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여순사건 역사학자 표절·욕설 의혹

베낀 책 항의하니 “뭐? X같은 XX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여수 순천 10·19 사건’ 이른바 여순사건을 연구하는 역사학자가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렸다. 학자로선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도 역으로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피해자를 몰아붙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과정서 욕설까지 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 특히 역사학자는 과거 일어난 사건을 연구하고 기록해 다음 세대에 전달한다는 사명감을 원동력 삼아 나아간다. 역사학자의 연구와 기록은 그 자체로 다시 역사가 된다.

산적한
연구 소재

‘여수 순천 10·19 사건’(이하 여순사건)은 1948년 전남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14연대 일부 군인이 정부의 ‘여순 4·3 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발생했다. 전남과 전북, 경남 일부서 이념 간 대립이 극에 달했고 이 과정서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됐다. 

여순사건은 오랜 시간 수면 아래 묻혀 있었다. 사건의 명칭조차 권력의 입김에 따라 멋대로 바뀌었다. 희생자는 불명예를 씻지 못했고 그 유족은 70년 넘는 시간 동안 숨죽인 채 살아야 했다. 

그러다 더 늦기 전에 여순사건의 진실을 찾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 결과 2021년 여순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를 지원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만들어졌다. 여순사건이 일어난 지 73년 만이다. 


여순사건 특별법은 2001년 16대 국회 이후 4차례나 발의된 바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이념 대립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2021년 6월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 등 152명이 공동 발의한 여순사건 특별법은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가 차원서 여순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희생자를 지원하는 방안을 처음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행보로 여겨졌다. 지난 7월에는 여순사건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희생자 유족의 불편함과 행정상 비효율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여순사건에 관한 진상규명은 이제 막 첫발을 뗀 상태다. 한 여순사건 연구학자는 “70년 넘게 감춰져 있던 진실을 파헤쳐야 하는 작업이라 발굴해야 할 자료와 연구 소재가 말 그대로 무궁무진하다”고 설명했다. 

학계에 따르면 현재 여순사건을 연구하는 역사학자는 20명 남짓이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모으고 희생자 유족을 만나면서 여순사건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이들이다. 자료 발굴부터 희생자 유족 인터뷰까지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을 해가며 여순사건을 연구했다.

최근 몇 년 새 여순사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진상규명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만들어지면서 역사학자의 노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70여년 만에 진상규명 시동
“특별법 이후 관심 커졌다”

전남 동부권서 여순사건 역사학자로 잘 알려진 주모 전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소장이 여순사건을 연구하는 한 목사의 논문을 인용 표기 없이 자신의 책에 그대로 가져다 쓴 사실이 드러났다. 여수서 교회를 운영하는 정모 목사는 주 전 소장을 상대로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전북대서 여순사건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주 전 소장은 ‘여순사건 알리기’에 가장 기여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소장, 여순사건 재심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등을 지냈고 저서로는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 <불량국민들> <주○○의 여순항쟁 답사기 1·2> 등이 있다.

사건은 지난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 목사는 지역 도서관을 찾았다가 우연히 주 전 소장이 지난해 6월 발간한 저서 <주○○의 여순항쟁 답사기 2>를 보게 됐다. <주○○의 여순항쟁 답사기 1·2>는 여순사건의 전개 과정과 관련 장소를 주제로 삼았다.

여순사건 특별법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여순사건이 국민적 관심을 받던 시기에 첫 권이 나왔다.

정 목사는 1권(2021년 9월 발간)은 주 전 소장이 선물로 준 적이 있어 읽었지만 2권은 그날 처음 접했다고 한다. 도서관서 가볍게 책을 훑어보던 정 목사는 특정 대목에 이르러 의아함을 느꼈다. 2021년 포럼서 발표하고 논문으로 작성한 자신의 글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기재된 부분을 발견한 것. 

정 목사는 여순사건 초기, 순천서 경찰에게 총살당한 ‘박찬길 검사’ 사건을 연구했다. 정 목사에 따르면 1948년 10월24일 경찰은 박찬길 검사가 ‘인민재판’의 재판장을 지냈다는 혐의를 씌워 그를 즉결 처형했다. 

인용 표기
안 하고?

정 목사는 2021년 10월7일 순천시 건강문화센터 다목적홀서 열린 ‘여순항쟁 73주년, 국가폭력과 여순사건 특별법 진상규명’ 포럼에 발제자로 참석했다. ‘역사왜곡, 진실을 말한다- 송욱 교장‧박찬길 검사의 오명’을 주제로 진행된 이날 포럼서 정 목사는 ‘박찬길 검사와 인민재판장 모략 학살’을 발표했다.

주 전 소장도 발제자로 참석해 ‘송욱 교장과 환상의 여학생부대 진실’을 발제했다. 여순사건 당시 여수여중 교장이었던 송욱 교장은 민간인 주모자로 몰린 뒤 그 소식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정 목사는 포럼서 발제한 박찬길 검사 사건을 다듬어 <여순사건 당시 ‘박찬길 검사 총살 사건’의 진실> 논문을 작성했다. 박찬길 검사의 생애와 사망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다루면서 여순사건 당시 민간인 학살이 얼마나 쉽게 자행됐는지를 언급했다. 

주 전 소장이 정 목사의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부분은 박찬길 검사의 이력을 다룬 문장이다. 정 목사는 논문서 ‘박찬길은 1945년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해 11월 공주지방법원 특별검찰부 사법 시보로 검사 생활을 시작한다.11)’고 박찬길 검사의 이력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 문장에 다음과 같은 각주를 달았다. 

