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장모 수사·재판 풀스토리

서슬 퍼런 칼날이…여기만 비껴갔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윤석열정부의 매서운 칼날이 유독 특정 인물에게는 무뎌지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는 최근 개발 특혜 의혹을 수사하고 있던 경찰로부터 ‘불송치 결정’을 통보받았다. 이로써 최씨는 수사기관으로부터 세 번째 ‘수사 종결’을 통보를 받게 됐다.

검찰의 칼날을 정면으로 맞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항상 ‘억울하다’고 말한다. 당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수사는 눈에 불을 켜고 하는 수사기관이 유독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와 김건희 여사 수사에서만큼은 ‘바보’가 된다는 것이다. 

최은순
누구인가?

특히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 개발 의혹 수사에 검찰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의심한다. 실제로 이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는 1년6개월 동안 이어졌으며 사상 최장 기간, 최다 인력 투입이라는 역사를 썼다.

이 대표는 지난 3월22일, 검찰로부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이해충돌방지법, 부패방지법,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법원에 넘겨진 이 대표 관련 사건만 12건에 달하며 그는 이달 초부터 매주 법원에 출석해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개발 사업구조를 승인하고 내부 정보를 민간업자들에게 알려준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그가 몰아준 특혜 때문에 성남도시개발공사가 4895억원가량의 손해를 봤고, 이 대표의 측근과 민간개발업자는 7886억원을 챙겼다고 의심하고 있다.

해당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를 밝혀내기 위해 검찰이 수집한 수사 자료는 공책 기준 500여권에 달하며, 수사 검사 인력만 8개 부서, 6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모두 부장검사 이상급으로, ‘윤석열 사단’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경찰은 최씨의 ‘개발 특혜 의혹’에 대해선 최근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불송치란 말 그대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고소 및 고발사건에 대해 경찰이 ‘혐의 없음’으로 판단한 것과 동일하다. 불송치 처리가 내려질 경우, 곧 사건은 종료 수순을 밟게 된다.

민주당 안귀령 상근부대변인은 지난 13일 논평을 내고 “경찰이 대통령 장모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바보 행세를 하고 있다”며 “경찰이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인 윤 대통령의 장모 최씨를 불송치했다”고 지적했다.

안 부대변인은 “최씨는 시행사 설립자고 시행사는 가족회사인데도 개발사업이 시작된 뒤 대표직을 사임했기 때문에 관여한 정황이 없다는 경찰의 변명은 황당무계하다”고 일갈했다.

민주당이 말하는 시행사와 설립자, 개발사업은 무엇일까? 이는 김 여사와 최씨, 또 그의 가족들이 연루된 회사, ‘양평시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말한다. 최씨는 2011년부터 2016까지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서 800억원 상당의 부당 이익을 취득한 혐의를 받아왔다.

해당 사건은 2021년 시민단체 민생경제연구소가 ‘정체불명 인허가 담당자를 처벌해달라’며 최씨를 고발하면서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신고를 접수한 양평경찰서는 내사 중이던 사건과 동일 건임을 확인하고 정식 수사로 전환했다.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에서는 시행사인 이에스 아이앤디(ESI&D)가 깊게 관여돼있다.


개발 특혜 의혹 ‘불송치’ 결정
경검 세 번째 ‘수사 종결’ 통보

문제는 최씨 및 가족들이 이 회사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해당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ESI&D가 양평군서 부과하는 개발부담금을 감경받을 의도로 공사비 등과 관련한 증빙 서류에 위조 자료를 끼워 넣었다고 의심했다.

해당 시행사가 사실상 최씨 및 가족들 회사인 만큼, 최씨도 사법부의 칼날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지난 13일, 불송치 결정을 받았다. 지분도 없고, 사업이 추진되기 전 사임했던 부분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사업 관련자 5명이 사문서 위조·행사 혐의를 적용받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점과 사뭇 대비되는 결정이었다.

특히 해당 사건에 정계 인사가 연루된 점은 많은 이들에게 공분을 샀다. 윤 대통령을 사위로 둔 최씨가 정계의 입김으로 돈을 ‘부당하게’ 벌었다는 의심 아래서다.

직접 연관자로 지목된 정계 인사는 국민의힘 김선교 전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07년 4월부터 2018년 6월까지 11여년간 양평군수를 지냈고, 2013년 4월부터 2014년 1월까지는 경기도 여주·양평·이천을 담당하던 여주지청장을 역임했다.

