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대로’ 이권 카르텔과의 전쟁 막전막후

입맛 따라 눈엣가시만 제거?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잘못된 부분은 분명 바로잡아야 한다. 일부의 잘못을 전체로 확대해 몰아가는 행위는 잘못됐다. 윤석열정부가 ‘카르텔 타파’를 국정운영의 방향으로 잡으면서 많은 조직 전체가 점점 카르텔이 돼가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과거 몸담았던 조직만은 나쁜 집단에서 빠졌다. 이러다가 후폭풍마저 불어닥칠 태세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서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에 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하고, 그 재원으로 수해 복구와 피해 보전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해당 발언을 두고 일각에선 수해 복구를 정치와 엮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야권은 물론 여권 내부서도 우려 목소리가 나왔다. 

누굴 위한 
집단 몰이?

윤 대통령이 지목한 이권 카르텔은 비리와 불법이 드러난 노동계, 민간단체, 문재인정부서 추진된 태양광 관련 사업 등을 일컫는 것으로 여겨진다. 통상 카르텔이라는 용어는 동일 업종 기업이 경쟁 제한 혹은 완화를 목적으로 가격, 생산량, 판로 등에 대해 협정을 맺고 형성하는 독점 형태를 뜻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법적인 행태를 일삼는 집단끼리의 결탁으로 여겨져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2년 전, 윤 대통령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소수 이권 카르텔을 타파하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윤 대통령이 발언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금방이라도 이들과 전쟁마저 불사할 태세였다. 정권과 이해관계로 얽힌 소수 이권 카르텔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고, 책임의식, 윤리의식이 마비된 먹이사슬을 구축하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같은 해 11월 국민의힘 대선후보 수락 연설서도 카르텔 언급은 다시 등장했다. 이들을 혁파하고, 정권교체를 이뤄내겠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이권 카르텔을 뿌리뽑기 위해 대선에 나섰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다만 이권 카르텔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윤정부가 언급한 카르텔 세력은 윤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자주 표적이 돼왔다. 지난해 2월, 대선 전국 유세 현장서도 자주 등장했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발언 수위는 한껏 더 올라갔다. 충북 청주시 성안길 유세길서 그는 “카르텔 기득권 세력을 박살내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카르텔이라는 단어는 끊임없이 언급됐다. 지난해 9월에도 문정부의 태양광 비리가 적발되자 다시 카르텔을 띄웠다. 

같은 해 12월부터는 노조와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이들을 카르텔로 규정해버렸다. 민노총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거부 사태서 강경 대응한 뒤 화물연대가 백기를 들고서다. 

수해 복구 정치적으로 엮어버려
어떻게 하겠다는 이유 빠져있어

화물연대에 이어 건설노조도 카르텔로 내몰렸다. 물론 일각에선 노동계의 악질적인 행태는 처벌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를 악의 축으로 매도하는 행위는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설노조는 건폭(건설 폭력배)으로 몰렸으며, 결국 한 건설 노동자는 분신까지 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6월 말, 경찰은 2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건폭 특별단속서 총 1484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이 중 132명은 구속했다. 최다 단속 사례는 전임비와 월례비 등 금품갈취 혐의였다. 문제는 대법원 판례상 월례비는 불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월례비, 전임비에 이어 윤정부는 회계장부까지 들여다보고 있다. 노조의 비리나 횡령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닌 이야기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부가 개입하는 순간 문제가 커질 수도 있다. 


윤정부의 카르텔은 문정부의 적폐와 비슷한 의미로 통용되는 듯하다. 당시의 적폐 세력은 검찰이었는데, 정치권서도 무리한 적폐 퇴치로 다른 현안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던 바 있다. 

윤 대통령의 3대 개혁 중 언급된 이권 카르텔은 세트 격이다. 정치에 참여한 지 2년이 흐른 현재에도 이들 세력과 전면전을 벌이겠다며 줄곧 강조해오고 있는 사안이다. 현재까지 윤정부서 카르텔로 못 박은 곳은 노동계, 민간단체, 사교육계, 태양광 사업, 5대 은행, 3개 이동통신사 등이다.

