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여순사건 역사학자 표절·욕설 의혹

베낀 책 항의하니 “뭐? X같은 XX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여수 순천 10·19 사건’ 이른바 여순사건을 연구하는 역사학자가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렸다. 학자로선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도 역으로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피해자를 몰아붙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과정서 욕설까지 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 특히 역사학자는 과거 일어난 사건을 연구하고 기록해 다음 세대에 전달한다는 사명감을 원동력 삼아 나아간다. 역사학자의 연구와 기록은 그 자체로 다시 역사가 된다.

산적한
연구 소재

‘여수 순천 10·19 사건’(이하 여순사건)은 1948년 전남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14연대 일부 군인이 정부의 ‘여순 4·3 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발생했다. 전남과 전북, 경남 일부서 이념 간 대립이 극에 달했고 이 과정서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됐다. 

여순사건은 오랜 시간 수면 아래 묻혀 있었다. 사건의 명칭조차 권력의 입김에 따라 멋대로 바뀌었다. 희생자는 불명예를 씻지 못했고 그 유족은 70년 넘는 시간 동안 숨죽인 채 살아야 했다. 

그러다 더 늦기 전에 여순사건의 진실을 찾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 결과 2021년 여순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를 지원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만들어졌다. 여순사건이 일어난 지 73년 만이다. 


여순사건 특별법은 2001년 16대 국회 이후 4차례나 발의된 바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이념 대립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2021년 6월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 등 152명이 공동 발의한 여순사건 특별법은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가 차원서 여순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희생자를 지원하는 방안을 처음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행보로 여겨졌다. 지난 7월에는 여순사건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희생자 유족의 불편함과 행정상 비효율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여순사건에 관한 진상규명은 이제 막 첫발을 뗀 상태다. 한 여순사건 연구학자는 “70년 넘게 감춰져 있던 진실을 파헤쳐야 하는 작업이라 발굴해야 할 자료와 연구 소재가 말 그대로 무궁무진하다”고 설명했다. 

학계에 따르면 현재 여순사건을 연구하는 역사학자는 20명 남짓이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모으고 희생자 유족을 만나면서 여순사건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이들이다. 자료 발굴부터 희생자 유족 인터뷰까지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을 해가며 여순사건을 연구했다.

최근 몇 년 새 여순사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진상규명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만들어지면서 역사학자의 노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70여년 만에 진상규명 시동
“특별법 이후 관심 커졌다”

전남 동부권서 여순사건 역사학자로 잘 알려진 주모 전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소장이 여순사건을 연구하는 한 목사의 논문을 인용 표기 없이 자신의 책에 그대로 가져다 쓴 사실이 드러났다. 여수서 교회를 운영하는 정모 목사는 주 전 소장을 상대로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전북대서 여순사건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주 전 소장은 ‘여순사건 알리기’에 가장 기여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소장, 여순사건 재심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등을 지냈고 저서로는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 <불량국민들> <주○○의 여순항쟁 답사기 1·2> 등이 있다.

사건은 지난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 목사는 지역 도서관을 찾았다가 우연히 주 전 소장이 지난해 6월 발간한 저서 <주○○의 여순항쟁 답사기 2>를 보게 됐다. <주○○의 여순항쟁 답사기 1·2>는 여순사건의 전개 과정과 관련 장소를 주제로 삼았다.

여순사건 특별법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여순사건이 국민적 관심을 받던 시기에 첫 권이 나왔다.

정 목사는 1권(2021년 9월 발간)은 주 전 소장이 선물로 준 적이 있어 읽었지만 2권은 그날 처음 접했다고 한다. 도서관서 가볍게 책을 훑어보던 정 목사는 특정 대목에 이르러 의아함을 느꼈다. 2021년 포럼서 발표하고 논문으로 작성한 자신의 글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기재된 부분을 발견한 것. 

정 목사는 여순사건 초기, 순천서 경찰에게 총살당한 ‘박찬길 검사’ 사건을 연구했다. 정 목사에 따르면 1948년 10월24일 경찰은 박찬길 검사가 ‘인민재판’의 재판장을 지냈다는 혐의를 씌워 그를 즉결 처형했다. 

인용 표기
안 하고?

정 목사는 2021년 10월7일 순천시 건강문화센터 다목적홀서 열린 ‘여순항쟁 73주년, 국가폭력과 여순사건 특별법 진상규명’ 포럼에 발제자로 참석했다. ‘역사왜곡, 진실을 말한다- 송욱 교장‧박찬길 검사의 오명’을 주제로 진행된 이날 포럼서 정 목사는 ‘박찬길 검사와 인민재판장 모략 학살’을 발표했다.

주 전 소장도 발제자로 참석해 ‘송욱 교장과 환상의 여학생부대 진실’을 발제했다. 여순사건 당시 여수여중 교장이었던 송욱 교장은 민간인 주모자로 몰린 뒤 그 소식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정 목사는 포럼서 발제한 박찬길 검사 사건을 다듬어 <여순사건 당시 ‘박찬길 검사 총살 사건’의 진실> 논문을 작성했다. 박찬길 검사의 생애와 사망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다루면서 여순사건 당시 민간인 학살이 얼마나 쉽게 자행됐는지를 언급했다. 

주 전 소장이 정 목사의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부분은 박찬길 검사의 이력을 다룬 문장이다. 정 목사는 논문서 ‘박찬길은 1945년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해 11월 공주지방법원 특별검찰부 사법 시보로 검사 생활을 시작한다.11)’고 박찬길 검사의 이력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 문장에 다음과 같은 각주를 달았다. 

