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 개편’ 명지대 파문 풀스토리

잘못은 재단이 희생은 학생이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파산 위기를 넘기고 한숨 돌린 명지대학교. 회생 절차에 매진하는 가운데 또 다른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학교가 일부 순수학문 폐과 계획을 담은 학사구조 개편안을 교육부에 제출한 탓이다. 해당 학과 구성원은 물론, 교내 여론 대다수가 반대 의사를 표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재단이 초래한 재정 위기를 애먼 교내 구성원의 희생으로 극복하는 모순적 상황. 한술 더 떠 ‘희생 방식’마저 강제하려는 태도에 ‘희생양’들은 뿔이 났다.

“철학과 없애면 그게 종합대학인가요?” 이달 초 <일요시사>와 만난 한 명지대학교 타 과생은 이같이 일갈했다. 원론적인 반문에서 시작된 작심 비판은 재단(명지학원)과 학교의 구체적 실책에 관한 지적으로 끊임없이 뻗어나갔다. 재단이 자초한 재정 위기와 학교의 비민주적 여론 수렴 과정에 대한 불만이 주를 이뤘다. 

회생안
통폐합

명지대학교는 지난해부터 학사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명지전문대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명지대 일부 학과도 통폐합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명지대와 명지전문대는 모두 학교법인 명지학원에서 운영 중이다. 여기에 재단이 함께 운영 중인 명지초·중·고까지 합치면 재학생이 3만명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재단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2조원대의 수익 사업체를 보유하는 등 안정적인 재정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후 전임 이사장의 무리한 부동산 개발, 재단 사유화 시도 등으로 악재가 누적되면서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재단이 떠안은 부채액은 2000억원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설상가상으로 채권자에게 파산·회생 신청을 당하면서 재단 존속 여부가 잠시 불투명해지기도 했다. 다행히 지난해 법원과 교육부가 재단 측 회생안을 받아들이면서 파산 위기는 일단락된 모양새다. 당시 재단은 회생안에서 명지전문대 부지를 매각해 그 대금으로 일부 부채를 메우겠다고 밝혔다.


명지대-명지전문대 통합은 본격적인 회생 절차에 돌입하기 위한 필수 밑 작업인 셈이다.

교내 통합추진위원회(이하 통추위)와 컨설팅을 맡은 삼일회계법인은 전공 경쟁력·학생 수요 등을 기준 삼아 적극적인 학사구조 개편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제시한 통폐합안 초안에서 ▲철학과 ▲수학과 ▲물리학과 ▲바둑학과 등을 통폐합 대상으로 선정했다. 대부분 순수학문을 가르치는 학과다.

특히 통추위는 철학과의 폐과 추진 사유를 “자퇴자가 많고 외국인 유학생 유입이 적어 등록금 창출 기여도가 낮다”고 설명했다. 철학과는 반발했지만, 결국 통추위는 철학과 등의 폐과 계획이 담긴 개편안을 최종안으로 결정했다. 이는 지난해 12월28일 교육부에 제출됐다.

순수학문 위주 일부 학과 폐지 예고
교내 반발에도 강행 시사…불통 비판

지난달 철학과 교수진 일동은 입장문을 내고 통추위 행보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교수진은 입장문에서 “철학과 교수의 연구 실적과 학생의 취업률은 비교 대상인 서울시 내 소재 대학 중 중간 정도를 차지했다. 명지대학교 수준을 훨씬 상회하고 인문대 내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성과”라고 강조했다.

