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문건’ 조현천 봐주기 의혹

꽉 막힌 ‘윗선’ 뚫기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계엄 문건’ 의혹의 중심에 선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더디다. 해외 도주 후 입국한 지 석 달이 됐으나 추가 소환조사조차 없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을 포함한 ‘윗선 수사’가 활발해질 것이라던 관측은 저물었다. 일각에선 대통령실이 김 전 장관을 품으면서 검찰도 손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책임질 게 있다면 책임지기 위해 귀국했다.” ‘계엄 문건’ 의혹의 핵심 인물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지난 3월 말 해외로 도주했다가 5년 만에 귀국해 한 말이다. 그의 갑작스러운 귀국을 두고 정권이 바뀐 게 배경이라는 관측이 무성했다. ‘솜방망이 처벌’을 기대한 걸까? 실제 조 전 사령관을 향한 검찰의 칼끝은 녹이 슬어가고 있다.

해외 도주 후
5년 만에 왜?

검찰은 지난 3월 인천공항 입국장서 조 전 사령관의 신병을 확보하고 멈췄던 수사를 재개했다. 자유총연맹 회장 선거 동향을 보고받고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 관제 집회를 열게 한 혐의로 조 전 사령관을 재빠르게 기소했다. 그러나 계엄 문건 작성 혐의는 현재까지 제자리걸음 상태다.

군·검 합동수사단은 2018년 당시 계엄 문건 수사 개시 반년도 채 되지 않아 성과를 냈었다. 수사단은 기무사 요원들이 “비상사태로 보기 어려운 상황서 병력을 동원해 집회 시위 등 국민 기본권과 입법·행정·사법·언론 기능을 제한하는 계엄 문건을 작성했고, 문건의 상당 내용이 기무사 직무범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수사단은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 청와대 안보실장이던 김관진 전 장관 등 주요 인사들과의 공모 여부 등을 입증하기 위해 조 전 사령관 본인 조사가 꼭 필요하다며 수사를 잠정 중단해왔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수사단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는 조 전 사령관에 대한 소환조사를 단 한 차례도 진행하지 않았다.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도 잠잠하다. 법조계에선 조 전 사령관의 귀국이 ‘윗선 수사’의 물꼬를 틀 것이라는 관측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계엄 문건’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도 사그라들고 있다. 국방부를 담당하는 100기무부대장 출신 민병삼 전 대령은 최근 언론 인터뷰서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은 단순 검토 문건이었지만 정치적으로 악용돼 기무사가 해편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기자들과의 만남에선 “계엄이 발령됐을 때 기무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검토한 것”이라며 “1년에 2번 하는 검토다. 문제가 되면 파기했을 텐데, (문제가 없어)나중에 활용할 목적으로 정식으로 (시스템에 비밀로)등재했다”고 말했다.

계엄 문건 사건은 단순히 조 전 사령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를 고리로 박 전 대통령, 황교안 전 국무총리, 김 전 장관, 한 전 장관 등 박근혜정부의 주요 인사 여럿이 얽혀 있다. 이들 모두 수사단의 수사 대상에 올랐었다.

귀국 석 달…추가 수사 지지부진
갑자기 김관진 품은 정부 비호?

조 전 사령관의 귀국 직전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실태조사 태스크포스(TF)는 계엄 문건과 관련해 문재인정부의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 이석구 전 기무사령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국민의힘 측은 계엄 문건이 단순 검토보고서여서 불법성이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기무사가 내란음모를 꾸민 것처럼 송 전 장관 등이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눈에 띄는 건 국민의힘 TF에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도 민간위원으로 참여했었다는 점이다. 그는 조 전 사령관의 지시로 계엄 문건 작성에 관여해 합수단의 수사를 받았다. 조 전 사령관이 귀국하면서 그도 다시 수사 대상이 됐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해 7월 TF의 1차 회의서 “과거 기무사 참모장 시절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태를 앞두고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검토한 계엄령 사안에 대해 쿠데타 등 정치적 몰이를 하는 것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밝혔다.