해당 기간은 최씨와 최씨 가족이 양평군의 도시개발구역 사업을 최종 승인받은 기간과 일치한다. 공흥지구 특혜 의혹이 불거진 2021년 당시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대선주자로 활동하던 기간이었으며 김 의원은 그의 캠프에 일찌감치 합류한 상태였다.

여러 정황들은 최씨를 범죄 용의자로 만들었고, 경찰은 해당 혐의점을 집중 수사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최종 수사 결과서 최씨가 아파트 착공 등 사업을 본격화하기 전 대표이사직서 물러났던 점, 김 여사는 과거 이 회사 사내이사로 재직한 적이 있으나 그 역시 사업 추진 전에 사임했던 점, 가진 지분이 없는 점 등을 들어 혐의점을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공책만
500권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은 자치단체가 민간 개발을 승인하고 개발 이익을 몰아가진 사건이다. 이 구조는 이 대표가 의심받고 있는 성남시 대장동 사건과 과정이 매우 비슷하다. 규모에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사건에 대해 수사 인력과 수사 의지가 차이 나는 부분은 민주당 의원들이 계속해서 지적하는 부분이다.

안 부대변인은 이에 대해 “야당 인사는 아무 증거 없이 일방적 진술만으로 소환하고 구속하면서 대통령 가족에게는 조건 면죄부를 주는 불공정에 치가 떨린다”며 “공정의 탈을 쓰고 편파의 끝을 보여주는 윤석열정권의 행태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분개하는 이유는 공흥지구 사건뿐만이 아니다. 최씨는 오금동스포츠 투자약정 위증 논란 혐의도 받았는데 해당 혐의도 2021년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사건은 2003년경 거액의 이익금을 놓고 최씨와 동업자 정대택씨 간의 법적 분쟁서 비롯된 문제였다. 


최씨와 정씨는 서울 송파구 소재의 스포츠 플라자 건물을 사고 팔아 이익금 53억원을 남겼다. 당시 정씨는 “최씨가 이익금이 발생할 경우 절반씩 나눠 갖기로 했다”고 주장했지만 최씨는 ‘동업 계약이 강압에 의한 것이므로 무효’라는 논리를 펼치며 이익금을 나누지 않았다. 

법적 다툼 과정서 법무사 백모씨는 사업 제안 및 정보제공자인 정씨와 돈을 댄 최씨 간 동업 논의를 지켜보고 법무사로서 이들 사이의 이익금 배분 약정서 작성에 관여한 주요 증인이었다. 그는 이익금을 절반씩 나누기로 한 구두 약정의 존재 여부를 알고 있고, 약정서 작성 당시에도 직접 입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이 계속되며 계약서 작성이 ‘자발적’이었는지, ‘강압에 의한’ 것이었는지가 주요 쟁점으로 불거졌다. 최씨는 결국 정씨를 사기미수 및 신용훼손, 강요죄 등으로 고소했고, 이익금 배분 약정서가 ‘강요’에 의한 것임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재판에 넘겨진 정씨는 구속 기소 후 1심서 2년형을 선고받았는데 당시 결정적인 진술을 한 사람이 바로 법무사 백씨였다. 백씨는 최씨에게 유리한 자술서와 탄원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했고, 제출받은 증거가 불충분했던 법원은 그의 진술을 주요 판단 근거로 사용했다.

정씨는 곧장 백씨가 최씨로부터 ‘금전적인 대가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해 다시 법정 분쟁을 시작했으며 백씨가 3차례에 걸쳐 최씨에게 총 2억여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대장동
데자뷰?


백씨는 2005년 7월 정씨의 항소심 7차 공판서 뒤늦게 “약정서는 내 입회 아래 자발적 동의하에 작성됐다”며 “지금까지는 위증했다”고 진술을 번복했으나 법원은 백씨의 진술이 번복된 점을 들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정씨는 최씨가 백씨에게 준 2억원이 위증의 대가라며 형량이 강한 모해위증(피의자나 피고인을 처벌받게 할 목적으로 위증을 조장하는 죄)을 주장했으나 법원은 그보다 형량이 작은 변호사법 위반죄로 징역 2년형을 확정했다.

