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떡잎부터 달랐던 ‘슛돌이’ 이강인

‘월드 클래스’ 9부 능선 넘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축구선수 이강인이 스페인 프로축구 리그 프리메라리가서 한국인 최초로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를 달성했다. 유년 시절 KBS 예능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하며 온 국민의 기대를 받던 ‘축구 영재’가 어느덧 한국 축구의 한 시대를 책임질 재목으로 성장했다. 이강인의 이번 여름 이적은 이미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그의 행선지에 많은 이의 눈길이 쏠린다.

답답한 경기 흐름 속 후반 12분. 해결사로 나선 이는 이번에도 이강인이었다. 한 경기 걸러 선발 출장한 이강인이 이날 경기서도 어김없이 골망을 가른 것이다. 이강인의 소속팀 마요르카는 지난 2일 오전 2시(한국시각) 스페인 마요르카 에스타디 마요르카 손 모시에서 아틀레틱 빌바오를 만나 2022-2023시즌 프리메라리가 32라운드를 치렀다. 

정상급
활약상

이강인은 경기 초반부터 날랜 몸놀림을 과시했다. 중앙과 측면을 화려한 발재간으로 오가며 상대 압박을 벗겨냈다. 빌바오 수비진은 이강인을 막기 위해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이강인에게 전반전에만 3번이나 반칙을 저질렀다. 

이강인은 여세를 몰아 선제골까지 기록했다. 박스 왼쪽서 무리키가 뒤로 내준 공을 그대로 왼발 슈팅으로 연결한 것이다. 리그 6호골. 임무를 완수한 이강인은 후반 39분 안토니오 산체스와 교체되며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나가는 도중에도 홈 팬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다만 마요르카는 끝까지 웃지 못했다. 후반 추가시간 4분 핸드볼 반칙을 범하며 페널티킥 위기를 맞았고, 이내 이냐키 윌리엄스에게 극장 동점골을 내주고 말았다. 결국 마요르카는 1-1로 비기며 안방서의 귀중한 승점 2점을 잃었다. 승점 1점 추가에 만족해야 했던 마요르카는 승점 41점으로 11위가 됐다.

경기 결과에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이강인에게는 최고의 하루였다. 의미 있는 기록 수립과 함께 만개한 기량을 향한 찬사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강인은 이날 경기를 기점으로 리그서 6골 4도움을 수확했다. 라리가서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한국 선수는 이강인이 처음이다. 

축구 통계 전문 매체 <풋몹>과 <후스코어드닷컴>은 경기 종료 직후 이강인에게 평점 8.2점과 8.4점을 각각 매겼다. 양팀 선수 모두 통틀어 가장 높은 점수였다. 라리가 역시 이강인을 KOTM(KING OF THE MATCH, 경기 수훈선수)에 선정하며 추켜세웠다.

스페인 현지 매체 <마르카>는 “이강인이 득점했다. 그가 공격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면서 경기가 절정에 이르렀다”며 “이강인이 공을 잡으면 경기 속도가 달라진다. 성장하고 있는 그는 팀내 최고 선수가 되고 있다”고 호평했다.

이날 이강인의 경기 지표는 그의 골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강인은 84분 동안 드리블을 6번 시도해 모두 성공했다. 공 소유권 회복은 7번을, 지상 경합에선 15번 중 11번을 이기며 승률 73%를 기록했다. 공수 양면에서 펄펄 난 셈이다. 

더군다나 이강인은 지난달 24일 헤타페전서도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이날 경기에서는 한국 선수 최초로 라리가 멀티골을 기록했고, 지난 1일 경기서 홈 두 경기 연속골로 기세를 이어나갔다.

앞선 24일 경기서 가장 주목받은 장면은 후반 추가시간에 만들어 낸 70m 단독 드리블 골이었다. 이강인은 이 골 하나로 다른 선수들을 압도하는 체력과 주력을 입증해냈다.

순식간에 펼쳐진 역습 상황서, 이강인의 뒤를 쫓던 헤타페 수비수 다코남 제네와 미드필더 루이스 미야는 드리블 없이 전력 질주했음에도 이강인을 따라잡지 못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공격 가담을 위해 함께 뛰던 이강인의 동료 라이요와 그르니에조차도 이강인보다 느렸다.

공을 드리블하는 선수는 공을 건드릴 때마다 전력 질주에 비해 가속도나 보폭서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수십m를 혼자 드리블하다 보면 수비수에게 따라잡혀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도 이강인은 제대로 자세를 잡고 슛을 날릴 때까지도 따라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이강인은 이 경기에 선발로 출장했다. 이강인은 경기 내내 양팀 진영을 종횡무진하며 경기를 조율했고, 이미 한 골을 기록한 상태였다. 체력을 상당히 소진한 상태서도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 셈이다. 

라리가 사무국은 이 골을 ‘이 주의 골’로 선정했다. 사무국은 지난달 28일(한국시각) 공식 SNS를 통해 “이강인이 헤타페전서 선보인 골이 30라운드 최고의 골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이강인 득점 장면에 “잡을 수 있으면 잡아봐”라는 문구를 넣기도 했다.

