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⑩해외는? 시카고 법의관 만나 보니…

“부유촌과 빈민가, 기대수명 30년 차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법의학을 하려는 ‘미친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도 이 일을 하려 하지 않는데 법의학에 미래가 있을까요?” “현재 법의학자는 ‘사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책임만 주어진 전문가’에 불과합니다.” 권한은 없고 처우가 부족하다. 법의학자가 입을 모아 말하는 한국 법의학계의 현실이다. 

희소성으로만 따지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직업이다. 한국의 법의학자는 전국을 통틀어 70명이 채 안 된다. 세부적으로 보면 더하다. 치아로 사체의 신원을 파악하는 법치의학자는 전국에 7명, 뼈를 통해 개인을 식별하는 법인류학자는 전국에 단 3명뿐이다.

권한·처우↓
할 사람 없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 법의관은 수년째 30명대에 머물러 있다. 심지어 내년에는 충원율 ‘제로(0)’다.

대한법의학회가 연구한 <법의학 전문 감정 연구 인력 인재 양성 방안 연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에서 활동 중인 법의학자 수는 63명. 국과수 30명, 국방부과학수사연구소 2명, 대학 15명, 개원의 10명, 은퇴 후 촉탁부검의 6명 등이다. 절반가량(44%)이 서울에서 근무 중이다. 제주도에는 법의학자가 1명뿐이다.

이 중 사법부검을 주 업무로 하는 법의학자는 전국에 32명밖에 안 된다. 국과수 통계에 따르면 2020년 부검 건수는 8813건이다. 법의학자 1명이 1년에 275건의 사체를 부검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지난 10월에 만난 한 법의학자는 “아직 6월에 부검한 건의 부검감정서를 쓰고 있다”고 토로했다. 

양경무 국과수 법의학부 부장은 “들어오는 사람은 없는데 나간다는 사람은 많다”며 “병리과 전공의 지원율이 떨어지면서 이른바 관문 앞에 서는 사람도 줄고 있다”고 한탄했다.

2019년 보건복지부가 김순례 의원실(자유한국당)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병리과 전공의 지원율은 2016년 66.1%, 2017년 60.7%, 2018년 41.7%, 2019년 35% 등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는 중이다. 

신규 법의관 지원자가 줄자 국과수는 지원자격을 병리과 전문의에서 일반의로 바꿨다. 낮아진 진입장벽에도 일선 현장에서는 여전히 병리과 전문의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있어 인력 충원이 쉽지 않다. 여기에 개원의나 봉직의와 비교해 처우 수준도 낮다.

‘사명감’만 가지고 뛰어들라고 하기엔 법의학자 자체가 일종의 ‘극한 직업’인 셈이다. 결국 인력이든 제도든 어느 쪽이라도 충족돼야 한국 법의학의 명맥이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장한 대한법의학회 회장은 “법의학은 망하지 않는다. 국가가 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민성 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은 “20년 안에 법의학은 망할 것 같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사회에 미칠 파장이다. 죽음을 다루는 전문가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최민성 법의관은 “선진국의 경우 법의학의 비율이 오히려 줄어들기도 한다. 죽음에 대한 정책과 제도가 잘돼있어 법의학이 융성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쿡카운티 MEO서 520만명 관할
어시스턴트 법의관으로 재직 중

경제지수로는 선진국이지만 죽음을 다루는 방식은 그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의 검시제도는 크게 영미법계의 전담검시제와 아시아와 독일, 덴마크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대륙법계의 겸임검시제로 나뉜다. 한국은 대륙법계의 검시제도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두 검시제도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검시권의 주체다.

영미법계는 검시관(Coroner)과 법의관(Medical Examiner)이 광범위한 권한을 갖는 반면 대륙법계는 대체로 수사기관이 1차 주체가 된다. 한국은 검사에게 독점적 검시권이 있다.

