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TV> CIA 비밀요원이자 성공한 기업가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의 아버지 유기연은 사업으로 자수성가 한 인물로, 일찍이 서구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일제강점기로 망해가는 고국의 현실에 안타까워하던 유기연은 자식들이 장차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근처 강대국에 자식들을 유학 보내기로 한다. 장남이었던 유일한은 1904년, 당시 9세의 나이로 홀로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이 더 심해지며, 유기연의 사업도 큰 타격을 받는다.

결국 유일한이 미국에 간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서, 집에서도 유학 생활에 금전적 지원을 해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그 때문에 어린 나이임에 불구하도 구두 닦기, 신문 배달 등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고된 생활에도 학업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열심히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본가로부터 ’귀국하라‘는 소식이 도착했다.


‘집안 형편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으니, 유학을 중단하고, 귀국해서 함께 가족을 부양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학 진학까지 1년이 채 남지 않았던 시기였다.

고민이 깊어진 유일한은 은사를 찾아가 상담하기로 한다.

평소 유일한의 총명함과 성실함에 그를 기특히 여기던 은사는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지금 당장 가족에게 필요한 돈은 내가 보증 서줄 테니 은행서 대출을 받고, 대학 입학은 1년 정도 미루고 지금은 필요한 자금을 벌어라.”

유일한은 그렇게 빌린 돈 전부를 가족에게 보낸다.

덕분에 그의 가족은 고비를 넘길 수 있었고, 유일한은 이후 1년간 디트로이트의 발전소서 일을 하며 빚을 갚아 나갔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유일한은 모든 빚을 청산하고 미시간 대학에 진학했다.

부족한 학비는 대학교 근처 철도건설에 동원된 중국인 노동자들을 상대로 중국 관련 물품을 팔아서 충당했으며, 학업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1919년, 그해 미시간 대학은 유일한을 가장 우수한 학생으로 선정했다.

졸업 후 사업 시작

중국 관련 물품을 팔 때 꽤 좋은 이익을 남겼던 유일한은 사업에 흥미를 느꼈다.

그가 살던 동네에는 중국인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즐겨 먹는 중국 음식에 숙주가 많이 사용된다는 걸 알게 된다.

특성상 숙주는 보관 및 유통이 어려워 상인들에게는 골칫거리였다.

이에 유일한은 상대적으로 시장이 넓지만 경쟁자가 적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당시에 상하기 쉬운 포장 방법을 바꿔 유리병에 숙주를 담아 파는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를 홍보할 적절한 수단이 없었던 만큼 주문량은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일한에게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번화가 한복판서 일부러 숙주나물이 담긴 트럭을 전복시키기로 한 것이다.

트럭이 쓰러지며 숙주를 담고 있던 유리병이 깨져 사방으로 흩어졌고, 숙주나물은 도로를 뒤덮었다.


해당 사고는 뉴스에 보도됐고, 덕분에 일한의 숙주나물 사업은 미국 전역에 알려졌다.

아마 한국인 최초의 노이즈마케팅이 아니었을까?

그 일로 숙주나물 주문량은 폭증하며 사업의 규모가 커졌다.

더불어 유리병서 통조림 용기로 개선하는 데 성공한다.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주문량을 소화해내기 위해서 대량생산이 필요했고, 이는 공장을 지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자금이 부족했던 유일한은 식료품 장사를 하던 대학 동기 ‘윌레스 스미스’를 찾아가 동업을 제안한다.

1922년, 그렇게 ‘La Choy 라초이’ 식품회사가 설립된다.

스미스는 사장을 유일한은 부사장을 맡았다.

(초이: 청경채를 뜻하는 불어 겸 중국 음식을 가리키는 은어)

라초이는 훗날 숙주나물 외에도 콩나물, 간장 등 아시아 식품을 통조림으로 가공해 팔며 400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로 성장한다.

