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⑪죽어도 모르는 소외된 자들의 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투명인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법의학자는 ‘죽음의 격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너무 흔해서 격차의 존재를 인식조차 못했을 수도 있다. 부검대 위에 올라오는 사체 자체가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던 이들일 수 있으니…. 

니시오 하지메 일본 효고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주임교수는 저서 <죽음의 격차>에서 “법의학 현장에 있다 보면 ‘도시의 일상 공간에서 발생하는 동사’는 결코 진기한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집에서도 사람이 얼어 죽는다. 에어컨이 없는 경우 집에서 열사병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2020년 기준 저소득층의 에어컨 보급률은 0.18대에 불과하다. 

마지막까지
외면당한다

니시오 교수는 “책 출간 제안을 받고 과거 부검 사례를 되돌아보니 지금까지 부검해온 사람이 대체로 사회적 약자의 위치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니시오 교수에 따르면 효고의대 법의학교실에서 부검한 전체 사체의 약 50%가 독거자이고 약 20%가 생활보호수급자(한국의 기초생활수급자), 10%가량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이다. 신원 미상의 사체는 전체의 10%에 달했다. 

그는 “이 숫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변사체’가 되는 죽음 자체가 일본 사회의 음지에 속해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매일 사인을 밝히는 사명에 집중하다 보니 그들이 놓인 사회적 상황에 둔감해졌는지도 모른다. 부검을 받아야 하는 변사체와 격차는 늘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낮은 부검률로 인해 놓치고 지나간 범죄, 감춰진 사건을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하다고 했다. 한국은 3만명 전후의 변사자 가운데 한 해 평균 8500건을 부검한다. 부검률은 전체 사망자 수로 따지면 3%, 변사자 수로 보면 23~24%에 이른다.


문제는 부검대에 오를 확률이 높은 사회적 약자가 마지막에 이르러 끝내 외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지난 9월29일 서울 구로의 고아권익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조윤환 대표는 이미 몇 명의 ‘고아’를 잃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밥을 사주고 고민을 나누던 아이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실종신고했더니 이미 사망해 ‘처리’했다는 말이 돌아왔다.

조 대표는 “사인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외롭게 죽었다는 사실 하나만 남기고 떠났다”고 말했다.

폐쇄된 고아원에 홀로 살던 ‘고아 선배’도 홀연히 사라졌다. 조 대표는 “산속에 있는 고아원이 문을 닫았다. 선배는 그냥 거기서 살았던 것 같다. 나중에 가봤더니 사람이 산 흔적은 있는데 선배만 없어졌다. 어디 가서 목숨을 끊었는지 산짐승한테 잡아먹혔는지 알 수 없다. 실종신고도, 사망신고도 안 됐으니 아직 선배는 ‘살아 있는 사람’이다. 고아는 그런 식으로 사회에서 지워진다”고 한탄했다. 

18세부터 국가 보호 끝
연고 없어 ‘처리’ 쉽다

실제 조 대표가 고아권익연대 대표로 활동하면서 겪은 죽음 중 부검을 한 경우는 거의 없다. 사망자 가운데 생명보험에 가입된 사람이 있어 사인을 알기 위해 부검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했다. 그가 고아원에 살 무렵 옆에서 자던 친구가 갑자기 죽었을 때도, 22세 때 친구가 사망했을 때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고아원 시절부터 성폭행을 당했던 한 여성은 집창촌을 전전하다 38세 나이로 사망했다. 조 대표는 그녀가 죽기 7~8개월 전에 만나 한 남성과 동거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끝이었다. 연락이 닿지 않아 실종신고를 했더니 사망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조 대표에 따르면 그녀는 극단적 선택으로 처리됐다. 조 대표는 아직도 그녀의 사체가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조 대표는 “그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경찰에게 적극적인 수사를 부탁했다. 살해됐는지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으니까. 당시 경찰은 더 이상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그 친구에게 가족이 있었다면 사인 규명, 진상규명을 외쳤을 거다. 하지만 고아는 그렇게 해줄 사람도 없고 국가도 관심 없다. 경찰이 임의로 판단하기 참 좋은 케이스”라고 했다. 