김윤신 조선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영국은 살인사건을 조사할 때 사건을 담당할 법의관이 반드시 현장에 입회하도록 하는 법을 갖고 있다. 살인사건은 죽음을 조사해 가해자를 기소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 죽음의 처리에 허술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요구가 반영된 제도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국은 전담검시제도인 검시관 제도를 세계 최초로 시행한 국가다. 검시 책임자인 검시관이 변사사건을 조사하고 부검 여부를 결정해 의과대학의 법의학‧병리학 교수에게 의뢰하는 방식이다. 연방국가인 미국은 주별로 검시제도가 매우 다양하다. 영국식 검시관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주도 있고, 미국만의 법의관 제도로 운영되는 주도 있다. 

지난 7월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기초의학 학술대회 주관의 대한법의학회 프로그램에 참석한 송혜정 법의관을 만났다. 송 법의관은 미국 시카고 쿡카운티 MEO(Medical Examiner Office)에서 어시스턴트 법의관으로 일하고 있다. 미국에서 일하는 500여명의 법의관 가운데 유일한 한국인이다.

결국 피해
국민에게로

지난 7월4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송 법의관을 다시 만났다. 송 법의관은 은사님을 만나기 위해 강원도 원주에 다녀온 참이었다. 학회 참석과 개인적인 업무로 바쁜 시간을 보낸 송 법의관은 출국을 하루 앞두고 인터뷰를 위해 시간을 냈다. 송 법의관을 통해 미국과 한국의 법의학 현실을 들을 수 있었다. 

송 법의관이 일하는 MEO는 시카고와 시카고 주변 작은 도시를 합쳐 약 520만명을 관할한다. 일리노이주 인구의 약 45%에 달하는 수치로 해당 지역의 유일한 법의관 시스템이다. 1972년 국민투표로 1976년 12월6일 쿡카운티 검시관실이 설립됐다. 

MEO에 소속된 법의관은 15명 정도다. 송 법의관은 “법의관 정원이 16~17명 정도인데 다 채운 적은 없다. 15명 전후로 늘었다 줄었다 한다”고 말했다. 단순 계산으로 따지면 인구 100만명 당 법의관 수가 3명이다. 한국(인구 100만명당 1.16명)과 비교해 3배 정도 많다. 

<Cook County Medical Examiner’s Office 2019 Annual Report>에 따르면 2019년 쿡카운티에서 4만1317명이 사망했다. 그중 MEO에 보고된 대상은 1만3758명, 이 가운데 법의관 관할로 결정된 대상은 6274명이다. 사고사가 2564명, 자연사가 2339명, 범죄 피해자가 676명, 극단적 선택이 479명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총기의 나라’인 만큼 쿡카운티에서도 총기사고로 인한 사망이 많다. 자료에 따르면 16~30세 살인으로 인한 사망자의 93%가 총기로 인해 유명을 달리했다. 송 법의관은 “사람을 상대로 총을 쏠 때 한 방에 명중하기 쉽지 않다. 누군가를 죽일 의도라면 20발이고 30발이고 쏘게 된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벌집 같은 사체를 마주할 때가 많다”고 밝혔다. 

송 법의관은 경주에서 열린 학회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미국과 비교해 한국 법의관에게 주어진 권한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쿡카운티에서는 법의관이 원하면 의료기록 등 필요한 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 사건 전후 사정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에 추가 수사를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단순히 요구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강제성을 띤다.

93% 총기 사망
벌집 같은 사체

미국의 법의관은 사건 당시 상황과 사망자의 생전 기록 등 여러 자료를 확인한 뒤 부검 등의 절차를 거쳐 사인을 내놓는다. 이 과정을 통해 나온 사망진단서는 법의관도 새카맣게 몰랐던 전혀 새로운 내용이 나오지 않는 이상 유일무이한 결과로 남는다. 의사에 따라 사인이 바뀔 수 있는 한국의 시체검안서와는 다른 무게감이다. 

“시체검안서를 아무 의사나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예를 들어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했는데 그 기록을 남기기 싫어 다른 의사를 찾아가 병사로 써달라고 하면 써준다는 말이잖아요. 이렇게 되면 신뢰가 떨어지죠. 저는 제 직업적 공신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일관성을 유지해야 돼요. 안 그럼 MEO 전체에 누를 끼치게 되는 거예요.”

