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장모 수사·재판 풀스토리

서슬 퍼런 칼날이…여기만 비껴갔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윤석열정부의 매서운 칼날이 유독 특정 인물에게는 무뎌지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는 최근 개발 특혜 의혹을 수사하고 있던 경찰로부터 ‘불송치 결정’을 통보받았다. 이로써 최씨는 수사기관으로부터 세 번째 ‘수사 종결’을 통보를 받게 됐다.

검찰의 칼날을 정면으로 맞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항상 ‘억울하다’고 말한다. 당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수사는 눈에 불을 켜고 하는 수사기관이 유독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와 김건희 여사 수사에서만큼은 ‘바보’가 된다는 것이다. 

최은순
누구인가?

특히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 개발 의혹 수사에 검찰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의심한다. 실제로 이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는 1년6개월 동안 이어졌으며 사상 최장 기간, 최다 인력 투입이라는 역사를 썼다.

이 대표는 지난 3월22일, 검찰로부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이해충돌방지법, 부패방지법,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법원에 넘겨진 이 대표 관련 사건만 12건에 달하며 그는 이달 초부터 매주 법원에 출석해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개발 사업구조를 승인하고 내부 정보를 민간업자들에게 알려준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그가 몰아준 특혜 때문에 성남도시개발공사가 4895억원가량의 손해를 봤고, 이 대표의 측근과 민간개발업자는 7886억원을 챙겼다고 의심하고 있다.

해당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를 밝혀내기 위해 검찰이 수집한 수사 자료는 공책 기준 500여권에 달하며, 수사 검사 인력만 8개 부서, 6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모두 부장검사 이상급으로, ‘윤석열 사단’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경찰은 최씨의 ‘개발 특혜 의혹’에 대해선 최근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불송치란 말 그대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고소 및 고발사건에 대해 경찰이 ‘혐의 없음’으로 판단한 것과 동일하다. 불송치 처리가 내려질 경우, 곧 사건은 종료 수순을 밟게 된다.

민주당 안귀령 상근부대변인은 지난 13일 논평을 내고 “경찰이 대통령 장모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바보 행세를 하고 있다”며 “경찰이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인 윤 대통령의 장모 최씨를 불송치했다”고 지적했다.

안 부대변인은 “최씨는 시행사 설립자고 시행사는 가족회사인데도 개발사업이 시작된 뒤 대표직을 사임했기 때문에 관여한 정황이 없다는 경찰의 변명은 황당무계하다”고 일갈했다.

민주당이 말하는 시행사와 설립자, 개발사업은 무엇일까? 이는 김 여사와 최씨, 또 그의 가족들이 연루된 회사, ‘양평시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말한다. 최씨는 2011년부터 2016까지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서 800억원 상당의 부당 이익을 취득한 혐의를 받아왔다.

해당 사건은 2021년 시민단체 민생경제연구소가 ‘정체불명 인허가 담당자를 처벌해달라’며 최씨를 고발하면서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신고를 접수한 양평경찰서는 내사 중이던 사건과 동일 건임을 확인하고 정식 수사로 전환했다.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에서는 시행사인 이에스 아이앤디(ESI&D)가 깊게 관여돼있다.


개발 특혜 의혹 ‘불송치’ 결정
경검 세 번째 ‘수사 종결’ 통보

문제는 최씨 및 가족들이 이 회사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해당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ESI&D가 양평군서 부과하는 개발부담금을 감경받을 의도로 공사비 등과 관련한 증빙 서류에 위조 자료를 끼워 넣었다고 의심했다.

해당 시행사가 사실상 최씨 및 가족들 회사인 만큼, 최씨도 사법부의 칼날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지난 13일, 불송치 결정을 받았다. 지분도 없고, 사업이 추진되기 전 사임했던 부분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사업 관련자 5명이 사문서 위조·행사 혐의를 적용받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점과 사뭇 대비되는 결정이었다.

특히 해당 사건에 정계 인사가 연루된 점은 많은 이들에게 공분을 샀다. 윤 대통령을 사위로 둔 최씨가 정계의 입김으로 돈을 ‘부당하게’ 벌었다는 의심 아래서다.

직접 연관자로 지목된 정계 인사는 국민의힘 김선교 전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07년 4월부터 2018년 6월까지 11여년간 양평군수를 지냈고, 2013년 4월부터 2014년 1월까지는 경기도 여주·양평·이천을 담당하던 여주지청장을 역임했다.

