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소름 돋는’ 이선균 협박녀의 두 얼굴

배우 협박 모자라 본지에 으름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고 이선균씨를 협박해 5000만원을 뜯었다가 구속된 박모씨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박씨는 <일요시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예고한 바 있다. 자신이 이씨에게 금전을 요구했다는 기사 내용은 명백한 허위라는 것. 결백을 주장하던 그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지 않고 도주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이선균씨가 사망함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할 방침이다. 앞서 그는 관련 내용으로 박씨와 유흥업소 여실장 김모씨 등에게 협박을 받아 3억5000만원을 뜯겼다며 경찰에 고소한 상태였다. 

5000만원
뜯어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는 이선균씨를 협박한 혐의로 체포돼 이미 조사가 이뤄졌던 상태다. 박씨는 지난해 10월경 이선균씨에게 2억원을 요구하며 협박해 결국 5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박씨는 이선균씨와 전혀 모르는 사이였으나, 연락처를 알아내 협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법조계에 따르면 박씨는 “(마약을 투약한)김씨를 구속시킬 건데 돈도 받아야겠다”며 “김씨에게 준 돈을 모두 회수하고 (나한테 줄)2억원으로 마무리하자”고 이선균씨에게 말했다고 한다.

협박 혐의가 드러났음에도 박씨는 <일요시사>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박씨가 이선균씨에게 돈을 요구했다는 내용이 담긴 ‘2023년 11월13일자 <단독> ‘이선균 협박 의혹’ 룸살롱 여실장의 변명’ 기사가 명백한 허위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11월23일 박씨는 위임인 김나우 변호사(법무법인 빛)를 통해 <일요시사>에 해당 기사를 삭제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내왔다. 김나우 변호사 측은 내용증명을 통해 “위임인(박씨)은 그 누구에게도 금전을 요구한 사실이 없고, 성명불상의 해커와 공모한 사실도 전혀 없다”고 밝혔다.

취재진이 김씨의 진술서를 통해 기사를 보도했음에도 불구, “허위 사실에 기반한 추측성 보도를 했다”며 “박씨의 개인정보를 침해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기사를 2023년 11월24일 15:00까지 삭제할 것을 요구한다”고 통보했다. 그러면서 “기사를 삭제하지 않으면 불가피하게 법적 절차를 통해 <일요시사>와 김성민 기자, 오혁진 기자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음”이라고 말했다.

생전에 이선균씨도 박씨와 김씨가 공갈 사건을 공모한 것으로 의심했다. 지난해 9월 “모르는 해킹범이 우리 관계를 폭로하려 한다. 돈으로 막아야 할 거 같다”는 말에 김씨에게 먼저 3억원을 건넸기 때문이다. 이로써 박씨와 김씨는 고인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도의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변호사 통해 “기사 고쳐” 요구
언급한 언론사에 법적대응 예고

경찰은 김씨를 협박한 인물을 박씨로 의심하면서도 또 다른 협박범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인 상황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면서도 “이씨가 사망했으나 공갈 사건은 계속 수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일단 박씨와 김씨가 공모관계는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박씨는 이전에도 다른 유부남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그 빌미로 수천만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과거 사기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박씨는 마약 전과 6범인 김씨와 교도소서 처음 만났다. 출소 후 김씨의 오피스텔 윗집에 살며 친하게 지내왔다. 이후 둘은 이선균씨 마약 투약 의혹 사건으로 사이가 틀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이선균씨를 협박해 5000만원을 뜯었다가 구속된 박씨는 김씨의 마약 투약 증거를 경찰에 건넸다. 일각에선 박씨가 감형을 위해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로 박씨는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 사무실에 직접 찾아가 김씨의 머리카락 등 증거물을 함께 제공했다. 이선균씨에게 약물과 투약 장소 등을 제공한 김씨는 박씨의 제보로 인해 지난해 10월19일 경찰에 체포됐고 사흘 뒤 구속됐다.