이는 통추위가 철학과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한 학과 실적 지표만 선택적으로 제시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 명지대 철학과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비교적 정원이 적은 철학과는 몇 명만 결원이 생겨도 그 비율이 커 보일 수밖에 없다. 자퇴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걸 지적하기 이전에 이 같은 맥락을 참작해야 한다”며 “그런데 다른 긍정적 지표들은 외면한 채 오해의 소지가 있는 지표를 근거로 드니 우리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교내 일각에서는 “통추위가 폐과 대상을 입맛대로 정해두고 자료를 짜맞춘 것 같다”는 식의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아울러 교수진은 통추위 결정이 상업주의적 판단에 매몰됐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입장문에 “통추위와 학교의 구조조정안은 ‘순수학문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폐지하고 응용학문에만 투자해야 한다’는 편견에 기초하고 있다. 구조조정의 전체 구상은 전혀 교육적이지 않고 상업주의적”이라며 “철학도 충분히 응용적임에도 불구하고 철학의 학문적 성격과 사회적 효용에 무지한 통추위와 대학은 철학과를 인문캠퍼스 25개 학과 중 유일하게 쓸모없는 학과로 낙인찍어 폐지하려고 한다”고 적었다.

다른 교내 구성원들도 이 같은 학사구조 개편안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명지대-명지전문대 통합 자체에는 동의하지만, 폐과 등 학사 구조개편에는 반대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통합 사안과 개편 사안 자체를 분리해서 논의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교직원·학생
집단 반발 중

교내 5개 조직(인문·자연총학생회, 인문·자연교수협의회, 대학노조 명지대지부)은 지난해 11월 공동 성명서를 통해 이 같은 입장을 피력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개편안이 부실하게 작성된 점 ▲구성원과의 협의가 미흡했던 점 ▲개편안이 통합 비용 측면에서 효과적이지 못한 점 ▲폐과 및 폐과에 준하는 개편안은 교육부 필수 요구조건이 아니라는 점 등을 들어 ‘통합안 재작성’을 촉구했다.

대학 내 최고 의결기구인 대학평의원회 역시 지난해 12월16일 표결에서 통추위의 학사구조 조정안을 부결했다. 총장 요청으로 재심의가 이뤄진 같은 달 29일에도 심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학교 측이 전체 구성원에게 ‘통합’ 동의 여부를 물었을 때, 80%가 훌쩍 넘는 동의율이 나왔던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이에 통추위 및 학교 측 관계자는 대학평의원회 측에 “지금까지 교육부에 통폐합을 신청한 학교 중 평의원회 동의를 지참하지 않은 선례가 없었으므로, 통합을 위해서라도 (통합안 및 개편안을) 추인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일부 학과의 폐과 여부를 재고하겠다”고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이들은 일부 학과의 폐과 대신 개편안을 제시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수학과는 응용통계학과, 물리학과는 융합에너지공학과로 개편될 계획이다. 다만 철학과와 바둑학과는 여전히 폐과 대상이다.

대학 평의원회는 이달 초 관련 안건을 재논의했다. 평의원회는 학교 측 요청에 따라 통합안에 우선 동의하되, 조건부 동의 의사를 강조하기 위해 별지를 작성하기로 결정했다. 별지에는 ‘향후 정원 증원 가능성이 발생했을 때 철학과와 바둑학과의 폐과 철회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를 권고’ ‘통폐합 추진 과정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구성원의 의견 수렴 권고’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작금의 사태 
구조적 모순

<일요시사>는 학교 측 입장을 듣기 위해 통추위 고위관계자에게 이메일로 질의서를 송부했다. 해당 관계자는 답신에서 “교육부 심의가 진행 중인 사안에 관해 구체적으로 답변할 수 없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 대학은 구성원과 간담회·공청회를 진행해 의견을 수렴했으며, 최선의 안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상당한 수준의 내용이 수정되고 발전적으로 변경됐다”고 밝혔다.

학사 조정에 얽힌 지표 선택 논란에 대해서는 “대학의 학사구조 조정은 대학서 상시적으로 수행하는 매우 중요한 업무”라며 “이를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경쟁력 지표 등은 기밀사항 중 하나로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

교내 구성원들은 현 사태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한다. 학교가 통폐합을 사실상 강제로 진행하게 된 데에는 재단의 책임이 큰데, 이로 발생한 피해는 애꿎은 구성원들에게 향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구성원들은 불합리한 상황에도 애교심을 가지고 희생을 결심했는데, 재단과 학교가 구성원들을 최대한 보호하기는커녕 과도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재 재단을 둘러싼 빚더미 대부분은 유모 전 이사장 때 만들어졌다. 학교 설립자의 아들이자 명지건설 회장이었던 유 전 이사장은 무리한 사업으로 부도 위기에 놓인 명지건설을 살리기 위해 재단을 끌어들였다. 재단의 알짜 자산을 명지건설이 가져가는 대가로 재단에 명지건설의 적자 사업을 떠넘겼다.


