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⑫수백조원과 80만원 아이러니

요람은 있고 무덤은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국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적게 태어나고 많이 죽는 ‘자연 감소’ 상태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 정부는 물론 국민의 관심은 오로지 ‘탄생’에 쏠려 있다. 분기별 출산율에 한탄하고 OECD 순위를 걱정한다. 그 사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출산율과 반비례해 사망자 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탄생은 국가의 영역으로 들어온 반면, 죽음은 여전히 개인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애초에 죽음에는 차별이 있는 거지. 왜 죽음이 공평하나? 모든 죽음이 형태가 다 다르고 그 모양새가 다른데. 누가 얘기했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이 죽으면 평등하다’ 여기서 모티브가 된 것 같은데, 죽으면 숨 떨어져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 외에는 동등한 게 하나도 없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어요?” <강신몽 가톨릭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명예교수>

인구 감소
데드크로스

지난 9월16일 경기 일산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만난 백발의 노 법의관은 자리에 앉자마자 의문을 표했다. ‘죽음의 격차’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진심으로 궁금한 모습이었다. 평생 법의학자로 살면서 다양한 사체를 마주해온 강 명예교수에겐 ‘사람의 죽음에는 격차가 있다’는 말이 너무나 당연한 명제인 듯했다. 

지난 8월30일 제주도에서 만난 강현욱 제주의대 교수는 “학생에게 ‘세상에 누구에게나 공평한 게 하나 있다면 바로 죽음’이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죽음의 격차’라고 해서 놀랐다”며 “죽음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해석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 ‘죽음 이후의 장례’ 등에 격차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사망원인 통계’는 여러 의미에서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사망자 수가 집계 이후 처음으로 30만명을 넘어섰고,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은 ‘인구 데드크로스’가 나타났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통계 수치로 뚜렷하게 증명된 셈이다. 그러면서 인구의 자연 감소가 시작됐다. 


지난해 사망자 수는 31만7680명으로 1983년 집계 이래 가장 많았다.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5030명에 이르면서 통계에 영향을 미쳤다. 인구 1000명당 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조사망률은 이미 2009년부터 증가세를 보였다. 통계청은 출산율 하락과 맞물리면서 인구 감소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부 정책은 출산율에 방점이 찍혀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81명에 머물렀다. 집계 이래 최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1위다. 합계출산율이 0명대인 나라는 한국뿐이다. 2017년 30만명대로 주저앉은 뒤 3년 만에 20만명대를 기록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그동안 쏟아부은 예산을 생각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정부는 2006년 이후 저출산을 막기 위해 약 380조2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단순 계산으로 1년에 25조원 이상 쓴 셈이다. 문제는 줄어드는 탄생과 반비례해 늘고 있는 죽음에 대한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죽음 이후는 오로지 개인 영역
고독사 예방 정책 걸음마 수준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를 정책으로 조절할 수 있느냐’는 의견도 있다. 국가의 역할을 지나치게 축소해서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최민성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은 “국가는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을 죽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죽음의 원인을 분석해 같은 이유로 사람이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법의관은 2015~2021년 국과수 현장검안 사업에서 ‘가난한 죽음’을 숱하게 목격한 바 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죽음의 순간-죽음 이후 등에서 정부가 그나마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과정과 순간 사이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늘어나기 시작한 고독사, 이미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노인 극단적 선택률 등에는 걸음마 수준이긴 하지만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는 2018년 1월4일 ‘서울특별시 고독사 예방 및 사회적 고립가구 안전망 확충을 위한 조례’에서 고독사를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극단적 선택, 병사 등의 이유로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이라고 정의했다. 일정한 시간은 3일로 정했다. 

지난 3월 서울시복지재단에서 진행한 ‘고독사 예방 정책, 충분한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자료집에 따르면 서울시 고독사 사망자는 83명(2018년), 69명(2019년), 51명(2020년), 76명(2021년)으로 나타났다. 50~60대가 59.5%, 남성이 77.8%로 나타났다. 50대 남성은 극단적 선택 통계서도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고독사 사망자 가운데 21.3%는 ‘사인 불명’으로 드러났다. 2020년 사망원인 통계 R코드(달리 분류되지 않는 증상, 징후) 사망률(10.4%)과 비교해 2배 정도 높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서울시 전체 사망자의 성별 연령 분포를 비교하면 여성은 사망 연령과 유사한 패턴이지만 남성은 고독사 위험 연령에서 비정상적인 특성을 보인다. 남성에 있어서 이상 죽음”이라고 설명했다. 

돈 없으면
장례 못해

서울시는 2018~2021년 고독사 고위험가구 지원을 위해 특별교부금, 서울형 긴급복지 예산 등을 들여 1만5669가구에 58억7100만원을 지원했다. 1가구 당 37만5000원 정도다. 또 ‘명예사회복지공무원’ ‘우리동네돌봄단’ 등 민간과 협업해 고독사 위험가구를 발굴하고 관리했다.