한국의 법의관은 부검 전 사망자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다. 변사사건이 발생한 이후 부검에 이르기까지 1~2일 동안 경찰이 모아온 수사기록을 확인하는 정도다. 사망자의 의무기록도 볼 수 없다. 한국은 사람이 사망하면 한 달 이내에 신고를 하도록 돼있다.

다시 말해 신고 전까지는 행정상으로 ‘살아있는 사람’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이 적용돼 법의관은 의무기록에 접근할 수 없다. 

반면 쿡카운티의 경우 법의관이 자신이 담당한 사체에 대한 사망의 원인과 종류를 직접 등록한다. 유족은 필요할 경우 법의관이 밝힌 사망원인을 기반으로 작성된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으면 된다. 죽음을 확인한 자가 죽음을 등록하는 것이다.

사망진단서를 발급받기 위해 병원, 공공기관 등을 전전해야 하는 한국과 비교해 사회적 비용이 덜 드는 구조다.  

그렇다고 쿡카운티에 ‘죽음의 격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리노이주 제1도시인 시카고는 미국 역사에서 오랜 시간 ‘흑백 분리’가 돼있었다. 도시 자체가 빈부격차에 따라 굵직하게 구분돼있을 정도. 실제 시카고의 건강불평등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부유한 지역과 빈곤한 지역 사이의 기대수명 차이는 무려 30년에 이른다. 미국의 도시 중 1위다. 

한국 비해 광범위한 권한
사회적 비용 덜 드는 구조

구조적 인종 차별주의, 경제적 차이 등이 이유로 꼽힌다. 부검대에 오르는 이들의 배경만 봐도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송 법의관은 “경제적 빈곤으로 의사를 만나지 못해 사망 후 MEO로 옮겨오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고 설명했다. 일리노이주는 법의관이나 검시관이 확인해야 하는 죽음을 명시하고 있다. 살인·극단적 선택·사고·교통사고·마약 사건, 그리고 자연사로 의심되지만 사망진단서를 써줄 주치의가 없는 경우 등이다. 

“미국인은 사보험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보험에 1년에 한 번 주치의를 만날 수 있는 옵션이 포함돼있어요. 이건 무료기 때문에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라면 가지 않을 이유가 없죠. 그 주치의가 보험자의 사망진단서를 써주는 거거든요. 주치의가 없이 사망해 MEO에 오는 경우는 보험에 가입하지 못했다는 뜻이죠.”

더 큰 문제는 이미 벌어진 기대수명 격차가 소득의 재분배를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송 법의관은 “젊을 때 일정 수준의 돈을 붓고 특정 나이가 되면 받는 연금제도가 있다. 하지만 가난한 지역의 사람은 죽어라고 연금을 붓지만 받을 때쯤 혹은 그 이전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부자 지역의 사람은 오래 살면서 낸 돈보다 더 받는다. 연금제도 자체가 재분배를 위해 마련된 건데 아이러니하게 악화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 기자를 꿈꿨다는 송 법의관은 중학교 때 ‘의사가 되는 게 어떠냐’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의대로 진학했다. 이후 의대 예과 2학년 때 오대양 사건(오대양 공장에서 일어난 집단 극단적 선택 사건)과 관련한 강의를 듣고 법의학자에 대한 꿈을 키웠다.

법의학을 하면 ‘기자 같은 의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 그는 ‘이 일(법의학)을 평생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되뇌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악순환 반복
고리 끊어야

“저는 공급이 많지 않은 일을 하기 때문에 건강하게 오래 버텨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국 전역에서 법의관은 500명밖에 안 되잖아요? 어떻게 보면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제 사명을 감당하는 거예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되 소진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야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jsjang@ilyosisa.co.kr>

 

[송혜정 법의관은?] 