‘각 지방법원 인사발령,’ <중앙신문>(1945. 11. 27) 일제강점기 조선변호사시험은 해마다 한 차례씩 있었고 1945년에는 8월 14~15일까지 치렀다. 그런데 15일 오전 상법 시험이 끝나고 오후 경제학 시험만 남겨 놓은 상황서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무조건 항복’하자 시험은 중단되고 말았다. 이에 수험생들은 이법회(以法會)를 조직해 “시험 중단 책임은 일본정부와 조선총독부 시험위원회에 있다”며 전원 합격 증서를 요구해 200명 중 106명이 합격증서를 받아냈다. 박찬길이 이 시험에 응시하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1947년 11월 검사로 임관한 사실로 미루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이용구, “변호사 양성제도의 변화가 주는 의미,” <대한변협신문>(2015. 08. 24) 참조.  

“문제없다”
안일한 태도


박찬길 검사가 검사 생활을 시작한 시기, 직책 등을 언급한 자료를 각주로 소개한 것이다. 이 문장과 각주는 주 전 소장의 <주○○의 여순항쟁 답사기 2> 중 박찬길 검사를 다룬 부분에 그대로 등장한다. 주 전 소장은 해당 저서에서 9쪽을 할애해 박찬길 검사 사건을 소개하면서 정 목사의 글 일부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 인용 표기는 없었다.

타인의 저작물을 일부 또는 전부를 무단으로 가져다 쓰는 행위는 표절로 간주되며 이는 심각한 저작권 침해로 여겨진다. 법적 분쟁으로 확대되면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 정도로 저작권자의 권리를 중요하게 본다. 문재인정부에서는 논문 표절을 5대 비리로 규정해 고위공직자 임용 기준으로 삼을 정도였다.

학자의 경우 그 잣대가 더 높다. 표절 문제는 연구윤리 위반 사례 중에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꼽힌다. 표절 시비가 불거지면 논문에 대한 신뢰도가 급락하는 것은 물론 학자로서의 위신에도 큰 타격을 입는다. 학자에게 굉장한 민감한 문제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글을 쓸 때 출처를 표기하는 일은 학자에게는 기본이나 다름없다.

더 문제가 되는 부분은 주 전 소장의 태도다. 정 목사는 자신의 연구자료가 주 전 소장의 저서에 그대로 ‘복붙(복사-붙여넣기)’ 된 사실을 알고 문제를 제기했다. 카카오톡을 통해 표절 의혹을 언급하면서 현재 시중에 풀려 있는 책을 회수하고 절판할 것을 요구했다. 주 전 소장은 메시지를 읽고도 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정 목사는 주 전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항의했다. 하지만 주 전 소장은 “글을 전부 베낀 것도 아니고 각주 하나를 가져다 썼을 뿐인데 뭐가 문제냐”고 정 목사의 문제 제기를 일축했다. 그러면서 “내가 (정 목사에게)자료도 주고, (정 목사의 요청에)팟캐스트에 출연도 하고 강연도 하지 않았냐”며 인간적인 친분을 강조했다.

표절 의혹을 제기하고 카톡을 통해 ‘절판하라’고 요구한 것에 대한 서운함도 내비쳤다.


같은 포럼에서 발제자로
나온 내용 그대로 갖다 써

하지만 정 목사는 인간적인 친분과는 별개로 자신의 글을 그대로 가져다 쓴 건 맞지 않느냐며 “(주 전 소장을)학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과정서 주 전 소장은 “X 같은 소리하고 있는 XX”라며 정 목사를 향해 욕설을 뱉었다. 이후 “마음대로 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일요시사>와의 통화서도 주 전 소장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주 전 소장은 “그 책(<주○○의 여순항쟁 답사기>)은 답사기다. 논문처럼 일일이 각주를 달만한 내용의 책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자신이 정 목사의 문장과 각주를 그대로 가져다 쓴 점은 인정하면서도 책의 일부일 뿐 전부를 가져다 쓴 게 아니지 않냐는 태도를 고수했다.

욕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운했다는 것이다. 2021년 10월 포럼에 정 목사가 참여하도록 한 사람도 자신이고 그동안 여러 도움을 줬는데 정 목사가 표절을 언급하면서 절판하라고 ‘협박’해 인간적인 서운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주 전 소장은 개정판서 해당 부분을 삭제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그 시기에 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당분간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하지만 몇몇 전문가는 오히려 가까운 사이일수록 선행 연구자에게 양해를 구한다고 입을 모았다. 예를 들어 세계의 경제 상황을 음식에 빗대 설명한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의 저서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를 보면 특정 정보를 설명하는 과정서 해당 정보를 제공한 사람을 각주에 언급하고 감사를 표했다. ‘이 사실을 알려준 ○○○에 감사한다’는 식이다.

주 전 소장의 책에서는 그런 부분을 찾아볼 수 없다. 문장을 설명할 때 일부 각주를 달았지만 출처를 표기하진 않았다. 사진 등의 시각 자료 역시 누가 발굴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책에 실렸는지 알 수 없다. 인문학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참고 문헌’ 부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 목사는 “처음에는 박찬길 검사 이력 부분 문장과 각주만 가져다 쓴 줄 알았는데 내 논문과 천천히 비교해보니 유사한 대목이 더 나왔다”며 “메시지로 문제를 제기할 때는 답이 없다가 전화를 걸어 항의하니 친분을 언급하면서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운하다”
인간적 호소

한 역사학자는 “다른 학자의 글을 가져다 쓸 때 인용 표기를 하는 것은 그의 연구를 존중하고 인정한다는 뜻”이라며 “학자라면 글을 옮길 때 출처를 제대로 쓰지 않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학계서 절대 인정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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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