고국 방문

1925년, 미국서 성공한 사업가가 된 유일한은 숙주나물에 사용될 좋은 녹두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고국 방문으로 들떴던 마음도 잠시, 당시 일제의 지배를 받던 한국의 암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기생충은 들끓었고 사람들은 피부병으로 고통받고 있었으며 심지어 감기 같은 가벼운 질병에도 마땅한 약이 없어 고생하는 사람이 즐비했다.

이를 지켜본 유일한은 이내 곧 마음이 무거워졌다.

고국서의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유일한은 대학생 시절부터 알고 지낸 중국계 미국인이자 소아과 의사인 호미리 여사와 결혼식을 올렸다.

단란한 신혼 생활과 성공적인 사업확장으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삶이었지만, 그의 머릿속 한편에서는 비참한 고국의 현실이 떠나지 않았다.

그때 때마침 한국의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한 에비슨 박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유일한은 지금의 연세대학교인 연희전문학교의 상과(경제학과) 교수로, 아내 호미리 여사는 세브란스병원의 소아과 과장으로 일해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을 운명이라 생각하면서도 고민에 잠겼다.

그리곤 떠올렸다.

한국서 많은 사람이 간단한 치료조차 받지 못했던 것을.

“그래, 한국으로 돌아가 의약품 사업을 하겠어.”

그렇게 아내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이고, 자신은 사업가의 길을 이어가겠다고 결심한다.

유한양행의 설립

고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위해, 유일한은 식품회사 라초이의 지분을 동업자, 스미스에게 넘긴다. 그렇게 받은 돈 25만달러. (1920년 당시 1달러는 지금의 한화 약 10만원으로 25만달러는 250억원으로 추정)

그는 25만달러로 당시 한국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구충제, 결핵 치료제, 피부 연고 등 미국의 질 좋은 의약품을 구입한다.

그리고 독립운동을 함께 했던 서재필을 찾아간다.

서재필은 그에게 ‘뜨거운 여름날 사람들이 햇빛을 피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이 돼라’는 의미로 버드나무 그림을 선물했는데, 이것이 바로 유한양행의 상표가 된 버드나무 그림의 시초다.

1926년, 한국에 들어온 유일한은 종로로 향했고 그곳에서 의약품 유통회사를 설립한다.

이게 바로 유한양행이다. (유일한의 이름을 딴 ‘유한’과, 대양을 건넌다는 뜻의 ‘양행’)

그렇게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한 유일한.

그에게 첫 번째 과제가 있었다.

바로 ‘인식의 개선’이었다.

당시 국내서 사용된 의약품은 일본제품들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게다가 제대로 된 설명조차 없어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팔기 일쑤였다.

유일한은 한국인들과 외국인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병의원을 공략했다.

사장인 유일한이 직접 운전해가며 찾아가 서울 세브란스, 평양 기을병원, 전주 예수병원, 순천 미동병원 등을 거래처로 확보했다.

거래처를 뚫었으니, 이번엔 제품을 알릴 차례였다.

만병통치약인 양 파는 과대광고가 아닌 약의 효능과 인체 영양 작용 컬러 포스터를 게시하며 ‘믿을 수 있는 의약품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했다.

점차 유한양행의 제품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더불어 그는 미국 의약품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의약품 개발에도 힘을 썼다.

가장 대표적인 의약품으로는 ‘안티푸라민’이 있다.

‘안티푸라민’을 개발한 이유를 살펴보면 당시 국내엔 상처와 통증을 관리하는 소염 진통 의약품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일제의 지배로 고통받고 상처 입는 국민은 점점 늘어났지만, 아픔을 달래줄 마땅한 치료제가 없었다.

그래서 유일한은 아내 호미리 여사와 함께 안티푸라민을 개발했고 국민 상비약으로 자리 잡았다.

안티푸라민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고, 현재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유일한이 나라를 위해 기업가로서만 활동한 것은 아니다.

비밀 요원 A

1942년부터 유일한은 비밀 요원으로서 활약하기 시작한다.