▲Cook County Medical Examiner Office
▲Assistant Medical Examiner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경북대학교 수사과학대학원
▲Miami-Dade County Medical examiner office 법의 펠로우
▲Jackson Memorial hospital 병리 레지던트
▲Miami-Dade County Medical examiner office international scholar
▲삼성서울병원 인턴, 병리 레지던트, 병리 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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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6·3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여당 강세 지역인 만큼 민심은 물론 당심까지 한번에 훑어볼 절호의 기회다. 1차 예비경선도 ‘기승전 이재명’으로 막을 내렸다. ‘찐명’ 타이틀을 거머쥘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여당의 이목이 경기도에 쏠리는 이유다.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경기도지사 예비경선을 실시했다. ▲김동연 현 경기도지사 ▲추미애 의원 ▲한준호 의원 등으로 후보가 압축되면서 3강 체제가 굳어졌다. 권칠승·양기대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100% 권리당원 투표로 진행된 만큼 오직 당심으로만 결정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현역인 김동연 후보는 행정력을, 추미애 후보는 검찰개혁 선봉자와 6선의 중량감을, 한준호 후보는 친명(친 이재명)계 조직력을 바탕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평을 받는다. 당심 100% 첫 관문 본경선은 다음 달 5~7일 진행되며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2명이 15~17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본경선 투표는 권리당원 50%와 국민 여론조사 50%가 반영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 검찰개혁에 앞장선 추 후보는 강성 지지층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추 후보 역시 이를 동력 삼아 사법 3법(법 왜곡죄, 재판소원법, 대법관 증원법)과 중수청·공소청 설치 법안 강행 처리를 주도했다. 추 후보는 출마 선언을 통해 선명한 개혁과 강인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난지원금과 청년기본소득을 적극 추진하며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수십 년간 지지부진했던 불법 계곡을 정비해 경기도가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던 것처럼 경기도에도 도민을 행정 중심에 놓는 사고의 전환과 강한 결단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 추미애는 개혁이 필요하면 정면으로 돌파했다. 원칙 앞에서 물러선 적이 없었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한 적이 없었다”며 “책임지는 행정, 실천하는 행정으로 경기도정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한 후보는 “경기도가 성공해야 이재명정부가 성공한다”며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 후보는 “이정부의 실용주의를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가장 분명하게 성과로 완성하겠다. 지금 경기도에 필요한 것은 망설임이 아니라 실행, 말이 아니라 결단, 계획이 아니라 책임지는 도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 후보는 정부를 이끌 리더십을 강조했다면 한 후보는 보조하는 조력자 역할에 방점을 찍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명심을 내세웠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른 셈”이라며 “민주 당원도 어떤 역할이 이정부 성공에 도움이 될지 저울질하면서 선거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역인 김 후보는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 대통령에게는 일잘러 도지사가 필요하다”며 행정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를 지내던 당시 추진하던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등의 정책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사례를 성과로 제시했다. 김 후보는 “지금 이 대통령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속도와 체감’이다. 좌충우돌, 시행착오로 낭비할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며 자신이 이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국정 제1동반자’임을 거듭 강조했다. ‘강경’ 추 ‘친명’ 한 ‘비명’ 김 앞다퉈 “내가 국정 파트너 적임자” 정치권은 세 사람의 성향이 모두 다른 점에 주목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강성 추미애’ ‘친명 한준호’ ‘비명(비 이재명)이었던 김동연’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기도지사 선거를 빙자한 ‘친명 선발 토너먼트’인 격”이라며 “최종 후보가 선정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민주당 권력이 어디를 향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끼어들 틈이 없다 보니 민주당만의 리그가 됐다. 민주당 최종 후보는 경기도지사직뿐만이 아니라 ‘이재명의 복심’이라는 타이틀까지 얻는 효과를 본다. 민심과 당심의 향배를 모두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세 사람 모두 네거티브 경쟁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예비경선 득표율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후보 측이 “(예비경선) 2위를 확신한다”고 주장하며 불을 지핀 것. 