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명문 연대’ 계산서

검날 막을 두 방패 합치나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 ‘명문 연대’가 출범하려는 모양새다. 지난 2년간 질질 끌어왔던 민주당 계파 갈등이 검찰의 수사 앞에 종식되는 중이다. 이재명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은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 서로를 끌어안으며 대응방안을 모색 중이다. 명문 연대의 출범은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지난 2일 오전, 평온했던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에 시끄러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이날 부산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지도부 전원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는 함께 막걸리를 곁들인 만찬을 즐겼다. 

원팀

평산 사저에 1시간30분가량 머문 이들은 문 전 대통령과 새해 덕담 등을 나눈 뒤 국민 경청 투어를 위해 창원으로 향했다. 이 대표가 문 전 대통령을 찾은 것은 지난해 8월 이후 두 번째였다. 정치권에선 어느 정당이나 당 대표 당선자는 전직 대통령을 방문하는 관례가 있지만, 이 대표의 이전 방문은 이 같은 ‘관례’ 성격이 매우 짙었다.

전당대회에 출마하며 계파 갈등을 한껏 부추겼던 이 대표는 당시 탐탁지 않은 예방을 진행해야 했고, 둘의 만남은 그렇게 어색하게 시작해서 데면데면하게 끝났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 목소리는 이번 예방의 성격이 지난번과 다르다고 봤다. 사실상 자의적인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국민 경청 투어 중 지역이 겹쳐서 일정을 맞춘 것이지만 지도부와 문 전 대통령이 만나길 원했던 것도 맞다”며 “이날 둘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고 <일요시사>에 전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두 사람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민주당 대변인단은 이날 사저 방문 이후 브리핑에서 “진정한 치유가 필요하다”는 점에 양측이 모두 동의했고, 윤석열정부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의 후퇴가 우려된다”는 점에 입을 모았다고 밝혔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은 현재 정치 상황에 대해 “민주주의와 역사가 퇴행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는 취지로 지도부에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산마을 회동, 그 숨은 의미는?
당일 윤 대통령 초청도 뿌리쳐

언뜻 의례적 만남이었고, 의례적 메시지가 나왔던 회담이었지만, 민주당 인사들은 이번 만남을 ‘매우 의미’ 있는 정치 행위로 해석한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개최한 신년회에 이 대표가 불참한 점을 중요하게 들여다봤다.

이 대표가 문 전 대통령을 찾았던 동 시간대에, 공교롭게도 윤 대통령은 영빈관에서 국가 주요 인사들과 새해 국정 운영 각오를 다지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진표 국회의장을 비롯해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등 정계 인물들과 진우 조계종 총무원장, 한덕수 국무총리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서 윤 대통령은 "민생 현안을 최우선으로 챙기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는 폐단을 신속하게 바로잡고 우리 모두 정상화에 속도를 내겠다“고 새해 국정운영 포부를 밝혔다.

이날 자리에는 정계 주요 인사들이 대부분 참석했지만, 민주당 지도부 인사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 모두 신년회 ‘불참’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예의가 없었다”는 게 불참 이유였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서 “야당 대표 일정은 일찌감치 짜여진다. 그 이후에(신년 인사회 초청) 이메일이 온 것”이라며 “사실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의 일정이라면 정무수석이나 이런 사람들이 국회에 와서 만나고 조율하고 그러는데 이런 걸 하나도 안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대표의 불참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는 민주당 인사들도 적지 않다. 사실 영수회담은 이 대표가 대통령에게 줄곧 요청해오던 사안이었다.

이 대표는 수차례 윤 대통령에게 만남을 제안했으며 대통령실은 그럴 때마다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비록 이번 회담 제안이 단독은 아니지만 나중의 영수회담 추진을 위한 좋은 기회였을 거라고 주장했다.

초청 방식이 문제? 사실은…
“양 계파 뭉쳐 시너지 기대”

조응천 의원은 ”민주당에서도 이 대표 취임 이후 수차례에 걸쳐 영수회담을 제의하지 않았나. 어쨌든 신년인사회는 그래도 대면할 수 있는 자리였다“며 ”구애받지 말고 그냥 나가서 통 크게 품 넓게 협치 좀 하자고 하는 그런 것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지적했다.

설왕설래 속에 민주당 내부 소식통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대통령실 측의 초청이)예의에 어긋난 것은 맞지만 당일 문 전 대통령과의 예방이 중요한 일정이었기 때문”이라며 “양측이 최근 긴밀한 협조를 시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치열하게 진행돼왔던 계파 갈등이 종식되고 친명(친 이재명), 친문(친 문재인) 간의 화합 기류가 포착되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어 “친명계와 친문계가 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영입을 기점으로 화합할 모양새를 갖췄다“며 ”이 대표와 문 전 대통령이 서로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둘의 협조가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둘의 연대에 대해 이 대표가 겪고 있는 사법 리스크와 문 전 대통령 측근들이 겪고 있는 사법 리스크를 언급하며 “야권이 하나로 뭉쳐 이를 대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대표는 측근인 대장동 개발 의혹으로 정진상 전 정무조정실장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검찰에 구속 기소된 상태다. 문재인정부 시절의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김홍희 전 해경청장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구속됐다가 풀려난 후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박 전 원장 역시 검찰에 소환 조사되는 등 수사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손잡나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일본과도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말했던 과거 정치인의 발언처럼 친명계와 친문계는 잠시 휴전을 선언하고 원팀으로 나아가려 한다. 이로써 윤석열정부는 하나된 민주당을 상대해야 하는 부담감을 떠안게 됐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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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