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2차 손님’ 신상 현찰 거래 추적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7.03 12:13:51
  • 호수 1434호
  • 댓글 3개

“남편 성매매 알려드립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성매매 업소가 손님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돈벌이로 사용하다 적발됐다. 업주들은 성매수자의 전화번호는 물론, 직업까지 메모했는데 이는 잠복 경찰인지 미리 파악하기 위함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손님이 경찰인 것으로 의심될 경우 ‘○○○ 경찰’ 등으로 저장했다. 동종업자들끼리 공유해 단속을 피하려는 이유다. 특히, ‘진상 손님’을 걸러내기 위한 메모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수집된 개인정보가 현찰로 거래되는 실태를 <일요시사>가 직접 확인했다. 

대부분의 성매매 업소는 ‘안마시술소’ 등 은유적 간판을 사용한다. 단속 때문에 ‘OO 안마’라는 간판을 걸어두지만, 실체는 성매매 업소인 셈이다. 업주들은 성매수자를 더욱 끌어들이기 위해 솔직한 광고 수단이 필요했다. ‘성매매 광고 사이트’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추천 업소
없인 불가

업주들은 사이트를 보고 연락한 성매수자가 경찰이나, 진상일까 걱정이 앞선다. 성매수자의 신상정보를 공유하는 ‘제로나인’ 앱을 설치한 이유다. 앱은 사이트에 가입된 업주만 설치할 수 있다. 까다로운 인증절차를 통과해야 하며, 월 이용료는 12만원이다.

2021년부터 지난 2월까지 전국 6400여개 성매매 업주를 회원으로 둔 제로나인의 전신 ‘더봄’의 운영진이 최근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달 22일, 경기남부경찰청은 운영진 3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성매매 업주 스마트폰에 저장된 성매수자의 정보를 불법으로 수집, 공유하면서 성매매처벌법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이용료 명목으로 18억4000만원의 수익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더봄 운영진이 벌어들인 수익도 몰수 조치했다. 운영진은 약 2년간 총 5100만건 이상의 개인정보를 수집했다. 중복 정보를 제외하면 약 460만건의 전화번호가 확인됐다. 이는 모두 성매매 업주들의 휴대폰서 수집된 정보로 방법은 간단하다. 업주가 휴대폰에 앱을 설치하면 자동으로 손님의 전화번호, 메모 등이 특정 서버에 저장된다.


이렇게 취합된 정보는 제로나인 이용자라면 누구나 찾아볼 수 있다. 다른 업주가 저장한 손님 정보도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앱에는 전화번호 조회 기능도 있어 특정인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검색하면 성매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하루 15건의 무료 검색이 가능하며, 이후 3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문제는 검색 대상자가 남성에 국한되는 것만이 아니다. 업소에 취업을 문의한 여성들의 번호도 공유된다는 점이다. 호기심에 연락한 무고한 사람까지 포함된다.

가입비 받고 개인정보 ‘실시간 공유’
제3자가 특정인 출입 여부 확인 가능

업계 관계자는 “장난삼아 사촌형 번호를 조회했는데, 수원까지 가서 그 짓(성매매)을 하고 왔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애인, 배우자 등의 성매매 이력을 확인해준다고 홍보해 부당이득을 취한 ‘유흥탐정’도 이 앱을 사용했다. 이들은 텔레그램, 카카오톡 오픈채팅 등 SNS로 의뢰받았다. 한 보이스피싱범은 성매수자에게 전화해 성매매 이력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요구한 사례도 있다.

<일요시사>는 앱을 어떻게 설치하는지 파악했다. 우선, 까다로운 성매매 업주 인증을 거쳐야 한다. 텔레그램 등을 통해 만난 운영자는 업소의 실체를 요구한다. 이 때문에 성매매 광고 사이트에 등록된 업소 정보가 담긴 이미지를 전송해야 한다. 이때 광고 제휴 기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보이도록 한다. 광고 기간이 만료된 업주는 받지 않는다. 