1945년에는 5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상대로 한 OSS의 비밀첩보작전에 1조 조장으로 참여해 강도 높은 훈련을 모두 소화했다.

일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거점을 확보해 일본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극비로 진행된 이 작전의 이름은 냅코 프로젝트(NAPKO Project)였다.

이 작전은 유일한이 별세한 지 20년이 지나 기밀문서가 비밀 해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1995년에 그간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됐다.
 

과거 한 때 국내 기업들은 정부에 정치자금을 바쳐야 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한양행은 정치자금의 거부하고 오히려 그 돈으로 의약품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이를 아니꼽게 본 정치인들은 유한양행을 상대로 보복성 감사를 진행했습니다.

감사관들은 쓰레기통의 영수증 한 장까지 철저하게 조사했습니다.

하지만 티끌만한 의혹 한 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품의 성분함량 검사에서는 제조 시 날아갈 분량을 생각해 표기보다 더 많이 첨가해 생산하고 있었는데요.

이를 두고 당시 감찰관 김만태는 “뭐 이런 기업이 다 있나?”라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네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산 유일한 회장, 그런 그가 창립한 유한양행은 20년 연속으로 한국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산업 부문 1위에 선정되며, 현재도 ‘유일한 회장의 유지’를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기획&구성&촬영 : 김미나
편집 : 김미나/임동균
일러스트 : 정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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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비 마친 민주당 속도전

