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초전도체’ 진실게임

전 세계 흔든 반지하 연구소

[일요시사 취재1팀] 옥지훈 기자 = “2주 만에 명성이 곤두박질쳤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 8일(현지시각) ‘상온 전도체의 짧고 화려한 삶’이라는 논평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상온·상압 초전도 현상을 구현했다는 한국의 LK-99에 대한 평가다. 미국 연구진이 LK-99와 관련 부정적인 연구 결과를 내자, 초전도체 관련 주가는 폭락했다.

지난달 22일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에 한국 연구진의 논문 하나가 올라왔다.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이하 퀀텀연구소) 대표와 김지훈·권영완 연구진이 상온·상압서 초전도성을 갖는 물질을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는 논문이었다. 이후 3일 만에 미국의 토론 사이트 ‘레딧’서 거론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무한동력
의문 투성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퀀텀연구소. 지난 9일, 기자가 찾아간 연구소는 굳게 닫혀 있었다. 연구소는 30평 남짓한 반지하였다. 문 앞에는 “지나치게 잦은 방문객으로 직원들이 업무에 불편을 겪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한탕주의’에 관심이 시들해진 탓일까? 연구소 앞은 조용했다.

상온·상압 초전도체 LK-99가 국내외 연구 결과 초전도체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검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미국 메릴랜드대 응집물질이론센터(CMTC)는 지난 8일(현지시각) 공식 SNS를 통해 “LK-99는 상온은 물론 저온서도 초전도성을 나타내지 않았다. 높은 저항을 지닌 저품질의 재료일 뿐”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LK-99가 지닌 반자성체 성질이 초전도체 성질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CMTC는 “흥미롭지 않다”며 잘라 말했다. LK-99에 담긴 구리, 납, 인 등이 이미 반자성을 지닌 물질이라 별도의 신물질일 가능성도 작다는 것이다.


CMTC는 직접 LK-99를 제조하거나 실험했다는 언급은 없었다. 싱가포르 난양공대(NTU), 인도 국립물리학연구소(NPL), 중국 베이징대 국제양자물질센터(ICQM) 3곳의 연구 데이터를 평가하면서 이같이 결론내렸다.

CMTC는 3곳의 보고서에서 초전도성이 확인되지 않았고, 오히려 극도로 높은 반도체와 절연체 저항성을 보여 그 수치가 상온서 구리보다 10억배나 높았다고 밝혔다. 금속 중에 은이 전도성이 높지만 가격이 비싸 전선은 구리로 만들어진다.

앞서 LK-99 논문의 공동 저자인 김현탁 미국 윌리엄앤드메리대 연구교수는 지난 5일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완벽하진 않지만 틀림없이 초전도 특징을 띠는 물질이라는 것을 실험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저항이 ‘0’이라는 점, 임계온도 위에 금속처럼 옴의 법칙을 보인다는 점, 금속서 저항이 떨어지는 쪽으로 전류가 불연속 점프한다는 점 등 초전도체 특징을 다수 관측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실제 상용화까지 이어지려면 10여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퀀텀연구소는 최동식 명예교수의 초전도 이론을 기반으로 초전도체를 구현하고 실험을 통해 입증하는 기업이다. 최 교수는 이론적으로 초전도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상온·상압서의 초전도체 연구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퀀텀연구소의 핵심 연구자 대부분은 최 교수의 제자로 이석배 퀀텀연구소 대표는 고려대 비전임교수와 동국대 겸임교수를 지냈고, 김지훈 연구소장은 아이셀텍 연구소장을 거쳐 퀀텀에너지연구소에 합류했다. 외부 인사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출신의 김현탁 교수와 오근호 한양대 교수 등 연구자들이 추가로 합류하며 연구에 탄력이 붙었다.

LK-99는 이석배 대표와 김지훈 연구소장 이름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퀀텀연구소는 2008년에 설립됐으며, 최 교수의 사망 이후 2018년 전후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됐다.