앱 설치를 원하는 업주를 신뢰할만한 다른 업소의 추천이 필요해 까다롭다. 추천업소는 ‘이 업주를 안심하고 추천한다’는 식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운영자에게 보내야 한다. 다른 업소의 추천이 확인되면, 신규 등록 양식을 받을 수 있다. 양식에는 ‘전화번호’ ‘업종’ ‘업체명’ ‘지역’ 등을 적어야 한다.

업종은 영업 형태를 의미한다. 오피, 안마방, 룸싸롱 등 다양한 형태가 포함된다. 업체명은 성매매 광고 제휴 사이트에 등록된 업소명이다.


등록 양식을 완성하면 앱을 설치할 수 있는 링크와 함께 계좌번호가 전송된다. 결제가 완료되면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생성되며, 앱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용비는 30일에 12만원, 60일에 20만원이다. 업주가 앱 설치를 위해 성매매 광고 사이트에 가입한 비용 12만원을 포함하면 최소 24만원을 지출한 셈이다.

성매매 광고 사이트는 지역·업종별로 특화돼있다. 먼저 수도권에 특화된 ‘오ⅩⅩⅩ니’ ‘오ⅩⅩⅩ걸’ 사이트가 있다. 이외에 지역별 사이트로는 부산 업소를 모아둔 ‘부산ⅩⅩⅩ’, 대구지역 ‘오피Ⅹ’, 충청권은 ‘오파Ⅹ’ 등이 존재한다.

제로나인 외 다양
앱 기술도 발전

업종별로도 주력하는 사이트가 따로 있다. ‘오피ⅩⅩ니’라는 사이트는 건전 마사지를 찾는 수요가 많고, 단순 성매매는 ‘OPⅩⅩ’에 몰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성매수자 정보를 공유하는 앱은 제로나인 외에도 다양하다. 최근 구속된 더봄은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했기에 긴 꼬리를 잡혔다. 일부 운영진이 체포됐지만, 해외에 서버를 둔 이상 뿌리 뽑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제로나인과 같은 아류가 여전히 판을 치는 이유다. 최근엔 ‘페이커’라는 동종 앱도 활개를 펴고 있다.

앱의 구동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기존에는 앱을 켜고 팝업창을 띄워 정보를 검색했으나 최근에는 기본 통화앱 형태로 진화했다. 스피커폰으로 통화도 가능해졌다. 다이얼을 눌러 발신과 수신이 모두 가능해졌다. 더봄 운영진이 검거됐지만, 동종업계 기술자들은 음지서 활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성매매 업계에도 카르텔은 존재한다. 여성·청소년 성매매 근절단(여청단)의 반전이 드러나면서 더욱 뚜렷해졌다. 여청단 전 대표인 신모씨 등은 ‘보도방(여성 접객원 소개업체)’ 업주들에게 ‘여청단에 가입하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협박한 혐의 등으로 2018년 기소됐다. 

여청단의 설립 목적과 실상은 달랐다. 2016년 신모씨 등이 성매매 근절을 명목으로 세운 여청단은 경기도 일대에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는 조직폭력배와 결탁했다. 2018년에는 경기도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하는 등 합법적인 시민단체로 위장했다.

자신들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업체에는 자동발신시스템을 이용한 이른바, ‘콜폭탄’을 행사했다. 성매매 업주의 휴대폰에 계속 전화를 걸어 영업을 방해한 것이다. 또 가입하지 않은 업소에 ‘탕치기’를 가해 영업을 방해했다. 탕치기는 손님으로 위장해 접대부를 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하는 것을 말한다.

업소 카르텔
갈수록 늘어

2021년 법원은 여청단 간부 등 사건 관계자 4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당시 수원지법 형사4단독 김두홍 판사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여청단 간부 A씨에게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 사건 현장서 범행에 가담한 폭력배 B씨에게도 똑같이 선고했다. 