경찰은 박씨가 친하게 지낸 김씨를 제보한 배경에 돈 문제와 이선균씨 협박 사건이 깔려있다고 봤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김씨의 진술 자료에 따르면 “이선균씨가 건넨 돈 가운데 5000만원은 아파트 23층에 사는 박씨가 요구한 것”이라고 적혀있다. 그러면서 김씨는 “(자신을)협박한 해커와 박씨가 공범”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김씨는 해커가 박씨에게 보낸 SNS 메시지를 통해 공범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김씨는 “박씨가 해커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내게 보여줬다”며 “메시지에는 ‘(김씨에게)당장 텔레그램 차단 풀라고 해. 안 그럼 연예인과 김씨가 찍은 사진을 유포하겠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자신이)박씨와 매일 만날 만큼 친했기에 모든 것을 보여준 사이”라며 “박씨는 번호를 바꾼지 일주일 밖에 안됐는데 해커가 어떻게 박씨에게 카톡을 하느냐”고 해커와 박씨가 공범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교도소서 
처음 만나

김씨 측근에 따르면 현재 3억원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김씨는 “이선균씨에게 받은 3억원을 해커에게 건네주려 했으나, 해커를 만나지 못해 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해커가 약속 시간과 장소를 인천 인근으로 정한 뒤 밤 12시까지 박씨와 함께 나오라고 통보했다”고 진술했다.

박씨와 해커의 공모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비슷한 시기에 이선균씨에게 2억원을 요구하며 협박해 5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는 이선균씨의 아내 전혜진에게도 접근해 돈을 갈취하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 2일 유튜브 채널 ‘연예뒤통령 이진호’에서는 ‘그녀가 보낸 소름돋는 카톡 입수’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에 따르면 지난해 10월4일 박씨와 김씨가 주고 받은 메시지 내용에서 박씨는 김씨에게 “오늘 새벽까지 2억원 안 들고 오면 이선균네 아내한테 연락할 거다. 네 주변 애들한테 다 알린다”고 말했다.

영상에는 박씨가 이선균씨에게 보낸 협박성 메시지도 공개됐다. 해당 메시지에는 “김씨 때문에 시간 낭비를 너무 많이 했다. 오늘 (제)연락을 김씨에게 전달해서 또 2차 피해가 온다면 김씨 폰에서 나온 녹음 원본을 유포할 것”이라는 협박성 내용이 담겼다.

특히 “전혜진 번호도 이미 제 일주일간의 집착으로 알아냈다”며 이선균씨 아내에게도 협박할 의사를 내비쳤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이선균씨에게 “김씨를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시켜 당신이 B씨에게 준 3억원을 모두 찾아 주겠다. 그 대신 나에게 2억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이선균씨는 박씨에게 5000만원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이선균씨가 숨진 채 발견된 지난해 12월27일 경찰에 체포됐다. 박씨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소재를 파악하고 사전 구속영장 청구와 함께 발부된 구인장을 집행해 박씨를 체포했다. 박씨는 전날 오후 인천지법서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에 사유를 밝히지 않고 불출석하는 뻔뻔함을 보였다. 

3억원
행방은?

체포된 박씨는 지난해 12월28일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법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경찰 호송차를 타고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박씨는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아이를 안은 채 심사장으로 이동했다. 영장실질심사에 어린 자녀를 안고 출석하자 ‘아기 방패’ 논란에 휩싸였다.

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대아협)는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박씨에 대해 아동학대 혐의로 고발장을 접수했다. 대아협 측은 고발장서 “박씨가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출석하며 사건과 관계없는 만 1세 아동을 동반했다”며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이는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정서적 학대 행위에 해당한다”고 엄중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선균씨를 협박해 금품을 빼앗은 박씨가 과거 독립영화에 출연한 영화배우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유튜브 채널 <카라큘라 범죄연구소>는 지난 3일 유튜브에 올린 영상서 박씨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했다.

