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초전도체’ 진실게임

전 세계 흔든 반지하 연구소

[일요시사 취재1팀] 옥지훈 기자 = “2주 만에 명성이 곤두박질쳤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 8일(현지시각) ‘상온 전도체의 짧고 화려한 삶’이라는 논평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상온·상압 초전도 현상을 구현했다는 한국의 LK-99에 대한 평가다. 미국 연구진이 LK-99와 관련 부정적인 연구 결과를 내자, 초전도체 관련 주가는 폭락했다.

지난달 22일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에 한국 연구진의 논문 하나가 올라왔다.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이하 퀀텀연구소) 대표와 김지훈·권영완 연구진이 상온·상압서 초전도성을 갖는 물질을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는 논문이었다. 이후 3일 만에 미국의 토론 사이트 ‘레딧’서 거론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무한동력
의문 투성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퀀텀연구소. 지난 9일, 기자가 찾아간 연구소는 굳게 닫혀 있었다. 연구소는 30평 남짓한 반지하였다. 문 앞에는 “지나치게 잦은 방문객으로 직원들이 업무에 불편을 겪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한탕주의’에 관심이 시들해진 탓일까? 연구소 앞은 조용했다.

상온·상압 초전도체 LK-99가 국내외 연구 결과 초전도체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검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미국 메릴랜드대 응집물질이론센터(CMTC)는 지난 8일(현지시각) 공식 SNS를 통해 “LK-99는 상온은 물론 저온서도 초전도성을 나타내지 않았다. 높은 저항을 지닌 저품질의 재료일 뿐”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LK-99가 지닌 반자성체 성질이 초전도체 성질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CMTC는 “흥미롭지 않다”며 잘라 말했다. LK-99에 담긴 구리, 납, 인 등이 이미 반자성을 지닌 물질이라 별도의 신물질일 가능성도 작다는 것이다.


CMTC는 직접 LK-99를 제조하거나 실험했다는 언급은 없었다. 싱가포르 난양공대(NTU), 인도 국립물리학연구소(NPL), 중국 베이징대 국제양자물질센터(ICQM) 3곳의 연구 데이터를 평가하면서 이같이 결론내렸다.

CMTC는 3곳의 보고서에서 초전도성이 확인되지 않았고, 오히려 극도로 높은 반도체와 절연체 저항성을 보여 그 수치가 상온서 구리보다 10억배나 높았다고 밝혔다. 금속 중에 은이 전도성이 높지만 가격이 비싸 전선은 구리로 만들어진다.

앞서 LK-99 논문의 공동 저자인 김현탁 미국 윌리엄앤드메리대 연구교수는 지난 5일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완벽하진 않지만 틀림없이 초전도 특징을 띠는 물질이라는 것을 실험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저항이 ‘0’이라는 점, 임계온도 위에 금속처럼 옴의 법칙을 보인다는 점, 금속서 저항이 떨어지는 쪽으로 전류가 불연속 점프한다는 점 등 초전도체 특징을 다수 관측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실제 상용화까지 이어지려면 10여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퀀텀연구소는 최동식 명예교수의 초전도 이론을 기반으로 초전도체를 구현하고 실험을 통해 입증하는 기업이다. 최 교수는 이론적으로 초전도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상온·상압서의 초전도체 연구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퀀텀연구소의 핵심 연구자 대부분은 최 교수의 제자로 이석배 퀀텀연구소 대표는 고려대 비전임교수와 동국대 겸임교수를 지냈고, 김지훈 연구소장은 아이셀텍 연구소장을 거쳐 퀀텀에너지연구소에 합류했다. 외부 인사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출신의 김현탁 교수와 오근호 한양대 교수 등 연구자들이 추가로 합류하며 연구에 탄력이 붙었다.

LK-99는 이석배 대표와 김지훈 연구소장 이름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퀀텀연구소는 2008년에 설립됐으며, 최 교수의 사망 이후 2018년 전후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됐다.


전선에 사용하면 전기 손실 ‘제로’ 
꿈의 물질 실존해도 상용화까지 10년

초전도체는 에너지 손실이 없어 ‘꿈의 물질’로 불린다. 초전도란 전기저항이 0이 되는 것을 말한다. 전기저항은 온도가 낮아지면 점차 감소하다가 사라진다.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것은 곧 에너지 손실 없이 전기를 보낼 수 있음을 뜻한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전기 저항으로 인한 연간 전력 손실액이 1조6990억원으로 알려진다.

