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투입 ‘수융얼 카르텔’ 추적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2.05 15:29:26
  • 호수 14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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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주고 당겨준 ‘산피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정부 예산이 투입된 사단법인 ‘수소융합얼라이언스’(이하 수융얼)가 입찰 비리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3월 말, 일부 혐의를 인정받는 전현직 직원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수융얼은 수소 산업 발전을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 관계자들의 용역 일감을 주고받는 ‘카르텔’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앞서 수융얼 전현직 직원들은 문구점서 법인카드로만 수천만원씩 결제하고 다시 현금으로 돌려받는 ‘카드깡’ 행위를 저질렀다. (참고 <일요시사> ‘수융얼 스캔들’ 내부 폭로 이후…) 나아가 실효성이 불투명한 ‘수소 산업 인력양성 교육과정 개발’에 1억원 가까이 사용하면서 횡령 의혹에 휩싸였다. 결국, 교육 개발사업을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이 단독 진행하도록 몰아주면서 입찰 비리 혐의가 드러났다. 

법카 유용
내부 폭로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가기술표준원(국표원) 출신의 김 단장은 수소 업계 석박사 인력 양성을 위한 대학 지원사업인 이른바 ‘수소에너지산업 고도화 인력양성사업’을 추진했다.

수융얼은 수소특별법에 따라 수소경제이행촉진을 위해 산자부로부터 일부 예산을 지원받는다. 그 예산과 자체 수주한 프로젝트 용역 비용, 회원사 회비 등으로 수소경제 이행에 필요한 각종 사업을 효율적,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수소산업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사업을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수융얼 경영진들은 용역 및 지원사업을 통한 예산 배분으로 카르텔 관리에 힘쓰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단장은 1억원 규모의 용역사업(수소에너지산업 고도화 인력양성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라고 수융얼 실무자들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취재진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사업의 목표는 ‘수소산업 전문인력양성을 위해 KOLAS(한국인정기구)의 적합성 평가 교육과 수소산업 분야 기초 기술교육 제공’이다.

수융얼이 나라장터에 공고한 해당 사업은 KCL이 단독으로 낙찰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애초부터 수융얼이 추진한 ‘수소에너지산업 고도화 인력양성사업’의 나라장터 입찰제안서를 KCL 측이 작성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 결과, 2021년 7월경 수융얼 담당사원 A씨는 KCL로부터 ‘수소 에너지산업 고도화 인력양성 사업’ 제안서를 이메일로 받았다.

KCL이 사업을 낙찰받기도 전에 제안서를 직접 작성하고 거꾸로 수융얼에 보낸 것이다.

수융얼 사원 A씨는 KCL로부터 받은 사업제안서를 곧바로 창원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 정모씨에게 보내 수정을 요청했다. 2021년 9월 수융얼은 창원대 정 교수가 수정한 ‘수소 에너지산업 고도화 인력양성 사업’ 제안서를 나라장터에 공고했다.

수소융합얼라이언스 입찰 비리 의혹
MB 자원외교 앞장선 문재도 책임론

KCL은 해당 사업에 단독 입찰했다. 이어 창원대 정 교수와 가천대학교 김모 교수 등이 평가위원으로 참석한 평가위원회서 2021년 9월27일 낙찰받았다. 한 달 뒤인 10월부터 진행된 해당 용역사업은 12월까지 진행됐다. 제안서 작성, 평가, 낙찰 과정까지 사전에 공모한 자들의 계획된 시나리오였다. 

수융얼은 산자부서 내려온 예산 9000여만원을 KCL에 투입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5회 진행한 교육 중에 1~3명만 참석한 날도 있었다. 2개월 동안 총 38명이 참여한 수업에 강사료는 무려 2000만원 이상 투입됐다. 


입찰 비리 혐의로 얼룩진 ‘수소 에너지산업 고도화 인력양성 사업’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인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서 발주했다. 수융얼은 사단법인이기 때문에 산자부 예산을 직접 받을 수 없는 구조다.

해당 사업은 석박사 과정 학생 전문인력양성을 목표로 2021년부터 내년 12월31일까지 총 사업비 약 94억원을 투입할 계획이었다. ‘밸류체인별 교육프로그램 개발·운영’ ‘교육 인프라 확보’ ‘산학연계 인력양성’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했다.

2021년 12월 해당 사업의 결과보고서가 나오면서 부실 논란이 제기됐다. 1명뿐인 교육생을 받아 교육을 개최한 것은 물론, 결과보고서 내용이 사업수행 계획서와 똑같은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부실 논란이 커진 와중에도 사업을 추진한 김 단장과 그를 따르던 수융얼 본부장 이모씨는 2022년도에도 해당 사업을 KCL에 주자고 했다고 전해졌다.

KCL은 산자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 등의 용역수행은 그대로 하면서, 감사는 피할 수 있다. KCL은 국가인증기관임에도 2015년 7월, 민법32조에 따른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법적 지위를 변경했다. 이에 따라 1500억원이 넘는 매출액에 대한 세제 혜택은 물론, 감사도 피할 수 있었다. 

짜여진 
시나리오?