전선에 사용하면 전기 손실 ‘제로’ 
꿈의 물질 실존해도 상용화까지 10년

초전도체는 에너지 손실이 없어 ‘꿈의 물질’로 불린다. 초전도란 전기저항이 0이 되는 것을 말한다. 전기저항은 온도가 낮아지면 점차 감소하다가 사라진다.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것은 곧 에너지 손실 없이 전기를 보낼 수 있음을 뜻한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전기 저항으로 인한 연간 전력 손실액이 1조6990억원으로 알려진다.

초전도체는 임계온도 이하서 전기저항이 0이 된다. 그리고 초전도체는 자석 위에서 공중 부양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이를 마이스너 효과라고 부른다. 임계온도 이하서 초전도체는 내부 자기장을 밖으로 밀어낸다. 마이스너 효과가 생기는 이유는 외부 자기장이 초전도체 표면에 생성한 전류가 외부 자기장을 상쇄하는 자기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 자성체를 공중에 뜨게 해 자기부상열차나 진공 열차 등 다양한 분야에 이용할 수 있다. 자기부상열차는 공중에 뜨게 되면서 마찰이 없어 속도에 대한 제약이 줄어든다.

LK-99가 세계 과학계의 주목받은 이유는 상온·상압 초전도체라는 주장 때문이다. 극저온이나 초고압 상태서 초전도 현상이 발생하는 실험 결과는 있지만, 상온·상압서 초전도체는 없었다.

LK-99 개발이 성공한다면 인류 문명을 바꿔놓을 수 있다. 하지만상온 초전도체와 관련 국내외 연구 결과에 따른 회의적인 시각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상온 초전도체 논문이 아카이브에 등재된 지 3주밖에 지나지 않아 검증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한국초전도저온학회 LK-99 검증위원회(이하 검증위)는 지난 4일 브리핑서 “현재까지 보고된 해외의 LK-99 관련 이론 및 실험 발표 중 아직 초전도성을 확인한 검증 결과가 없다”며 관련 전문가 30명으로 검증위를 꾸려 교차 검증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검증위는 “지금까지 연구진이 공개한 논문과 동영상을 근거로 할 때 LK-99가 상온 대기압서 초전도성을 유지하는 물질이라고 확정할 수 없지만, LK-99의 초전도체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놓지 않은
희망의 끈

검증위는 “시료에 대해서는 원재료(황산납 등) 수급이 어려워 최소 2주 이상이 걸리고, 최초 검증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일이 걸린다”고 전했다.

퀀텀연구소는 연구 결과에 대해 설명회를 열거나 학술지 논문 게재를 통해 연구 결과를 검증할 것으로 보인다. 퀀텀연구소 관계자는 “조만간 연구 성과를 설명할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상온 초전도체 연구 성과가 나오기도 전에 LK-99 관련 논문을 둘러싸고 저자들 간에 분쟁이 이어졌다. 지난 10일 고려대학교에 따르면 고려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권영완 연구교수가 LK-99 관련 논문을 다른 저자 동의 없이 올렸다는 의혹과 관련한 제보를 접수해 이르면 내주 예비조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제보 접수 30일 내로 검증 절차에 따라 예비조사를 완료하고 6개월 내 본조사를 마무리해 연구 부정행위를 판단한다.

권 교수는 LK-99 관련 논문을 아카이브에 올렸다. 이후 2시간 뒤 이석배 대표와 김지훈 연구소장을 비롯해 김현탁 교수, 오근호 교수 등 6명이 참여한 논문이 뒤이어 올라왔다.

이에 대해 퀀텀연구소와 김현탁 교수 측은 권 교수가 다른 저자 동의 없이 무단으로 논문을 올렸다고 주장했다. 김현탁 교수는 윌리엄앤드메리대 학보신문을 통해 “권 교수가 올린 논문은 국내 학술지에 게재된 내용과 동일하다”며 “이 학술지를 인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중 출판이자 자기표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달 말
검증 주목

김현탁 교수에 따르면 그는 지난 7월 17일 이석배 대표에게 6인의 저자로 이뤄진 논문을 국제학술지 <APL 머티리얼스>와 아카이브에 제출하자고 요청했다. 김현탁 교수는 권 교수의 기여도가 제한적이라 생각했지만, 이석배 대표는 권 교수를 저자 목록에 포함하고 싶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 교수의 논문 발표 행위가 부정행위로 인정되면 징계 절차에 들어가지만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김현탁 교수는 미국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와 인터뷰서 두 논문에 대해 “본인 허락 없이 게재됐다”고 주장했다. 