초전도체는 임계온도 이하서 전기저항이 0이 된다. 그리고 초전도체는 자석 위에서 공중 부양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이를 마이스너 효과라고 부른다. 임계온도 이하서 초전도체는 내부 자기장을 밖으로 밀어낸다. 마이스너 효과가 생기는 이유는 외부 자기장이 초전도체 표면에 생성한 전류가 외부 자기장을 상쇄하는 자기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 자성체를 공중에 뜨게 해 자기부상열차나 진공 열차 등 다양한 분야에 이용할 수 있다. 자기부상열차는 공중에 뜨게 되면서 마찰이 없어 속도에 대한 제약이 줄어든다.

LK-99가 세계 과학계의 주목받은 이유는 상온·상압 초전도체라는 주장 때문이다. 극저온이나 초고압 상태서 초전도 현상이 발생하는 실험 결과는 있지만, 상온·상압서 초전도체는 없었다.

LK-99 개발이 성공한다면 인류 문명을 바꿔놓을 수 있다. 하지만상온 초전도체와 관련 국내외 연구 결과에 따른 회의적인 시각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상온 초전도체 논문이 아카이브에 등재된 지 3주밖에 지나지 않아 검증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한국초전도저온학회 LK-99 검증위원회(이하 검증위)는 지난 4일 브리핑서 “현재까지 보고된 해외의 LK-99 관련 이론 및 실험 발표 중 아직 초전도성을 확인한 검증 결과가 없다”며 관련 전문가 30명으로 검증위를 꾸려 교차 검증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검증위는 “지금까지 연구진이 공개한 논문과 동영상을 근거로 할 때 LK-99가 상온 대기압서 초전도성을 유지하는 물질이라고 확정할 수 없지만, LK-99의 초전도체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놓지 않은
희망의 끈

검증위는 “시료에 대해서는 원재료(황산납 등) 수급이 어려워 최소 2주 이상이 걸리고, 최초 검증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일이 걸린다”고 전했다.

퀀텀연구소는 연구 결과에 대해 설명회를 열거나 학술지 논문 게재를 통해 연구 결과를 검증할 것으로 보인다. 퀀텀연구소 관계자는 “조만간 연구 성과를 설명할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상온 초전도체 연구 성과가 나오기도 전에 LK-99 관련 논문을 둘러싸고 저자들 간에 분쟁이 이어졌다. 지난 10일 고려대학교에 따르면 고려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권영완 연구교수가 LK-99 관련 논문을 다른 저자 동의 없이 올렸다는 의혹과 관련한 제보를 접수해 이르면 내주 예비조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제보 접수 30일 내로 검증 절차에 따라 예비조사를 완료하고 6개월 내 본조사를 마무리해 연구 부정행위를 판단한다.

권 교수는 LK-99 관련 논문을 아카이브에 올렸다. 이후 2시간 뒤 이석배 대표와 김지훈 연구소장을 비롯해 김현탁 교수, 오근호 교수 등 6명이 참여한 논문이 뒤이어 올라왔다.

이에 대해 퀀텀연구소와 김현탁 교수 측은 권 교수가 다른 저자 동의 없이 무단으로 논문을 올렸다고 주장했다. 김현탁 교수는 윌리엄앤드메리대 학보신문을 통해 “권 교수가 올린 논문은 국내 학술지에 게재된 내용과 동일하다”며 “이 학술지를 인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중 출판이자 자기표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달 말
검증 주목

김현탁 교수에 따르면 그는 지난 7월 17일 이석배 대표에게 6인의 저자로 이뤄진 논문을 국제학술지 <APL 머티리얼스>와 아카이브에 제출하자고 요청했다. 김현탁 교수는 권 교수의 기여도가 제한적이라 생각했지만, 이석배 대표는 권 교수를 저자 목록에 포함하고 싶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 교수의 논문 발표 행위가 부정행위로 인정되면 징계 절차에 들어가지만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김현탁 교수는 미국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와 인터뷰서 두 논문에 대해 “본인 허락 없이 게재됐다”고 주장했다. 


