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투입 ‘수융얼 카르텔’ 추적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2.05 15:29:26
  • 호수 14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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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주고 당겨준 ‘산피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정부 예산이 투입된 사단법인 ‘수소융합얼라이언스’(이하 수융얼)가 입찰 비리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3월 말, 일부 혐의를 인정받는 전현직 직원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수융얼은 수소 산업 발전을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 관계자들의 용역 일감을 주고받는 ‘카르텔’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앞서 수융얼 전현직 직원들은 문구점서 법인카드로만 수천만원씩 결제하고 다시 현금으로 돌려받는 ‘카드깡’ 행위를 저질렀다. (참고 <일요시사> ‘수융얼 스캔들’ 내부 폭로 이후…) 나아가 실효성이 불투명한 ‘수소 산업 인력양성 교육과정 개발’에 1억원 가까이 사용하면서 횡령 의혹에 휩싸였다. 결국, 교육 개발사업을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이 단독 진행하도록 몰아주면서 입찰 비리 혐의가 드러났다. 

법카 유용
내부 폭로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가기술표준원(국표원) 출신의 김 단장은 수소 업계 석박사 인력 양성을 위한 대학 지원사업인 이른바 ‘수소에너지산업 고도화 인력양성사업’을 추진했다.

수융얼은 수소특별법에 따라 수소경제이행촉진을 위해 산자부로부터 일부 예산을 지원받는다. 그 예산과 자체 수주한 프로젝트 용역 비용, 회원사 회비 등으로 수소경제 이행에 필요한 각종 사업을 효율적,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수소산업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사업을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수융얼 경영진들은 용역 및 지원사업을 통한 예산 배분으로 카르텔 관리에 힘쓰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단장은 1억원 규모의 용역사업(수소에너지산업 고도화 인력양성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라고 수융얼 실무자들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취재진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사업의 목표는 ‘수소산업 전문인력양성을 위해 KOLAS(한국인정기구)의 적합성 평가 교육과 수소산업 분야 기초 기술교육 제공’이다.

수융얼이 나라장터에 공고한 해당 사업은 KCL이 단독으로 낙찰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애초부터 수융얼이 추진한 ‘수소에너지산업 고도화 인력양성사업’의 나라장터 입찰제안서를 KCL 측이 작성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 결과, 2021년 7월경 수융얼 담당사원 A씨는 KCL로부터 ‘수소 에너지산업 고도화 인력양성 사업’ 제안서를 이메일로 받았다.

KCL이 사업을 낙찰받기도 전에 제안서를 직접 작성하고 거꾸로 수융얼에 보낸 것이다.

수융얼 사원 A씨는 KCL로부터 받은 사업제안서를 곧바로 창원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 정모씨에게 보내 수정을 요청했다. 2021년 9월 수융얼은 창원대 정 교수가 수정한 ‘수소 에너지산업 고도화 인력양성 사업’ 제안서를 나라장터에 공고했다.

수소융합얼라이언스 입찰 비리 의혹
MB 자원외교 앞장선 문재도 책임론

KCL은 해당 사업에 단독 입찰했다. 이어 창원대 정 교수와 가천대학교 김모 교수 등이 평가위원으로 참석한 평가위원회서 2021년 9월27일 낙찰받았다. 한 달 뒤인 10월부터 진행된 해당 용역사업은 12월까지 진행됐다. 제안서 작성, 평가, 낙찰 과정까지 사전에 공모한 자들의 계획된 시나리오였다. 

수융얼은 산자부서 내려온 예산 9000여만원을 KCL에 투입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5회 진행한 교육 중에 1~3명만 참석한 날도 있었다. 2개월 동안 총 38명이 참여한 수업에 강사료는 무려 2000만원 이상 투입됐다. 


입찰 비리 혐의로 얼룩진 ‘수소 에너지산업 고도화 인력양성 사업’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인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서 발주했다. 수융얼은 사단법인이기 때문에 산자부 예산을 직접 받을 수 없는 구조다.

해당 사업은 석박사 과정 학생 전문인력양성을 목표로 2021년부터 내년 12월31일까지 총 사업비 약 94억원을 투입할 계획이었다. ‘밸류체인별 교육프로그램 개발·운영’ ‘교육 인프라 확보’ ‘산학연계 인력양성’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했다.

2021년 12월 해당 사업의 결과보고서가 나오면서 부실 논란이 제기됐다. 1명뿐인 교육생을 받아 교육을 개최한 것은 물론, 결과보고서 내용이 사업수행 계획서와 똑같은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부실 논란이 커진 와중에도 사업을 추진한 김 단장과 그를 따르던 수융얼 본부장 이모씨는 2022년도에도 해당 사업을 KCL에 주자고 했다고 전해졌다.

KCL은 산자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 등의 용역수행은 그대로 하면서, 감사는 피할 수 있다. KCL은 국가인증기관임에도 2015년 7월, 민법32조에 따른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법적 지위를 변경했다. 이에 따라 1500억원이 넘는 매출액에 대한 세제 혜택은 물론, 감사도 피할 수 있었다. 

짜여진 
시나리오?

