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잡는’ 로맨스 스캠꾼과 직접 대화해보니…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10.05 09:24:02
  • 호수 13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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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서도 빠지는 구애의 덫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그는 UN에 소속된 의사이기도 하고, 미군일 때도 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노인일 때도 있고, 집안에서 재산을 상속받을 청년이기도 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한국인이 아니며 외국에 있다. 그들은 SNS를 통해 “내가 한국에 가면 2배로 돈을 갚을게. 나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니?”라고 말하며 자신의 통장을 보여준다.

로맨스 스캠(Romance Scam)은 SNS에서 이성 혹은 동성에게 호감을 산 후 다양한 수단으로 돈을 빌려 갈취하는 사기 수법으로 로맨스(romance)와 스캠(scam)의 합성어다. 이들은 주로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계좌 추적이 어렵고, 검거된다고 해도 ‘사기죄’만 적용받아 ‘전자금융 거래법’을 적용받는 보이스피싱에 비해 양형기준도 낮다.

결국은 돈
느는 추세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상대를 믿고 돈을 준다는 게 말이 될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기가 가능한 것은 SNS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만나본 적 없는 상대방의 개인정보를 쉽게 알 수 있다. 또 인터넷으로 쉽게 상대방에게 접근할 수 있고 대화도 할 수 있다.

온갖 달콤한 말로 꼬셔 상대방을 이용한다. 직접 만날 필요가 없이 메시지만 주고받는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에 따르면 미국 내 로맨스 스캠 피해 건수는 2018년 2만1400건, 피해 금액 1억4300만달러(약 1600억원)에서 2020년 3만2800건, 피해 금액 3억400만달러(약 3356억원)로 증가했다.


2년 만에 피해 건수는 53%, 피해 금액은 137%나 급증한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언택트, 비대면 확산이 로맨스 스캠의 증가 원인 중 하나라고 평가한다.

국내에선 로맨스 스캠을 ‘기타 범죄’로 분류한다. 이 때문에 정확한 범죄 발생 통계가 확인되진 않는다. 하지만 사이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로맨스 스캠이 포함된 인터넷 사기 범죄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7년에는 10만7271건, 2018년 12만3677건이 발생했고, 2019년에는 15만1916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31일 개인 SNS로 메시지가 왔다. 기존에 알던 사람도 아니었고 한국인도 아니었다. 말투와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부터가 전형적인 로맨스 스캠 사기꾼인 것이 티가 났다. 

상대방은 “안녕, 나의 친구야. 이렇게 멋진 친구와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데이비스이고 샬롯 노스 캐롤라인 미국입니다. 당신은 누구시죠?”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상대방은 프로필로 벚꽃 사진을 설정해놨고, 아이디는 중국어였다. 어설픈 한국어는 인터넷 번역기를 사용한 느낌이었다. 데이비스는 재차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아내가 없지만 딸이 있었고 한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두 번이나 방문했다고 자신을 설명했다.

데이비스와 딸은 한국에서 부산과 제주도를 방문했다. 아름다운 나라였고,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덧붙였다.

그는 곧 결혼과 아이의 여부를 물었고 “없다”고 답하자 “나는 혼자야. 몇 년 전에 아내를 잃었지. 그래도 나에겐 사랑스러운 딸이 있어. 미국에 온 적이 있니?”라고 물었다.


이런 식의 사적인 대화가 계속됐다. 곧바로 답장을 보내지 않으면 재촉했다. 이어 “너는 무슨 일을 하니? 나는 정형외과 의사다. UN 의료팀과 함께 일한다. 지금 예멘에서 평화 유지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들 중 부상당한 군인을 돌본다”고 말했다.

불쑥 SNS로 시작해 투자 사기로 진화
피해 늘지만 잡히지 않는 ‘기타 통계’

그는 정말 ‘연인’처럼 연락했다. 사랑한다며 꽃 사진을 보내기도 했고, 자신의 딸을 소개하기도 했다. 딸 이름은 ‘신디’로 8살이었다. 지금은 기숙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의사 생활 때문에 아이를 자주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도 전했다.

이런 식의 대화가 지속됐다. 그는 로맨틱한 음악 유튜브 링크를 보내며 “친애하는 나의 아내” “허니” “아이 러브 유”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나는 한국에서 너를 만나고 싶다”라는 말을 했다. 정말 ‘연인’인 양 말이다. 호응하는 답장을 보내지 않아도 데이비스는 지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대화가 이어지자 UN 의사로 일하는 것이 너무 위험하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은퇴하면 한국에서 살고 싶다며, 데이비스가 있는 캠프가 공격당해 본인의 상황이 매우 위험하다고도 말했다. 

식량은 모두 약탈당했고 쉬지도 씻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밥은 하루에 한 끼만 먹을 수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나는 너무 피곤하다” “안정된 생활과 아내를 가지고 싶다” “너와 동거해서 같이 살고 싶다”고 호소했다. 

