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가해자가 피해자 아는 이유

이름, 주소, 직장…그놈은 다 알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옥지훈 기자 = 지난달 21일, 국회 본회의서 소송 당사자와 대리인의 개인정보 비공개 조치를 도입하는 ‘민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소송 과정서 당사자나 대리인이 법원에 제출하는 서면에 주소나 연락처 등 개인정보 노출을 막기 위해서다. 개정 전에는 피해자가 민사소송 청구 과정서 신변노출을 우려해 소송을 꺼렸다. 최근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범죄자들의 신상 공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 신변 보호를 향한 문제 해결은 갈 길이 멀다. 

“피해자의 집 주소를 안다. 그때 때린 것보다 2배로 때릴 것이다.” 지난해 부산 서면서 2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가 보복을 암시하면서 한 말이다. 1심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가해자는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반성문에는 “묻지 마 범죄 형량이 제각각인데 왜 징역을 받아야 하느냐”고 써 공분을 일으켰다.

지난달 2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민간소송법 개정안에는 민간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가 될 우려가 있을 경우 제3자나 당사자에게 공개하지 않도록 보호 조치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등이 같은 내용에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었지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묻지 마’ 범죄
솜방망이, 왜?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현실적 문제도 뒤따랐다. 현 민사사건이 전자소송으로 이뤄지면서 현행 전자소송 시스템 전체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자소송 진행 시 개인정보를 일부 가리는 준비기간이 필요해 피해자 신변 노출 문제가 당장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3월에는 전자소송시스템 개편 작업 지연으로 인해 민사 재판에 차질을 빚었던 바 있다.


박영재 법원행정처 차장은 “전자소송 시스템 변경과 개선이 필요하다”며 “올 하반기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개편이 이뤄진 이후 1~2년 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4년까지 그간 종이문서로 진행된 형사사법절차가 전면 전자문서화된다.

당시 법원 관계자는 “형사사법절차의 전자화를 실현함으로써 형사사건의 투명성과 신속성이 증진될 것”이라며 “기록 열람·복사 등에 편의성을 증대해 피의자나 피고인의 방어권이 보장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형사재판서 증인의 역할을 수행한다. 피해자가 범죄를 당한 사실을 증언하는 것은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할 증거가 된다. 최근 대법원 판례서도 특정 범죄를 대상으로 피해자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해선 안 된다는 판단이 있었다.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 A씨는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앞서 부산고법 형사 2-1부(재판장 최환)는 항소심서 공소사실을 전부 유죄로 인정해 징역 20년을 선고했던 바 있다. 반면 검찰은 공소사실이 전부 유죄로 인정돼 ‘양형부당’을 이유로 삼을 수 없다며 상고하지 않기로 했다.

피해자는 “언제까지 직접 증명해야 하나. 평등한 재판을 받는 게 왜 이렇게 어렵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건과 무관한 목격자나 증인이 없다면 피해자는 피해 소명을 위해 홀로 증인신문에 나서야 한다. 

2021년에는 도심 대형매장서 처음 본 10대 여학생을 남자 화장실로 끌고 가 성폭행한 20대 남성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해당 사건은 돌려차기 사건과 같이 가해자가 여학생을 남자 화장실로 끌고 가는 모습이 포착됐는데, 재판부는 반성하는 태도와 피해자가 선처를 원하는 점을 들어 이 같은 양형을 내렸다.