상온 초전도체 관련 논문을 둘러싼 연구진의 갈등까지 겹친 가운데, 상온 초전도체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세계적인 연구그룹들이 검증에 힘을 쏟고 있다. 이에 글로벌 빅테크 기업도 합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외 연구 결과에 따르면 LK-99는 아직 상온 초전도체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미국 프린스턴대도 LK-99가 자석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상온 초전도체에 대한 회의적인 연구 결과가 늘면서 ‘제 2의 황우석 사태’라고 지적하고 있다. 

2004년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인간배아복제는 <사이언스>가 선정한 ‘올해의 획기적 10대 연구 성과’로 선정된 바 있다. 한국인의 연구성과가 사이언스의 10대 연구 성과에 선정되기는 처음이었다. 당시 ‘저항 없는 초전도체 개발’도 같이 등재될 정도로 초전도체에 관한 과학계의 관심이 컸다.

그러나 과학계는 이들의 논문 데이터가 다소 부실해 보여도 데이터 조작 흔적은 없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이번 LK-99 진위 여부는 논문을 고의로 조작한 황우석 사태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번 LK-99 논문이 등재된 아카이브는 동료 평가를 거치지 않은 논문을 빠르게 공개하기 위한 것으로 누구나 쉽게 게재할 수 있어 정확성·전문성서 아직은 의심의 여지가 있다.

제2의 황우석 사태?…논문 조작과 달라
데이터 다소 부실하나 조작 흔적 없어

이에 이석배 대표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서 “2020년 처음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제출했지만 랑가 다이어스 로체스터대 교수 사태 때문에 <네이처>가 논문 게재를 부담스러워했고 다른 전문 학술지에 먼저 게재할 것을 요구했다”며 “한국 학술지에 먼저 올려 한국 전문가의 검증을 받고 사전 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에 올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전 세계서 나온 자료를 취합해서 한 달 후쯤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며 “LK-99 레시피와 관련해 전 세계적으로 실증 연구와 데이터가 나오고 있고 이에 대한 리포팅이 오고 있는데 적은 인원으로 대응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석배 대표는 초전도체 진위에 대해서는 “실험은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원료도 만들어야 하고, 외부 연구소의 데이터도 체크해야 하는 등 일이 쏟아지고 있어 자세한 내용은 후일 발표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논란은 이뿐만 아니다. 퀀텀연구소는 홈페이지에 파트너사로 여러 기업과 연구기관, 대학 등을 소개해놨지만, 이들이 모두 협력한 적이 없다고 밝히며 논란이 일었다. LG이노텍과 삼성전기는 연구소 측에 파트너사로 자사 이름을 올린 이유를 문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SDI와 포스코, SK엔펄스 등도 모두 “현재까지 우리와 협력한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퀀텀연구소는 공식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연구소와 공식 협력 관계인 유일한 기관은 한국에너지공대 한 곳이 유일했다.

협약을 주도한 박진호 에너지공대 부총장은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서 LK-99 샘플을 제공받아 전 세계에 3대밖에 없는 고성능 전자현미경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부총장은 이번 LK-99 연구에 참여한 오근호 한양대 명예교수의 소개로 2017년 퀀텀연구소로부터 협력 요청을 처음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엔 물질 자체 특성은 괜찮은데 재현성이 떨어지고 샘플 자체의 순도 문제도 있었다”며 “그러나 이후 재현성 문제나 샘플 자체 순도가 많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2주 신화’
막 내릴까

그는 “전력 반도체, 전선 등 우리 연구 분야는 초전도 특성이 나오면 좋다”며 “전문 분야에 한 번 응용해보기 위해 기본적인 측정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구성 원소들이 구하기 어렵지 않고 간단한 물질”이라며 “세라믹 기반이라 박막 구현은 어려워해서 저희 반도체 공정을 활용해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초기 단계로 데이터 분석에는 6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ojh34522@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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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