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의혹’ 민주당 양 계파 해법 다섯

‘누가 받았나’ 머릿수 세고 총질?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에 ‘돈봉투 살포’ 의혹이라는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허덕이는 민주당이 이번엔 완전히 쓰러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두 축인 ‘비명계’와 ‘친명계’는 이런 위기 속에서도 계파 갈등에만 몰두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결국 돌아왔다. 송 전 대표는 지난달 23일(현지시각) 오후 프랑스 샤를드골 공항서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앞선 현지 기자회견서 “모든 책임을 지고 탈당한 뒤 귀국해 수사에 대응해 나가겠다”며 ‘돈봉투 의혹’에 정면 돌파할 의지를 보였다.

본인 진영에 
유리한 방법만 

그가 인천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달 24일 오후 3시쯤이었다. 입국장을 나오면서 그는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송구스럽다”며 “저 송영길은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절대 회피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로써 그랑제콜(ESCP, 파리경영대학원) 방문연구교수 자격으로 파리에 약 5개월간 머물던 송 전 대표는 당초 계획보다 2개월 빨리 프랑스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그러나 처음 ‘돈봉투 의혹’이 터져나왔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은 그의 귀국이 이처럼 빨리 이뤄질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송 전 대표가 당초 사안을 가볍게 보고 현지서 모든 문제를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 문제를 접하고 민주당 지도부에 “귀국할 뜻이 없다”고 전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민주당 강성 초선으로 분류되는 박주민 의원은 사태 직후인 지난달 19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서 “몇몇 의원께 혹시 소문이나 간접적으로 들은 것이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본인들이 전해 듣거나 소문으로 들었을 때는 태도가 동일한 것 같다. 그리고 당분간 귀국할 의사도 없는 것 같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들었다”고 알렸다.

해당 발언을 들은 민주당 의원들은 송 전 대표가 당장 귀국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문제를 오래 끌고 갈수록 민주당에 피해를 끼칠 것이라는 계산 아래서다.

만일 송 전 대표가 프랑스에 머물며 해당 문제를 나몰라라 한다면 민주당 전체와 이재명 대표의 부담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장 산재해 있는 사법 리스크에도 휘청거리고 있는 민주당에 송 전 대표 문제까지 떠안을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즉각 의원총회를 열고 송 전 대표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20일,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의총서 민주당 의원들은 송 전 대표가 즉각 귀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총 직후 박홍근 원내대표는 취재진과 만나 “송영길 전 대표가 즉각 귀국해서 의혹을 낱낱이 분명히 실체를 밝혀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며 “그것이 당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국민과 당에 대한 기본 도리라는 데 뜻을 모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의원총회에 모인 중진 의원들은 당 차원의 진상규명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이에 난색을 표했다. 당 차원서 진상규명을 한들 실질적인 처벌 권한이 없고, 당 관계자들이 상당수 엮여 있어 오히려 당에 해가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듯 당의 거센 압박을 견디지 못한 송 전 대표는 불과 일주일 만에 처음 밝혔던 입장을 철회하고 급거 귀국했다. 모든 문제를 본인이 짊어지고 가겠다고 밝힌 그는 측근들에게 당에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돈봉투 의혹’을 종결짓겠다고 했다.


송영길 자르기로 가닥 잡은 친명계 지도부
현 지도부 모두가 책임 져야한다는 비명계

그러나 돈봉투 의혹이 단순하게 송 전 대표 한명만의 책임으로 끝날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벌써부터 이 대표와 송 전 대표간의 연결고리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전당대회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심송심’이라 불렸던 둘의 관계가 그 근거다.

실제로 지난 대선 과정서 송 전 대표는 이 대표의 측근 역할을 도맡아 하며 그의 경선을 물밑서 적극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송 전 대표가 ‘대놓고’ 이 대표를 도와준 것은 아니었다. 원칙상 ‘중립’을 지켜야했던 송 전 대표는 시종일관 ‘이재명 유착설’을 일축해왔고, 대외적으로도 “모든 후보를 공평하게 지지한다”고 밝혀 세간의 의심을 벗어나려 애썼다.

그러나 이후 여러 행보를 통해 그는 이 대표의 편을 들어주는 모양새를 보였다. 대선 경선 당시, 이 대표에 관한 음주운전 논란이 불거지자 대선후보들은 100만원 이하의 전과 기록도 중앙당에 제출해야 하는 ‘클린검증단’ 설치를 당 지도부에 요구한 바 있다.