‘각 지방법원 인사발령,’ <중앙신문>(1945. 11. 27) 일제강점기 조선변호사시험은 해마다 한 차례씩 있었고 1945년에는 8월 14~15일까지 치렀다. 그런데 15일 오전 상법 시험이 끝나고 오후 경제학 시험만 남겨 놓은 상황서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무조건 항복’하자 시험은 중단되고 말았다. 이에 수험생들은 이법회(以法會)를 조직해 “시험 중단 책임은 일본정부와 조선총독부 시험위원회에 있다”며 전원 합격 증서를 요구해 200명 중 106명이 합격증서를 받아냈다. 박찬길이 이 시험에 응시하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1947년 11월 검사로 임관한 사실로 미루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이용구, “변호사 양성제도의 변화가 주는 의미,” <대한변협신문>(2015. 08. 24) 참조.  

“문제없다”
안일한 태도


박찬길 검사가 검사 생활을 시작한 시기, 직책 등을 언급한 자료를 각주로 소개한 것이다. 이 문장과 각주는 주 전 소장의 <주○○의 여순항쟁 답사기 2> 중 박찬길 검사를 다룬 부분에 그대로 등장한다. 주 전 소장은 해당 저서에서 9쪽을 할애해 박찬길 검사 사건을 소개하면서 정 목사의 글 일부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 인용 표기는 없었다.

타인의 저작물을 일부 또는 전부를 무단으로 가져다 쓰는 행위는 표절로 간주되며 이는 심각한 저작권 침해로 여겨진다. 법적 분쟁으로 확대되면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 정도로 저작권자의 권리를 중요하게 본다. 문재인정부에서는 논문 표절을 5대 비리로 규정해 고위공직자 임용 기준으로 삼을 정도였다.

학자의 경우 그 잣대가 더 높다. 표절 문제는 연구윤리 위반 사례 중에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꼽힌다. 표절 시비가 불거지면 논문에 대한 신뢰도가 급락하는 것은 물론 학자로서의 위신에도 큰 타격을 입는다. 학자에게 굉장한 민감한 문제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글을 쓸 때 출처를 표기하는 일은 학자에게는 기본이나 다름없다.

더 문제가 되는 부분은 주 전 소장의 태도다. 정 목사는 자신의 연구자료가 주 전 소장의 저서에 그대로 ‘복붙(복사-붙여넣기)’ 된 사실을 알고 문제를 제기했다. 카카오톡을 통해 표절 의혹을 언급하면서 현재 시중에 풀려 있는 책을 회수하고 절판할 것을 요구했다. 주 전 소장은 메시지를 읽고도 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정 목사는 주 전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항의했다. 하지만 주 전 소장은 “글을 전부 베낀 것도 아니고 각주 하나를 가져다 썼을 뿐인데 뭐가 문제냐”고 정 목사의 문제 제기를 일축했다. 그러면서 “내가 (정 목사에게)자료도 주고, (정 목사의 요청에)팟캐스트에 출연도 하고 강연도 하지 않았냐”며 인간적인 친분을 강조했다.

표절 의혹을 제기하고 카톡을 통해 ‘절판하라’고 요구한 것에 대한 서운함도 내비쳤다.


같은 포럼에서 발제자로
나온 내용 그대로 갖다 써

하지만 정 목사는 인간적인 친분과는 별개로 자신의 글을 그대로 가져다 쓴 건 맞지 않느냐며 “(주 전 소장을)학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과정서 주 전 소장은 “X 같은 소리하고 있는 XX”라며 정 목사를 향해 욕설을 뱉었다. 이후 “마음대로 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일요시사>와의 통화서도 주 전 소장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주 전 소장은 “그 책(<주○○의 여순항쟁 답사기>)은 답사기다. 논문처럼 일일이 각주를 달만한 내용의 책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자신이 정 목사의 문장과 각주를 그대로 가져다 쓴 점은 인정하면서도 책의 일부일 뿐 전부를 가져다 쓴 게 아니지 않냐는 태도를 고수했다.

욕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운했다는 것이다. 2021년 10월 포럼에 정 목사가 참여하도록 한 사람도 자신이고 그동안 여러 도움을 줬는데 정 목사가 표절을 언급하면서 절판하라고 ‘협박’해 인간적인 서운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주 전 소장은 개정판서 해당 부분을 삭제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그 시기에 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당분간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하지만 몇몇 전문가는 오히려 가까운 사이일수록 선행 연구자에게 양해를 구한다고 입을 모았다. 예를 들어 세계의 경제 상황을 음식에 빗대 설명한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의 저서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를 보면 특정 정보를 설명하는 과정서 해당 정보를 제공한 사람을 각주에 언급하고 감사를 표했다. ‘이 사실을 알려준 ○○○에 감사한다’는 식이다.

주 전 소장의 책에서는 그런 부분을 찾아볼 수 없다. 문장을 설명할 때 일부 각주를 달았지만 출처를 표기하진 않았다. 사진 등의 시각 자료 역시 누가 발굴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책에 실렸는지 알 수 없다. 인문학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참고 문헌’ 부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 목사는 “처음에는 박찬길 검사 이력 부분 문장과 각주만 가져다 쓴 줄 알았는데 내 논문과 천천히 비교해보니 유사한 대목이 더 나왔다”며 “메시지로 문제를 제기할 때는 답이 없다가 전화를 걸어 항의하니 친분을 언급하면서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운하다”
인간적 호소

한 역사학자는 “다른 학자의 글을 가져다 쓸 때 인용 표기를 하는 것은 그의 연구를 존중하고 인정한다는 뜻”이라며 “학자라면 글을 옮길 때 출처를 제대로 쓰지 않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학계서 절대 인정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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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