고아는 국가의 보호 아래서 살다가 18세가 되면 ‘보호종료’ 딱지를 달고 사회로 나간다. 자립정착금, 정부지원금이 들어있는 디딤돌씨앗통장, 옷가지 몇 벌 정도가 아이가 챙겨 나올 수 있는 전부다. 이때부터는 혼자 살아가야 한다. 조 대표는 “고아는 18세가 돼서 사회에 나온 순간 국가의 관심에서 멀어진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21일 보육원 출신 18세 유모군이 광주 광산구의 한 대학교 건물 주변 농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군이 건물로 올라간 날짜는 같은 달 18일로 그는 사흘 만에 발견됐다.

조 대표는 “3일 동안 유군을 찾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고아의 죽음은 이렇다. 지나가는 누군가가 발견해야만 그나마 위로받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동 절반
죽고 싶다

8월24일에는 광주 광산구의 한 아파트에서 임모양이 숨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해 신고했다. 임양은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생활하다 지난해 장애가 있는 아버지가 사는 임대아파트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고 있었다. 불과 엿새 사이에 일어난 보육원 출신 10대의 잇따른 죽음은 금세 잊혔다.

2020년 1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보호종료 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보호종료 아동의 50%가 죽고 싶다고 생각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수치는 일반 가구원 조사 결과인 2.61%, 저소득 가구원 조사 결과인 3.29%(2019년 한국복지패널조사)와 비교했을 때 매우 높은 수준이다. 

조 대표는 “고아권익연대를 만들고 활동하면서 느낀 고아와 일반인 사이의 격차는 애도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외롭게 혼자 떠나는지 아니면 짧은 시간이라도 같이 애도해주고 아파해주는 사람이 있는지에서 생기는 격차”라며 “고인은 화려한 장례보다 위로받는 장례를 원할 것 같다. 고아는 그런 정서적인 애도가 떠날 때도 너무 차이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른바 애도의 격차다. 조 대표는 유군의 장례 상황을 떠올렸다. 그는 “처음에 보육원에서는 ‘자기들끼리 조용히 보내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그래서 안 된다. 친구들이 장례식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교수님과 친구들이 찾아간 걸로 안다. 그래도 친했던 친구들이 마지막을 지켜줘서 유군도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아의 사망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은 연고자만이 장례를 치를 수 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 제2조(정의) 제16항에 따르면 연고자는 ▲가. 배우자 ▲나. 자녀 ▲다. 부모 ▲라. 자녀 외의 직계비속 ▲마. 부모 외의 직계존속 ▲바. 형제·자매 ▲사. 사망하기 전에 치료·보호 또는 관리하고 있었던 행정기관 또는 치료·보호기관의 장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 ▲아. 가목부터 사목까지에 해당하지 않는 자로서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로 한정돼있다. 

사실혼 관계나 조카, 사위, 친구 등은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조 대표는 고아의 죽음을 들을 때마다 경찰을 찾아가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사정한다. 그나마 2020년 보건복지부의 ‘2020 장사업무안내’에 따라 개인적인 친분이나 사회적 연대에 따라 장례 주관을 희망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있는 경우 장례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장사법 제2조 제16호 아목에 따른 연고자로 인정받거나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장례주관자로서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것. 

영하 16도
난방 안 돼

조 대표는 “고아는 국가가 입양한 자식인 만큼 사망했을 때 지자체장이 와서 애도해주고 아파했으면 한다. 또 고아의 죽음이 석연치 않은 경우에는 철저한 수사를 진행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아에게 유일한 가족은 국가다. 죽을 때만큼은 눈물 흘리면서 가지 않도록, 헛된 죽음이 되지 않도록, 위안받고 하늘에 갈 수 있도록 제도와 인식이 변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고아가 보호종료와 동시에 사회에서 지워지는 처지라면 이주노동자는 일할 때는 어디에나 있지만 사고가 나면 어디에도 없는 포지션이다.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200만명에 이른다. 이주노동자는 일손이 부족한 제조업이나 농업 분야에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일부 지방에서는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을 정도다. 

