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없다면…’ 민주당 새 리더 자천타천 하마평

사공은 많은데 선장이 안 보인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불안한 리더를 내세운 집단은 힘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다. 국회 최대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요즘 제1야당의 위엄을 좀처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연일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탓이다. 검찰 수사가 남욱 변호사와 유동규 전 성남개발도시공사 기획본부장의 폭로로 빠르게 진척되자 이 대표가 이끌고 있는 민주당은 크게 흔들리는 모양새다.

당선된 지 반년도 안 된 당 대표에게 “물러나라”고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광경이다. 아무리 문제가 있는 리더라도 일정 기간 리더십을 존중해주는 게 그동안 정치권의 관례였다. 더욱이 친명(친 이재명) 지도부가 처음 출범했을 때, 비명(비 이재명)계 의원들조차 ‘비주류로 살아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기회를 주자’는 응원의 메시지를 내놨고, 친명계도 계파 갈등을 청산하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내던 참이었다.

불안한 리더
다시 비대위?

이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거린 건 전당대회가 끝난 지 몇 달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유동규 전 성남개발도시공사 기획본부장이 풀려나고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구속되더니, 곧이어 정진상 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까지 구속된 것이다.

검찰은 이제 몸통만 남은 이 대표에게 언제 칼끝을 겨눌지 고심 중이다. 정계 관계자들의 제보에 따르면 검찰은 민주당이 가장 아파할 시점을 계산해 몸통을 칠 계획을 하고 있다. 민주당이 가장 아파할 때를 골라 이 대표를 본격적으로 수사하겠다는 것이다.

어수선한 당내 분위기 속에서 이 대표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 특히 비명계 의원들 사이에서 차례대로 이 대표를 압박하고 나서는 모양새다.


민주당 설훈 의원은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표는 이 상황에서 결백하다고 선언하고 ‘당에 더 이상 누를 끼치지 않겠다. 나는 떳떳하기 때문에 혼자 싸워서 돌아오겠다’고 선언하고 대표직을 내놓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며 “그러면 상당히 많은 우리 당 지지자와 국민이 ‘역시 이재명이구나’라며 박수 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응천 의원도 이 대표의 직접적인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조 의원은 “이 대표가 (대장동 의혹과)무관한지 솔직히 잘 알 도리가 없다. 무관하다고 믿고 싶은 것”이라며 “최측근 2명이 연이어 구속된 데 대해 최소한의 유감 표시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압박했다.

다만 이 대표의 퇴진과 관련된 주장에 대해선 “(이 대표 퇴진에 대한)당내에 그런 움직임은 없다”며 “클릭 수 늘리는 기사에 주력하는 언론의 병폐”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조 의원의 발언과 내부 분위기는 사뭇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시기가 언제가 됐든 이 대표의 사퇴는 막을 수 없는 파도로 보고 있다. 

만일 이 대표의 퇴진이 현실화된다면 민주당은 또 다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다. ‘또다시 비대위’라는 오명을 감수해야 하지만, 이들은 그 정도의 리스크까지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어렵게 주류 됐는데…흔들리는 민주당
이 대표 사퇴 시점은? 실권 행사 미지수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직은 섣부른 단계지만,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더 나아간다면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이 비대위를 구성해야 한다”며 “정상적인 지도부가 들어선 기간보다 비대위 기간이 더 길다는 것은 뼈아픈 지적이다. 그러나 달리 방도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비대위를 구성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난관을 해결해야 한다. 친명계의 거센 반발을 이겨내야 하고, 중도층까지 비대위에 합세시켜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균형감과 무게감을 갖춘 비대위원장을 리더로 내세워야 한다.

여차 저차 비대위 구성에 합의한다고 해도 막상 리더에 걸맞지 않은 인물이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될 경우, 또 다시 당 대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미 한차례 비대위원장 물색에 진통을 겪은 바 있다. 지난 6월 민주당에는 인력난이 불어닥쳤다. 대선을 치르며 민주당 중진 의원들이 대거 잠행에 들어가게 됐고,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의원까지 줄줄이 1선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전당대회를 앞둔 시점에서 민주당은 재빨리 비대위를 구성해 당의 안정을 도모해야만 했지만, 비대위원장 자리를 맡겠다는 사람들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다.

당시 민주당은 계파색이 옅고, 의원들을 아우를 카리스마 있는 리더를 원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나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문희상 전 국회의장,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이 물망에 올랐고, 민주당은 이들에게 비대위원장 자리를 권유했다.