해당 기간은 최씨와 최씨 가족이 양평군의 도시개발구역 사업을 최종 승인받은 기간과 일치한다. 공흥지구 특혜 의혹이 불거진 2021년 당시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대선주자로 활동하던 기간이었으며 김 의원은 그의 캠프에 일찌감치 합류한 상태였다.

여러 정황들은 최씨를 범죄 용의자로 만들었고, 경찰은 해당 혐의점을 집중 수사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최종 수사 결과서 최씨가 아파트 착공 등 사업을 본격화하기 전 대표이사직서 물러났던 점, 김 여사는 과거 이 회사 사내이사로 재직한 적이 있으나 그 역시 사업 추진 전에 사임했던 점, 가진 지분이 없는 점 등을 들어 혐의점을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공책만
500권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은 자치단체가 민간 개발을 승인하고 개발 이익을 몰아가진 사건이다. 이 구조는 이 대표가 의심받고 있는 성남시 대장동 사건과 과정이 매우 비슷하다. 규모에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사건에 대해 수사 인력과 수사 의지가 차이 나는 부분은 민주당 의원들이 계속해서 지적하는 부분이다.

안 부대변인은 이에 대해 “야당 인사는 아무 증거 없이 일방적 진술만으로 소환하고 구속하면서 대통령 가족에게는 조건 면죄부를 주는 불공정에 치가 떨린다”며 “공정의 탈을 쓰고 편파의 끝을 보여주는 윤석열정권의 행태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분개하는 이유는 공흥지구 사건뿐만이 아니다. 최씨는 오금동스포츠 투자약정 위증 논란 혐의도 받았는데 해당 혐의도 2021년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사건은 2003년경 거액의 이익금을 놓고 최씨와 동업자 정대택씨 간의 법적 분쟁서 비롯된 문제였다. 


최씨와 정씨는 서울 송파구 소재의 스포츠 플라자 건물을 사고 팔아 이익금 53억원을 남겼다. 당시 정씨는 “최씨가 이익금이 발생할 경우 절반씩 나눠 갖기로 했다”고 주장했지만 최씨는 ‘동업 계약이 강압에 의한 것이므로 무효’라는 논리를 펼치며 이익금을 나누지 않았다. 

법적 다툼 과정서 법무사 백모씨는 사업 제안 및 정보제공자인 정씨와 돈을 댄 최씨 간 동업 논의를 지켜보고 법무사로서 이들 사이의 이익금 배분 약정서 작성에 관여한 주요 증인이었다. 그는 이익금을 절반씩 나누기로 한 구두 약정의 존재 여부를 알고 있고, 약정서 작성 당시에도 직접 입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이 계속되며 계약서 작성이 ‘자발적’이었는지, ‘강압에 의한’ 것이었는지가 주요 쟁점으로 불거졌다. 최씨는 결국 정씨를 사기미수 및 신용훼손, 강요죄 등으로 고소했고, 이익금 배분 약정서가 ‘강요’에 의한 것임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재판에 넘겨진 정씨는 구속 기소 후 1심서 2년형을 선고받았는데 당시 결정적인 진술을 한 사람이 바로 법무사 백씨였다. 백씨는 최씨에게 유리한 자술서와 탄원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했고, 제출받은 증거가 불충분했던 법원은 그의 진술을 주요 판단 근거로 사용했다.

정씨는 곧장 백씨가 최씨로부터 ‘금전적인 대가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해 다시 법정 분쟁을 시작했으며 백씨가 3차례에 걸쳐 최씨에게 총 2억여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대장동
데자뷰?


백씨는 2005년 7월 정씨의 항소심 7차 공판서 뒤늦게 “약정서는 내 입회 아래 자발적 동의하에 작성됐다”며 “지금까지는 위증했다”고 진술을 번복했으나 법원은 백씨의 진술이 번복된 점을 들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정씨는 최씨가 백씨에게 준 2억원이 위증의 대가라며 형량이 강한 모해위증(피의자나 피고인을 처벌받게 할 목적으로 위증을 조장하는 죄)을 주장했으나 법원은 그보다 형량이 작은 변호사법 위반죄로 징역 2년형을 확정했다.