이렇듯 예산 소진 및 사업결과를 쉽게 얻는 목적에 부합되는 KCL은 행정편의와 카르텔 관리, 배임 횡령 등의 유착관계를 형성하며 악순환을 조성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수융얼이 교육사업을 자체 진행할 경우, KCL서 받을 수 있는 각종 행사 개최 예산 등도 받을 수 없다. KCL은 수융얼 교육사업을 수행하면서 ‘수소 전문 교육기관’이라는 명분을 쥘 수 있고, 향후 수소 산업 관련 인증업무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2021년 12월 수융얼 교육사업을 KCL이 수행하면서 수소 전문 교육기관이라는 실적을 쌓았고, 이를 기반으로 2022년 상반기에 고용노동부 컨소시엄 사업 수소 관련 교육기관으로 인증을 받았다. 

수소산업 비전문기관인 KCL에 교육사업을 맡김으로써 부실한 결과를 도출케 한 수융얼은 수소산업 발전을 저해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당초 사업을 추진한 김 단장은 KCL과의 유착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김 단장은 자신의 직속 부하인 이 본부장에게 “박선영 인력양성 팀장이 ‘수소 에너지산업 고도화 인력양성 사업’을 KCL이 아닌 다른 데 주자고 할 것”이라며 “잘 꼬셔서 KCL에 줄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김 단장의 비위 행각을 알게 된 박선영 수융얼 인력양성 담당팀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느껴 입찰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박 팀장이 내부 문제를 외부에 제보한 2022년 7월경부터 수융얼의 부실 운영 실태가 서서히 드러났다.

용역 주고받기
일감 몰아주기


이에 산자부도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박 팀장은 2022년 11월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에 신고했다. 이어 지난해 3월 KCL 입찰에 관여한 수융얼 직원 등은 수소경제육성 및 수소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제57조에 따른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수사 당국은 KCL의 사업제안서를 검토해주고, 해당 입찰의 평가위원으로 참석했던 창원대 정 교수에 대해선 입찰 비리 사건에 공모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 제외했다.

앞서 박 팀장은 김 단장에게 우회적인 협박을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 단장은 박 팀장의 제보를 도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직원을 질책했다. 박 팀장이 2022년 7월경 산자부 수소산업 관계자에게 수융얼의 문제를 고발한 사실이 김 단장 귀에 들어가면서다.

당시 김 단장은 “감히 산자부 과장에게 연락했다”며 박 팀장을 직접 나무란 것으로 전해진다. 공익제보자 보호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앞서 수융얼은 지난해 1월9일 ‘직장 내 괴롭힘’과 ‘불법 채용 및 지시명령 불이행 등 기타 징계사유’로 안건을 나누어 박 팀장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2회 개최했다. 이에 따라 각각 3개월씩, 총 6개월 정직 처분을 내렸다. 당시 박 팀장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한 직원이 신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해자라고 주장한 C씨의 진술은 의도된 것에 가까웠다. C씨는 박씨가 온라인 메시지로 ‘OO’식의 단답형으로 답했다는 것을 두고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주장했다.


박 팀장은 돌연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몰렸다. 박 팀장은 부당함을 주장하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로 향했다. 위원회는 부당징계라는 판정을 내렸고 억울함을 벗겨줬다. 그러나 수융얼은 불복했고,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다시 판단을 구하면서 추가 분쟁을 겪었다.

입맛대로 사업계획서 작성
알고 보니 단독 참가 낙찰

중노위는 C씨의 주장들을 사실상 전부 기각했다. C씨 주장을 근거로 박 팀장에게 정직 6개월을 처분한 수융얼의 판단도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이에 중노위는 박 팀장을 복직시키고 그동안 밀린 임금도 전액 지급하라고 수융얼에 주문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 C씨는 입찰 비리로 검찰에 기소된 직원으로 밝혀졌다.

현재 수융얼 측은 박 팀장에게 보복성으로 의심되는 인사와 징계를 내린 것에 대해 “보복성 징계가 아닌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징계조치”라고 전했다. 또 이른바 ‘카드깡’ 논란에 대해선 “항목간 전용에 해당하는 것이며, 사적 용도로 사용한 것이 확정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여전히 입찰 비리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직원에 관한 입장은 없다.

문재도 수융얼 회장의 책임론도 불거질 전망이다. 엄연히 국고를 낭비한 비위 행각이 드러났음에도 최고책임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문 회장은 이명박정부 시절 자원외교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제25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한 문 회장은 과거 자원개발원전정책관과 산업자원협력실 실장 등을 맡았다.

MB정부 시절의 최고 리스크로 꼽히는 것이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에서 추진된 자원외교의 손실이다. 당시 33조8000억원을 투자했지만, 13조 3000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했다. 자원외교가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던 이유는 사업성 검토 없이 무분별한 투자를 자행했기 때문이다.

2018년 당시 문재인정부는 해당 사업을 ‘적폐’로 규정하고 검찰 수사 대상에 올렸다. 이는 산자부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MB정부 시절 지식경제부(현 산자부) 출신인 문 회장은 2018년 5월 말 무역보험공사 사장 자리서 내려왔다. 당시 산자부 내부에선 문 회장이 해외자원 개발업무 담당자였다는 것이 원인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산자부 어르신
문 회장님 뭐하나

당시 산자부는 “조사 대상은 검찰이 판단할 부분이지만 공사 사장, 산자부 공무원, 청와대 등 범위 제한이 없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서 당시 에너지와 자원외교 업무를 담당했던 현직 간부들이 사의를 자발적으로 표명하는 분위기였다.

이에 대해 산자부 관계자는 “검찰의 수사가 확대되면 스스로 옷을 벗는 인사가 상당수 나온다”고 답했다. MB 자원외교 비리 논란으로 무역보험공사 사장 자리서 내려왔던 문 회장이 수융얼 비리는 어떻게 대처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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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