그러나 제안받은 사람은 모두 고사했다. 실익도 없고 비판만 받을 자리라는 계산 아래서다. 당의 실권이라고 할 수 있는 공천권은 차기 대표가 가져갈 것이고, 극에 달해 있던 갈등을 반감 없이 해결하리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당외에서 인물을 물색하던 민주당 지도부는 결국 4선 중진 우상호 의원에게 민주당의 키를 맡겨야 했다. 이 대표가 물러설 민주당은 그때의 민주당과 매우 닮아 있다. 우선 비대위원장에게 실권이 주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 대표의 사퇴 시점이 앞당겨진다면 이후의 전당대회를 개최할 시간이 생기겠지만, 시기가 늦어진다면 비대위원장이 실권을 갖게 된다.

중진 의원
대거 잠행

한 비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비대위가 구성되는 시기는 필연적으로 이 대표의 사퇴 시점과 맞물리게 된다. 그 시점이 언제냐에 따라 비대위원장의 권한이 크게 차이날 것”이라며 “알다시피 내후년 4월쯤 22대 총선이 있다. 그 전에 전당대회를 계획하고 준비하려면 수개월이 걸린다”고 주장했다.

즉, 이 대표의 사퇴 시점이 총선에 얼마나 바투 있느냐에 따라 비대위원장의 권한이 차이난다는 것이다. 총선 직전의 사퇴라면 비대위원장이 ‘실질적 리더’가 될 것이고, 전당대회 전의 비대위원장이라면 ‘식물 리더’가 될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또 비대위가 구성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친명계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 한 사람만 사퇴한 뒤 친명계 지도부 중 한 사람이 직무를 대행해 대표로 일할 수 있다. 민주당 당헌·당규엔 당 대표 궐위 시 어떻게 지도부가 구성되는지 자세히 기재돼있다.

당헌 제23조 3항에는 ‘당 대표가 선출될 때까지는 원내대표, 선출직 최고위원 중 득표율 순으로 당 대표의 직무를 대행한다’고 적시돼있다.

당헌·당규상 현재 원내대표인 박홍근 의원이나 수석 최고의원인 정청래 의원이 당 대표를 대행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다만 여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뒤따른다. 이 대표를 중심으로 불통을 이어온 친명계가 리더를 잃는다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명계 의원들의 원성이 더욱 거세지기 마련이다.

거세질 비명계의 ‘지도부 총사퇴’ 요구를 친명계가 버텨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놓을 시점에 민주당의 계파 갈등은 이미 극에 달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비대위원장 자리에 올 인물은 이런 계파 갈등의 부담까지 떠안아야 한다. 실익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리스크만 커 보이는 자리에 누가 오려고 할까? 또, 민주당이 생각하는 리더감은 누구일까?


<일요시사>가 취재 중 가장 많이 들었던 인물은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었다. 벌써 일부 세력에서는 조 의원과의 소통을 시작했고, 민주당에 비상상황이 생기면 그를 데려올 준비를 하고 있다. 조 의원 측 또한 이런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위원장 자리
독이 든 성배

조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의원실에 비난과 비판 전화가 많이 왔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민주당에 당 대표나 비대위원으로 와달라는 전화가 많이 온다”며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다. 민주당 의원님들이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요시사>와 만난 다수의 민주당 의원들은 조 의원이 새로운 리더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의 새로운 리더는 우선 현재 지도부인 친명계와 색이 달라야 하고, 본인 나름대로의 뚝심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몇몇 의원은 계파색이 없는 당 외의 새로운 인물이어야 한다는 조건도 덧붙였다. 

조 의원은 그동안 수차례 현 민주당 주류 세력과 마찰을 빚어왔다. 시작은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법 도입 반대였다. 민주당 입장에선 특검법 도입을 위해서 패스트트랙을 이용해야 했지만, 이를 위한 법사위원의 숫자가 부족했다.

조 의원은 그런 민주당을 도와줄 수 있는 법사위의 ‘키맨’으로 통했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민주당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조 의원은 김여사에 대한 특검법 도입을 주장하는 민주당의 시도를 “쪼잔한 정치쇼”라고 비판한 바 있다. 조 의원은 민주당이 추석 전 김 여사에 대한 특검을 주장한 것을 두고 “추석 민심을 그쪽(김 여사 특검) 쪽으로 가져오려 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치는 그렇게해서는 안 된다”며 “특검법 도입은 보다 진중한 자세로 접근할 문제”라고비판했고, 이때 친명계 지지자들은 조 의원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가하는 등 매섭게 몰아붙였다.