지하방·옥탑방·쪽방·고시원·숙박업소(장기 거주자) 등 주거취약지역에 사는 중장년 이상 1인 가구에 대한 실태조사도 진행했다. 그 결과 조사 완료자 6만677명 가운데 59.8%(3만6265명)가 고독사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지난 8월 보건복지부는 ‘고독사 예방 및 관리 시범사업’에 돌입했다. 고독사 위험자를 조기 발견하고 치료와 서비스 연계를 통해 고독사를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시범사업 지역은 서울·부산·대구 등 9개 시도와 39개 시군구다. 해당 지역은 ▲안부확인 중심형 ▲심리·정신지원 중심형 ▲사전·사후관리 중심형 중 하나 이상의 사업모형을 선택해 사업을 추진한다. 

문제는 죽음 이후다. 박진옥 사단법인 나눔과나눔 상임이사는 “출산이나 보육, 치매 등에는 국가의 손길이 미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 사망하면 그 사체는 물건, 즉 상속재산이 된다. 그래서 장례를 치를 돈이 없으면 사체를 포기하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할 부분으로 바뀌어 버린다. 죽음, 특히 장례 영역은 공공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민 인식도 마찬가지다. 한국 국민 10명 중 7명은 장례를 ‘개인의 영역’이라고 답했다.

<일요시사>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디앤에이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본인의 장례는 본인이나 가정에서 각자 알아서 준비해야 한다는 응답이 71%(스스로 20.9%+자녀 30.5%+배우자 19.6%)로 나타났다. 국가(10.3%)나 지방자치단체(6.0%)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16.3%에 그쳤다.

최소 160만원
평균 1380만원


이 과정에서 무연고 사망자 문제가 대두된다. 지난해 9월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발행한 <무연고 사망자 장례의 문제점과 개선과제>에 따르면 2016년 1820명, 2017년 2008명, 2018년 2447명, 2019년 2656명, 2020년 2947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나왔다.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시 어르신복지과에 따르면 9월까지 서울시에서만 796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했다. 나눔과나눔은 올해 말까지 1100명(서울시)가량의 무연고 사망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눈여겨볼 부분은 무연고 사망자의 연고자 여부다. 무연고 사망자는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가 사체 인수를 거부할 경우에 발생한다. 2019년 2656명의 무연고 사망자 가운데 연고자가 없거나 알 수 없는 경우는 806명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850명은 연고자가 있지만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기피한 경우다. 전체 무연고 사망자의 70%에 달한다. 2020년(2947명)은 이 비율이 71%(2091명)로 늘어난다.

사단법인 장례지도사협회에 따르면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은 160만원가량이다. 장례지도사협회 관계자는 “지자체가 의뢰해 장례대행업체가 재능기부 형태로 장례를 치를 경우 지자체에서 장례대행업체에 돈을 지급하는데 그 액수가 160만원 정도”라고 설명했다.

160만원의 비용이 없어 장례식을 치르지 못하고 ‘직장’ 형태로 고인을 떠나보내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원되는 장제급여는 80만원뿐이다. 장제급여는 생계급여, 주거급여와 의료급여 중 하나 이상의 급여를 받는 수급자가 사망해 사체의 검안‧운반‧화장 또는 매장 등 그 밖의 장제조치가 필요한 경우에 지급되는 급여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평균 장례비용은 1380만원에 이른다. 현재 지급되는 장제급여는 평균은 물론 최소 장례비용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무연고 사망자의 연고자가 소식을 듣고 비용을 떠올렸을 때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을 만한 금액이라는 의미다.

무연고 사망자 매년 늘어나는데…
그나마 서울시는 공영장례 시행

그러면서도 장제급여를 올려봤자 현재의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김민석 나눔과나눔 팀장은 “장제급여를 지금의 2배로 올린다고 해서 ‘장례의 질이 올라가거나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면서 “주거급여를 올린다고 주거환경이 좋아지지 않는 것과 같다. 결국 월세를 올려 받을 테니까”라고 말했다.

결국 국가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상황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실천하는 복지국가로 나아가려면 죽음까지도 사회보장의 테두리 안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박진옥 상임이사는 “장례업계는 이미 포화상태다. 국가는 새로운 형태의 뭘 만드는 것보다 시장에 있는 자원을 어떻게 공공성이 담보되도록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4.4%(국가 54.8%+지자체 29.6%)가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사회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답했다. 60세 이상을 제외하고 과반이 국가를 책임주체로 꼽았다. 특히 30~40대에서는 그 수치가 60%를 넘었다. 

2019년부터 서울시와 나눔과나눔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연고자가 있는 저소득 시민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지원하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금액을 조정하고 그만큼의 서비스를 현물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세부적으로 ▲장례식장 시설 사용료와 고인용품(수의, 관 등 염습‧입관용품 일체) ▲공영장례식 ▲장례지도사와 자원봉사자 등이다. 

‘서울시 공영장례지원 업무안내’에 따르면 올해 서울시가 편성한 공영장례 관련 예산은 6억9815만원이다. 서울시립승화원에는 공영장례 전용 빈소인 ‘그리다’가 설치돼있다. 무연고 사망자는 3시간, 사망자의 연고자가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경우는 3시간 또는 24시간을 선택해 시신이 안치된 장례식장이나 그리다 빈소를 사용할 수 있다. 

마지막까지
간극 존재

김민석 팀장은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인데 이렇게 격차, 간극이 존재한다는 건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서울시는 공영장례 시행으로 죽음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일정 부분이나마 하고 있지만, 공영장례 조례가 없거나 시행하고 있지 않은 지자체는 그 안전망조차 부재한 상태”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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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