상온 초전도체 관련 논문을 둘러싼 연구진의 갈등까지 겹친 가운데, 상온 초전도체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세계적인 연구그룹들이 검증에 힘을 쏟고 있다. 이에 글로벌 빅테크 기업도 합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외 연구 결과에 따르면 LK-99는 아직 상온 초전도체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미국 프린스턴대도 LK-99가 자석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상온 초전도체에 대한 회의적인 연구 결과가 늘면서 ‘제 2의 황우석 사태’라고 지적하고 있다. 

2004년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인간배아복제는 <사이언스>가 선정한 ‘올해의 획기적 10대 연구 성과’로 선정된 바 있다. 한국인의 연구성과가 사이언스의 10대 연구 성과에 선정되기는 처음이었다. 당시 ‘저항 없는 초전도체 개발’도 같이 등재될 정도로 초전도체에 관한 과학계의 관심이 컸다.

그러나 과학계는 이들의 논문 데이터가 다소 부실해 보여도 데이터 조작 흔적은 없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이번 LK-99 진위 여부는 논문을 고의로 조작한 황우석 사태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번 LK-99 논문이 등재된 아카이브는 동료 평가를 거치지 않은 논문을 빠르게 공개하기 위한 것으로 누구나 쉽게 게재할 수 있어 정확성·전문성서 아직은 의심의 여지가 있다.

제2의 황우석 사태?…논문 조작과 달라
데이터 다소 부실하나 조작 흔적 없어

이에 이석배 대표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서 “2020년 처음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제출했지만 랑가 다이어스 로체스터대 교수 사태 때문에 <네이처>가 논문 게재를 부담스러워했고 다른 전문 학술지에 먼저 게재할 것을 요구했다”며 “한국 학술지에 먼저 올려 한국 전문가의 검증을 받고 사전 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에 올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전 세계서 나온 자료를 취합해서 한 달 후쯤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며 “LK-99 레시피와 관련해 전 세계적으로 실증 연구와 데이터가 나오고 있고 이에 대한 리포팅이 오고 있는데 적은 인원으로 대응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석배 대표는 초전도체 진위에 대해서는 “실험은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원료도 만들어야 하고, 외부 연구소의 데이터도 체크해야 하는 등 일이 쏟아지고 있어 자세한 내용은 후일 발표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논란은 이뿐만 아니다. 퀀텀연구소는 홈페이지에 파트너사로 여러 기업과 연구기관, 대학 등을 소개해놨지만, 이들이 모두 협력한 적이 없다고 밝히며 논란이 일었다. LG이노텍과 삼성전기는 연구소 측에 파트너사로 자사 이름을 올린 이유를 문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SDI와 포스코, SK엔펄스 등도 모두 “현재까지 우리와 협력한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퀀텀연구소는 공식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연구소와 공식 협력 관계인 유일한 기관은 한국에너지공대 한 곳이 유일했다.

협약을 주도한 박진호 에너지공대 부총장은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서 LK-99 샘플을 제공받아 전 세계에 3대밖에 없는 고성능 전자현미경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부총장은 이번 LK-99 연구에 참여한 오근호 한양대 명예교수의 소개로 2017년 퀀텀연구소로부터 협력 요청을 처음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엔 물질 자체 특성은 괜찮은데 재현성이 떨어지고 샘플 자체의 순도 문제도 있었다”며 “그러나 이후 재현성 문제나 샘플 자체 순도가 많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2주 신화’
막 내릴까

그는 “전력 반도체, 전선 등 우리 연구 분야는 초전도 특성이 나오면 좋다”며 “전문 분야에 한 번 응용해보기 위해 기본적인 측정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구성 원소들이 구하기 어렵지 않고 간단한 물질”이라며 “세라믹 기반이라 박막 구현은 어려워해서 저희 반도체 공정을 활용해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초기 단계로 데이터 분석에는 6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ojh34522@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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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이재명호 눈앞 암초들