점점 다양한 계층 및 기업들이 카르텔 집단으로 낙인찍혀가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새로 인선된 차관들과의 자리서 현 정부는 반 카르텔 정부라며 맞서 싸우라고도 주문했다. 이번 수해 피해 복구 지원대책으로도 윤 대통령은 이권 카르텔의 보조금을 주겠다며 정치와 엮기도 했다.

이런 탓에 여의도에까지 옮겨가 정치적인 이슈로까지 번진 상황이다. 앞서 윤정부는 노조에 이어 민간단체에 지급된 국고보조금 1조1000억원 중 314억원이 부정 사용된 것을 확인했다며 부정행위가 적발된 단체를 형사고발 혹은 수사 의뢰했다.

정부는 민간단체 보조금 예산은 5000억원 이상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전 정권
발라내기?

결국 정치 이슈로까지 불거지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가 예산은 쌈짓돈이 아니다”라며 윤 대통령을 공격했다. 특히 정청래 최고위원은 “백번 양보해 부패·이권 카르텔을 털어 나온 돈이 있다고 해도 수재민은 하루가 급하다. 어느 세월에 피해 복구를 한단 말이냐?”며 윤 대통령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실제로 수재민 예산은 즉시 지급돼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조금 회수는 즉시 이뤄지기가 어렵다. 사실상 결정이 정확히 난 시점부터 환수할 수 있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하나 둘 우려 목소리가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염치가 있다면 수많은 생명을 잃은 참사에 카르텔을 들먹이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노동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한노총이 보조금을 받는 부분은 이미 대부분 탈락했다”며 읍소했다. 보조금 선정에 탈락된 재원은 노동 상담 제공 서비스 부문이다. 

역대 정부들도 노조에 강경한 자세를 취했지만, 윤정부는 이전 정부보다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모습을 자주 보인다. 노조를 때릴수록 윤정부의 지지율은 오르는 현상을 보이는데, 적어도 정치적인 이익이 있다는 뜻이다. 

이뿐만 아니다. 사교육계 역시 수능 킬러 문항과 관련돼 또 다른 카르텔로 규정됐다. 현재 대형 입시학원 등이 세무조사 대상이 됐고, 사정기관은 사교육계를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단순 킬러 문항부터 시작해 교육 카르텔로 확전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논리가 허술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문제의 시작은 지난 6월 전국 수능 모의평가였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주호 교육부 장관에게 학교 수업서 배우지 않은 내용은 수능 출제 문제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같은 발언은 수능을 5개월 남긴 시기에  말 그대로 교육계를 혼란에 빠뜨려놓기 충분했다.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식?

윤 대통령의 주문이 나오자마자 교육부 대입담당국장은 경질됐는데, 교육계에선 이 사태에 대해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 대통령실은 교육 당국과 사교육이 결탁해 카르텔을 형성했다는 주장을 펼친다. 교육 당국이 수능을 어렵게 낸 탓에 고액의 사교육이 횡행하게 됐다는 것이다. 교육 당국도 킬러 문항을 배제할 경우 사교육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를 내놨다.

문제는 최근 총리실서 보안자료인 수능 출제·검토위원 관련 자료까지 가져갔다는 점이다. 사교육과 카르텔 관련성을 확인하기 위해 수능 출제 인력풀 자료까지 입수한 것이다. 정부가 이들의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해서다.

함께 지목된 것은 사교육 강사의 고수입이다. 본격적인 세무조사가 시작되면서 사실상 이들 강사가 카르텔의 한 축으로 지목된 셈이다. 

앞선 일련의 사태들을 살펴보면 윤정부는 불법을 저지른 몇몇을 전체가 그렇다는 것처럼 확대해 매도하려는 경향이 짙어 보인다. 책임 역시 카르텔로 분류된 곳이 무한으로 짊어지도록 만든다. 정부가 나서 대화와 타협을 하기보다는 수사와 환수로 압박하는 식이다. 


