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VS 공수처 보복전 막전막후

셔터 내릴 때까지 ‘잡도리?’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감사원이 올 하반기 중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관한 감사를 진행키로 했다. 상반기에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으나 의결 과정서 미뤄졌다. 하반기에 진행될 감사가 공수처 폐지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는 수장 공백 상태다. 친윤석열정부 성향의 공수처장이 임명되면 감사원의 지적을 수용하면서 기관이 마비되는 건 불 보듯 뻔하다는 관측이다.

“수사 대상이 감사하는 것도 옳지 않은데 그 이후가 더 문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몸담았던 한 인사의 말이다. 현재 공수처는 말 그대로 역대급 위기를 겪고 있다. 성과와 인력 모두 부족하다. 김진욱 전 공수처장이 지난달 퇴임하면서 내부도 어수선해졌다. 감사원의 하반기 감사는 공수처의 민낯을 드러내는 걸 넘어 폐지의 근거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또 다시?
반복 감사

감사원은 정기감사 결과를 발표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또 정기감사 대상기관에 공수처를 포함했다. 특히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표적 감사’ 혐의로 최재해 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 등이 공수처 수사를 받는 상황서 감사를 진행하는 건 사실상 ‘보복 감사’라는 비판이 상당하다.

감사원은 지난달 30일 “기관 정기감사 주기는 통상 2년마다 진행된다”며 통상적인 감사 업무라고 했다.

하지만 같은 기관을 2년마다 감사하는 게 드물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국방부는 2019년 이후 현재까지 기관운영 감사보고서가 나오지 않았다. 기획재정부는 2017년 이후 5년이 지난 2022년 기관운영 감사보고서가 나왔다.


감사원은 “최근 언론과 법조계 등에서 공수처가 출범한 지 3년이 지났는데 그 기능과 역할이 제대로 정립돼있지 않다는 평가가 많아 이를 진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감사원 안팎에서는 최 원장과 김영신 감사위원이 해당 공수처 감사와 관련한 안건을 회피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원 사무처리 규칙상 감사위원은 심의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심의를 회피할 수 있다. 또 감사원법 15조1항은 ‘자기와 관계있는 사항’에 대한 심의에 관여할 수 없도록 제척 사유를 명시했다.

한 감사원 출신 관계자는 “하반기지만 그때까지 감사원에 관한 공수처 수사가 진행되면 정상적으로 진행될 리 만무하다”며 “사실상 이해충돌”이라고 지적했다.

공수처가 지난해 말 유 사무총장을 직접 소환하면서 기관 간 갈등이 폭발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유 사무총장과 일부 감사원 간부들은 공수처 소환을 회피해왔다. 당시 공수처는 ‘유 사무총장 등이 부당한 근거로 공수처의 출석 요구에 거듭 불응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1년 만에 이례적 정기감사…유병호 소환 대가?
김진욱 전 처장 퇴임 후 핵심 사건 동력 상실

공수처는 전현희 전 위원장에 대한 의혹의 발원지로 지목된 권익위 고위 관계자와 최 감사원장, 유 사무총장의 공동 무고 혐의 등도 수사 중이다. 이를 최근 감사원을 상대로 한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유 사무총장이 지휘하는 감사원 사무처가 감사위원을 건너뛰고 감사보고서를 위법하게 시행 및 공개한 혐의도 수사 중이다.

유 사무총장은 감사원이 특별감사를 통해 전 전 위원장을 표적감사하는 데 관여한 혐의(직권남용 등) 등으로도 20여차례 공수처에 고발됐다. 공수처는 유 사무총장이 전 전 위원장에 대한 비위 제보 내용이 허위·과장된 점을 알면서도 대대적인 감사를 벌이고 수사를 요청했을 가능성을 의심한다.


현재까지 공수처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입건한 감사원 관계자는 최 원장과 유 사무총장을 비롯해 17명이다. 최 원장과 유 사무총장은 공동변호인단을 꾸려 함께 수사에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최 원장은 지난해 11월 국회서 열린 전체회의서 두 사람을 포함한 감사원 내 수사 대상 17명이 공동으로 변호인단을 선임했느냐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회재 의원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공수처는 10억원대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감사원 간부에 관한 수사도 진행 중이지만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난관에 봉착한 바 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이민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 혐의를 받는 감사원 3급 간부 김모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이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지위, 피의자와 관련 회사와의 관계, 공사 도급계약의 체결 경위 등에 비춰볼 때 피의자의 직무와 관련해 피의자의 개입으로 공사계약이 체결됐다고 볼만한 상당한 의심이 들기는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상당수의 공사 부분에 있어 피의자가 개입했음을 인정할 수 있는 직접 증거가 충분히 확보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현재까지 현출된 증거들에 대해서는 반대 신문권의 보장이 필요하다고 보인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보란 듯이
치고 박고

이어 “뇌물 액수의 산정에 있어 사실적 내지 법률적 측면서 다툼의 여지가 있고, 특경법 횡령의 점과 관련해서 피의자에게 반박 자료 제출을 위한 충분한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봤다.

공수처는 김씨가 지인 명의로 회사를 설립한 뒤 건설사들로부터 공사를 수주하는 방식으로 10억원대 뇌물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 김씨는 건설·사회간접자본(SOC)·시설 분야를 주로 감사했다.

이 사건은 감사원이 비위 정황을 포착해 2021년 10월 공수처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지난해 수사가 시작됐다. 공수처법상 감사원 3급 이상 공무원의 수뢰 혐의는 공수처가 수사할 수 있는 고위공직자 범죄에 해당한다.

