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당간당’ 이재명 변호사비 트라우마

‘당비’ 먼저 쓰면 임자?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변호사비 대납 등 문제로 곤욕을 여러차례 치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이번엔 당비로 변호사비를 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일요시사>가 의혹을 추적한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로 인해 ‘정당 운영비 공개’에 대한 문제점이  주목받고 있다. 매년 수백억원, 선거철에는 1000억원에 육박하는 당 운영비가 ‘깜깜이’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당원들이 내는 당비와 일반 시민들이 내는 국고보조금은 도대체 어떻게 쓰이고 있는 것일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변호사비’는 어느새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지난 몇 년 간 수많은 고소에 직면했던 이 대표는 필연적으로 변호사를 계속 고용해야 했고, 그럴 때마다 합당한 변호사비를 지불해야 했다. 문제는 막대한 변호사비를 누가 냈냐는 데서 불거졌다. 

대납 의혹
부담스러워?

한 시민단체는 이 대표의 변호사비를 특정 기업이 대납해줬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이는 현재 검찰이 면밀히 수사 중이다. 이 대표는 제7회 지방선거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은 바 있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재판은 1·2·3심을 거쳐 파기환송심까지, 총 2년간 치열하게 진행된 대규모 재판이었다.

치열한 재판이었던 만큼 이 대표는 화려한 변호인단을 선임했는데, 세간의 주목은 그 과정에서 발생한 변호사비에 쏠렸다.

한 시민단체는 ‘쌍방울사가 이태형 변호사의 수임료 대납했다’는 의혹을 본격적으로 제기하며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들이 말한 근거는 바로 이 대표의 재산 내역이었다. 그가 대규모 변호인단을 고용했음에도 공개된 재산이 전혀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8년 경기도지사 당선 직후 공개한 재산 내역에 따르면 이 대표의 재산은 총 27억8342만원이었지만, 이후 2019년 3월 공개한 재산은 28억5150만원으로 되려 늘어있었다. 2020년 3월 공개된 재산은 약 23억원으로 소폭 감소 됐으나 이 대표 측이 후에 채권 재산 5억여원을 실수로 누락했다고 밝히며 사실상 재산 변동이 없었음을 시사했다.

이 대표가 선임한 변호인단은 대법관 출신 변호인 2명과 LKB앤파트너스 변호사 3명을 포함한 총 13명이다. 대법관 출신 이상훈 변호사, 고 이홍훈 전 대법관, 헌법재판관 출신 송두환 변호인 등도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렸다. 

업계에 따르면, 이렇게 화려한 이력을 가진 변호인단을 선임하려면 적어도 10억이 넘는 금액이 든다고 한다. 실제로 이 대표를 고발한 시민단체가 자체적으로 추산한 금액은 ‘23억원’으로 “이 마저도 최소한으로 추산한 금액”이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었다.

수십억 규모로 추정되는 변호인단을 선임한 이 대표가 재판을 모두 마칠 때까지 재산이 줄지 않은 점은 지켜보는 많은 이들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했다. 

정당이 사건 변호사비 대납?
사실은 “개인 돈”…논란 왜?

그 변호사비 대납 문제가 아직까지 이 대표를 괴롭히고 있는 모양새다. 다만 이번에 제기된 의혹의 주체는 일반 사기업이 아닌 ‘민주당’이었다. 이 대표가 당비로 변호사비를 대납받았다는 의혹이었다. 해당 제보에 대해 <일요시사>는 다수의 채널을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했다.

결과부터 말하면 당비 유용 의혹은 사실이 아니었다. 이 대표가 사비로 ‘변호사비’를 대고 있던 것이다. 민주당 중앙당 관계자는 “변호사비로 검찰에 고발까지 당한 이 대표가 그럴 리는 만무하다”며 해당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확인해줬다.