2020년 12월20일 경기도 포천에서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자신이 일하던 농장 기숙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는 “속헹씨가 사망하기 이틀 전부터 숙소에 난방이 안 됐다고 한다”고 전했다.


포천도시공사에 따르면 당시 포천의 기온은 영하 14.2도였다. 속헹씨가 사망한 농장이 위치한 일동면은 영하 16도에 달했다. 

속헹씨와 동료들은 농장 한가운데 있는 가건물에서 먹고 잤다. 김 목사에 따르면 속헹씨 등은 해당 가건물에 살면서 매달 15만원씩 냈다고 한다. 2016년 비전문취업(E9) 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속헹씨는 4년10개월 만기를 앞두고 비행기 표를 끊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차가운 부검대에 올랐다. 

부검 결과 ‘간경화로 인한 혈관 파열과 합병증’이 사인으로 지목됐다. 김 목사는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꾸리고 대정부 투쟁에 나섰다. 대책위는 열악한 주거환경이 속헹씨의 병을 악화시켜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산재 사망 내국인 3배
죽어야만 바뀌는 환경

지난 5월2일 속헹씨에 대한 산재 승인이 결정됐다. 속헹씨 사망 499일 만이었다. 

김 목사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국에서 취업 활동을 하다가 캄보디아로 돌아간 노동자들이 현지에서 많이 도와줬다. 차로 몇 시간이나 들어가야 하는 시골에 가서 유가족을 만나 산재보험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해서 위임받아 간신히 신청했다”며 “농업 이주노동자가 직업성 질환으로 산재 인정을 받은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큰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속헹씨의 죽음 이후 이주노동자의 주거환경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농지법은 농지에 주거목적인 건축물을 지을 수 없게 규정하고 있다. 건축법 역시 가설건축물을 상시주거시설로 제공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지난해 6월 경기연구원이 내놓은 <경기도 농어촌 외국인 노동자 주거모델 개발을 위한 정책 연구>에 따르면 전체 사업장의 48.4%(896개소)가 농지법 또는 건축법 혹은 둘 다를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전체 건축물 중 신고돼있는 등기건축물은 44.6%(826개소)로 절반도 되지 않았다. 등기건축물 중 주택이 아닌 가설건축물을 제공하는 경우와 미등기 건축물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80.5%(1490개)가 가설건축물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제2, 제3의 속헹씨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라는 의미다.

지난 3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1년 산업재해 사고사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산재 사망자 828명 가운데 외국인은 102명(12.3%)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전체 임금 근로자(2099만2000여명) 가운데 외국인(81만1000여명) 비율이 3.8%인 것을 고려하면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자는 내국인과 비교해 3배 이상 많은 셈이다. 

김 목사는 ‘산재 은폐율’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2월 한국노동연구원에 실린 <노동조합은 산업재해 발생과 은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논문에서 한국에서 발생하는 산재 3건 중 2건은 은폐되고 있다는 내용이 나왔다. 1인당 산재 발생 대비 은폐율이 66.6%로 나타난 것이다. 

김 목사는 “해당 논문은 3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이주노동자는 주로 30인 이하 사업장에서 근무한다. 전체 노동자로 따져도 30인 이하 사업장의 산재 은폐율은 최소 66.6% 이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주노동자의 산재 은폐율은 70% 이상이라고 본다”며 “경험으로 볼 때 이주노동자의 산재 신고 비율은 20% 내외”라고 말했다. 

문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는 노동 조건과 환경이 합법적 이주노동자에 비해 더 낮다는 점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산재를 당하면 합법적 이주노동자와 똑같이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합법적 이주노동자에 비해 산재 신청 비율이 떨어진다. 스스로 기피하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한다.

불법체류자
더 바닥이다

김 목사는 “속헹씨의 희생으로 이주노동자의 주거환경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는 등 변화된 게 많다. 누군가가 죽어야 변하는 시늉이라도 한다는 뜻이다. 속헹씨 사건에 수십개 단체가 달라붙어 떠들었는데도 산재 인정까지 1년 반이나 걸렸다”며 “내가 늘 하는 말인데 ‘위험의 이주화’ ‘죽음의 이주화’를 국가가 개입해 조직적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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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