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떡잎부터 달랐던 ‘슛돌이’ 이강인

‘월드 클래스’ 9부 능선 넘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축구선수 이강인이 스페인 프로축구 리그 프리메라리가서 한국인 최초로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를 달성했다. 유년 시절 KBS 예능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하며 온 국민의 기대를 받던 ‘축구 영재’가 어느덧 한국 축구의 한 시대를 책임질 재목으로 성장했다. 이강인의 이번 여름 이적은 이미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그의 행선지에 많은 이의 눈길이 쏠린다.

답답한 경기 흐름 속 후반 12분. 해결사로 나선 이는 이번에도 이강인이었다. 한 경기 걸러 선발 출장한 이강인이 이날 경기서도 어김없이 골망을 가른 것이다. 이강인의 소속팀 마요르카는 지난 2일 오전 2시(한국시각) 스페인 마요르카 에스타디 마요르카 손 모시에서 아틀레틱 빌바오를 만나 2022-2023시즌 프리메라리가 32라운드를 치렀다. 

정상급
활약상

이강인은 경기 초반부터 날랜 몸놀림을 과시했다. 중앙과 측면을 화려한 발재간으로 오가며 상대 압박을 벗겨냈다. 빌바오 수비진은 이강인을 막기 위해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이강인에게 전반전에만 3번이나 반칙을 저질렀다. 

이강인은 여세를 몰아 선제골까지 기록했다. 박스 왼쪽서 무리키가 뒤로 내준 공을 그대로 왼발 슈팅으로 연결한 것이다. 리그 6호골. 임무를 완수한 이강인은 후반 39분 안토니오 산체스와 교체되며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나가는 도중에도 홈 팬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다만 마요르카는 끝까지 웃지 못했다. 후반 추가시간 4분 핸드볼 반칙을 범하며 페널티킥 위기를 맞았고, 이내 이냐키 윌리엄스에게 극장 동점골을 내주고 말았다. 결국 마요르카는 1-1로 비기며 안방서의 귀중한 승점 2점을 잃었다. 승점 1점 추가에 만족해야 했던 마요르카는 승점 41점으로 11위가 됐다.


경기 결과에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이강인에게는 최고의 하루였다. 의미 있는 기록 수립과 함께 만개한 기량을 향한 찬사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강인은 이날 경기를 기점으로 리그서 6골 4도움을 수확했다. 라리가서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한국 선수는 이강인이 처음이다. 

축구 통계 전문 매체 <풋몹>과 <후스코어드닷컴>은 경기 종료 직후 이강인에게 평점 8.2점과 8.4점을 각각 매겼다. 양팀 선수 모두 통틀어 가장 높은 점수였다. 라리가 역시 이강인을 KOTM(KING OF THE MATCH, 경기 수훈선수)에 선정하며 추켜세웠다.

스페인 현지 매체 <마르카>는 “이강인이 득점했다. 그가 공격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면서 경기가 절정에 이르렀다”며 “이강인이 공을 잡으면 경기 속도가 달라진다. 성장하고 있는 그는 팀내 최고 선수가 되고 있다”고 호평했다.

이날 이강인의 경기 지표는 그의 골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강인은 84분 동안 드리블을 6번 시도해 모두 성공했다. 공 소유권 회복은 7번을, 지상 경합에선 15번 중 11번을 이기며 승률 73%를 기록했다. 공수 양면에서 펄펄 난 셈이다. 

더군다나 이강인은 지난달 24일 헤타페전서도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이날 경기에서는 한국 선수 최초로 라리가 멀티골을 기록했고, 지난 1일 경기서 홈 두 경기 연속골로 기세를 이어나갔다.

앞선 24일 경기서 가장 주목받은 장면은 후반 추가시간에 만들어 낸 70m 단독 드리블 골이었다. 이강인은 이 골 하나로 다른 선수들을 압도하는 체력과 주력을 입증해냈다.

순식간에 펼쳐진 역습 상황서, 이강인의 뒤를 쫓던 헤타페 수비수 다코남 제네와 미드필더 루이스 미야는 드리블 없이 전력 질주했음에도 이강인을 따라잡지 못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공격 가담을 위해 함께 뛰던 이강인의 동료 라이요와 그르니에조차도 이강인보다 느렸다.


공을 드리블하는 선수는 공을 건드릴 때마다 전력 질주에 비해 가속도나 보폭서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수십m를 혼자 드리블하다 보면 수비수에게 따라잡혀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도 이강인은 제대로 자세를 잡고 슛을 날릴 때까지도 따라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이강인은 이 경기에 선발로 출장했다. 이강인은 경기 내내 양팀 진영을 종횡무진하며 경기를 조율했고, 이미 한 골을 기록한 상태였다. 체력을 상당히 소진한 상태서도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 셈이다. 

라리가 사무국은 이 골을 ‘이 주의 골’로 선정했다. 사무국은 지난달 28일(한국시각) 공식 SNS를 통해 “이강인이 헤타페전서 선보인 골이 30라운드 최고의 골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이강인 득점 장면에 “잡을 수 있으면 잡아봐”라는 문구를 넣기도 했다.