카라큘라는 “(이선균 사건의)본질은 마약이 아니라 공갈·협박”이라며 “이 공갈·협박을 최초로 설계하고 실행한 자는 박씨”라고 주장했다. 이어 “미혼모인 박씨는 그간 만나왔던 여러 남자에게 ‘이 애가 네 애’라고 하면서 양육비를 받아왔다”고 전했다. 


카라큘라의 주장대로라면 박씨는 2010년대 독립영화에 출연한 배우다. 출연작으로는 2012년 개봉한 영화 <재앙의 시작>(주연), 2015년 개봉한 영화 <파랑새>(단역) 등이 있다.

다만, 수사기관의 확인이 없는 현재로서는 박씨가 아닐 가능성도 존재한다. 현재 박씨는 자신의 신상을 공개한 카라큘라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카라큘라는 커뮤니티에 “박씨가 변호인을 통해 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는 소식을 박씨 지인을 통해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주연·단역 활동 공개 프로필 눈길 
아역배우 출신…‘아기 방패’ 논란

카라큘라는 “이선균은 마약 전과 6범 김모씨의 진술만으로 언론을 통해 피의사실과 신상이 공개됐고 경찰의 공개 소환으로 포토 라인에 불러 세워져 온 국민 앞에 쌩 난도질당했다”며 “누구는 천만 배우니까 증거 없이 혐의만으로도 온통 까발려지게 되고 누구는 무명 배우니까 명확한 증거가 차고 넘쳐도 공개되면 안 되는 거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박씨가 온라인 포털사이트에 자신의 프로필을 버젓이 걸어둔 것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카라큘라는 “네이버 인물 등록에 협박범 박씨 본인이 자기 얼굴 사진까지 직접 제공해 대중에게 자신을 ‘배우’라고 당당히 밝혔는데 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거냐”며 박씨의 뻔뻔한 태도를 강하게 비난했다.

한편,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카라큘라가 공개한 배우와 박씨가 동일 인물이라 하더라도 개인에 의한 신상공개는 처벌받을 수 있다. 범죄 피의자의 신상정보 공개는 현행법상 강력 범죄·성범죄에 한해 이뤄지며 경찰 내부위원 3명, 외부위원 4명으로 구성된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서 심의를 열어 과반이 찬성해야 한다.

이선균씨 측도 루머에 법적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고인의 소속사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는 지난 3일 “3개월여간 이어진 일부 매체의 이선균을 향한 악의적이고 무분별한 보도에 매우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당사는 지난해 12월27일 밤 허위 내용을 사실인 양 보도한 기자를 고소했다. 해당 기자님께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이후 진행될 법적 절차에 성실히 임해주실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유튜브 등을 통해 이선균 사건에 관한 루머가 겉잡을 수 없이 확산돼 2차, 3차 피해가 속출했다. 경찰 수사 과정서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피의 사실이 무차별적으로 공개됐고, 악의적인 소문으로 확산됐다.

이와 관련해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는 “출처가 확실하지 않거나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고 보도된 모든 기사 및 온라인상에 게재된 모든 게시물에 대해서 수정과 삭제를 요청드린다”며 “부디 빠른 조치 취해주길 거듭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쏟아진 루머
피해 속출?

이선균씨는 지난해 12월27일 오전 10시30분께 서울 종로구 와룡공원 근처 차량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두 달 전 그는 유흥업소 여실장 김모씨(29)의 주거지서 대마초와 케타민을 투약한 혐의 등을 받아왔다. 간이 시약 검사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차(모발)·2차(겨드랑이털) 정밀검사에서는 음성 판정을 받았다. 앞서 이선균씨는 지난해 10월28일과 11월4일에 이어 12월24일 세 번째 경찰 소환조사를 마쳤다. 사망 하루 전날인 12월26일까지도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에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 억울함을 호소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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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