득표율은 후보 본인에게만 공개되지만 본선 진출을 위해 각자 유리한 여론 조성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예비경선이 치러진 다음 날인 23일, 민주당 염태영 의원은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한준호 후보 본경선 전략 브리핑’을 갖고 “당이 후보별 전체 순위와 득표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추정치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서도 “한 후보가 상당히 약진했고,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2위를 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중요한 것은 현재 수치보다 추세와 흐름”이라며 “경기도민과 권리당원들이 경기도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의 기준을 바꾸기 시작한 결과가 이번 예비경선에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이에 김 후보는 “순위 발표도 안 됐는데 각자 자기주장 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는 권리당원의 당심과 경기도민의 민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의 승리다. 김 후보는 당심이, 나머지 두 후보는 민심에 취약한 만큼 각각 절반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민심과 당심이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만큼 후보들은 전략 수정에 나섰다. 그동안 추 후보는 각종 개혁에 앞장서는 등 강성 이미지를 굳혀왔다. 하지만 강성 이미지는 양날의 검이 돼 2024년 하반기 국회의장 선거 당시 낙선 원인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강성 당심은 추 후보를 밀었지만, 의원 투표 결과 온건파인 우원식 후보가 당선되면서 급제동이 걸린 것. 추 후보는 6선의 중진이지만 이번 경기도지사까지 패배하게 되면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역풍 불라” 완급 조절 이를 의식한 듯 최근 추 후보는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내려놓고 행정가로서의 면모와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추 후보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입법·사법·행정을 골고루 경험한 유일 후보”라며 “입법을 통해 큰 틀 아이디어를 냈다면 이제는 현장에 뛰어들어 성과를 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완수를 본인의 최대 성과로 내세운 추 후보가 법사위원장을 내려놓고 선거에 뛰어든 것 역시 중도를 설득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권리당원 100%로 치러진 예비경선과 달리 본경선은 일반 여론조사와 당원 조사가 각각 50%씩 반영된다. 결국 줄어든 강성 당원의 영향력 만큼 중도층을 최대한 끌어오는 것이 관건이다. 추 후보는 사퇴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7개월간 법사위원장으로서 총 682건의 개혁법안과 민생법안을 처리했다”며 “법 왜곡죄를 도입하는 ‘형법’,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헌법재판소법’, 대법관 증원안이 담긴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 사법개혁 3법과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법안까지 검찰개혁 과제를 완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언제나 제 중심에는 국민이 있었고, 어떠한 가시밭길도 외면하지 않았다”며 “2021년 검찰개혁을 완수하지 못한 채 법무부 장관 자리를 떠나야 했던 무거운 발걸음이 아니라 이처럼 뜻깊은 결과를 여러분께 보고드릴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힘이 되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대한민국의 중심 경기도를 승리로 이끌고 이정부와 함께 국민주권시대를 만들어 내겠다”고 덧붙였다. 한 후보는 오히려 ‘이재명 픽’을 앞세웠다. 이정부를 흔드는 세력을 향해 각을 세우면서 전투력을 강조하는 등 기존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최근 한 후보는 ‘이재명 공소 취소설’의 근원지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대통령의 생각을 자꾸 언급하는 것 자체가 당을 지휘하고 있는 당 대표로서 맞냐는 생각이 있다”며 김어준씨와 정청래 대표 등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여권 갈등의 뇌관이 된 유시민 작가의 ‘ABC론’을 놓고 설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유 작가는 민주당 지지층을 A(가치 중시), B(본인 이익 추구), C(A, B의 교집합) 등 세가지 그룹으로 분류했으며 특히 B그룹은 “이익과 생존을 위해 친명을 자처하는 이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 후보는 “갈라쳐서 얻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반응했고 유 작가가 재반박에 나섰다. 이후 한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작가님의 말씀, 무겁게 듣고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며 “저를 향한 비판과 비난은 기꺼이 감당하겠다. 하지만 이 대통령님과 정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의 모습은 불안한 외줄타기 같다”며 “선은 분명하다. 그 선은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끊지 못한 명 꼬리표 한 후보는 “53% 싸움”을 내세우며 본경선 승리를 위한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 오는 6월 선출되는 경기도지사의 임기는 4년으로 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맞물린다. 