홈 두 경기 연속 골…최초 기록 싹쓸이
이적 코앞에 두고…20대 초반 기량 만개

이강인은 유년 시절부터 장차 한국 축구를 이끌 재목으로 주목받았다. 2001년 인천서 태어난 이강인은 2007년 KBS 예능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하며 처음 이름을 알렸다. 방송서 또래들에 비해 월등한 기량을 보였다. 고 유상철 전 감독과의 인연도 여기서 시작됐다.

2009년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 유스팀에 입단했다. 이후 2011년에는 스페인으로 건너가 발렌시아 CF 유스팀에 입단했다. 이강인의 부모는 현지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면서 이강인을 지원했다.

이강인은 어린 나이에도 유럽 축구 체계를 빠르게 흡수해나갔다. 발렌시아 유스팀은 2013년 12개 유스팀이 모이는 블루 BBVA 대회 8강전서 FC 바르셀로나 유스팀을 만났다. 이강인은 이 경기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이 덕에 이강인은 2017년 발렌시아 메스타야에 합류할 수 있었다. 

2018년 10월에는 CD 에브로와의 코파 델 레이 경기서 선발 출장해 1군 기용 가능성을 점검받았다.

그러던 2019년 1월13일, 이강인은 발렌시아 메스타야 경기장서 열린 2018~2019 라리가 바야돌리드와의 홈경기서 후반 42분 투입되며 스페인 정규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나이는 만 17세327일. 발렌시아 사상 최연소로 정규리그에 출전한 외국인 선수 기록과 한국 선수의 유럽 5대 리그 최연소 출전 기록을 동시에 경신했다.

같은 달 31일에는 1군 명단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강인은 꾸준히 가능성을 보여주고도 좀처럼 긴 출장 시간을 보장받지 못했다. 구단과 감독의 알력 다툼에 희생되고 있다는 이야기마저 돌 정도였다. 결국 이강인은 2021년 여름 발렌시아를 떠나 마요르카로 이적했다. 자리를 잡은 이강인은 무섭게 성장했다.

이윽고 이적 2년 차인 2022-2023시즌에는 마요르카의 대체 불가능한 핵심 자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강인은 연령별 국가대표팀을 거치며 한국 축구를 지탱하는 한 축이 됐다.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폴란드월드컵’에 출전해 2골 4도움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심지어 한국이 해당 대회서 준우승을 차지했음에도 이강인이 골든볼(MVP)을 수상했을 정도였다. 

여기저기서
러브콜 보내

준우승국 소속 선수가 골든볼을 수상하는 자체가 드문 사례였으며, 특히 한국 남자 선수가 FIFA 주관 대회서 골든볼을 받은 건 사상 최초였다. 18세에 골든볼을 수상한 것 또한 2005년 대회서 골든볼과 골든부트(득점왕)를 모두 받은 리오넬 메시 이후 14년 만이자 역대 네 번 뿐인 진기록이었다.

이강인은 2022 카타르월드컵에 출전했다. 이강인의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경기 운영 방식이 파울루 벤투 전 감독이 추구하는 전술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던 탓에, 이강인은 최종예선까지도 좀처럼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대회 조별예선서도 선발보다는 교체 자원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이강인은 가나전 투입 1분 만에 도움을 기록할 정도로 물오른 기량을 과시했다. 적극적인 전방 압박을 통해 공 소유권을 빼앗고, 정교한 크로스를 올려 조규성의 마무리를 도왔다. 이외에도 대회 중 이강인은 대표팀이 넣은 5골 중 3골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신임 감독인 위르겐 클린스만에게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지난 3월 치러진 평가전에 선발 출전해 풀타임을 소화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우루과이 선수들이 이강인을 막을 방법은 파울뿐이었다”며 극찬했다. 실제로 이날 이강인은 드리블과 탈압박으로 우루과이 진영을 헤집었고, 우루과이 수비진은 이를 막기 위해 한국에 여러 차례 프리킥 기회를 줄 수밖에 없었다. 

예전부터 이강인은 정교한 패스 능력과 월등한 탈압박 능력 등을 자랑했다. 경기 주도권을 쥐어주면 팀 전체를 조율할 능력을 가졌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반면, 부족한 체력과 속도는 단점으로 꼽혔다. 수비 능력이 떨어지고 참여도가 낮다는 것 또한 아쉬운 점으로 꼽혔다. 

하지만 이강인은 불과 몇 년 사이 단점을 빠르게 메워나갔다. 단점이 흐려지자 장점이 더욱 돋보이게 됐다. 이번 시즌 이강인은 수비진영까지 전력 질주해 상대 역습을 차단하고, 다시 정교한 패스를 전방으로 투입하는 등 상대에게 위협적인 장면을 수차례 연출한 바 있다.  

이강인은 각종 지표서도 라리가 상위권에 올라 있다. <후스코어드닷컴>에 따르면 이강인은 경기당 드리블을 2.2회 성공했다. 이는 리그 4위 수준의 기록이다. 크로스 성공 부문에서도 경기당 1.5개를 기록해 4위권에 올라 있다. 경기 수훈선수에는 총 6번 오르며 이 역시 공동 4위를 기록중이다. 

