는 ‘허위 미투’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성폭력 피해 폭로를 무고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박 시인에게 동조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피해자는 상대적으로 웅크려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한 시점은 A씨가 직접 등장한 때부터다. 앞서 박 시인과 언론사의 소송전에는 A씨가 존재하지 않았다.

언론사와
다른 판결

박 시인은 A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A씨 역시 박씨를 상대로 성희롱 등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소송서 법원이 A씨의 성희롱 폭로가 거짓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박 시인이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과 정반대의 판결이 나왔다. 

당시 법원은 언론사 기사를 허위라고 판결했다. 박 시인의 성희롱 여부에 대해서도 ▲성희롱으로 해석될만한 표현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게시글을 올린 후 돈을 요구한 점 등을 이유로 들어 허위 사실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런데 정작 피해자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는 성희롱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노승욱 당시 청주지법 영동지원 판사는 박 시인이 A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는 기각했다. 박 시인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A씨가 트위터에 올린 내용을 허위 사실이라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씨가 제기한 소송에서는 박 시인이 11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016년 첫 폭로 이후 8년 만
피해자 나선 소송에선 완패

1심 재판부는 “이 사건의 내용은 대부분 카카오톡 메시지에 기초한 것으로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명확할 뿐 아니라 대체로 사실에 부합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박 시인이)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행위는 사회통념상 일상생활서 허용되는 단순한 농담, 호의적 언동을 넘어 피고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피고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박 시인은 재판부의 판단이 언론사를 상대로 한 판결을 뒤집었다고 지적하면서 항소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손해배상액을 3배 올려 33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성희롱으로 인한 위자료 1000만원, 명예훼손에 대한 위자료 2000만원, 협박에 대한 위자료 300만원 등이다.

특히 재판부는 박 시인이 A씨에게 소송 전 “준비 단단히 하고 기다려라. 끝까지 갈 테니까” 등의 메시지를 보낸 부분을 협박으로 판단했다. 


2019년 박 시인이 A씨를 상대로 낸 3000만원짜리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시작으로 A씨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5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2016년 문제 제기 시점으로 따지면 8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이 기간 동안 박 시인은 수 차례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고 잠적했다가 나타나는 등 기행을 벌였다.

결국 드러난
추악한 진실

성범죄 무고를 주장하며 스무살가량 어린 여성을 상대로 SNS를 이용한 여론전, 소송 제기 등의 싸움을 건 박 시인의 최후는 철창 신세였다. 허위 미투에 피해를 입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는 되치기를 당했다. 트위터에 올린 한 줄의 글로 시작된 사건의 끝에 남은 건 박 시인의 민낯뿐이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단_내_성폭력’ 그 후…

2016년 10월 트위터를 중심으로 번지기 시작한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는 미투 운동의 시작으로 보는 2018년 서지현 전 검사의 폭로보다 2년이나 빨랐다.

첫 시작은 미미했지만 여론을 타고 번지기 시작한 불길은 한국 사회를 활활 태웠다.


문단은 시작에 불과했고 연극계, 영화계 등 문화계가 초토화 상태에 빠졌다. 

가해자는 고개를 숙이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기방어에 나섰고 피해자는 폭로를 멈추거나 맞대응했다.

이 과정서 일부 피해자는 이른바 ‘꽃뱀’으로 몰렸고 일부 가해자는 누명을 썼다.

슬그머니 활동을 재개한 인사들도 있다.

특히 한국 문단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몇몇 문인은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1월에는 고은 시인이 시집을 내고 복귀해 논란이 일었다.

고은 시인은 성추행 의혹으로 논란이 되고도 해명도 사과도 없이 5년 만에 신작 시집 <무의 노래> 등을 펴냈다.

고은 시인은 2018년 최영미 시인이 문단 기득권층의 성폭력 행태를 고발하자 활동을 중단한 바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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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