계엄 문건 작성을 내란음모죄로 처벌할 수 있을지를 두고는 다툼의 여지가 남아있다. 다만 조 전 사령관은 문건 작성 과정서의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기무사의 정치 관여 활동, 기무사 자금 유용 등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

또 수사단은 수사 당시 조 전 사령관의 자금 사용처가 담긴 ‘장부’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기무사는 2017년 2~3월 8쪽 분량의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과 여기에 딸린 67쪽짜리 ‘대비계획 세부 자료’를 작성했다.

박정부 인사
여럿이 얽혀

2016년 12월 국회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데 이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시점이었다. 문건에는 탄핵 선고 이후 전망되는 상황이 서술돼있다. 여기에는 ▲대규모 시위대의 청와대·헌재 진입 및 점거 시도 ▲화염병 투척 등 과격양상 심화 ▲사이버상의 유언비어 난무 ▲집회·시위 전국 확산 등이 핵심이다.

중요시설과 광화문·여의도 등 집회 예상 지역 2곳에 기계화사단 6개, 기갑여단 2개, 특전사 6개 이상 등 병력을 배치하는 계획도 담겼다. 언론 보도를 통제하고 국회의 계엄 해제 시도를 무력화하는 방안도 구체적으로 문건에 포함됐다.

내란음모가 성립하려면 2명 이상이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는 구체적인 합의와 실질적인 위험성이 인정돼야 한다. 계엄 문건이 실제 실행을 위한 계획이라는 점도 입증돼야 한다. 수사단의 수사 결과 계엄 문건이 실행을 위해 작성됐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됐다.

우선 기무사는 계엄 문건 작성 과정서 TF를 구성했는데, ‘미래 방첩수사 업무체계 발전방안 연구’로 계엄 문건과는 전혀 무관한 이름이다. 이 TF로 인사명령을 내고 예산도 책정했다. 부대원들은 인터넷과 인트라넷이 연결되지 않은 별도의 컴퓨터로 작업했다.

TF 운영 종료 후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초기화했다. 이는 계엄 문건 작성을 은폐하기 위해 비밀리에 움직였다고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계엄 문건의 본래 제목은 언론에 공개된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시행방안’이 아니라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조 전 사령관은 2017년 2~3월 계엄 문건서 ‘계엄임무 수행군’으로 편성된 20사단장과 8사단장을 만나기도 했다.

내란음모
처벌 가능?

기무사는 2017년 5월10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당일에 해당 문건을 온라인시스템에 훈련 비밀로 등재하려 했으나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수사단은 문건을 훈련비밀로 등록하면 훈련 때 다른 부대원들이 열람할 수 있기 때문에 문건의 존재가 탄로날까봐 우려했다고 판단했다.


박근혜정부 청와대가 문건 작성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도 나왔다. 계엄 문건은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을 맡도록 했다. 그러나 현행 계엄 관련 계획에는 군령권을 가진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 역할을 수행토록 한다고 돼있다. 계엄 문건에는 국회가 계엄 해제를 시도했을 때 체포 등 대응하는 방안도 들어 있다.

국회 재적의원 과반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따라야 한다.

그런데 계엄 문건 작성에 앞선 2016년 10월 김 전 장관은 국방비서관실 소속 행정관에게 북한 급변 사태를 가정해 계엄을 선포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행정관은 계엄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지정하는 방안,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에 대응하는 방안 등도 김 전 실장에게 보고했다.

특히 육군본부 작전과도 2017년 2월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이 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조 전 사령관도 부하 간부에게 “계엄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하고 국회가 계엄 해제를 건의할 경우 국회를 해산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렸다.

수사단은 이 지시가 실제 계엄 문건에 실제 반영됐다는 진술을 확보하기도 했다. 조 전 사령관은 2016년 11월~2017년 2월 모두 네 차례 청와대를 방문했다. 세 번은 김 전 장관을 만나 대북 관련 보고 등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까지 계엄 문건과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기무사 실무진들은 “장관이 현 위중한 상황을 고려해 위수령과 계엄 절차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장관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고 한 전 장관을 배후로 지목했다.