이번 수해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적 책임을 즉시 시민단체로 돌렸다. 오송 터널 참사가 발생했을 때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있었다. 대통령실서 나온 메시지는 “대통령이 서울로 뛰어간다고 해도 집중호우 상황을 크게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같은 말이라도 정치적인 수사를 내놔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대통령실의 입장과 발언은 대통령의 공식 창구로 늘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공감, 위로, 책임 대신 하고 싶은 말만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자리에 없던 와중에 이슈를 돌릴 대상이 필요했던 모양새다. 

노조, 교육계 등 전체 매도  
이후에 후폭풍 올까 우려돼

이권 카르텔 발언 이후 여전히 규모, 방식 등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논의할 것인지도 모호하다. 노조, 민간단체에 지원하던 보조금은 추계되지도 않고 법적 근거도 없는 돈이다. 대통령실이 내놓는 메시지들은 여전히 단편적일 뿐이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올해 예산 중 아낄 수 있는 부분을 아껴 재해 복구와 지원에 사용하자는 것”이라며 또다시 해명에 진땀을 빼야 했다. 윤 원내대표는 “내년·내후년 예산을 확정할 때 방만하게 집행됐던 정치 보조금을 폐지해 복구와 재난 안전 시스템 업그레이드에 쓰겠다는 뜻”이라면서도 “오히려 민주당이 수해로 정쟁을 부추기고 있다. 새롭게 편성되는 예산을 감안한 원론적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이 같은 국민의힘의 해명이 시원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시민단체 등에 지원되던 정부보조금과 이번 수해와 무슨 상관이 있냐는 지적이다. 또 카르텔 중 법조 카르텔은 빠져 있다는 비판도 나오는 가운데, 선택적 카르텔 몰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법조 카르텔은 윤정부서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는 키워드다. 현재 검찰 수사에 따르면 대장동 수사가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향하고 있지만, 고위 판·검사, 변호사 출신도 다수 연루돼있다. 이들 명단은 일찌감치 공개됐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수사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박영수 전 특검의 압수수색은 뒤늦게 이뤄졌고,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기각됐다. 최근 불거졌던 로톡 이용 변호사 징계 사태도 마찬가지다. 

앞서 로톡은 헌법재판소서 승소했고, 공정거래위원회도 로톡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변호사협회는 달랐다. 오히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이들 변호사를 징계 처리했다. 

법조계 패스
이러다 역풍

윤 대통령은 여전히 법조 카르텔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있다. 전관예우, 특정 기업을 수사하던 검사가 퇴직한 뒤 해당 기업을 변호하는 로펌, 법률 고문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논란이 됐던 바 있다.

정치권서 제기하는 카르텔을 빙자한 자기 조직 지키기라는 비난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전체를 매도해버리면 반드시 역풍을 맞을 것”이라며 “이러다가 국민 전체를 카르텔로 몰아갈 판”이라고 말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부 연구개발 예산도 줄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권 카르텔 타파’를 카드를 꺼내들자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이 내년 정부 출연금 중 주요 사업 예산의 20% 삭감안이 제출된 상태다. 

뒤이어 각 정부 부처와 한국연구재단 등의 공공 R&D 과제 예산도 감축되는 분위기다.

앞서 윤 대통령은 “나눠 먹기, 갈라 먹기 R&D는 제로 베이스(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며 강하게 말했다. 현재 연구 현장에서는 불만의 목소리자 점점 커지고 있다. 

과학기술계가 이권 카르텔이 있다고 하는 게 R&D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다는 입장을 내놨다. 업계에서도 연구자 간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등의 우려가 나온다. <차>

<기사 속 기사> ‘쏙 빠진’ 금융권 회전문 인사

윤석열 대통령이 이권 카르텔을 언급하자 시선이 금융권에게도 쏠린다.

이와 관련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2023년 반부패 청렴 워크숍서 카르텔을 언급한 바 있다. 

이 원장은 “이권 카르텔이 문제가 되는 만큼 복무 자세를 더욱 가다듬어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감독과 검사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정작 금융 관료와 감독당국의 회전문 인사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 관료 출신 인사들은 금융권에서 자리만 바꿔가며 직을 이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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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