그러나 수사기관 간의 엇박자로 인해 사건은 미궁 속에 빠졌다. 검찰이 처음으로 공수처의 공소제기를 거부한 것이다. 증거 수집과 관련 법리 검토가 충분하지 않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공수처는 이에 대해 “근거도 없는 조치를 취했다”며 사건 접수를 거부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12일 “공수처로부터 송부받은 ‘감사원 고위공무원 뇌물수수 등’ 사건의 관계 서류와 증거물 일체를 다시 공수처에 이송했다”고 밝혔다. 이어 “증거 수집과 관련 법리 검토가 충분하지 않다”며 “공수처의 법률적 지위와 성격을 고려하면 별도의 증거 수집이나 법리 검토보다 공수처가 추가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공수처가 추가 수사 결과를 다시 보내 오면 기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검찰 공지 이후 약 1시간 만에 공수처는 “검찰의 사건 이송은 어떠한 법률적 근거도 없는 조치”라며 “사건 접수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헌법재판소 판례에 따라 검사로서 법적 지위가 확립된 공수처 검사는 검찰에 공소 제기를 요구하며 사건 수사기록 일체를 검찰에 송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권 수사 사장”
폐지 밑거름?

그러면서 “검찰은 자체 보강 수사를 거쳐 기소·불기소 처분을 하면 되는 것”이라며 “어떠한 사전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법률적 근거도 없는 조치를 한 검찰 결정에 유감을 표한다”고 강조했다.

“법적 근거가 없다”는 공수처의 입장에 대해 검찰은 재차 반박에 나섰다. 검찰은 “법원서 ‘피의자의 개입을 인정할 수 있는 직접 증거가 충분히 확보됐다고 보기 어렵고, 뇌물 액수 산정 등에 있어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공수처가 청구한 영장이 기각됐다”며 “그럼에도 공수처는 별다른 보강 수사 없이 사건을 검찰로 송부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수처의 법적 지위를 고려해 자체적으로 재검토하고 보완할 수 있도록 이송한 것임에도 공수처가 이송 사유 확인도 없이 접수를 거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 수사준칙 18조 2항은 다른 수사기관서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때에 공수처 등 수사기관에 이송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공수처 사건사무규칙 또한 이송받은 사건을 수리하도록 규정하는데, 공수처가 송부를 거부하는 게 부당하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공수처 수장 공백 사태가 지속될 경우 내부의 어수선함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 특히 친윤석열정부 성향 공수처장이 임명된 이후 하반기 감사 결과를 공수처가 그대로 수용한다면 그 근거로 ‘공수처 폐지’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례로 법무부의 ‘패소할 결심’이 있다. 지난해 12월29일 법무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받았던 정직 2개월 징계처분 취소 청구소송 항소심서 패소하고도 상고를 포기한다고 밝혀 논란이 된 바 있다.

수사 대상 이해충돌
사라질 때까지 반격?

앞서 윤 대통령은 2020년 12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시절 법무부로부터 주요 재판부 사찰 의혹 문건 작성 및 배포, 검사로서의 정치적 중립 훼손 등 4건의 이유로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이에 윤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징계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2021년 10월 정치적 중립 훼손을 제외한 3건의 사유를 인정해 윤 대통령에 대한 징계가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서 사실상 법무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판결이 뒤집혔다. 특히 법무부가 상고마저 포기하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징계는 최종 취소됐다.

공수처의 유일한 성과로 꼽히는 고발사주 의혹 사건 재판은 2심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손준성 검사장이 항소의 뜻을 밝혔고, 공수처 역시 판결문을 검토 후 항소 여부를 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법조계에서는 정치적으로 독립적이지 못한 인물이 공수처장으로 임명될 경우, 이 재판을 대하는 공수처의 태도도 앞선 법무부처럼 바뀔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차기 공수처장은 아직 지명조차 되지 않았다.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후보추천위)가 지난해 11월부터 윤 대통령에게 추천할 후보자 2명을 선정하기 위한 회의를 6차례 열었지만, 판사 출신 오동운 변호사 외 나머지 1명을 선정하지 못했다.

나머지 최종 후보로는 판사 출신 김태규 국민권익위 부위원장과 한주한 변호사, 검사 출신 이혁 변호사가 거론된다. 이들은 지난 5차 회의서 4명의 동의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후보로 낙점되기 위해선 추천위원 7명 중 5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 중 김 부위원장은 공수처를 직접적으로 비판해왔다. 김 부위원장은 법원에 사표를 낸 뒤에는 윤 대통령 지지 모임인 ‘공정과 상식 회복을 위한 국민연합’이 주최한 토론회의 토론자로 나선 데 이어 민주당의 ‘검찰 수사권 축소법’ 입법 시도를 지적하는 내용의 글을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다.

앞으로
더 문제

변호사 개업 이후 2021년 2월 <법복은 유니폼이 아니다>는 책을 썼다. 이 책에는 문재인정부를 비판하며 “괴물기관인 공수처까지 만들었다”고 적었다. 그는 공수처를 “오랜 과오와 학문적 숙고를 거쳐 정비된 형사사법 절차 안에 난데없는 이질 분자”라고 평가한 뒤 “정치와 차단막이 거의 없어 정치권력이 제시하는 기준이 그대로 반영되거나 정권 수호를 위한 유리한 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부위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관해서도 “좌익단체들이 총동원돼 대중을 선동하고 모아낸 에너지가 처음으로 제대로 작동해 정권을 무너뜨리는, 의미가 나름 큰 사변”이라며 “다툼이 첨예한 사건이 재판관 전체 만장일치로 판결 난 것도 진실과 공정성에 의심을 유발한다”고 비판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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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