재정비 마친 민주당 속도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신임 원내대표와 세 명의 최고위원을 선출하면서 제모습을 되찾았다. 신임 원내대표는 당의 발목을 잡은 ‘김병기 논란’과 ‘공천 헌금 의혹’을 털어내야 한다. ‘정청래 체제’에 힘이 실렸다는 평가 속 세 명의 최고위원은 ‘당정 엇박자’ 논란을 최소화하면 남은 개혁을 해치워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지난 11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와 최고위원이 선출됐다. 한병도 의원이 원내대표직을, 강득구·문정복·이성윤 의원이 최고위원직을 맡으면서 새 진용을 꾸렸다. 쏠리는 권력구도 한병도 신임 원내대표는 수락연설을 통해 “지금, 이 순간부터 일련의 혼란을 신속하게 수습하고 내란 종식, 검찰개혁, 사법개혁 민생 개선에 시급히 나서겠다”며 “우리의 목표는 하나, 이재명 대통령의 성공”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정 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민생을 빠르게 개선해서 이재명정부 성공을 든든하게 뒷받침하도록 하겠다”며 “지방선거라는 큰 시험대가 우리 눈앞에 있다. 더 낮고 겸손한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유능한 집권여당의 모습을 국민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당당하게 승리하겠다”고 말했다. 야당과의 관계에서도 원칙을 분명히 지키겠다고 밝혔다. 한 원내대표는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열린 자세로 대화와 타협에 나서겠다”면서도 “내란 옹호, 민생을 발목 잡는 정쟁은 단호히 끊어내겠다. 선배·동료 의원님들께선 집권여당 국회의원으로서의 책임감을 저와 함께 나눠 들어달라”고 제안했다. 이번 원내대표 보궐선거는 각종 비위 의혹에 휩싸인 김병기 전 원내대표가 사퇴함에 따라 치러진 것으로, 한 원내대표의 임기는 오는 5월 중순까지다. 다만 한 원내대표는 합동 토론회 당시 “다음에 출마하지 않을 테니 지지해 달라는 건 맞지 않다”며 연임 가능성을 열어뒀다. 한 원내대표는 문재인정부 당시 조직본부 공동부본부장과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내는 등 친문(친 문재인) 인사로 분류됐으나 이후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당시 전략기획위원장을 맡는 등 핵심 인사들과 두루 원만한 관계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김 전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가 여러 번 충돌한 만큼 신임 원대는 비교적 계파색이 옅은 ‘온건파’를 택했다는 기류가 읽히는 이유다. 한 원내대표는 연이어 발생한 당의 위기를 수습하는 동시에 올해 지방선거를 준비하며 추가 사고를 대비하는 등 ‘안정·관리형’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와의 마찰을 최소화하는 한편 정 대표와 청와대 간 가교 역할도 해야 한다. 한 원내대표 선출 배경에는 이 대통령의 의중이 실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친명(친 이재명) 천준호 의원이 한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의원들 또한 한 원내대표를 차기 권력으로 봤다는 것. 온건한 한병도…‘친청’ 굳힌 지도부 계파 싸움 뒤로하고 닥친 일부터 처리 당시 한 민주당 관계자는 “천 의원은 이 대통령의 당대표 비서실장을 맡았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원내대표 후보 기자회견에 자리한 것은 친명의 마음을 대변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며 “당에서는 명청 갈등에 선을 긋지만 내부에서 자초한 일이다. 그 짧은 시간 안에 김병기-정청래 간 갈등이 여러 번 발생했다. 권력다툼이 없겠느냐마는, 시기가 너무 일렀고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올만한 군불을 땠다”고 말했다. 같은 날 최고위원 3명을 뽑는 보궐선거에서 강득구·이성윤·문정복 의원이 선출됐다. 이 중 강 최고위원은 친명, 나머지 두 사람은 친청(친 정청래)으로 분류돼 계파 대리전이라는 시각도 존재했다. 민주당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를 진행한 결과 ▲강득구 30.74% ▲이성윤 24.72% ▲문정복 23.95% 순으로 득표했다고 밝혔다. 친청계와 각을 세웠던 이건태 의원은 20.59%로 탈락했다. 지도부 내 친청계 비율이 높아지면서 이번 선거를 통해 정청래 체제가 굳어졌다는 평이 나온다. 그동안 민주당은 ‘명청 대리전’에 선을 긋고 불필요한 잡음이 생기는 것을 경계했다. 정 대표 또한 최고위원 보궐선거가 끝나고 이어진 마무리 발언으로 “우리는 선거 때는 치열하게 경쟁을 하지만 그건 다 민주당 안에서의 경쟁”이라며 “지도부로서 최선을 다해서 반드시 6·3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고 이재명정부 승리를 위해서 원팀으로, 원보이스로 팀플레이 하도록 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 원내대표는 그동안 김 전 원내대표와 정 대표의 갈등을 지켜봐 온 만큼 충돌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원내대표단은 추가 리스크를 막기 위해 ‘안정형’으로 가는 반면, 지도부는 지방선거를 의식해 ‘강경파’ 기조를 유지하는 만큼 이 과정에서 양측 간의 이견을 잘 조율하는 것이 두 사람의 공통된 첫 번째 과제다. 