당비를 직접 관리하는 민주당 조정식 사무총장 또한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 대표 변호사비에 당비가 쓰이는게 사실이냐’는 질문에 “사실무근이다. 이 대표의 변호사비는 당연히 이 대표의 사비로 쓰이고 있다”며 “안 그래도 질문을 받고 알아봤는데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에서 불거진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반면 동일한 질문에 대해 “그런 것으로 안다”고 대답한 몇몇 민주당 인사들도 있었다. 당비가 이 대표 변호인의 고용비로 쓰이고 있다는 증언이었다. 특히 한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중앙당 차원에서 변호인단을 고용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 자연스럽게 당비가 그쪽에 쓰일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어쩌다 이런 혼선이 빚어진 것일까. 원인은 모호한 당비 운용에 있었다. 현재 모든 국내 정당들은 당 운영자금을 ‘불투명하게’ 운용할 권리를 갖고 있다. 당 운영자금은 보통 당비와 기탁금, 차입금, 그리고 국고보조금으로 구성된다.

작년에만
900억원

당비와 기탁금 등은 그렇다 치더라도 국고보조금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금액이니만큼 투명하게 운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국고보조금은 크게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조금으로 나뉜다. 경상보조금은 분기별로 1년에 총 4번 지급하는 보조금이고 선거보조금은 공직 선거 시기 정당들에게 일괄 지급하는 보조금이다. 

액수는 정당의 의석수에 따라 정해지는데, 교섭단체(의원 20명 이상) 구성에 성공한 정당이 국고보조금으로 정해진 금액 전체의 50%를 균등하게 분배받는다.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한 정당들이 총액의 5%씩을 지급받고, 잔여분의 절반은 국회 의석수에 따라, 나머지 절반은 득표율에 따라 배분된다.

예를 들어, 정당 국고보조금으로 정해진 금액이 100억원이라 하면, 교섭단체를 구성한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각각 100억원의 절반인 50억을 2등분해 25억원씩을 지급받고, 비교섭단체 정당인 정의당,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등이 전체의 5%인 5억원을 각각 지원받는 구조다.

그리고 전체 지급액 65억원을 뺀 35억원에서 의석수와 득표수에 따른 차등 분배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민주당은 지난해 1분기에 제20대 대통령선거 선거보조금 약 224억원과 경상보조금 54억원 등 총 279억원가량을 중앙선관위에서 보조받았고, 2분기에는 지방선거보조금 약 223억원과 경상보조금 약 56억원을, 3분기에는 약 55억원의 경상보조금을 지급받았다.

지난해 1·2·3분기를 통틀어 민주당이 지원받은 국고보조금 총액만 900억원에 육박한다.

각 정당에 매년 수백억원씩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은 당비와 합쳐져 당 운영비로 계산된다. 선거 때 수백억원, 분기별로 수십억원을 지원받는 국고보조금에 더해, 당비도 분기별로 함께 계산된다.

당비는 당원들이 스스로 낸 자발적 당 운영비로, 지금까지 공개된 민주당의 지난 한 해 당비 총액(기탁금, 후원회 기부금 등 제외)은 1분기 약 67억원, 2분기 약 81억원, 3분기 약 79억원으로 총 227억원가량이었다.


지난해 민주당 운영비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4분기 금액을 제외하더라도 1000억원이 넘어가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천문학적인 금액이 어디에 쓰이는지 일반 시민들과 당원들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디에 
쓰이나

정치자금법 제41조 1항에는 “정당(정당 선거사무소를 제외한)과 후원회의 회계책임자가 회계보고하는 때에는 대의기관(수임기관 포함) 또는 예산결산위원회의 심사와 의결을 거쳐야 하며, 그 의결서 사본과 자체 감사기관의 감사의견서를 각각 첨부해야 한다”고 나와있다. 말미에는 “당원이 아닌 자 중에서 공인회계사의 감사의견서를 함께 첨부해야 한다”고 적시돼있다.

겉보기에는 모든 과정이 투명하며 누구든 당 운영비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공개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민주당도 매 분기 중앙당 ‘수입·지출 총괄표’를 작성해 공식 홈페이지에 빠짐없이 업로드하고 있다.

선관위에 제출하기 위한 회계보고서를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는 셈인데, 이런 식의 공개도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내부서조차 나오고 있다.