반성·합의 시 무조건 집행유예?
“어쩔 수 없이…보복 두려워서”

지난 5월에도 중고거래 피해자가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사기꾼에게 협박성 편지를 받았다. 사기꾼은 전과 5범으로 출소 3개월 만에 범행을 저질러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었다. 피해자는 배상명령 신청과 영치금 압류 신청을 통해 사기당한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온 편지를 받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편지를 받고 나서야 배상명령 신청을 한 사람들의 이름과 주소가 전부 다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피해자 신상정보가 범죄자에게 들어간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민사소송은 개인과 단체 간의 권리·의무에 대한 불이익을 해결하는 데 주요 목적이 있다. 소송 당사자인 원고와 피고를 동일선상에 두고 권리를 판별하는 것이다. 인적 사항을 기재했던 이유는 원고가 피고를 특정해 어떤 권리와 의무를 주장하는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정 범죄를 다루는 것이 아닌 개인 간 문제를 법적으로 다루는 만큼, 어떤 상대가 소송을 냈는지 인적 사항이 없으면 동명이인이 한 개인으로 특정하지 못하는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묻지 마 범죄를 막는 예방책은 전문가들 사이서도 입장이 갈린다. 묻지 마 폭행이 ▲대부분 여성 혐오범죄고 중범죄라는 인식을 줘야 한다는 입장 ▲정신질환 문제로 인한 범죄로 사회적 시스템 구축을 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뉜다.

그러나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은 징역형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다반사고, 동종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도 많다. 범죄를 특정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 징역 5년 이상일 경우 집행유예가 불가하다.

동종 범죄로 형사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는데도 또다시 집행유예를 받은 사건도 있다. 지난해 1월 인천 미추홀구 한 도로서 아무 이유 없이 운행 중인 택시 안에서 40대 남성이 60대 기사를 2차례 폭행했다. 당시 가해자는 아무 이유 없이 “죽여버리겠다”며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갈 길 먼
신변 보호

당시 재판부는 “사건 범행 이전에도 여러 차례 동종 또는 이종 범죄로 형사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 다만 가해자가 범행을 인정하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 및 40시간의 사회봉사도 명령했다.

동종 범죄를 여러 차례 저지른 범죄자가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뒤 범행을 저질렀음에도 또다시 같은 양형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묻지 마 범죄자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경우, 구치소에 복역되지 않는다. 재판부의 이 같은 선고에 피해자는 항소할 수 있지만 실상은 달랐다. 민사소송에선 2차 가해를 우려한 피해자들 대부분이 오히려 가해자에 대한 선처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1심서 일단락되는 경우가 많다.


신상정보를 공개 대상 범위는 성범죄자·아동 범죄자·재범 확률이 높은 범죄자 등이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범죄자 신상 공개 범위를 두고 테러·마약·묻지 마 폭력 등까지 확대하는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이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같은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 후속대책이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의 경우, 기소 이후 DNA가 검출되고 성범죄 증거가 나왔지만 아직 피고인 신분이라 신상 공개는 이뤄지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가해자가 2심 판결에 상고해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신상 공개는 불가능하다. 

이에 현재 피의자로 한정된 신상정보 공개 대상을 ‘기소 이후 피고인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수사 단계서 신상 공개할 정도의 강력범죄나 성범죄 물증이 나오지 않다가 재판 중 추가로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범죄자 신상 공개 때마다 실물과 사진이 달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사자 동의 없이 현재 모습을 촬영할 수 없었던 터라, 주로 신분증의 과거 증명사진을 공개했다. 최근 신상 공개가 결정된 흉악범들도 제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머그샷’
득실은?

미국의 경우 머그샷(범죄자 인상착의 기록사진)을 공개한다. 당정은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처럼 수사기관이 범죄자의 얼굴을 촬영해 30일 이내 모습을 공개하는 특별법을 넣기로 했다. 피의자의 인권보호가 필요하다면서 신상 공개에 소극적이었던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피의자 인권침해 우려에 관해 “신상정보 공개는 검사 청구에 의해 법원이 결정해서 이뤄지는 것이고, 내부적으로는 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결정하게 된다”며 “인권 침해적 측면을 막기 위한 장치는 마련돼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주당서도 묻지 마 폭력 범죄자 신상을 공개하고 머그샷도 공개하자는 법안을 낸 것으로 아는데, 적극적인 협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 공개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헌법재판소도 신상 공개 제도의 위헌성을 심리한다. 