이렇듯 예산 소진 및 사업결과를 쉽게 얻는 목적에 부합되는 KCL은 행정편의와 카르텔 관리, 배임 횡령 등의 유착관계를 형성하며 악순환을 조성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수융얼이 교육사업을 자체 진행할 경우, KCL서 받을 수 있는 각종 행사 개최 예산 등도 받을 수 없다. KCL은 수융얼 교육사업을 수행하면서 ‘수소 전문 교육기관’이라는 명분을 쥘 수 있고, 향후 수소 산업 관련 인증업무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2021년 12월 수융얼 교육사업을 KCL이 수행하면서 수소 전문 교육기관이라는 실적을 쌓았고, 이를 기반으로 2022년 상반기에 고용노동부 컨소시엄 사업 수소 관련 교육기관으로 인증을 받았다. 

수소산업 비전문기관인 KCL에 교육사업을 맡김으로써 부실한 결과를 도출케 한 수융얼은 수소산업 발전을 저해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당초 사업을 추진한 김 단장은 KCL과의 유착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김 단장은 자신의 직속 부하인 이 본부장에게 “박선영 인력양성 팀장이 ‘수소 에너지산업 고도화 인력양성 사업’을 KCL이 아닌 다른 데 주자고 할 것”이라며 “잘 꼬셔서 KCL에 줄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김 단장의 비위 행각을 알게 된 박선영 수융얼 인력양성 담당팀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느껴 입찰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박 팀장이 내부 문제를 외부에 제보한 2022년 7월경부터 수융얼의 부실 운영 실태가 서서히 드러났다.

용역 주고받기
일감 몰아주기


이에 산자부도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박 팀장은 2022년 11월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에 신고했다. 이어 지난해 3월 KCL 입찰에 관여한 수융얼 직원 등은 수소경제육성 및 수소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제57조에 따른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수사 당국은 KCL의 사업제안서를 검토해주고, 해당 입찰의 평가위원으로 참석했던 창원대 정 교수에 대해선 입찰 비리 사건에 공모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 제외했다.

앞서 박 팀장은 김 단장에게 우회적인 협박을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 단장은 박 팀장의 제보를 도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직원을 질책했다. 박 팀장이 2022년 7월경 산자부 수소산업 관계자에게 수융얼의 문제를 고발한 사실이 김 단장 귀에 들어가면서다.

당시 김 단장은 “감히 산자부 과장에게 연락했다”며 박 팀장을 직접 나무란 것으로 전해진다. 공익제보자 보호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앞서 수융얼은 지난해 1월9일 ‘직장 내 괴롭힘’과 ‘불법 채용 및 지시명령 불이행 등 기타 징계사유’로 안건을 나누어 박 팀장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2회 개최했다. 이에 따라 각각 3개월씩, 총 6개월 정직 처분을 내렸다. 당시 박 팀장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한 직원이 신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해자라고 주장한 C씨의 진술은 의도된 것에 가까웠다. C씨는 박씨가 온라인 메시지로 ‘OO’식의 단답형으로 답했다는 것을 두고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주장했다.


박 팀장은 돌연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몰렸다. 박 팀장은 부당함을 주장하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로 향했다. 위원회는 부당징계라는 판정을 내렸고 억울함을 벗겨줬다. 그러나 수융얼은 불복했고,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다시 판단을 구하면서 추가 분쟁을 겪었다.

입맛대로 사업계획서 작성
알고 보니 단독 참가 낙찰

중노위는 C씨의 주장들을 사실상 전부 기각했다. C씨 주장을 근거로 박 팀장에게 정직 6개월을 처분한 수융얼의 판단도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이에 중노위는 박 팀장을 복직시키고 그동안 밀린 임금도 전액 지급하라고 수융얼에 주문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 C씨는 입찰 비리로 검찰에 기소된 직원으로 밝혀졌다.

현재 수융얼 측은 박 팀장에게 보복성으로 의심되는 인사와 징계를 내린 것에 대해 “보복성 징계가 아닌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징계조치”라고 전했다. 또 이른바 ‘카드깡’ 논란에 대해선 “항목간 전용에 해당하는 것이며, 사적 용도로 사용한 것이 확정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여전히 입찰 비리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직원에 관한 입장은 없다.

문재도 수융얼 회장의 책임론도 불거질 전망이다. 엄연히 국고를 낭비한 비위 행각이 드러났음에도 최고책임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문 회장은 이명박정부 시절 자원외교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제25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한 문 회장은 과거 자원개발원전정책관과 산업자원협력실 실장 등을 맡았다.

MB정부 시절의 최고 리스크로 꼽히는 것이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에서 추진된 자원외교의 손실이다. 당시 33조8000억원을 투자했지만, 13조 3000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했다. 자원외교가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던 이유는 사업성 검토 없이 무분별한 투자를 자행했기 때문이다.

2018년 당시 문재인정부는 해당 사업을 ‘적폐’로 규정하고 검찰 수사 대상에 올렸다. 이는 산자부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MB정부 시절 지식경제부(현 산자부) 출신인 문 회장은 2018년 5월 말 무역보험공사 사장 자리서 내려왔다. 당시 산자부 내부에선 문 회장이 해외자원 개발업무 담당자였다는 것이 원인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산자부 어르신
문 회장님 뭐하나

당시 산자부는 “조사 대상은 검찰이 판단할 부분이지만 공사 사장, 산자부 공무원, 청와대 등 범위 제한이 없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서 당시 에너지와 자원외교 업무를 담당했던 현직 간부들이 사의를 자발적으로 표명하는 분위기였다.

이에 대해 산자부 관계자는 “검찰의 수사가 확대되면 스스로 옷을 벗는 인사가 상당수 나온다”고 답했다. MB 자원외교 비리 논란으로 무역보험공사 사장 자리서 내려왔던 문 회장이 수융얼 비리는 어떻게 대처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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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