조 전 사령관 역시 미국서 보낸 우편 진술서를 통해 “한민구 장관의 구체적 지시에 따라 위수령과 계엄을 검토했다”고 진술했다고 검찰이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국방부 장관은 계엄 선포 건의 권한을 갖고 있기도 하다.

국힘 TF 활동하던 소강원 유죄 판결
조, 기소 넘어 집유 이상 가능성 ↑

그러나 한 전 장관은 2018년 검찰 조사에서 “당시 국회서 위수령에 대한 질의를 두 번 받았는데 일관된 답변을 하지 못해, 전반적으로 검토시키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자 조현천이 그 얘길 듣고 먼저 ‘그럼 저희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고, 그래서 ‘그럼 한 번 해보라’고 했을 뿐”이라고 진술했다.

둘 중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 전 사령관은 실무진에게 정치인 가택연금 상황과 계엄 선포 뒤 발생할 20여 가지 상황을 상정하고, 심지어 수도권 군부대 통제계획까지 작성 지침을 주고 계엄 문건을 작성시켰다. 당시 국회서 질의한 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거 <시사인>과의 인터뷰서 “위수령을 폐지할 의지가 있는지를 물었는데, 민간을 상대로 군을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검토했다는 얘기”라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1차 수사에서 검찰은 조 전 사령관의 청와대 방문 당시 김 전 장관을 만나거나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해소하지 못했다. 김 전 장관은 계엄 문건을 보고받은 적도 없어 관련이 없다고 진술했다.

검찰 수사가 더디지만 조 전 사령관이 기소를 넘어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재판부가 계엄 문건 핵심 인물로 분류되는 소 전 참모장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2월 서울서부지법은 소 전 참모장에 대해 군사법원의 무죄 판결을 깨고 유죄,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소 전 참모장은 “간첩 대응 방안을 연구하는 TF를 만들었다”며 예산을 타냈는데, 재판부는 “계엄 문건의 위법 가능성을 알고 조직을 숨기려 했다”고 판단했다. 어느 부대가 시위대를 통제할지, 국회 반발은 어떻게 막을지 검토한 것 모두 직무를 벗어난 위법이라고 봤다.

조 전 사령관의 책임도 분명히 했다. 2심 재판부는 “사령관 지시에 따라 ‘계엄 문건’ TF가 구성·운영됐다”며 “문건을 사령관에게 네 차례 보고했고 사령관이 3차례 수정 보완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 정권교체 뒤 계엄령 검토 문건을 훈련 비밀인 척 급조해 은폐한 부분도 사실로 인정했다.

“피하긴
힘들 것”

