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전주을 재보선 당선자 강성희가 말하는 ‘파란’

“못한 3년, 남은 1년에 쏟아붓겠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진보당이 국회에 입성했다. 지난 5일 실시된 202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진보당 소속 강성희 의원이 무소속 임정엽 후보를 접전 끝에 꺾고 당선된 것이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민주당으로선 진보당이 피아식별이 제대로 되지 않는 데다, 국민의힘도 정치적 이념이 완전히 상극인 정당이 들어왔다는 것이 부담되는 탓이다. 무엇보다 정의당에겐 대형악재다. 여의도에서는 벌써 ‘진보당이 정의당을 대체할 것’이라는 정의당으로선 무서운 소문마저 돈다.

이번 4·5 재보궐선거의 주인공을 뽑으라면 단연 진보당 강성희 의원일 것이다. ‘전주을’ 지역구서 더불어민주당 출신이었던 무소속 임정엽 후보를 꺾고 당선됐기 때문이다. 진보당이 국회에 입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반 시민들은 이번 재보선 결과를 듣고 놀랍다는 반응을 내놨다. 일반 진보정당 지지자들은 “진보당이 아직도 이어지고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며 “이번 재보선에 진보당 후보가 당선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여의도 정치를 오래 지켜봐왔던 정계 관계자들은 이미 예상했었다는 분위기다. <일요시사>가 만난 많은 정계 관계자는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지난 지방선거서 이미 진보당의 파란이 예고됐다”고 전했다.

진보당은 지난해 6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서 178명의 후보를 등록시키며 원외정당 중에서 가장 많은 후보를 공천했다. 이는 시대전환, 기본소득당의 후보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수였다. 

당시 진보당은 기초자치단체장 1명, 광역의원 3명, 기초의원 17명을 배출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를 두고 선거 전문가들은 “지난 지방선거서 진정한 승자는 국민의힘이 아니라 진보당”이라고 분석했다.


정계 관계자들은 “진보당의 파란이 재보선까지 이어졌을 뿐”이라고 이번 선거를 평가했다. 그들의 주장대로 진보당은 지난해부터 정치적 역량을 빠르게 확장시켜왔고, 당원 수도 급격히 늘려왔다. 지난해 11월 기준 진보당의 당원 수는 9만명을 넘겼는데, 이는 민주당을 제외한 진보정당 중 가장 많은 당원 수다.

급격한 성장세에 발맞춰 진보당은 이번 재보선에 강성희라는 막강한 후보를 공천하며 원내 입성을 노렸다. 강 의원은 ‘경기동부연합’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 캠퍼스를 졸업한 학생운동권 출신 정치인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일했으며 현대차 비정규직회 지회장을 역임했다. 이후 현대차와 택배 노조서 노동운동을 전개했으며 대규모 정규직을 이끈 공적도 남겼다.

<일요시사>는 국회에 처음 입성한 ‘초선’ 강 의원을 찾아 지난 선거운동 과정의 소회, 앞으로의 정책 비전 등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민주당 출신 무소속 임정엽 후보를 접전 끝에 꺾었다. 승리의 요인을 뭐라고 분석하나?

▲윤석열 검찰 독재를 심판하겠다는 메시지,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진보당의 진심이 전주시민들에게 전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진보당과 강성희는 작년부터 대출금리 인하 운동이나 가스 난방비 인하 운동을 전개해왔고 이 과정을 통해 서민의 대변자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수개월 동안 진보당과 강성희가 주민과 호흡하고 소통한 주민밀착 활동이 주민들이 마음에 깊이 가닿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민주당과의 선거전서 가장 힘들었던 점 하나만 꼽는다면?

▲선거에 출마하면서 어느 정도 각오해서인지 특별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없었습니다. 첫 TV 토론회에 긴장을 조금 많이 했던 것이 기억나고, 예비후보 4개월 동안 잠을 거의 못 잔 것이 조금 힘들었습니다. 

8년 만 정당 복귀…정계 “예상했다”
진보당이 그리는 내년 총선 플랜은?

-진보당은 호남 유권자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나?

▲호남은 동학농민혁명과 5·18 광주민중항쟁서 확인되듯 불의에 항거해 나라를 구하고 정의, 민주주의를 세워온 자랑스러운 지역입니다. 이제는 민주화 성지서 정치개혁 1번지로 이어져 있음이 전주을 재선거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진보당은 호남서부터 거대 양당 정치를 넘어 새로운 대안정치와 진보 집권의 희망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내년 총선이 다가온다. 진보당의 총선 플랜을 들어볼 수 있을까?

▲특별한 묘책이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번 전주을 재보선서 진보당 강성희가 일관되게 “선명 야당으로 윤석열 검찰 독재에 맞서겠다” “무너진 민생을 살리는 민생정치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던 것을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더 이상 말이 아닌 실천으로, 주민과 호흡하고 동고동락한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했습니다. 선명 야당답게 윤석열 검찰 독재에 맞서고, 주민 밀착 생활정치를 하는 것이 총선 플랜이라면 플랜이라고 생각합니다.