검증단 설치는 순전히 이 대표를 향한 타 후보들의 견제구였으며 여기에 이낙연·정세균·김두관 당시 후보 모두 적극적으로 나서며 힘을 실어줬다.

송 전 대표의 민주당 지도부는 검증단 설치에 난색을 표해 이 대표의 손을 들어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민주당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경선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각 후보에게 미치는 영향이 커 논의하기가 쉽지 않다. 별도의 검증단 논의는 없었다”고 잘라 말하며  사실상 검증단 설치할 뜻이 없음을 우회적으로 알렸다.

검증단 설치 얼마 후엔 송 전 대표가 ‘대깨문’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이심송심’ 의혹을 증폭시켰다. 대깨문이란 문재인 지지자들을 칭하는 말로, 그다지 좋지 못한 뜻을 내포하고 있어 민주당 내에선 해당 용어 사용을 암묵적으로 금기시해왔다. 그 금기를 당 대표가 직접 깬 것이다.

송 전 대표는 2021년 7월5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서 “소위 ‘대깨문’이라고 떠드는 사람들이 ‘누구는 안 된다’ ‘차라리 야당을 뽑겠다’는 안이한 생각을 하는 순간 문재인 대통령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심송심
송 자르나

여기서 송 전 대표가 말한 ‘누구는 안 된다’는 당시 이낙연 후보를 지지하고 있던 민주당원들이 이 대표를 저격할 때 주로 쓰던 문구로 민주당 관계자들은 해당 발언을 사실상 이 대표에 대한 지원사격으로 인식했다. 또 함께 사용한 ‘대깨문’이라는 용어를 당시 이낙연 캠프 관계자들은 무겁게 받아들였다.

이낙연 캠프에 있었던 김종민 의원은 이 발언을 두고 “당 대표는 비주류가 아니다. 지적한 다음에 다시 당이 단합할 수 있도록 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이른바 친문이라든가 우리 지지층을 부르는 용어가 있는데 ‘대깨문’이 뭔가”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때 불거졌던 송 전 대표와 이 대표의 관계를 비명(비 이재명)계는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일부 비명계 의원이 이번 돈봉투 사태에 있어 이 대표를 함께 문제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송 전 대표 한 명만의 책임으론 사태가 일단락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으며 모든 문제를 마무리하려면 이 대표도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일부 민주당 관계자가 문제가 터진 후, 당시 돌렸던 돈봉투 금액을 ‘떡값’ ‘거마비’ 정도로 낮춰 말하며 사태를 가볍게 취했던 것에 큰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사태 초기 문제를 키우고 방관한 책임이 당 지도부에 있다는 것이다.

또, 돈봉투의 스폰서로 알려진 김모씨의 자녀가 이재명 대선 캠프서 일한 정황이 드러나 이 대표도 해당 의혹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함께 지적한다.

이 대표의 책임론을 주장한 한 비명계 의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돈봉투에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나 송 전 대표가 당선된 후, 대선후보 경선을 겪으며 완벽히 ‘친명(친 이재명)계’로 자리잡았다. 이후 본인의 지역구를 그에게 물려주는 등 수상한 행보는 의심받기에 충분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폰서 김씨의 자제가 이재명 캠프서 일한 정황이 드러나지 않았나? 이만큼 심각해진 돈봉투 사태를 잠재우려면 이 대표도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태를 시작한 것도, 사태를 키운 것도, 모두 친명계가 한 일이라며 민주당의 재도약을 위해선 이들의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현재 당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는 친명계는 ‘돈봉투 의혹’을 어떻게 수습하려하고 있을까? <일요시사>와 만난 친명계 관계자들은 송 전 대표 개인이 모든 책임을 지면 끝나는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민주당 지도부는 송 전 대표의 조기 귀국을 추진했다. 이 대표가 직접 송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설득한 것으로 알고 있고 송 전 대표도 이를 받아들이고 지난달 들어온 것”이라며 “이 대표는 돈봉투 의혹에 대해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만큼,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터무니 없는 소리에는 대응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새누리당
오버랩?

송 전 대표가 귀국한 것을 두고 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송 전 대표의 즉시 귀국과 자진 탈당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송 전 대표의 귀국을 계기로 이번 사건의 실체가 일체의 정치적 고려 없이 신속하고 투명하게 규명되길 바란다. 지도부의 대응이 늦었다기보다는 신중한 것이었다”고 다소 거리를 두는 발언을 했다.