민주당 중앙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이번에 당비로 이 대표가 변호사비를 댔다는 주장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 당비가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며 “당비 사용 내역은 행정위 사무총장만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회계보고서에는 선거비용의 정치자금 목록으로 크게 세 가지, 작게는 열 가지 넘는 항목이 빠짐없이 기재돼있지만, 뭉뚱그린 항목들일 뿐 실무자들도 알기 힘든 세세한 지출내용은 알아볼 수 없는 형태다.

민주당 당헌·당규에도 당비에 관한 규정이 중앙당 사무총장의 재량과 당 대표의 권한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구조다. 민주당 당헌 제48조 1항에는 ‘모든 당비는 사무총장이 관리·감독한다’고 돼있고, 2항에는 ‘사무총장은 매월 최고위원회 및 당무위원회에 당비 납부현황을 보고해야 한다’고 적시돼있다. 

‘다만, 당 대표가 인정하는 사유가 있는 때에는 그렇지 않는다’고 나와있다. 또 제51조에는 ‘당비와 관련해 이 규정에서 정함이 없는 사항은 당 대표가 당무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정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사실상 당비에 대한 관리·감독을 사무총장이 총괄하고 또 이를 당 대표가 추가로 심사하는 것인데, 시스템에 의한 감시가 아닌 개인의 권한에 맡겨진 감시라는 점에서 수많은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두 사람이 의도적으로 실수하거나, 이해관계에 맞는 명분을 붙여 당비를 유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원인은 불투명한 운영
“미국 사례 따라가야”

한 민주당 관계자는 “현행 정치자금법상 정치자금 내역은 상시 공개가 되고 있지 않다. 정당들이 외부 감사내용을 당 홈페이지에 올려놓기는 하나 선거비용 말고도 운영사무 관리, 사무 운영비, 그리고 많은 지출을 차지하고 있는 다른 항목들은 온전하게 공개가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헌재 판결 이후 공개해야 하는 부분만 ‘억지로’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변호사비 문제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일요시사>에 전했다.

그의 말처럼 구체적인 운영비는 정당이 공개하고 있는 지출내용에서 찾아보기는 어렵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일반인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보공개 청구를 하면 볼 수 있지만, 청구일로부터 최소 15일은 기다려야만 원하는 내역을 관람할 수 있다.

일반인들이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는 관람이 불가능한 형태인 것이다.

민선영 참여연대 간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같은 경우에는 대통령이 정치자금을 쓸 때마다 홈페이지에 전부 다 공개하고 있다”며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전혀 공개되고 있지 않은 한국의 상황에 모두가 문제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미국 정당들은 연방선거위원회의 규정에 맞게 모금과 지출내용을 항상 감시당하고 유권자들의 요청이 있을 경우 후보별로 정치자금 지출현황을 공개하는 ‘공개주의’ 원칙을 택하고 있다. 정치자금 지출내용을 보고 싶은 미국의 유권자는 각 정당의 홈페이지에서 검색, 분류, 다운로드가 모두 용이한 편이다.

각 정당은 선거가 끝난 뒤 보조금에서 돈이 남을 경우, 하나도 빠짐없이 국고에 반납해야 한다.

물론 대선 때마다 불법 정치헌금 모금 등 크고 작은 논란이 따라붙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정보공개 범위가 모든 정치자금에 해당한다는 점, 선거관리기관들이 정치자금의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점, 적절한 분류를 통해 시민들의 접근을 매우 용이하게 하고 있다는 점은 ‘공개주의’ 원칙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듣는다.

깜깜이
지출내용

당비는 사무총장과 당 대표의 재량에 따라, 국고보조금은 ‘비공개 원칙’에 따라 시민들의 알 권리를 방해하고 있다. 당의 운영비가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지를 아는 권리는 당비를 내고 있는 당원들뿐 아니라 세금을 내는 일반 시민도 모두 갖고 있다. 운영비 지출내용에 대한 지적이 오래된 만큼 시급한 대책 논의가 시급해 보인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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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