이강인은 이달 초를 기준으로 이 분야서 세계 최정상급 공격수로 평가받는 카림 벤제마와 같은 순위를,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보단 한 단계 아래에 위치했다. 

토트넘서 
손흥민과?

이강인은 월드컵과 리그 막바지를 거치면서 자신의 가치를 더욱 끌어올렸다. 지난 겨울, 이적 시장서 한 차례 이적을 추진했지만, 소속팀의 과격한 방어 탓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비에르 아기레 마요르카 감독은 당시 이강인의 바이아웃이 3000만유로(약 441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는데, 사실은 1800만 유로(약 264억원)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었다.

당시 이강인은 구단 SNS를 ‘언팔’하며 간접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것이 전화위복이 됐다. 이강인은 겨울 이적이 좌절된 이후 더 큰 활약을 보이며 자신의 몸값을 한층 끌어올렸다. 해외 매체 보도에 따르면 세계 최고 리그로 평가받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여러 팀이 이강인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언급된 팀은 아스톤빌라, 뉴캐슬, 웨스트햄, 번리 등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까지 이강인 영입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국내 축구팬들은 한국 축구의 중심인 두 선수가 소속팀에서도 함께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한껏 표출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라리가 잔류 가능성을 점친다. 라리가의 아틀레티코(AT) 마드리드 역시 이강인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AT마드리드는 라리가서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의 양강 구도를 견제하는 강호다. AT마드리드는 지난 3일 기준으로 리그 3위를 기록 중이다.

레알 마드리드보다 한 경기 덜 치른 상태서 승점 2점을 뒤져 있으므로, 시즌 막판 2위 자리로 올라설 가능성도 충분하다. 

2020-2021시즌 리그 정상에 오르는 등 리그 우승을 총 11회 기록했고,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우승도 3차례 거머쥔 바 있다. 매 시즌 호성적을 기록하면서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무난히 따내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지난 1월 AT마드리드는 이강인 영입을 위해 이적료로 1000만유로(약 147억원)를 제시했다. 하지만 마요르카의 이적 허용 금액(바이아웃)에 미치지 못해 이적 논의가 무산됐다. AT마드리드는 이번 여름 다시 이강인 영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 중위권 팀서 명문 구단으로?
빅클럽 다수 눈독…병역이 걸림돌

스페인 매체 <릴레보>는 지난달 28일 “AT마드리드가 논의 끝에 이강인 영입에 나서기로 했다.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 역시 이강인 영입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AT마드리드가 이강인이 발렌시아서 뛸 때부터 지켜봐왔다고 전했다.

<릴레보>는 “이강인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이적에 가까워졌다. 지난 1월에는 마요르카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지난달 29일 재차 이강인의 AT마드리드 이적설을 전하며 “AT마드리드는 앞으로 10일 동안 이강인과 접촉을 계속할 것”이라며 “이강인과 아틀레티코의 계약은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다. 다른 해외 매체들은 이강인과 AT마드리드 사이의 개인 합의는 이뤄졌으며, 구단 간 협상만 남았다는 보도를 전하기도 했다.

이강인이 어느 곳으로 이적하든, 지금보다 더 넓은 무대로 향할 것이란 것만큼은 확실시된다. 다만 이강인에겐 결자해지하기 어려운 걸림돌이 하나 남아 있다. 바로 병역 문제다. 이적 과정서 이강인의 항저우아시안게임 차출 문제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강인의 주된 목표는 체육요원 편입이다. 병역으로 인한 경력 단절 없이 선수생활을 이어가려면 대체복무가 필수다. 국내 K리그1의 김천 상무에 입단해 군복무할 수도 있지만, 유럽서 뛰어온 이강인은 커리어를 원활히 이어가기 위해 대체복무를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를 위해선 오는 9월 항저우아시안게임서 금메달을 획득하거나 내년 7월 파리올림픽서 메달을 목에 걸어야 한다. 이강인은 금메달 획득 확률이 올림픽보다 높은 아시안게임을 선호할 공산이 크지만, 문제는 일정이다.

파리올림픽은 리그 개막 직전인 8월10일에 끝나지만, 아시안게임은 유럽 주요 리그가 시작한 뒤인 9월에 개최된다. 항저우아시안게임 축구 종목은 오는 9월19일부터 10월7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이강인이 아시안게임에 참가한다면 소속팀은 이강인을 영입하고도 리그 초반 6~7경기서 이강인을 활용할 수 없게 된다.

대회 준비 기간과 리그 직전 소속팀 훈련도 겹칠 수밖에 없다. 새 구단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고, 주전 경쟁을 이겨내야 하는 시기를 고스란히 날릴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팀 전술이 이강인을 배제하고 짜인다면 뒤늦게 녹아들기도 어렵다.

지금도 
성장 중

이 같은 이유로 이강인의 이적 과정서 주된 난점은 아시안게임 출전 여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이강인이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고도 금메달을 따지 못할 경우, 내년 파리올림픽에도 출전해야 한다. 이런 이강인의 상황을 모두 배려해줄 구단이 얼마나 많을지도 미지수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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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