정청래 체제가 견고해지면서 강경 노선 또한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눈길이 쏠리는 것은 이미 한차례 부결된 1인1표제의 부활 여부다. 이성윤·문정복 최고위원은 1인1표제에 강하게 힘을 실었던 만큼 이를 명분 삼아 재추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1인1표제는 당 대표 선거 등에서 대의원에 부여된 가중치를 없애고 대신 권리당원 표와 가치를 동등하게 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8월 전당대회서 권리당원의 힘을 입어 당 대표직을 거머쥔 만큼 그들의 가중치를 높여 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팀플레이 첫 난관 그러나 지난달 5일 중앙위원회로 부의된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내용을 담은 당헌·당규 개정안이 부결됐다. 70% 넘는 찬성률에도 숙의 과정이 충분치 않았고 영남 등 취약 지역이 존재하는 등 형평성 논란에 부딪혀 재적 과반을 넘지 못한 탓이다. 이는 정 대표의 핵심 공약이었던 만큼 지도부로서 갖춰야 하는 리더십도 타격을 받게 됐다. 정 대표는 보궐선거를 앞둔 당시 이미 1인1표제 도입을 위한 당헌 개정을 즉각 재추진하겠다고 예고해 둔 상태다. 지난 12일 정 대표는 최고위회원회의에서 “민주당을 완전한 ‘당원 주권 정당’으로 만들겠다고 다시 한번 약속드린다”며 “국민주권 시대에 걸맞게 당원 주권 시대를 신속하게 열겠다. 이미 천명한 바와 같이 1인1표제는 즉시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인1표제 외에도 2차 종합특검, 통일교·신천지 특검, 대전·충남 및 광주·전남 통합법, 사법개혁법안 현안 등 입법이 산적했다. 정 대표는 설 연휴 이전 처리를 약속하며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200여개의 민생 법안도 국민의힘의 발목 잡기를 뚫고 처리해 민생을 보살피겠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는 한 원내대표도 힘을 실었다. 그는 “2차 종합 특검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 수사 공백을 메우고 내란 기획, 지시, 은폐 전모를 남김없이 밝혔다”며 “사면법 개정으로 내란 사범이 사면권 뒤에 숨는 일은 원천 봉쇄하겠다. 내란 청산은 민주주의의 기초이고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다양한 과제를 거침 없이 해치우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들의 첫 시험대는 당을 둘러싼 ‘공천 헌금 의혹’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의혹에 당이 흔들리면서 6월 지방선거까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제명 처분을 받은 민주당 김 전 원내대표는 버티기 모드였다가 19일, 돌연 탈당 기자회견 후 당을 떠났다. 현재 김 전 원내대표는 대한항공 호텔·숙박 초대권 의혹, 쿠팡 대표와 고가의 식사 의혹, 공천 헌금 수수 묵인 의혹 등을 받고 있다. 이에 윤리심판원은 그에게 제명 처분을 내렸고, 김 전 원내대표는 재심을 청구를 예고했던 바 있다. 김 전 원내대표에 대한 처분은 늦어도 이달 말쯤 결론이 날 것으로 전망됐으나 스스로 탈당을 선언하면서 민주당 입장에선 또 다른 짐을 덜게 됐다. 민주당은 김 전 원내대표의 시간 끌기가 부담스러울뿐더러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로 거듭 자진 탈당을 요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지방선거 올인 모드 앞서 한 여권 관계자는 “윤리심판원은 60일 이내에 재심 결정을 해야 하지만 당 지도부는 이보다 빠르게 사안을 매듭짓고 싶어 한다. 여의도는 하루가 다르게 지방선거 모드로 접어들고 있는데 (공천 헌금 의혹에) 메어 있을수록 당에 손해”라면서도 “(정 대표가 김 전 원내대표에 대한) 비상 징계를 할 가능성은 작다”고 귀띔했다. 민주당은 무너진 당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신뢰를 회복한 뒤 지방선거 기반을 탄탄히 쌓겠다는 방침이다. 공천 헌금 문제를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에서 두고두고 발목 잡히는 만큼 의혹을 제대로 털어내기 위함이다. 공천 헌금 문제를 매듭짓는 동시에 민주당은 6월 지방선거 의제 선점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장 눈여겨볼 점은 행정통합으로, 지역 표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지 이목이 쏠린다. 앞서 민주당 대전시당은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지역 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통합 시장을 지방선거에서 선출할 수 있도록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민주당 충남·대전 통합 및 충청지역 발전 특별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은 황명선 의원은 국회에서 첫 전체회의를 열어 “충남도민과 대전시민의 의견을 철저히 담아낸 특별법을 내년 1월 중에, 늦어도 2월 초까지 발의하고, 2월에 국회 처리, 6·3 지방선거에서 통합시장 선출, 7월1일 통합특별시 출범을 목표로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역 특별위원회 역시 “대한민국의 성장 방식을 다시 설계하는 ‘구조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이재명정부의 국가 균형성장 전략인 ‘5극 3특’을 현실로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전의 첨단과학 디엔에이(DNA)와 충남의 제조 기반을 결합해 경제 영토를 넓히고, 광역철도와 도로망을 확충해 대전과 충남을 1시간 생활권으로 연결하는 한편 통합에 걸맞은 자치 권한과 특례 등 재정 주권을 확보해 스스로 설계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광주·전남 통합도 급물살을 탔다. 