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맞아?’ 잔혹한 영아살해 백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7.17 12:57:01
  • 호수 14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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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통 출산·냉장고 유기·야산 매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태어나자 마자 죽는 아이들이 있다. 방법도 각양각색. 친모가 변기통서 아이를 낳고 그대로 두거나, 살해한 뒤 냉장고에 유기되는 등 잔혹한 방법이다. 죽은 영아는 태어나서 울어보지도 못했건만, 이들을 살해한 부모들의 사연은 구구절절하다.

형법 제251조(영아살해)에는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해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만한 동기로 인해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 10년 이하의 징역을 처한다’고 적시돼있다. 영아살해는 말 그대로 영아를 살해한 행위며, 아동학대 중 하나다. 

10대에서
20대까지

지난 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이 경찰청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2021년 영아살해 피의자 86명 중 20대가 38명(44.2%)으로 가장 많았고 20세 이하(14∼20세)는 29명(33.7%)으로 집계됐다. 두 연령대를 합하면 77.9%로 영아살해 피의자 대다수를 차지했다.

이어 30대 16명(19%), 40대 3명(3%)이었다. 성별로는 여성이 78명, 남성이 8명이었다.

같은 기간 영아유기 피의자 361명의 연령대는 20세 이하 73명(20%), 20대가 140명(39%)으로 두 연령대가 전체의 절반이 훌쩍 넘는 59%를 차지했다. 30대는 118명(33%), 40대가 16명(4%)이었으며 50대 이상도 12명(3%)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여성 291명, 남성 70명이었다.


10?20대가 영아살해·유기 범행서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보인 건 경제·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서 예상치 못하게 출산하게 되는 경우가 다른 연령대보다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기간 영아살해 범죄를 지역별로 보면 경기도(19건)가 가장 많았고 다음은 서울(12건)이었다.

과거에는 영아살해가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발생했다. 선별적 영아살해였는데, 이 경우는 출생 이후 여자 아이를 선별적으로 죽이거나, 태어났지만 돌보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했다. 

한국의 출생성비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2000년대부터다. 하지만 이때부터는 초음파검사가 시작돼 낙태를 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영아살해는 태어난 뒤 부모가 영아를 살해한 경우다. 영아살해 부모는 대부분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가 많아, 구구절절한 사연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수법은 엽기적인 경우가 많다.

전주지법 형사5단독 노미정 부장판사는 지난달 22일 영아살해 혐의로 기소된 A(27·여)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1월8일 오후 6시45분 전북 전주시 덕진구 자택 안방 화장실서 자신이 낳은 아들을 남편 B씨(43)와 공모해 변기 안에 30분가량 방치해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앞서 같은 혐의로 기소된 남편 B씨도 비슷한 형량이 선고됐다. 전주지법 형사1단독 김승곤 부장판사는 지난달 17일 B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120시간의 사회봉사와 5년간 아동 관련 기관 운영 및 취업 금지도 명령했다.

대부분 ‘원하지 않은 임신’ 이유로…
친모 몰래 짜고 살해 후 유기하기도


A씨와 B씨는 왜 영아를 살해한 것일까? 지난달 26일 전주지법 등에 따르면 A씨 부부는 같은 병원서 근무하던 동료였다. 교제를 시작한 4년 전부터 동거했다. A씨는 초혼, B씨는 재혼이었다. A씨는 지난해 10월부터 B씨 전처가 낳은 아들도 함께 키우며 살았다.

경찰 조사 결과 둘 사이엔 최소 세 차례 임신이 이뤄졌다. 하지만 2019년 4월에 낳은 아이는 출산 직후 보육원에 보냈고, 두 번은 임신중절을 택했다. 모두 남편이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이후 A씨는 또다시 아이를 가졌고 임신 8개월 차인 지난해 12월 말까지 이 사실을 숨겼다. 남편이 임신 사실을 알면 임신중절을 종용할 것을 걱정해서다. 예상은 적중했다. 남편은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안 뒤 경제적 사정, 아버지의 병환, 전처 아들 양육 문제 등을 들었다.

A씨는 남편의 의견에 따랐다. 남편 도움이 없으면 아이를 낳거나 키울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부부가 처음부터 영아살해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산부인과를 알아봤지만 “임신 후기여서 중절수술을 할 수 없다”는 답만 들었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국내서 사용하지 못하는 낙태약을 구매했다. 낙태약 가격은 180만원이었고 송금한 뒤 약을 받았다. 낙태약 복용 후 진통이 왔다. 출산을 준비해야 하는 느낌이었다. A씨는 지난 1월8일 오후 6시45분쯤 안방 화장실 변기에 앉은 상태서 분만했다. 약 31주 된 남자아이였다.

A씨는 곧바로 남편에게 연락했다. 아이를 낳았으니 화장실로 오라고. 이에 B씨는 A씨의 상태를 재차 물어봤다. A씨는 “아파서 못 움직이겠다. 직접 와서 확인해달라. 혹시 살아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변기 물에 
잠긴 아들

B씨는 “나도 확인을 못하겠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아들(전처)을 데려다 주고 오겠다”며 집을 나갔다. A씨는 남편이 올 때까지 변기에 앉은 채 기다렸다. 휴대전화로 ‘탯줄 처리’ 등을 검색했다.