돈봉투 사건에 대해 친명계는 송 전 대표에 대한 조속한 진상규명, 비명계는 이 대표를 포함한 친명계의 책임을 해법으로 들고 나왔다. 양측의 입장은 좁혀지지 않고 있으며 수사가 진행되며 나올 새로운 사실들이 이들의 입장을 하나로 묶을 전망이다.

한편 전혀 다른 해결책을 내놓은 민주당 관계자들도 있다. 이들은 당명을 교체하고 제2 창당까지 각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지난달 27일 라디오와의 인터뷰서 “민주당에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 등 최대 위기”라며 “우리 당은 젊고 깨끗한 이미지였는데 젊은 이미지는 이준석 등장 이후에 국민의힘이 가져갔고 남아 있던 깨끗한 이미지마저도 돈봉투 사건으로 부패한 이미지로 돼 버렸다”고 일갈했다.

안 의원은 “쓰나미 이후에 제2의 창당이 불가피하다”며 민주당의 당명 교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은 2008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과 지속적으로 비교돼왔다. 당시 한나라당 고승덕 전 의원의 “돈봉투를 받았다” 폭로로 시작된 돈봉투 사건은 당시 돈을 뿌렸다고 지목된 박희태 전 대표가 사퇴하고 한나라당은 해체 수순을 밟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교체하는 등 초강수를 두며 한동안 ‘천막 당사’에서 집무를 보는 등 당 쇄신에 앞장섰다.

박 전 대통령의 이 같은 파격 행보에 지지자들은 응원을 보냈고, 새누리당은 이후 열린 총선과 대선서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다. 현재 일부 중진 의원들은 천막 당사 때의 한나라당처럼 민주당이 전면 쇄신해야 당이 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중진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이 사안이 여기까지 온 데는 당 지도부가 사태를 안일하게 바라본 점이 컸다”며 “전면적인 당 쇄신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이 사태를 전화위복으로 만들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영간 서로 “물러나야” 주장 
같은 문제에 답은 ‘동상이몽’

친명계 관계자들은 난색을 표하는 분위기다. 송 전 대표에 대한 수사로 일단락될 문제를 왜 당 지도부까지 나서서 쇄신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에 친명계는 ‘86 용퇴론’과 ‘대의원제 개편’ 등을 위기 탈출법으로 들고 나왔다. 이들은 돈봉투 문제의 원인을 당 차원이 아니라 개인과 일부 그룹, 또 현행 중인 전당대회 제도로 보고 있다.

이들은 이참에 민주당의 주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86그룹이 각성하고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86그룹은 60년대생,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이끈 세대를 지칭하는 말로 한동안 386세대라 불리며 민주당에 지속적으로 적잖은 영향을 끼쳐왔다.

돈봉투 의혹의 당사자인 송 전 대표도 86그룹의 맏형 격으로, 당내 최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 ‘민주주의 4.0’ ‘사의재’ 등 멤버들 대부분이 86그룹에 속한다.

86그룹의 용퇴를 주장하는 이들은 “이들이 염원하던 민주주의는 이미 이뤄졌으니 이제 다음 세대에 다음 소임을 넘겨주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86 용퇴론’은 차기 총선을 앞두고 지속적으로 나온 목소리였으며 돈봉투 사태 이후로 당내서 재조명되고 있는 중이다.

대의원제 개편은 현재 친명계가 강하게 시동을 걸고 있는 해법이다. 민주당 대의원들은 전당대회서 막강한 권한을 누린다. 이번 돈봉투 살포 의혹 역시 대의원들의 표를 얻기 위한 것이었으며 민주당 지도부는 대의원들의 막강 권한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전당대회서 약 1만명의 대의원 투표는 45%가 반영된다. 100만명이 넘는 권리당원 투표가 40% 반영되는 점을 감안하면, 대의원 한 명의 표는 권리당원 60명 정도의 표와 비슷한 영향력을 갖게 되는 셈이다. 여기서 더 큰 문제점은 권리당원들은 투표를 비교적 자유롭게 하는 반면, 대의원들은 지역구 국회의원의 큰 영향력 아래 놓인다는 사실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런 비정상적인 구조 아래 전당대회가 ‘현역 의원 몇 명을 포섭하느냐’ 싸움으로 변질됐고, 변질의 끝에 돈봉투 사태가 터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홍익표 의원은 지난달 25일 원내대표 후보 토론회서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에 대한 대책으로 “대의원 수를 늘리는 등 제도적 개선을 모색하겠다”고 말했고, 박범계 의원도 “권리당원과 대의원 표의 비등가성을 혁파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다 같이 
죽을래?