홈 두 경기 연속 골…최초 기록 싹쓸이
이적 코앞에 두고…20대 초반 기량 만개

이강인은 유년 시절부터 장차 한국 축구를 이끌 재목으로 주목받았다. 2001년 인천서 태어난 이강인은 2007년 KBS 예능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하며 처음 이름을 알렸다. 방송서 또래들에 비해 월등한 기량을 보였다. 고 유상철 전 감독과의 인연도 여기서 시작됐다.

2009년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 유스팀에 입단했다. 이후 2011년에는 스페인으로 건너가 발렌시아 CF 유스팀에 입단했다. 이강인의 부모는 현지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면서 이강인을 지원했다.

이강인은 어린 나이에도 유럽 축구 체계를 빠르게 흡수해나갔다. 발렌시아 유스팀은 2013년 12개 유스팀이 모이는 블루 BBVA 대회 8강전서 FC 바르셀로나 유스팀을 만났다. 이강인은 이 경기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이 덕에 이강인은 2017년 발렌시아 메스타야에 합류할 수 있었다. 

2018년 10월에는 CD 에브로와의 코파 델 레이 경기서 선발 출장해 1군 기용 가능성을 점검받았다.

그러던 2019년 1월13일, 이강인은 발렌시아 메스타야 경기장서 열린 2018~2019 라리가 바야돌리드와의 홈경기서 후반 42분 투입되며 스페인 정규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나이는 만 17세327일. 발렌시아 사상 최연소로 정규리그에 출전한 외국인 선수 기록과 한국 선수의 유럽 5대 리그 최연소 출전 기록을 동시에 경신했다.

같은 달 31일에는 1군 명단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강인은 꾸준히 가능성을 보여주고도 좀처럼 긴 출장 시간을 보장받지 못했다. 구단과 감독의 알력 다툼에 희생되고 있다는 이야기마저 돌 정도였다. 결국 이강인은 2021년 여름 발렌시아를 떠나 마요르카로 이적했다. 자리를 잡은 이강인은 무섭게 성장했다.

이윽고 이적 2년 차인 2022-2023시즌에는 마요르카의 대체 불가능한 핵심 자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강인은 연령별 국가대표팀을 거치며 한국 축구를 지탱하는 한 축이 됐다.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폴란드월드컵’에 출전해 2골 4도움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심지어 한국이 해당 대회서 준우승을 차지했음에도 이강인이 골든볼(MVP)을 수상했을 정도였다. 

여기저기서
러브콜 보내

준우승국 소속 선수가 골든볼을 수상하는 자체가 드문 사례였으며, 특히 한국 남자 선수가 FIFA 주관 대회서 골든볼을 받은 건 사상 최초였다. 18세에 골든볼을 수상한 것 또한 2005년 대회서 골든볼과 골든부트(득점왕)를 모두 받은 리오넬 메시 이후 14년 만이자 역대 네 번 뿐인 진기록이었다.

이강인은 2022 카타르월드컵에 출전했다. 이강인의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경기 운영 방식이 파울루 벤투 전 감독이 추구하는 전술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던 탓에, 이강인은 최종예선까지도 좀처럼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대회 조별예선서도 선발보다는 교체 자원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이강인은 가나전 투입 1분 만에 도움을 기록할 정도로 물오른 기량을 과시했다. 적극적인 전방 압박을 통해 공 소유권을 빼앗고, 정교한 크로스를 올려 조규성의 마무리를 도왔다. 이외에도 대회 중 이강인은 대표팀이 넣은 5골 중 3골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신임 감독인 위르겐 클린스만에게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지난 3월 치러진 평가전에 선발 출전해 풀타임을 소화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우루과이 선수들이 이강인을 막을 방법은 파울뿐이었다”며 극찬했다. 실제로 이날 이강인은 드리블과 탈압박으로 우루과이 진영을 헤집었고, 우루과이 수비진은 이를 막기 위해 한국에 여러 차례 프리킥 기회를 줄 수밖에 없었다. 

예전부터 이강인은 정교한 패스 능력과 월등한 탈압박 능력 등을 자랑했다. 경기 주도권을 쥐어주면 팀 전체를 조율할 능력을 가졌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반면, 부족한 체력과 속도는 단점으로 꼽혔다. 수비 능력이 떨어지고 참여도가 낮다는 것 또한 아쉬운 점으로 꼽혔다. 

하지만 이강인은 불과 몇 년 사이 단점을 빠르게 메워나갔다. 단점이 흐려지자 장점이 더욱 돋보이게 됐다. 이번 시즌 이강인은 수비진영까지 전력 질주해 상대 역습을 차단하고, 다시 정교한 패스를 전방으로 투입하는 등 상대에게 위협적인 장면을 수차례 연출한 바 있다.  

이강인은 각종 지표서도 라리가 상위권에 올라 있다. <후스코어드닷컴>에 따르면 이강인은 경기당 드리블을 2.2회 성공했다. 이는 리그 4위 수준의 기록이다. 크로스 성공 부문에서도 경기당 1.5개를 기록해 4위권에 올라 있다. 경기 수훈선수에는 총 6번 오르며 이 역시 공동 4위를 기록중이다. 