헌재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 1항의 위헌성을 따져 달라는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행정1부(황승태 부장판사)의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지난해 11월 접수했다. 해당 조항은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성폭력 범죄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만한 증거를 바탕으로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이번 위헌법률심판을 두고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인 이른바 ‘N번방’ 구매자로 실형을 확정받은 피의자는 경찰이 신상 정보를 공개하기로 하자 이를 취소해달라는 신상 공개 처분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해당 조항이 어떤 절차나 규정 없이 대상자 정보 공개 여부가 사법경찰관의 결정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헌법서 명시한 적법 절차 원칙과 무죄 추정의 원칙에 위반 소지가 있으며 피의자의 인격권과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신상 공개 추진…위헌 지적도
“피해자도 기록 열람하게 해야”

재판부는 “피의자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대상을 넘어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이전에 유죄가 낙인되는 효과까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무죄 판결이 나더라도 그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피해를 해소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성에 대한 강력범죄 가해자들의 신상 공개 확대 방안을 신속히 추진하라”고 법무부에 지시했다. 그러나 당정이 추진하는 특별법이 헌재 결정에 따라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국민권익위원회는 2주 간 국민생각함을 통해 ‘강력범죄자 신상 공개 확대 방안’에 대한 국민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생각함은 국민권익위가 운영하는 범정부 차원의 정책 소통 플랫폼으로 결과는 신상 공개 제도 개선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범죄 피해자가 형사 재판 과정서 당사자에서 제외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형사소송법 등 현행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피해자에게 사건 관련 사실을 통지하고 수사 진행 상황 등 핵심 사안은 의무 통지 대상으로 정하자는 것이 골자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는 1심 재판이 끝날 때까지 수사와 기소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재판부에 열람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일면식도 없는 가해자의 신상 공개를 요구했지만, 피해자는 재판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1심 형사소송에선 사건의 진상규명과 범죄 당사자의 신분 및 형벌 결정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재판 당사자서 제외된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에선 형사사건 피해자의 공판기록 열람 신청권을 인정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294조 4항에 따르면, 소송이 진행되는 상황서 소송기록 열람 또는 등사권을 재판장에게 신청할 수 있다. 재판장은 신청이 있을 때에는 검사·피고인·변호인에게 그 취지를 통지해야 한다. 소송기록을 열람한 경우 재판 관계인의 명예나 수사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피해자는 당시 JTBC <뉴스룸>과 인터뷰서 “처음에는 나도 재판의 당사자라고 생각해 재판부에 정보 열람을 신청했는데, 재판 당사자가 아니라고 해서 하지 못했다”며 “그때부터 민사로 신청해 자료를 1심 끝나고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민사 뿐”
대부분 포기

피해자는 구체적인 이유 없이 열람 불허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재판장에 의해 열람·등사권이 거부당했을 경우, 이에 불복할 수 없고 불허 판단에 대해 명시할 법적인 필요가 없다고 형사소송법에 명시돼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선 1심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 재판기록을 기다려야만 한다. 이후 민사소송을 통해 관련 기록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때 노출된 신변이 가해자에게 노출된다. 추후 보복 범죄에 대한 우려를 발생시키는 대표적인 원인이다. 

<ojh34522@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 ‘묻지 마 범죄’ “대책 없다”
범죄통계는 아직 데이터 확보 ‘난항’

전문가들은 묻지 마 범죄가 발생하는 주원인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주로 꼽는다.

그러나 묻지 마 범죄가 증가하는 상황과 불평등 때문으로만 단정할 수 없다.

원인을 분석할 충분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부터 경찰은 묻지마 범죄를 이상동기 범죄로 정의하고 통계를 작성해 범죄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으나, 아직 성과가 미미하다.

경찰 관계자는 “묻지 마 범죄에 대한 정의조차 애매모호해서 명확히 판단할 수 없다”며 “통계를 작성하려면 정의나 분류 기준이 명확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통계 작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옥>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