비명계서 주장하는 ‘당명 교체’와 ‘친명 지도부 책임론’은 친명계서 주장하는 ‘송영길 책임론’ ‘86그릅 용퇴론’ ‘대의원제 개편론’과 사뭇 대비된다. 같은 문제에 대한 해법이 이렇게 다른 데는 민주당이 아직도 계파 갈등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당에 큰 논란이 터졌음에도 당내 계파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는 민주당을 유권자들이 차기 총선서 어떤 식으로 심판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ingyun@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SM 인수전’ 카카오 후유증

‘SM 인수전’ 카카오 후유증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입에 삼키기엔 너무 컸던 걸까?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카카오가 사법 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이브와의 전쟁서 이겼지만 ‘상처뿐인 승리’가 된 모양새다. 엔터계 공룡을 삼킨 공룡 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불과 몇 년 만에 국민 기업서 밉상 기업으로 전락했다. ‘카카오톡’이 전 국민의 메신저가 될 때까지만 해도 카카오의 미래는 밝았다. 카카오톡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배경으로 사업을 확장했던 초기에도 부정적인 여론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골목상권 침해, 쪼개기 상장 등의 문제가 터지면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국민 기업 밉상 기업 카카오가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 2~3월 하이브와의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인수전 과정서 일어난 일이 사법 리스크로 되돌아오는 모양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어울리는 결말이다. 승자의 저주는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그 과정서 과도한 비용을 사용해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뜻한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는 지난 17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CA협의체 경영쇄신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SM 인수 과정서 경쟁사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의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인 12만원보다 높게 올릴 목적으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김 위원장이 카카오가 지난해 2월 2400억원을 동원해 553차례에 걸쳐 SM 주식을 고가에 매수하는 데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카카오는 사모펀드 운용사인 ‘원아시아파트너스’와 공모해 주가가 떨어지지 않도록 지난해 2월16~17일, 27일 원아시아파트너스가 1100억원을 먼저 투입하고 같은 달 28일 카카오가 뒤이어 1300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검찰은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 지모씨를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변호인단은 김 위원장이 SM 지분 매수 과정서 어떤 불법적 행위도 지시, 용인한 바 없으며 지분 매수는 정상적 장내 매수였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카카오 내부는 당혹스러운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영장을 청구한 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첫 구속영장을 발부했던 영장전담판사가 배정된 점 등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하이브와 크게 벌인 ‘쩐의 전쟁’ 경영권 차지했지만 사법리스크↑ 김 위원장은 지난 9일, 20시간의 밤샘 조사에서 “SM 주식을 장내 매수하겠다는 안건을 보고받고 승인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매수 방식과 과정에 대해서는 보고받지 않아 몰랐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조사 이후 8일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의 혐의를 입증할 인적·물적 증거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사모펀드를 통해 투자해서 우호 지분을 확보하라고 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카카오 임직원 간 메시지를 비롯해 김 위원장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관계자의 통화 녹취, 진술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와 하이브의 SM 인수전은 혈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치열했다. SM은 K팝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연예기획사로 H.O.T,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샤이니, EXO, NCT, 에스파, 라이즈 등의 유명 보이·걸그룹을 배출한 ‘아이돌 명가’로 알려져 있다. 대형 연예기획사를 둘러싼 카카오와 하이브의 인수전은 K팝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SM 인수전의 시작은 이수만 SM 전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 매각설서 시작됐다. 이 전 프로듀서는 SM의 설립자로 SM 소속 가수를 좋아하는 팬덤 사이에서는 ‘수만 아버지’로 불리는 등 일종의 개척자로 여겨지고 있다. 이 전 프로듀서가 지분을 매각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당시 카카오, 네이버 등이 매수자로 언급되곤 했다.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얼라인파트너스)이 SM 지배구조를 문제 삼으면서 인수전의 막이 올랐다. 특히 얼라인파트너스는 이 전 프로듀서 소유의 라이크기획이 SM과의 내부거래로 주주가치를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SM이 얼라인파트너스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내부 갈등이 촉발됐다. 급히 먹다 탈 났나? 