-국회 입성 후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

▲3년 동안 지역구 국회의원 부재로 주민들이 상실감이 컸습니다. 회기가 없는 동안에는 지역에 상주하면서 주민들과 동고동락하고 소통하는 의정활동을 펼쳐 나가려고 합니다. 지역 현안은 저 혼자의 힘이 아니라 지역의 여야 국회의원님들, 전북도, 전주시와 힘을 합치는 원팀으로 지역발전에 혼신을 힘을 다해 일을 추진하겠습니다.

국회 진출 후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서울 이전에 종지부를 찍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 계획에 대응하고자 합니다. 지역 정치권, 전북도, 전주시와 협력해 농협중앙회, 금융공기업 유치를 통해 금융도시 전주를 만들고, 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당원 수가 빠르게 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성장이 어떻게 가능했다고 보나?

▲여의도 정치가 여의도에 갇혀 국민의 삶과 유리되어 정쟁으로 날을 샐 때 진보당은 지역과 삶의 현장서 밀착해 당 활동을 전개해온 게 가장 크지 않았나 합니다. 이 과정서 무엇보다 당원들의 헌신과 열정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당의 국회 입성 후 민주당·국민의힘 모두가 긴장하고 있는데 이들 정당을 어떻게 바라보나?

▲기본적으로 야당(민주당)과는 윤석열 검찰 독재에 맞서는 단결과 연대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민생과 대안을 놓고 선의의 정책 경쟁의 측면도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정부의 총체적 국정 파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제라도 용산출장소가 아닌 집권여당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강 의원이 보는 민주당·국민의힘은?
“일 하려는 사람은 방법을 찾는다”

-민주당·정의당과 차별되는 진보당만의 강점이 무엇이냐?

▲진보당은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자영업자 등이 당원의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말 그대로 서민의 정당이란 점이 타당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활동에서도 현장에 밀착한 풀뿌리 정치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작년 지방선거서 주민들과 동고동락하며 생활정치를 일궈온 후보가 상당수 당선돼 3당으로 도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취재 과정서 “내년 총선에서 진보당이 정의당을 대체할 것”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이에 대한 의견이 있나?


▲특정 정당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정의당이 진보의 대표성을 가진 정당으로 인식돼온 것이 사실입니다. 심지어 저도 이번 전주을 재보선에 출마하기 전까지는 정의당 당원으로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지난해 지방선거서 진보당이 정의당과는 다른 진보정당이라는 존재감을 드러내고 기반을 마련했다면, 이번 전주을 선거를 통해 이제는 진보당이 진보 대표정당으로 발돋움했고, 내년 총선서 큰 도약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를 많이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상임위를 어느 쪽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민생의 어려움과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민생과 전주 발전 위한 상임위를 우선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국방위 배정 문제가 불거져 나왔습니다. 현재 국방위가 비어 있는데 진보당 의원은 안 된다는 논리입니다. 

특히 정우택 국회부의장과 국민의힘이 그런 주장을 하셨는데요. 이는 전주시민을 모독하고 헌법을 부정하는 반헌법적·반의회주의적 발상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정우택 국회부의장과 국민의힘은 주장을 철회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국회의장과의 면담을 통해 제 의사를 전하려고 합니다. 국회법과 순리대로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임기가 이제 1념 남았다. 뜻을 펼치기에 1년이라는 시간이 충분하다고 보는지?

▲제가 자주 쓰는 말이 있습니다. 일을 하려는 사람은 방법을 찾고 일을 안 하려는 사람은 핑계를 찾는다고요. 물론 1년은 짧은 시간이고 1석으로서 많은 것을 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민심의 열망에 부응하고 전주시민을 믿고 활동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진보당 이석기의 그늘

진보당의 뿌리를 타고 올라가면 이석기 전 의원의 정당이었던 통합진보당과의 관계가 나온다.

두 정당은 이념적 유대감을 공유하고 있으며 정당 구성원과 당원도 많은 부분이 겹친다.

이 때문에 대부분 정계 관계자들은 진보당이 통합진보당의 후신이 아니냐는 의심을 내놓고 있고, 보수정당에서는 이미 두 정당이 같다고 확신하고 있다.

실제로 진보당은 전신인 민중당 시절 “박근혜가 해산시킨 통합진보당이 다시 돌아왔습니다”라는 구호로 홍보 활동을 펼친 바 있다.

통합진보당은 2014년 ‘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에 휩싸여 없어진 정당이다.

헌재는 당시 판결문에서 통합진보당을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정당”이라며 정당 해산을 명령했다. 

그러나 최근 진보당은 현재의 진보당과 통합진보당이 다르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들은 해당 자료에서 “통합진보당의 후신이라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며 “진보당은 민중연합당과 새민중정당이 2017년 10월 합당해 민중당으로 출범했다. 이후 민중당서 진보당으로 당명을 개정한 새로운 정당”이라고 해명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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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