이강인은 이달 초를 기준으로 이 분야서 세계 최정상급 공격수로 평가받는 카림 벤제마와 같은 순위를,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보단 한 단계 아래에 위치했다. 

토트넘서 
손흥민과?

이강인은 월드컵과 리그 막바지를 거치면서 자신의 가치를 더욱 끌어올렸다. 지난 겨울, 이적 시장서 한 차례 이적을 추진했지만, 소속팀의 과격한 방어 탓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비에르 아기레 마요르카 감독은 당시 이강인의 바이아웃이 3000만유로(약 441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는데, 사실은 1800만 유로(약 264억원)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었다.

당시 이강인은 구단 SNS를 ‘언팔’하며 간접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것이 전화위복이 됐다. 이강인은 겨울 이적이 좌절된 이후 더 큰 활약을 보이며 자신의 몸값을 한층 끌어올렸다. 해외 매체 보도에 따르면 세계 최고 리그로 평가받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여러 팀이 이강인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언급된 팀은 아스톤빌라, 뉴캐슬, 웨스트햄, 번리 등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까지 이강인 영입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국내 축구팬들은 한국 축구의 중심인 두 선수가 소속팀에서도 함께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한껏 표출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라리가 잔류 가능성을 점친다. 라리가의 아틀레티코(AT) 마드리드 역시 이강인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AT마드리드는 라리가서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의 양강 구도를 견제하는 강호다. AT마드리드는 지난 3일 기준으로 리그 3위를 기록 중이다.

레알 마드리드보다 한 경기 덜 치른 상태서 승점 2점을 뒤져 있으므로, 시즌 막판 2위 자리로 올라설 가능성도 충분하다. 

2020-2021시즌 리그 정상에 오르는 등 리그 우승을 총 11회 기록했고,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우승도 3차례 거머쥔 바 있다. 매 시즌 호성적을 기록하면서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무난히 따내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지난 1월 AT마드리드는 이강인 영입을 위해 이적료로 1000만유로(약 147억원)를 제시했다. 하지만 마요르카의 이적 허용 금액(바이아웃)에 미치지 못해 이적 논의가 무산됐다. AT마드리드는 이번 여름 다시 이강인 영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 중위권 팀서 명문 구단으로?
빅클럽 다수 눈독…병역이 걸림돌

스페인 매체 <릴레보>는 지난달 28일 “AT마드리드가 논의 끝에 이강인 영입에 나서기로 했다.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 역시 이강인 영입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AT마드리드가 이강인이 발렌시아서 뛸 때부터 지켜봐왔다고 전했다.

<릴레보>는 “이강인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이적에 가까워졌다. 지난 1월에는 마요르카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지난달 29일 재차 이강인의 AT마드리드 이적설을 전하며 “AT마드리드는 앞으로 10일 동안 이강인과 접촉을 계속할 것”이라며 “이강인과 아틀레티코의 계약은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다. 다른 해외 매체들은 이강인과 AT마드리드 사이의 개인 합의는 이뤄졌으며, 구단 간 협상만 남았다는 보도를 전하기도 했다.

이강인이 어느 곳으로 이적하든, 지금보다 더 넓은 무대로 향할 것이란 것만큼은 확실시된다. 다만 이강인에겐 결자해지하기 어려운 걸림돌이 하나 남아 있다. 바로 병역 문제다. 이적 과정서 이강인의 항저우아시안게임 차출 문제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강인의 주된 목표는 체육요원 편입이다. 병역으로 인한 경력 단절 없이 선수생활을 이어가려면 대체복무가 필수다. 국내 K리그1의 김천 상무에 입단해 군복무할 수도 있지만, 유럽서 뛰어온 이강인은 커리어를 원활히 이어가기 위해 대체복무를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를 위해선 오는 9월 항저우아시안게임서 금메달을 획득하거나 내년 7월 파리올림픽서 메달을 목에 걸어야 한다. 이강인은 금메달 획득 확률이 올림픽보다 높은 아시안게임을 선호할 공산이 크지만, 문제는 일정이다.

파리올림픽은 리그 개막 직전인 8월10일에 끝나지만, 아시안게임은 유럽 주요 리그가 시작한 뒤인 9월에 개최된다. 항저우아시안게임 축구 종목은 오는 9월19일부터 10월7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이강인이 아시안게임에 참가한다면 소속팀은 이강인을 영입하고도 리그 초반 6~7경기서 이강인을 활용할 수 없게 된다.

대회 준비 기간과 리그 직전 소속팀 훈련도 겹칠 수밖에 없다. 새 구단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고, 주전 경쟁을 이겨내야 하는 시기를 고스란히 날릴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팀 전술이 이강인을 배제하고 짜인다면 뒤늦게 녹아들기도 어렵다.

지금도 
성장 중

이 같은 이유로 이강인의 이적 과정서 주된 난점은 아시안게임 출전 여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이강인이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고도 금메달을 따지 못할 경우, 내년 파리올림픽에도 출전해야 한다. 이런 이강인의 상황을 모두 배려해줄 구단이 얼마나 많을지도 미지수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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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