닻 올린 이재명호 눈앞 암초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서 국민은 정권교체를 선택했다. 3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냈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앞길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지난 3일 치러진 6·3 조기 대선서 이재명 신임 대통령은 득표율 49.42%로 역대 대통령 중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8.34%,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0.98%를 각각 기록했다. 넘지 못한 과반의 벽 잠정 집계된 이번 대선 투표율은 지난 20대 대선보다 2.3%p 높은 79.4%였다. 이는 지난 1997년 투표율 80.7%를 기록한 15대 대선 이후 28년 만에 가장 높은 대선 투표율이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심판하기 위한 국민의 뜨거운 의지”라고 입 모아 말했다. 지난 20대 대선서 양 후보 간의 득표율 차이는 0.7%p이었던 만큼 이번 역시 두 후보 간의 격차가 관전 포인트로 제시됐다. 지난 3일 지상파 방송 3사(KBS·MBC·SBS)가 한국방송협회와 함께 실시한 대선 출구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는 51.7%, 김문수 후보는 39.3%로 두 후보간의 격차는 두 자릿수로 크게 벌어졌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대통령의 과반이 예상됐지만, 실제 투표함을 열자 김 후보가 40%대로 진입한 반면 이 대통령은 50%를 넘지 못했다. 두 사람 간의 격차는 289만표인 8.27%p였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 역시 출구조사 발표 직후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4%만 더 얻어서 55%로 안정 궤도를 유지하면 좋았을 것”이라며 내심 아쉬움을 비쳤다. 민주당은 선거 기간 동안 공을 들인 TK(대구·경북)서도 약세를 보였다. 선거관리위원회 개표 마감 결과 대구서 김 후보가 67.62% 득표한 반면, 이 대통령은 23.22%에 그쳤다. 경북서도 김 후보는 66.87%, 이 대통령은 25.52%로 지난 20대 대선과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초유의 사태인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임에도 격차가 크지 않고 보수 지역서 30% 벽을 넘지 못했다는 한계점이 제시된다. 40% 지지율을 등에 업은 국민의힘과 거대 여당인 민주당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전까지는 민주당이 과반 의석수로 법안을 통과시키면 대통령 혹은 국무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되돌리는 방식이었지만, ‘찐명’으로 꼽히는 김민석 전 최고위원이 국무총리로 내정된 마당에 더는 국민의힘이 손쓸 방법이 없다. 빗나간 출구조사…TK도 20%대 ‘뚝’ 여대야소 정국 ‘동물 국회’ 재연? 이번 하반기 국회가 역대급 ‘혐오 정치’로 얼룩질까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 대통령은 거듭 통합을 강조했다. 지난 4일 국회서 열린 취임 선서식서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이 되겠다”며 “국민 통합을 동력으로 삼아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선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에 따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도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민 대통합을 위해 대통령 취임 후 첫 오찬 메뉴를 비빔밥으로 준비했다. 우 의장은 “지역과 세대, 계층, 다양한 의견이 모두 대한민국이고, 서로 조화를 이루고 화합하도록 이끄는 통합력이 도약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머뭇거릴 새도 없이 이 대통령은 곧바로 업무를 시작했다. 함께 국정을 운영할 내각 구성도 시급하다. 당분간은 윤석열 전 정부 출신인 각료들과 한 지붕 밑에서 일을 해야 한다. 조기 대선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 또한 정부 출범 76일 만에 전원 ‘문재인의 사람들’로 불리는 국무위원과 국무회의를 진행했다. 이날에 앞서 문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진행했는데, 이때 통일·외교·안보 기조가 다른 박근혜정부 인사가 함께였던 만큼 제대로 된 국정 운영이 어려웠다는 푸념도 들려왔다. 이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새 내각 구성 전까지는 ‘윤석열의 사람들’과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국무총리를 시작으로 각 부처 장관 등 주요 인사들을 검증하기 위한 인사청문회 등 절차가 남아 있어 내각 전부를 임명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 어수선한 여의도 안팎 국무위원 선출을 위한 인사청문회 과정도 험난할 전망이다. 지난 3년간 이동관·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 박장범 KBS 사장 후보까지 피 튀기는 청문회가 밤낮으로 이어졌다. 공수교대가 이뤄진 이번 청문회서 국민의힘이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을 전망이다. 이 대통령을 둘러싼 다섯 건의 재판도 주목된다. 김혜경 여사의 법인카드 유용 논란과 대선 정국서 불거진 아들 도박 의혹도 논란이지만, 아직 털어내지 못한 본인의 재판들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현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파기환송심 ▲대장동 배임 및 성남FC 뇌물 의혹 1심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혐의 1심 ▲불법 대북송금 혐의 1심 ▲위증교사 혐의 항소심 등 총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투표 하루 전날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꼬집으며 “설사 이재명 후보가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재판이 예정대로 열리고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결정에 따라 벌금형 100만원 이상의 판결을 받을 경우, 두 달 안에 대선을 또다시 치러야 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예정된 재판은 오는 18일에 열리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다. 