정치권에서는 보수 색채를 띠는 대전·충남 대신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광주·전남이 먼저 통합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대전·충남’ ‘광주·전남’ 통합 급물살 척척 맞을까?…6월 지선 표밭 다지기 전력 지난 14일 광주·전남 통합 추진 특별위원회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간담회를 하고 행정통합 시 권역별 발전 계획 수립이 필요함을 전달했다. 공동 위원장을 맡은 김원이 의원은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광주·전남, 전남·광주 통합은 이미 사실상 결정됐다”며 “오는 6월 지방선거는 통합자치단체 선거로 치러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전남은 구의원과 단체장 등이 대부분 민주당 소속으로 사실상 통합에 큰 걸림돌은 없을 것이란 해석도 제기된다. 우선 전남도와 광주시가 양 시·도 교육청과 뜻을 모았다. 김 총리와 간담회가 마련된 날 김영록 전남도지사와 강기정 광주시장, 김대중 전남도교육감, 이정선 광주시교육감 등 네명은 민주당 정책위의장실에서 회담을 열고 본격적으로 통합 논의를 이어갔다. 이들은 회담 후 ‘광주·전남 대통합 공동 합의문’을 발표하고 ▲특별법 제정 추진 ▲27개 시·군·구 정체성 존중 ▲교육자치 보장 등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민주당 광주광역시당도 같은 날 상무위원회에서 ‘광주·전남 행정통합 적극 추진을 위한 결의문’을 채택하고, 광주·전남 행정통합 추진을 광주광역시당 공식 당론으로 결정했다. 양부남 광주시당위원장은 결의문에서 “광주·전남 행정통합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필수 과제”라며 “상무위원회에서 조속한 추진을 공식 당론으로 결정한 만큼, 광주시당이 앞장서 통합 논의를 실행 단계로 책임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보이스’ ‘원팀’을 강조하던 중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복병이 나타났다. 순항하는 줄만 알았던 검찰개혁이 민주당을 두 쪽으로 가르면서다. 한 원내대표는 “검찰개혁 법안과 관련해 정부·의원들 간 이견이 있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얼마 뒤 SNS를 통해 “당정 이견은 없다”고 뒤집었다. 정 대표도 “개별적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 혼란을 일으키는 일은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벌써부터 불안 불안 이 같은 일련의 사태에는 완전한 수사·기소 분리 등 당이 강성 지지층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민주당은 숙의 과정이라며 논란에 선을 그었지만 새 진용이 꾸려짐과 동시에 손발이 엇나가면서 불안한 기류를 보였다. 청와대와 여당, 강성 지지층과 중도층이라는 급류에 올라탄 민주당이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 ‘장기적 과제’이자 ‘여당의 숙명’으로 자리를 잡았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전·충남 통합 여야 샅바싸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정부여당이 대전·충남 행정통합 관련 새 특별법안 발의를 예고한 데 대해 “특례 없이 행정구역만 합치는 것은 정치공학적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지난해 국민의힘이 먼저 띄운 만큼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견제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장 대표는 이장우 대전시장을 만나 “대통령이든 민주당이든 진정성을 가지고 추진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257개 특례뿐 아니라 260개, 270개 더 많은 특례를 담아야 할 것”이며 “특례가 포함되지 않으면 그냥 행정구역만 합치는 것, 시장과 도지사를 합쳐서 한 명의 시장을 내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꼬집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대전·충남 통합은 국민의힘 소속 광역단체장이 찬성하고 지금까지 끌고 온 이슈다. 여야를 넘어 대전·충남의 발전이 중요하기 때문에 수용하는 결정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 대표는 ‘우리도 대전·충남 통합을 적극 환영한다. 공동으로 추진하자’는 발언을 하시길 바란다”며 정부여당에 협조할 것을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