정씨 측은 백씨가 번복한 증언을 토대로 2005년 말 백씨와 최씨를 모해위증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위증했다”는 백씨 자백에도 불구하고 전부 불기소 처분했다.

정씨 측이 반발하자 검찰은 경찰의 수사보고서를 보고 1년 뒤 최씨를 약식기소했고, 최씨는 벌금 100만원을 처분받았다. 정씨 측은 “백씨의 양심고백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려 사건이 부당하게 종결됐다”고 주장했다.

사건 당사자인 정씨는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한 반면, 최씨는 100만원 벌금형이라는 다소 약한 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최씨의 ‘혐의 없음’ 퍼레이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씨는 요양병원을 불법 개설해 국민건강보험공단서 요양급여 22억9000여만원을 부정하게 타낸 혐의로 수년간 재판을 받아왔다.

이번에 그에게 ‘혐의 없음’을 판결한 곳은 다름 아닌 대법원이었다. 최씨는 동업자들이 모두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지 5년9개월 만에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일각에선 유죄 의심이 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검사가 이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최씨는 2013년 2월 경기 파주시 소재에 요양병원을 개설한 후 운영에 관여하면서 같은 해 5월부터 2015년 5월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22억9420만원을 부당 수급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비의료인이 불법으로 개설한 병원은 간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를 받을 수 없으며 최씨와 함께한 동업자들은 2017년 3월까지 모두 유죄가 확정됐다. 특히 주범으로 지목된 주모씨는 징역 4년형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공범으로 지목된 사람이 4년형을 선고받는 와중에도 최씨는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수사는 그렇게 공들이더니…
1심과 정반대로 해석한 2심

해당 사건에 문제 의식을 갖고 있던 민주당 최강욱 의원은 2020년 최씨를 고발하기에 이른다. 경찰의 첫 수사가 시작된 지 5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 재수사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은 2020년 11월 최씨를 기소했다.

민주당은 주씨가 주범이 아니라 오히려 최씨가 주범이라고 의심했다. 최씨가 2013년 당시 요양병원 사용 목적으로 건물을 매매한 직접 계약인 중 한 사람으로 이 과정서 2억원의 계약금을 사비로 지급했고, 각종 서류에 본인의 이름을 날인했으며, 그의 큰사위를 병원 행정원장으로 앉혔다는 것이다.

병원 운영비를 일부 보조한 것도 최씨며 병원이 건물 확장을 위한 대출이 필요할 때 최씨의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기도 했다.

병원 설립과 운영, 사세 확장에 깊게 관여했던 최씨가 어떻게 입건조차 되지 않았을까? 비밀은 ‘책임면제 각서’에 있었다. 최씨는 문제가 불거지기 전인 2014년 이사장직서 물러나면서 병원 운영에 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책임면제 각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재인정부였던 2021년, 1심 재판부는 “요양급여 편취로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초래하고 성실한 가입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등 죄질이 불량하다. 혐의가 없었다면 그런 각서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며 징역 3년 형과 함께 법정 구속시켰다. 

곧바로 항소한 최씨는 석방되기까지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21대 대선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해 1월, 2심 재판부는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사실과 같은 증거를 두고 정반대 판단을 내린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책임면제 각서’의 성격을 1심 재판부와 달리 해석했다. 2심 재판부는 “동업자의 자금 편취 행각을 보고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며 ‘주범’이었던 최씨를 ‘목격자’로 해석했다.

엇갈렸던 1·2심 판결은 대법원으로 넘어갔고 결국 지난해 2심 재판부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판결문서 “공모관계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돼야 하고, 그와 같은 증명이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무죄 판결의 배경을 수사 부실로 들었으며 시간이 많이 지나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무죄 선고의 이유를 사실상 당시 수사기관이었던 검찰로 넘긴 셈이다. 최씨는 무죄가 확정돼 해당 혐의에서는 현재 완전히 자유로워진 상태다.

당선 후…
혐의 없음

양평시 개발 특혜 혐의에서는 경찰이, 모해위증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이, 불법 요양급여 편취 혐의에서는 법원과 검찰이 함께 최씨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현직 대통령의 장모가 여기저기 송사에 다수 연루된 점도 놀랍지만, 그때마다 처벌받지 않은 것도 놀랍다. 민주당은 사법부가 언제까지 최씨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을지, 이 대표의 재판을 준비하며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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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