소 전 참모장은 대법원에 상고했다가 돌연 취하면서 판결이 확정됐다. 함께 기소된 부하 1명은 군사법원 판결이 대법원서 확정됐고, 예편한 대령 1명은 현재 민간법원서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소 전 참모장은 세월호 유족 사찰 혐의로도 유죄 판결을 받고 지난 2월 법정 구속됐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1심 군사법원 판단이 2심서 뒤집히는 경우는 드물다”며 “사실관계와 법리가 일치한다는 검찰의 판단을 인정한 것이다. 판결문에까지 조 전 사령관의 책임 문제가 적시된 만큼 조 전 사령관이 유죄를 피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hound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스스로 리더십 도마 위에 올라섰다. 1인1표제 재추진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두 개의 승부수를 동시에 던지면서다. 양쪽에서 후폭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자기 정치’ VS ‘당원의 뜻’이라는 명분과 명분이 거칠게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합당 논의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2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을 향해 “지방선거를 따로 치를 이유가 없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민주당의 반발과 ‘흡수 합당은 싫다’는 혁신당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합당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중구난방 가쁜 숨만 합당 논의 초반부터 혁신당 측의 반발이 이어졌다.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오해가 형성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통합은 뻔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가치 연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합당과 관련해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고 밝히자 이를 ‘흡수 합당’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풀이된다. 혁신당이 합당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서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를 통해 “이미 민주당은 162명 거대 정당이고 (여기에) 혁신당 12명이 합쳐지는 것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라며 “그 이상 의미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합당 논의 자체를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제안 방식이나 준비된 내용 자체가 없고, 오히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지방선거에 상당히 악영향이 있으니 당장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합당 논의라는 것 자체가 불가피한데 우리 원칙과 기준에 맞게, 질서 있게 논의는 진행할 필요는 있다는 긍정적 입장도 상당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합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부에서 친명(친 이재명)계로 불리는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합당 발표 다음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통합을 위해서라도 정청래식 독단은 이제 끝나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합당 제안에 앞서 정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 간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언론 보도가 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무는 당의 책임이고, 당이 결정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당 논의에 이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말미에 ▲정 대표의 공식 사과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합당 제안을 언제, 누구와, 어디까지, 어떻게 논의하였는지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합당·1인1표제, 쏟아지는 안건 “뭐부터 해결해야…” 여당도 혼란 이런 상황서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인 ‘1인1표제’가 최종 관문인 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 표결에 다시 부쳐지면서 논란이 재점화할 전망이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행사 가치 비율을 현행 20대 1 이하에서 1대 1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해 중앙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정 대표가 압도적 당심으로 당선된 만큼 정치권 일각에서는 1인1표제 통과로 인한 권력 재편을 견제해왔으나 두 달 만에 또다시 날 선 공방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달 19일 당무위원회는 해당 안건 상정을 중앙위서 결정한 뒤 같은 달 22~24일 권리당원 투표 절차를 마무리했다. 1인1표제 안건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85.3%(31만5827명) ▲반대 14.7%(5만4295명)로 집계됐다. 당은 이달 2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안건을 투표로 부칠 예정이며 중앙위원 온라인 투표는 3일까지 진행된다. 권리당원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정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 다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1인1표제 굳히기에 나섰다. 정 대표는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을 더 좋은 민주주의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당의 모든 의사와 진로는 당원들이 가라는 대로 가고 당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도 페이스북에 “참여율은 지난번 16.81%에 비해 15% 가까이 높아졌고, 찬성률은 비슷하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힘을 실었다. 1인1표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을 방패처럼 소환했다. 정 대표는 “1인1표제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당원주권정당, 당원주권시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재명 당 대표 시절부터 3년여간 꾸준히 요구되고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이어 “당원과 대의원 1대 20 미만을 결정할 때도 많은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1인1표제는 논의할 만큼 논의했고 영남권 등 전략 지역 원외위원장들께서도 그 당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양해했던 사안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1표제는 이 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안인 만큼 민주당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과 당원들은 정 대표가 충분한 논의 없이 중요한 사안을 본인 페이스대로 밀어붙인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해 27표 차이로 1인1표제가 처음 부결됐을 당시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과반에 가까운 상당수 최고위원이 우려를 표하고 숙의를 원했음에도 강행, 졸속 혹은 즉흥적으로 추진된 부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정 대표를 공개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 세력 강화’를 위해 합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의심이 가라앉기도 전 1인1표제로 또다시 당을 흔들면서 반청(반 정청래) 정서가 퍼졌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흔들리자 정 대표의 진퇴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합당 발표 이튿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선 당원들이 주도하는 합당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청래 사퇴’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합당 반대”를 외쳤다. 