따라서 이정부와 합을 잘 맞추는, 명심을 잘 꿰뚫는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어야 한다는 게 한 후보 측 지지층의 핵심 메시지다. 한 후보 역시 “‘이재명 지사였다면 벌써 해결했을 일들’을 한준호가 가장 스마트하고 빠르게 해결하겠다”며 “딱 세 표가 부족하다. 나의 한 표에 더해, 가장 가까운 두 분만 더 설득해 달라”고 밝혔다. 김 후보는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1위의 김 후보를 추 후보가 뒤쫓고, 한 후보가 마지막 뒤집기 기회를 엿보는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중부일보> 의뢰로 경기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는 6월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결과 김 후보는 25%, 추 후보는 22%, 한 후보는 11%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전화면접조사 방식(CATI)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p, 응답률은 12.7%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김 후보는 당심 100%라는 가장 어려운 관문을 뚫었지만 질긴 비명 꼬리표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의 최대 약점은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본인에게 도움을 줬던 민주당 핵심 지지층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다는 국민 인식이다. 유 작가는 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당시 이재명) 대표한테 붙어 지사가 된 사람이지 않나. 배은망덕”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2024년 임기 후반기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비명 프레임이 굳어졌다. 당시 김 후보는 민주당 전해철 전 의원 등 대표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영입했고, 친명계에서는 “유력 대권후보 주자인 이재명 당 대표에 맞서기 위한 결집 시도” 등 견제가 이어졌다. 김 후보는 표를 분산시키는 친비명 프레임을 깨고 인물론에 승부를 걸었지만 민주당 여론이 심상치 않다. 일부 친민주당 성향 커뮤니티에서 “친명계와 개딸(개혁의 딸)이 벼르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김 후보는 자세를 낮추고 당원에게 호소하는 메시지를 냈다. 2% 부족한 후보들…해법은? 이제 와서 고개 숙인 김동연 김 후보는 예비경선이 시작된 지난 21일 자신의 SNS에 “‘나는 동지들의 헌신에 보답했는가’ 되묻는다. 많이 부족했다”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김 후보는 “경기도의 저력도, 제가 여기에 서 있는 것 자체도, 당원 동지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갚을 길은 하나라고 믿는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저는 선택의 시간 앞에, 당원동지들 앞에 서 있다. 감히 청한다.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뛰어라, 당원의 마음을 명심하고 다시 한번 일하라.’ 저 김동연에게 그 기회를 주십시오. 당원 동지들의 뜻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호소했다. 김 후보는 친비명 논란에 거듭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대통령 중심으로 성공한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당의 친명(친 이재명)·비명은 의미가 없다”며 “경기도는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국정 제1파트너로서 충분히 뒷받침하면서, 필요하다면 앞에서 끌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한 후보와 마찬가지로 유 작가의 ABC론을 꼬집었다. 김 후보는 JTBC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가나다’론을 제시하며 “ABC 때문에 논쟁이 벌어진 거 같은데 저는 ‘가나다’로 얘기하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가’는 김대중 대통령을 좋아하는 민주당의 토대다. ‘나’는 그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하고 지지했던 분들, ‘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과 성과로 보여주는 리더십을 좋아하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BC론이 조선시대 노론이나 소론도 아니고 가나다로 한데 뭉치고 더하는 민주당이 됐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민주당은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가 계파 분열의 초입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이에 민주당 원조 친명 핵심으로 꼽히는 김영진 의원은 김 후보를 향한 ‘반명 공세’에 “이 대통령과 어려움을 함께했던 소중한 민주당의 멤버”라며 직접 엄호에 나섰다. 또 김 의원은 2022년 대선 당시 김동연 대선후보(새로운 물결)와의 단일화 과정을 회상하며 “안철수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갔지만 김 후보는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어려운 선거를 함께 뛰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분열은 ‘독’ 친명 지원전 한 민주당 관계자는 김 지사의 화합 메시지와 호소력에 주목했다. 이 관계자는 “골수 친명은 김 후보에 대한 반감이 크다. 김 후보에게 친문 표가 약 30% 정도 있다고 본다”며 “김 지사가 막판에 승리하려면 이 30%를 유지하면서 당원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친명을 적으로 돌리면 답이 없다. 등 돌린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그 사람이 원하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