김 판사는 “B씨가 직접적으로 피해자를 협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당시 신씨 바로 옆에 앉아서 자신들의 세를 과시했다”며 “신씨와 공모해 피해자를 강요한 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앞서 여청단은 성매매 근절단체를 표방, 성매매업소의 불법영업을 신고하는 방식으로 업주들을 수하에 두고 상납금을 받았다.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 업체는 지속적으로 신고하거나 콜폭탄을 걸며 영업을 방해하다가 수사망에 올랐다.

성매매 업계는 여청단 조직원이 성매매 광고 사이트에 오래전부터 개입한 것으로 봤다. 이들은 성매매 알선 사이트인 ‘밤의 전쟁’과 ‘아찔한 달리기’를 개설해 막대한 수익을 벌었다. 실제로 다수의 성매매 업소 광고를 했고, 업주들에게 가입을 강요하기도 했다.

업계에선 성매매 광고의 1세대로 불린다. 여청단 조직원은 필리핀서 생활하며 해당 사이트를 운영해왔으나, 경찰은 국제공조수사를 통해 붙잡았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논란이 된 제로나인 등 성매수자 정보 앱도 여청단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해석했다. 성매매 광고 사이트에 등록된 업주만 가입할 수 있는 부분도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 관계자는 “다른 성매매 업소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는 건, 아는 사람끼리만 받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커지는 성매매 시장
강화되는 처벌 수위

성매매 업계가 온라인상에 보따리를 풀게 된 계기는 대략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서울시는 청량리 집창촌이 지역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철거했다. 당시 용산, 영등포 등에 즐비한 집창촌들도 사라져갔다. 최근엔 수원역과 평택 쌈리 집창촌에 이어 파주 용주골도 70년 만에 폐쇄됐다. 그렇다고 성매수자의 욕구가 사라지진 않는다. 


공급이 줄어드니, 수요를 맞추기 위해 업주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단속을 피해 음지로 숨어든 곳이 온라인이다. 접대부의 사진, 서비스 시간, 가격까지 나와 있으니 청소년도 손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실제로 불법 온라인 성매매 광고는 전년 대비 증가했다. ‘서울시 인터넷 시민감시단’은 지난해 총 14만1313건의 불법 온라인 성매매 알선·광고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11년 출범 이래 역대 최대 실적으로, 전년 대비 1.3배 증가한 수준이다.

적발 현황을 플랫폼별로 보면 SNS를 활용한 광고가 12만735건(88.6%)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 성매매 알선 사이트 1만5061건(11.0%), 메신저 518건(0.4%) 등이 뒤를 이었다. 내용별로는 출장 안마, 보도방 등 출장형 성매매 알선·광고가 7만2814건(53.4%)으로 가장 많았다. 성매매 알선 사이트 및 의심업소 구인광고는 1만5346건(11.3%)로 나타났다.

성매매도 성범죄의 일종이다. 성매매특별법에 따르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에 처하고 있다. 과거에는 기소유예나 벌금형 등 비교적 처벌이 비교적 가벼운 편이었으나, 최근에는 정식 기소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경찰청이 조사한 성매매 사범 단속 현황에 따르면 2018년 검거 건수는 약 7000여 건이며, 검거 인원은 1만6000여명이며 시장 규모는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온라인 활개
30조원 육박

국내 성매매 시장 규모는 30조원서 37조원에 이른다고 분석됐다. 시장 규모가 점차 커짐에 따라 성범죄에 대한 수사망도 촘촘해질 전망이다.

앞서 ‘더봄’ 운영자는 검거 전 수배 중인 상태서도 앱 명칭만 변경한 채 대포폰, 대포통장, 텔레그램으로 운영했다. 수익금 인출책에게는 전기자전거를 이용해 전국을 돌며 출금하도록 지시했다. 약 6개월간에 걸친 경찰의 추적 수사 끝에 운영자를 포함한 관련자 15명이 전원 검거됐다. 경기남부경찰청은 동종 범죄자 등에 대한 수사를 계속 진행할 방침이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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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