민주당 일각에도 정 대표의 ‘졸속 추진’ 행보가 이어진다면 사퇴 요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모든 행동이 ‘자기 정치’ 프레임으로 귀결되면서 승부수가 자충수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 대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을 자신의 SNS에 공유했다. 자신의 선택을 두고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우회적으로 심경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겨냥한 듯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자신의 SNS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당원의 뜻은 독단으로 결코 꺾을 수 없나니, 흔들리는 것은 뿌리 없는 꽃뿐”이라며 저격 글을 게시했다. O? X? △도 필요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혁신당과의 합당과 1인1표제 추진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점 등 정 대표의 독단적인 행동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지호 대변인 역시 “당내 문제 제기는 합당 자체보다는 의견수렴 절차가 급작스럽게 진행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당시 잡음은 예상됐으나, 일단 지르고 수습하는 예측 불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잃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 대표 취임 이후 ‘명청 갈등’ ‘당정 불협화음’ 등으로 민주당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최고위원들의 반발 역시 당에서도 정청래 체제에 대한 위험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당 대표 임기 종료까지 반년이 남았지만 정 대표의 연임 의혹은 여전한 만큼 갈등 역시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당원주권시대를 거듭 강조했지만 막상 중요한 사안은 독단으로 결정하면서 당 안팎으로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1인1표제로 당원 중심 원칙을 강화하자”면서 합당 등 중요한 사안을 대표 혼자 결정하는 건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에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당원들이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 수석대변인은 “(합당이라는) 당 대표의 제안은 정무적 판단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라며 “그렇기에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전 당원 토론, 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활발하게 당원의 의견을 묻는 그런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당원주권시대에 걸맞게 당원의 뜻을 최종적으로 묻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당원이 합당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못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당원에게 ‘예’ ‘아니오’로만 의견을 묻는 행위가 당원주권정당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로만 당원 주권 시대? “이제는 숙의 민주주의로”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1인1표제의 경우 정 대표는 당원들의 찬성률이 압도적이었다고 말하지만 투표율은 저조했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들여다 보지 못하고 숫자에만 매몰됐다”며 “이것을 당원주권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소수의 당원이 당의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나머지 당원들은 무책임하게 방관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당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자, 여기에 O, X로만 투표해!’ 하는 식이니 당과 당원 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1표제와 혁신당과의 합당 모두 찬성 여론이 높다. 그럼에도 정 대표를 향한 반발은 거칠다. 결국 민주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배의 키를 쥔 선장을 향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합당 방식에 반발한 민주당 최고위원들 역시 “정 대표의 선택적 당원주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통합을 가로막는 정 대표의 독선과 비민주성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며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의견조차 낼 수 없는 구조, 대표 결정에 동의만 강요하는 구조는 민주적 당 운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서 파열음이 나는 만큼 결국 정 대표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3대 개혁의 빠른 추진, 혁신당과의 합당을 통한 지방선거 승리, 이정부의 성공 등 각종 요구가 쏟아지면서 이를 한데 어우르는 ‘통합형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대표의 자기 정치 프레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 자기 정치 의혹이 숱하게 제기된 만큼 조 사무총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당내 가장 큰 경쟁자인 한동훈 전 대표를 내치려고 하는 것은 당권을 계속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자기 정치 아닌가”라며 “반면 정 대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조국 대표와 함께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걸 자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체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자이크 민주주의 평화 그룹 백왕순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의 부재”를 꼬집었다. 민주주의 제자리걸음 백 대표는 “1인 1표제가 맞냐 틀리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 당원주권시대에는 이 방법이 옳다. 다만 이득을 놓고 계파 간의 힘겨루기만 이어지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며 “혁신당과의 합당도 마찬가지다. 통합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그런데 이를 차기 당권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니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닌 절차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찬반이 극명한 사안에 대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당원이 직접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안한 민주당 혁신당도 ‘흔들’ 합당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조국혁신당이 자당 의원들 입단속에 나섰다. 혁신당 황운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할 경우 혁신당 조국 대표가 통합한 당의 공동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경고한 것과 더불어 입조심을 당부한 것이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즉각 황 의원의 이날 발언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혁신당 대변인실은 입장문을 통해 “혁신당 최고위는 이 문제(황 의원 발언)에 대해 논의하고, 이 같은 논의를 전혀 한 바가 없으며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며 “조 대표 역시 강한 경고를 했음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당은 공식적 기구를 통해 합당과 관련된 논의를 해왔으며 위와 같은 논의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구성원 누구도, 민주당과 합당과 관련된 실무 논의를 진행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