명지대 관련 공사는 명지건설이 모두 맡는, 일감 몰아주기가 발각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외에도 유 전 이사장은 임금 돌려막기, 기금 횡령 등을 일삼다가 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났고, 2012년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7년 형이 확정돼 2018년 출소했다. 채권자가 신청한 파산·회생 절차 또한 유 전 이사장 재임 당시 재단서 진 빚에 근거한 것이다.

현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은 유 전 이사장에게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도 필수 아니라는데…폐과 추진, 왜?
파산 초래한 재단, 구성원 희생 강요 논란 

하지만 유 전 이사장의 친·인척은 여전히 재단과 학교 요직을 맡고 있다. 2020년 교육부는 부실 재정의 책임을 물어 이들을 포함한 재단 이사 10명과 감사 2명에 대한 임원 취임 승인을 취소하고, 관선이사 파견을 추진하기도 했다. 재단 측은 가처분신청과 본안소송 등을 통해 이를 저지했다.

재단의 실책은 계속됐다. 얼마 전 재산을 큰 폭으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이를 그르치며 입길에 올랐다(1364호 명지대 위험한 땅거래 내막). 2020년 재단은 교육부의 협조를 얻어 교내 유휴용지 매각에 나섰다. 인문캠퍼스 인근 부지 일부(면적 172㎡)와 자연캠퍼스 16개 필지(면적 36만5273㎡)가 그 대상이었다. 

당시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대상 부지들은 교육부의 매각 허가가 있어야만 처분할 수 있었다. 

교육부는 재정이 어려운 재단 측 사정을 고려해 절세 및 교육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유휴용지 처분을 먼저 권유했다. 하지만 2021년 재단은 교육부령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매각 계약을 진행하다가 이를 교육부 정기 감사에서 발각당했다. 

교육 재산 소유권은 매각대금을 모두 받은 뒤 넘겨줘야 하는데, 당시 재단은 계약금만 받은 채로 부지 소유권을 매수자에게 넘겨줬다. 이는 일반 개발사업 중 흔히 볼 수 있는 매각 방식이다. 미리 넘겨받은 소유권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키고, 대출금으로 잔금을 치르는 식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선 엄연히 불법이었다.

결국 교육부는 재단에 연말까지 매각대금을 회수할 것을 지시했지만, 재단은 잔금 확보에 실패했다. 교육부가 매각 허가를 취소하면서 재단의 재산 처분 계획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지난해 2월 명지대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매각 허가가 취소된 것은 맞지만, 조만간 다시 매각 계획을 수립해 교육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일시적으로 답보상태에 놓였어도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재단은 지난해 5월부로 해당 부지에 매매계약 해제에 따른 가처분신청을 걸어둔 상태다.

좌절된 매매계약 규모는 약 43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제대로 진행만 됐다면 명지대 어반캠퍼스 준공비용(약 500억원 추산) 대부분이나 채무 상당 비율을 메울 수 있었을 만한 액수다.

계속될
책임론

지난해 들어 교육부의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서, 해당 부지를 처분할 길도 재차 열린 것으로 보인다. 채무 변제 자체가 쉬워지면서 “한숨 덜었다”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교내 여론이 꾸준히 재단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만큼, 관련 논란에 대한 비판과 ‘철학과 구명 운동’은 계속될 전망이다. 철학과 관계자는 <일요시사> 측에 “학교 측 의사결정 과정의 문제점과 구조적 모순을 끝까지 지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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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