한동안 조 의원실은 업무가 안될 정도로 친명계 지지자들의 테러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의 지지자들은 매일같이 조 의원실에 항의 전화와 팩스를 보냈고, 간혹 의원실로 협박 택배를 보내 조 의원을 압박했다. 또, 조 의원이 등장한 게시글이나 정치 기사에 악플 세례를 퍼부으며 사이버 테러까지 저질렀다.

비명계, 뚝심 있는 외부인사 누가 있나?
조정훈, 유인태 등 유력 후보군 급부상

이런 어려움에도 조 의원은 굴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는 당시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힘들긴 하다. 그런데, 정치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쉬운 길을 가고 그 길을 관리하는 건 공무원들이 할 일이다. 정치는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최근까지도 이 대표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 사법 리스크가 더욱 심하게 불거진 것에 대해 “소속 정당을 위해 절벽에서 떨어지는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며 당 대표직 사퇴를 촉구했다.

그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인해 야권 진영 전체가 무너지는 경우를 걱정하며 “이 대표가 대표가 된 이후에 ‘나를 따르라’는 리더십보다는 ‘나를 막아달라’는 리더십을 보였다. 일단 멋있게 당대 당 대표직을 내려 놓아야 한다”며 친명 진영과 대립각을 세웠다.

한편, 하마평에는 야권의 원로 인사들도 함께 거론됐다. 지난 6월 이미 거론됐던 유 전 국회사무총장이 대표적이다. 유 전 사무총장은 당시 당 대표로 거론되는 상황에 대해 “터무니없는 소리다. (당 대표 제안에 대해)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고 주장했지만, 민주당에선 아직 그를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유인태 전 사무총장 같은 인물 정도가 돌아와야 민주당이 재정비될 수 있다”며 “원로급 인사 중 아직 정치활동이 가능한 인물은 현재 그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유 전 사무총장은 1990년대 초반부터 정치활동을 해온 배테랑이다. 그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경험했던 민주당의 산증인이며 야권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친명계와 비명계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가졌다고 알려졌다.

민주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종종 원로급 인사들이 등판해 당을 재정비했었다. 그런 민주당의 역사를 보면 유 전 사무총장의 등판이 전혀 가능성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엔
원로 인사?

여러 가지 위기를 겪고 있는 민주당은 고민을 없애줄 해결사를 찾고 있다. 조 의원과 유 전 사무총장이 유력한 당대표로 거론되는 가운데, 민주당이 적절한 리더를 찾을 수 있을지 정계가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새 리더가 누가 됐든, 현재 리더가 자리를 내려놓는 것이 민주당 재정비의 선결 조건이다. 이 대표는 당을 위해 본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친문 재정비? 김경수 컴백설

구심점을 잃었다고 평가받는 친문 진영에 최근 새로운 희망이 떠오르고 있다.

신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를 '동시 사면'할 가능성이 떠오르는 것이다.

대통령 사면은 보통 쓸데없는 정쟁을 야기시키지 않기 위해 여야 진영의 인사를 가리지 않고 고루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윤핵관이라 알려진 인물 대부분이 친이명박계 의원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신년 사면은 가능성이 매우 높아져있는 상태다.

정계에서는 윤 대통령이 이 전 대통령 한 명만 사면할 리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아무리 야당과의 협치를 포기한 정부라도 사면 카드를 일방적으로 쓸 수는 없을 거라는 정치적 계산 아래서다. 

김 전 도지사의 사면이 끝내 문재인정권에서 이루어지지 못했던 만큼, 현재 친문계의 기대는 한껏 올라가 있는 상황이다.

최근엔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을 비롯해 김두관 의원, 전해철 의원 등이 옥중에 있는 김 전 도지사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계에서는 이를 두고, “구심점을 잃은 친문계가 다시 세를 합하려 꿈틀대고 있다”고 평가한다.

사면 카드는 윤 대통령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카드다.

야권의 분열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윤 대통령이 김 전 지사를 사면한다면 김 전 도지사는 피선거권을 즉시 되찾아올 수 있다.

본래대로라면 김 전 도지사는 2028년까지 피선거권이 박탈되지만, 대통령 사면은 그의 피선거권을 즉시 복구시킬 수 있다.

정계 전문가들은 총선 전후로 심각해질 민주당 계파 싸움에 김 전 도지사까지 합세하면 민주당의 분열이 가속화될 것이라 전망한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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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