이는 지난달 1일 대법원이 1심의 무죄 판결을 엎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사안이다. 만일 재판부가 예정대로 사건을 처리한다면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에 따라 유죄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피선거권이 박탈되는데, 이때 대통령직 유지가 가능한지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아울러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다루는 헌법 제84조의 해석 논란도 다시 불붙을 예정이다. 막 내리는 용산 시대 민주당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뒀다. 대선 전부터 민주당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의 구성 요건서 ‘행위’를 삭제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지만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입법 독재’ 프레임을 우려해 속도 조절에 나섰다. 윤 전 대통령이 개방한 청와대도 풀어야 할 숙제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022년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드리겠다”며 영빈관과 녹지원, 상춘재 등을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바로 업무를 시작하는 만큼 우선은 청와대 수리를 기다리며 용산 대통령실을 사용할 예정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면 용산으로 가는 게 맞다. 대통령실 이전은 큰 비용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고생도 심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빨리 청와대를 수리해서 그 (수리) 기간만 (용산에) 있다가 청와대로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예비 후보이던 시절에도 대통령 집무실에 대한 질문에 “상당히 고민이다. (용산 대통령실이) 보안 문제가 매우 심각해 대책이 있어야 되는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지금 당장 어디 딴 데로 가기가 마땅치가 않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 혈세를 들여 미리 준비할 수도 없다. 그래서 보안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일단 용산을 쓰면서 다음 단계로 청와대를 신속하게 보수해 그 길로 들어가는 것이 제일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윤 전 대통령이 사용하던 용산 집무실 환경에 “황당무계하다”고 밝혔다. 지난 4일 용산 대통령실서 가진 첫 기자회견서 “꼭 무덤 같다. 아무도 없다”며 “필기도구를 제공해 줄 직원도 없다. 컴퓨터도 없고 프린터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업 공무원 전원을 복귀시켜버린 모양”이라며 “곧바로 다시 원대복귀 명령을 해서 제자리로 복귀시켜야 할 듯싶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보수가 끝나는 대로 이 대통령이 집무실을 옮길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파기환송 선거법, 재판부 의지에 달려 청와대 복구, 극우 반격…험난한 여정 대통령 집무실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만큼 보안과 경호 등이 늘 지적 대상이 됐다. 관련해 한 민주당 관계자는 “청와대가 100% 개방된 건 아니기 때문에 빠르게 보안 작업을 거친다면 올해 안에는 (청와대를) 집무실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정부종합청사 등 제3의 장소에 임시로 집무실을 마련하는 방안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JTBC와의 인터뷰서 “국정 책임자의 불편함 또는 찝찝함 때문에 수백억, 수천억을 날리는 게 말이 되느냐”며 “잠깐 (용산서) 조심해서 쓰든지 하고 청와대를 최대한 빨리 보수해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끝나지 않은 극우와의 싸움과 테러 위협도 현재 진행형이다. 계엄 옹호, 탄핵 반대 그리고 부정선거를 주장해 온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자유통일당 중심의 극우 성향 단체는 이번 대선 결과에 불복해 선동을 이어갔다. 광화문서 지지자들과 개표를 기다리던 전 목사는 출구조사 결과가 공개되자 “선거관리위원회에 쳐들어가자” “불법 선거, 부정 투표”라고 소리쳤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 역시 부정선거론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어 대선이 끝난 후에도 잡음은 이어지고 있다. 황 전 총리는 용인의 한 사전투표소의 관외 회송용 봉투서 이미 기표된 용지가 나온 사례를 언급하며 “지난 대선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했고 문자 그대로 부정선거의 스모킹 건”이라며 “그럼에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자의 자작극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선관위 시스템이 얼마든지 조작 가능해서 투표 안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만들고 한 사람을 안 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국가정보원 조사 결과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런 선관위를 도저히 믿을 수 있겠나”라며 “선거가 아니라 사기”라고 말했다. 현실 부정 테러 위협 이와 관련해 여권 관계자는 “망상에 불과하다. 갈라치기 정치의 원인”이라고 일축하며 “정치 성향이 맞지 않는 분들께선 지금 시국이 어수선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이번 대선은 내란 세력을 심판한 국민의 선택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