정씨 측은 백씨가 번복한 증언을 토대로 2005년 말 백씨와 최씨를 모해위증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위증했다”는 백씨 자백에도 불구하고 전부 불기소 처분했다.

정씨 측이 반발하자 검찰은 경찰의 수사보고서를 보고 1년 뒤 최씨를 약식기소했고, 최씨는 벌금 100만원을 처분받았다. 정씨 측은 “백씨의 양심고백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려 사건이 부당하게 종결됐다”고 주장했다.

사건 당사자인 정씨는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한 반면, 최씨는 100만원 벌금형이라는 다소 약한 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최씨의 ‘혐의 없음’ 퍼레이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씨는 요양병원을 불법 개설해 국민건강보험공단서 요양급여 22억9000여만원을 부정하게 타낸 혐의로 수년간 재판을 받아왔다.

이번에 그에게 ‘혐의 없음’을 판결한 곳은 다름 아닌 대법원이었다. 최씨는 동업자들이 모두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지 5년9개월 만에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일각에선 유죄 의심이 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검사가 이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최씨는 2013년 2월 경기 파주시 소재에 요양병원을 개설한 후 운영에 관여하면서 같은 해 5월부터 2015년 5월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22억9420만원을 부당 수급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비의료인이 불법으로 개설한 병원은 간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를 받을 수 없으며 최씨와 함께한 동업자들은 2017년 3월까지 모두 유죄가 확정됐다. 특히 주범으로 지목된 주모씨는 징역 4년형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공범으로 지목된 사람이 4년형을 선고받는 와중에도 최씨는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수사는 그렇게 공들이더니…
1심과 정반대로 해석한 2심

해당 사건에 문제 의식을 갖고 있던 민주당 최강욱 의원은 2020년 최씨를 고발하기에 이른다. 경찰의 첫 수사가 시작된 지 5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 재수사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은 2020년 11월 최씨를 기소했다.

민주당은 주씨가 주범이 아니라 오히려 최씨가 주범이라고 의심했다. 최씨가 2013년 당시 요양병원 사용 목적으로 건물을 매매한 직접 계약인 중 한 사람으로 이 과정서 2억원의 계약금을 사비로 지급했고, 각종 서류에 본인의 이름을 날인했으며, 그의 큰사위를 병원 행정원장으로 앉혔다는 것이다.

병원 운영비를 일부 보조한 것도 최씨며 병원이 건물 확장을 위한 대출이 필요할 때 최씨의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기도 했다.

병원 설립과 운영, 사세 확장에 깊게 관여했던 최씨가 어떻게 입건조차 되지 않았을까? 비밀은 ‘책임면제 각서’에 있었다. 최씨는 문제가 불거지기 전인 2014년 이사장직서 물러나면서 병원 운영에 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책임면제 각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재인정부였던 2021년, 1심 재판부는 “요양급여 편취로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초래하고 성실한 가입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등 죄질이 불량하다. 혐의가 없었다면 그런 각서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며 징역 3년 형과 함께 법정 구속시켰다. 

곧바로 항소한 최씨는 석방되기까지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21대 대선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해 1월, 2심 재판부는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사실과 같은 증거를 두고 정반대 판단을 내린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책임면제 각서’의 성격을 1심 재판부와 달리 해석했다. 2심 재판부는 “동업자의 자금 편취 행각을 보고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며 ‘주범’이었던 최씨를 ‘목격자’로 해석했다.

엇갈렸던 1·2심 판결은 대법원으로 넘어갔고 결국 지난해 2심 재판부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판결문서 “공모관계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돼야 하고, 그와 같은 증명이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무죄 판결의 배경을 수사 부실로 들었으며 시간이 많이 지나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무죄 선고의 이유를 사실상 당시 수사기관이었던 검찰로 넘긴 셈이다. 최씨는 무죄가 확정돼 해당 혐의에서는 현재 완전히 자유로워진 상태다.

당선 후…
혐의 없음

양평시 개발 특혜 혐의에서는 경찰이, 모해위증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이, 불법 요양급여 편취 혐의에서는 법원과 검찰이 함께 최씨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현직 대통령의 장모가 여기저기 송사에 다수 연루된 점도 놀랍지만, 그때마다 처벌받지 않은 것도 놀랍다. 민주당은 사법부가 언제까지 최씨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을지, 이 대표의 재판을 준비하며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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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