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입김’ 문재인 노림수

한마디 한마디에 정치권 발칵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잊혀진 사람처럼 살겠다”며 퇴장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연일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총선이라는 민감한 시기를 앞두고는 작은 움직임도 크게 보이는 법이다. 국민의힘은 물론 더불어민주당까지 문 전 대통령과 그의 세력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새로 정권을 잡은 인물이다. 임기를 마치기 3달 전까지 국정 지지율이 40%대 안팎을 유지했지만 결국 ‘정권교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급하게 정권이 교체된 탓에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재등장

문 전 대통령이 정권 심판까지 다다르게 된 이유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리스크와 부동산 가격 폭등, ‘촛불정부’에 관한 실망이 맞물렸다는 설명이다. 특히 부동산 문제는 결정적인 국면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문 전 대통령이 임기 막판에 레임덕에 맞닥트린 이유이자 지지율을 떨어뜨리는 ‘한 방’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직후 꾸려진 촛불정부라는 특이성이 오히려 흠이 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전 정부와 비교해 나쁘지는 않았지만 국민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결국 20대 대선서 근소한 차이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를 누르고 정권을 잡았다.

지난해 5월까지 국정을 수행한 문 전 대통령은 “잊혀진 삶을 살고 싶다”며 양산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로 사저를 이주했다. 이후 자신의 SNS 등을 통해 텃밭을 일구거나 책을 읽는 등 일상적인 근황을 알렸다.


하지만 윤석열정부가 본격적으로 출범하면서 문 전 대통령이 연일 강조하던 ‘잊혀진 삶’과 반대되는 행보가 이어졌다. 커지기 시작한 목소리가 여의도 안팎을 넘나들면서 존재감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특히 지난 4월 북카페인 ‘평산책방’을 개업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는 설명이다.

평산책방은 평범한 북카페가 아닌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둔 민주당 의원의 ‘거점’이라는 설이 돌면서다.

추측만 난무했던 조 전 장관의 총선 출마설은 그가 평산책방을 찾으면서 본격적으로 힘이 실렸다. 지난 6월11일 평산책방을 방문해 문 전 대통령을 만난 조 전 장관은 “문재인정부의 모든 것이 부정되고 폄훼되는 역진과 퇴행의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도도 나침반도 없는 ‘길 없는 길’을 걸어가겠다”고 정치 재개 가능성을 시사했다.

‘평산책방’ 찾은 이낙연·조국
총선 노리는 의원들 성지순례?

“못다 한 책임을 다하겠다”며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낙연 전 국무총리 역시 귀국 직후 평산책방을 찾았다. 이 대표를 만나는 것이 우선이라는 친명(친 이재명)계의 애타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문 전 대통령과 막걸리 만찬을 가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민주당 내홍의 시작점이라고 진단했다.

이 밖에도 문 전 대통령은 윤정부의 리스크가 떠오를 때마다 한마디씩 쓴소리를 얹으면서 존재감을 유지했다.

지난달 3일, 문 전 대통령은 윤 대통령의 ‘반국가세력’ 발언을 두고 자신의 SNS를 통해 “아직도 냉전적 사고서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고 꼬집었다.


지난달에는 “단 한 건도 금품과 관련된 부정과 비리가 없었던 당시 청와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지명한 이동관 후보의 배우자가 인사청탁 차원의 금품수수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이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던 중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이하 잼버리)를 둘러싼 여야 책임 공방에 문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이를 기점으로 문 전 대통령의 정치 행보에 속도가 붙었다는 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정치권서도 임기를 마친 전 대통령이 계속해서 정치적 의도가 담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해석했다.

현재 정부여당은 잼버리가 파행된 이유를 두고 문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시간 준비 기간을 거쳐온 만큼 지난 정부가 핵심축을 담당했다는 설명이다. 개최 장소를 두고 장시간 진통을 겪었지만 결국 새만금을 고집한 이들 역시 전북도와 민주당 의원이라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개최지를 새만금으로 결정한 것은 2015년 박근혜정부라고 받아쳤다. 문정부는 야영지 매입 등 인프라를 닦아왔을 뿐, 잼버리 대회 운영 준비는 윤정부의 과제였던 만큼 그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는 주장이다.

여야의 첨예한 대립을 지켜보던 문 전 대통령은 지난 14일 자신의 SNS를 통해 국민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면서도 윤정부를 상대로는 날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새만금 잼버리 대회로 국격을 잃었고 긍지를 잃었다”며 “사람의 준비가 부족하니 하늘도 돕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실망이 컸을 국민들, 전 세계 스카우트 대원들, 전북도민과 후원 기업에 대회 유치 당시의 대통령으로서 사과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친명계 지고
친문계 뜰까

잼버리가 파행한 책임을 현 정부가 아닌 전 정부 책임으로 전가하려는 목소리를 묵과할 수 없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메시지는 문 전 대통령이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지지층 결집을 노렸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의 모든 행동을 아우르며 “친문 세력 키우기 그 자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민주당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인물은 문 전 대통령일 것”이라며 그를 지지하는 친문 세력 역시 발맞춰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민주당을 이끌어갈 수 있는 ‘암묵적 세력’은 아직까지 친문(친 문재인)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에서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잊힌 사람으로 지내고 싶다는 인물이 여의도 한복판에 뛰어드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국민과의 약속을 어겼다는 비판이다. 전 대통령과 현 대통령의 대립구도가 장기간 이어질 경우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오는 25일, 문정부의 청와대 출신 민주당 의원이 평산마을 사저에 모일 것이란 얘기가 돌면서 또 다른 정치적 해석이 꼬리를 물었다. 이번 만남서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전략과 민심 대책 등 논의 등이 이루어질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다만 친문계는 이번 만남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번 평산마을 회동은 어디까지나 서로 안부를 묻는 자리라며 하나같이 선을 그었다. 총선이 8개월 앞으로 다가온 만큼 계파갈등을 방지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재점화되고 10월 사퇴설이 연일 입방아에 오르내리면서 당내 불안감은 고조되고 있다. 민주당 구심점이 한순간 사라진다면 계파를 막론하고 당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차기 구심점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친문 세력이 돋보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에 힘이 실린다.

구세주?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 역시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되는 9월부터 문 전 대통령의 정치적 활동 영역이 넓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당내가 혼란스러운 만큼 직접 나서는 대신 현재로서는 물밑에서 움직일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잼버리 파행의 폭탄 돌리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문정부가 다시 소환되면서 정치권에 적잖은 파동을 일으킬 것으로 관측된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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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