A씨는 오후 7시11분 119에 전화해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신고했다. B씨가 전화로 “지금 엘리베이터 타니까 이제 119에 신고해”라고 말한 직후였다.

A씨 부부는 오후 7시15분에 변기 물에 잠긴 아들을 꺼냈다. 영상 통화를 하는 과정서 갓난아이가 변기 속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119 종합상황실 직원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아이는 119가 도착한 후 곧바로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오후 11시경 사망했다.

재판부는 “A씨 부부가 영아가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는데도 분만 직후 약 30분간 아무 조치 없이 변기 안에 방치해 살해해 죄질이 나쁘다. 갓 태어난 아기의 생사가 보호자의 양육 의지나 환경에 따라 결정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서 유기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친부모가 영아살해를 한 것은 아니다.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난 영아를 친모 몰래 데려가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체포된 친부와 외할머니가 지난 8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했다. 이날 오후 1시50분, 경기 용인동부경찰서를 나선 40대 친부 C씨는 “살인 혐의를 인정하느냐” “아이가 아파서 범행한 것이 맞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60대 외할머니는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정말 미안하다”고 답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2015년 3월 아내이자 딸인 친모가 병원에서 남자아이를 낳자 출산 당일 집으로 데려가 하루 동안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 및 이튿날 아이가 숨진 것을 확인한 뒤에는 시신을 인근 야산에 매장한 혐의도 받고 있다.

아이 낳고 
그대로 방치

경찰은 이들이 아이를 살해하기 위해 하루 동안 방치한 것으로 보고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친부와 외할머니는 출산 전부터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아이가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날 것을 미리 알고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파악됐다.

친모는 출산 후 병원에 입원해 있어 이 같은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잠정 조사됐다. 친부는 친모에게 “아이가 아픈 상태로 태어나 이내 사망했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아살해죄서 살인죄로 혐의가 바뀐 경우도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여성청소년과는 영아살해죄로 구속한 피의자 친모에 대해 살인죄로 혐의를 변경했다. 해당 사건의 친모는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 각각 병원서 딸과 아들을 출산하고, 수시간이 지나 목졸라 살해한 뒤 자신이 살고 있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소재 아파트 세대 내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이미 남편과의 사이에 12세 딸, 10세 아들, 8세 딸이 있었던 친모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또다시 임신하자 이 같은 범행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친모의 범행은 보건당국 감사 결과 출산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는 되지 않은 ‘출생 미신고’ 사례가 드러나면서 현장 조사가 이뤄지던 중 밝혀졌다.

경찰은 친모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아 지난달 23일 구속했다. 당시 구속영장에 적시된 혐의는 영아살해였다. 경찰은 친모가 분만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상태서 제3의 장소로 이동해 범행한 점, 2년 연속으로 자신이 낳은 생후 1일짜리 아기를 살해하는 동일한 범죄를 저지른 점 등을 반영했다.

영아살해죄서 살인죄로 변경
“위기 임산부 지원 우선돼야”

경찰은 친모가 범행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에 관해서도 면밀히 살펴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친모를 체포한 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해온 친부를 살인 방조 혐의로 입건, 피의자로 전환했다.

친부는 경찰 조사 결과 현재까지 살인의 공모 혹은 방조와 관련한 혐의점은 드러난 바 없으나 면밀한 조사를 위해 신분을 참고인서 피의자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이같이 조처했다.

수사권 조정 이후 시행된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참고인을 상대로는 사건 혐의와 관련한 질문 등을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살해 피해자인 아기들의 친부이자, 범행 일체를 자백한 피의자인 친모를 단순 참고인으로 조사해서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경찰이 일단 살인 방조 혐의로 친부를 형사 입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사당국의 한 관계자는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피조사자의 인권강화가 상당히 많이 이뤄졌다. 참고인을 상대로 피의자를 조사하듯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사건에 관해 집중적인 추궁을 하기 위해서는 피의자로 신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친모에 대한 혐의를 살인죄로 변경하면서 신상정보 공개 가능성도 열렸다. 당초 친모에게 적용됐던 혐의인 영아살해죄는 특강법이 정한 범죄서 제외되지만, 변경 혐의인 살인죄의 경우 해당하기 때문에 향후 친모의 신상정보 공개를 위한 심의위원회 개최가 가능하다.

다만 친모가 친부와의 사이에 나이 어린 세 자녀를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친모의 신상이 공개될 경우 남은 가족들에게 2차 피해의 우려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신상공개 여부는 매우 신중한 검토를 거쳐 결정해야 할 문제다.

경찰 관계자는 “친모의 혐의를 영아살해죄서 살인죄로 변경하고, 친부를 방조 혐의로 입건했다. 그 이상의 내용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 말해줄 수 없다”고 전했다.

알든 모르든
친부 책임은?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은 “영아살해·유기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위기 임산부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 위기 임산부들이 관련 기관 어느 곳에 전화하더라도 정확한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또 출생 미등록 아동의 안전을 확인한 후 법률 지원 등 다양한 지원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출생 미등록 아동’ 전수조사 결과를 토대로 유형별로 접근·지원 방법을 달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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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