이 과정서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 등 현 SM 경영진이 얼라인파트너스, 카카오와 손을 잡았다. 이 전 프로듀서 측과 완벽한 대립각을 세운 현 SM 경영진은 ‘SM 3.0’을 발표하고 멀티 제작센터·레이블 체제로 전환을 발표했다. 이 전 대표 지우기에 나선 것이다. 여기에 SM 경영진이 지난해 2월7일 카카오가 신주와 전환사채(CB) 인수를 통해 지분 9.05%를 확보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이 전 프로듀서가 찾은 동앗줄은 하이브였다. 이 전 프로듀서는 SM의 공시 다음 날 법원에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기했다. 그리고 2월9일 자신이 보유한 SM 지분 18% 중 14.8%를 하이브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다. 하이브는 SM 주식을 주당 12만원에 공개매수해 지분을 추가로 25%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SM 인수전이 카카오와 하이브의 대결로 압축됐다. SM 인수전은 한치 앞도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했다. 법원이 이 전 프로듀서가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하이브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가 공개매수가 실패한 사실이 드러나자 카카오가 반격하는 식이다. 카카오와 카카오엔터는 지난해 3월7일부터 SM의 지분 35%를 주당 15만원에 공개매수하기 시작했다. 약 833만주에 달하는 주식으로 총 1조2500억원이 투입되는 어마어마한 물량이다. SM 인수전은 하이브가 카카오가 시작한 ‘쩐의 전쟁’서 한발 물러나면서 변곡점을 맞게 됐다. 쇄신 노력 ‘물거품’ 이후 카카오가 경영권을 갖고 하이브는 플랫폼 협력을 하는 방향으로 SM 인수전이 마무리됐다. 지난해 3월12일 하이브는 SM 인수 절차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하이브는 “카카오·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의 경쟁 구도로 인해 시장이 과열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판단했다”며 “이는 하이브의 주주가치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카카오는 “SM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자 원동력인 임직원, 아티스트, 팬덤을 존중하고자 자율적‧독립적 운영을 보장하고 현 경영진이 제시한 SM 3.0을 비롯한 미래 비전과 전략 방향을 중심으로 글로벌 성장에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엔터계 ‘공룡’을 삼킨 또 다른 공룡 기업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카카오가 SM을 인수하기 위해 벌인 ‘쩐의 전쟁’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하이브는 당시 SM 인수전서 발을 뺀 뒤 “비정상적 매입 행위가 발생했다”며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SM 주가가 공개매수가인 12만원을 넘어 한때 13만원까지 급등한 점을 문제 삼았다.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비정상적으로 주식을 매입해 시세를 조종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이하 특사경)은 지난해 10월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 대표와 카카오법인을 검찰에 넘겼다. 지난 11월에는 김범수 당시 전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홍은택 대표, 김성수·이진수 카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각자 대표이사 등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는 등 카카오 수사에 열을 올렸다. 시세조종 의혹 창업자에 칼끝 댔다 카카오뱅크 대주주 자격 잃을 수도 카카오는 말 그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금감원이 카카오 경영진과 함께 카카오법인까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카카오뱅크를 잃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 법인이 벌금 이상의 형을 받으면 카카오뱅크의 지분 27.17%를 보유한 카카오가 대주주 자격을 잃을 수도 있다. 금융당국은 6개월마다 대주주 적격성을 심사하는데 이때 대주주는 최근 5년간 금융간 금융관련법, 공정거래법, 조세범처벌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의 형사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SM 인수전 과정서 제기된 시세조종 의혹으로 카카오는 창업자 구속 가능성과 알짜배기 기업을 놓칠 가능성을 함께 안고 있는 셈이다. 카카오의 쇄신 노력에도 찬물이 끼얹어졌다. 카카오는 지난 3월 새 대표이사에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전 대표를 선임했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게임즈 등 계열사 대표도 바꿨다. 계열사 준법‧윤리경영을 지원하는 독립기구인 카카오 준법과신뢰위원회(준신위)도 쇄신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김 의장을 비롯한 카카오의 사법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쇄신작업은 물론 기업 전체 동력에 타격을 입게 됐다. 일각에서는 카카오가 그룹 덩치를 줄이기 위해 알짜배기만 남겨두고 일부 자회사를 매각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쪼개기 상장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만큼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어렵게 인수한 SM 역시 매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뱅크 등은 핵심 자산으로 분류된다. 몸집 줄여 해결될까? 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카카오는 SM 시세조종 의혹 외에도 문어발식 기업 인수, 계열사 확장 과정서의 잡음으로 수사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남부지검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2020년 드라마 제작사 ‘바람픽쳐스’를 인수하는 과정서 김성수 당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이준호 당시 투자전략부문장이 바람픽쳐스에 시세차익을 몰아줄 목적으로 비싸게 매입·증자했다는 의혹을 조사 중이다. 카카오의 운명이 연이은 사법 리스크에 잠식되는 모양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