그는 계속해서 연락을 했다. 연락하는 빈도만 확인해도 그가 UN 소속 의사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대화에 시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친분이 쌓였다고 생각한 건지, 그는 어느 날부터 예멘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사달라고 부탁했다. 이유는 곧 예멘에서의 근로 계약이 종료돼 한국에 오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예멘 정부와 UN이 자신을 이라크에서 근무시키려고 회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이라크로 갈 생각도 없고, 한국으로 무조건 갈 거라고 밝혔다. 이 계획을 바꾸려면 한국행 비행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UN 의사
달달 메시지

도와줄 수 없다고 하자 “제발 도와줘. 내가 한국에 가면 꼭 돌려 주겠다. UN 의사가 한국으로 오려면 한국에 있는 지인이나 배우자가 수수료를 지불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계속 돈이 없다고 하자 이내 연락이 끊겼다.

이것이 전형적인 로맨스 스캠이다. SNS로 연인처럼 대화를 이어가다가 돈을 요구한다. 본인은 특수한 직업이라는 것을 계속 어필했다. 로맨스 스캠의 사기꾼은 대부분 의사, 변호사, 군인 등 특수직종 사람들이었다.


기혼자가 로맨스 스캠 사기에 걸리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 7월27일 A씨는 SNS을 통해 알게 된 외국인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 외국인은 원유 배달을 하는 사람으로, A씨에게 항상 다정하게 대화했다. 

외국인은 A씨에게 “원유 대금이 모자란다. 내 은행 사이트를 알려줄 테니, 나 대신 내 통장에 3만달러 돈을 받고 이체해달라”고 부탁했다. A씨는 자신의 돈이 아니기 때문에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계좌에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상황을 물어본 A씨에게 외국인은 “송금 수수료로 500만원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돈이 필요한 것에 부담을 느끼고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침저녁으로 계속 연락이 왔고, 다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외국인은 이번에 방법을 바꿨다. 아들이 있는데 몸이 아파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400만원을 빌려주면 한국에 올 때 두 배로 갚겠다고도 했다. 통장도 보여줬다. 통장에는 35억원이 있었다. 그 뒤로 외국인은 ▲배 고장 수리비 ▲변호사 비용 ▲구조 비용 등 계속 돈을 요구했다. 벌금이 있다며 벌금도 요구했다.

A씨는 모든 돈을 주고 나서야 이것이 로맨스 스캠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피해 금액은 7000만원. 경찰에 신고했지만 피해 금액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여기에 더해 남편이 이 사실을 알면 이혼을 요구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살고 있다. 

전형적 방법
그래도 속아 


A씨는 “빌려준 돈은 모두 대출받은 돈이다. 한국에 오면 두 배로 갚아주겠다는 말을 의심 없이 믿었다. 또한 가족들이 알게 되는 게 무섭다. 처음에는 죽을까 생각도 했다. 남편에게는 말하고 이혼하자고 해야 하는 게 아닌지…”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로맨스 스캠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이번에는 SNS로 신뢰를 쌓은 후 ‘수익률이 좋은 가상자산 투자를 함께하고 싶다’고 제안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상대방이 의심하지 않도록 처음 몇 번은 수익을 발생시켜 주고 약간의 손실도 나도록 위장한다. 이렇게 상대방은 로맨스 스캠 사기라는 것을 감쪽같이 속는다.

B씨는 SNS로 말레이시아 사람 C씨와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나갔다. C씨는 곧 카카오톡 아이디를 물어봤고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카카오톡으로 넘어간 후 C씨는 자신을 블록체인 전문가라고 밝히며 “블록체인으로 돈을 많이 벌고 있다. 어플을 다운로드해 암호화폐를 산 뒤, 다른 코인 주소로 옮겨 어플을 통해 선물거래를 하는게 아니라 다른 해외사이트로 암호화폐를 옮기고 거기서 수익을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익이 났다. B씨는 다시 “코인 충전 이벤트가 있다. 5만 암호화폐를 충전하면 8500 암호화폐를 주는 행사”라고 설명했다.

당장 돈이 없었다. 하지만 B씨는 C씨의 조언으로 수익을 얻은 적이 있기 때문에 C씨를 신뢰하고 있었다. B씨는 돈을 빌려서 코인 충전 이벤트에 참여했다. 하지만 5만 암호화폐 조건을 만족시키진 못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조건이 안 되니 신용에 문제가 생겼다고 출금 거부를 해버렸다. 계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1만 암호화폐를 더 내야 한다고 했다. 그제야 B씨는 C씨가 사기꾼인 것을 알게 됐다.

“한국 가려면 한국인이 수수료 내줘야”
“사기당해도 이혼당할까 혼자 속앓이”

돈을 찾아야 했던 B씨는 C씨에게 “너를 경찰서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C씨는 “너가 몸캠을 찍어서 나에게 보내주면 나머지 묶여있는 암호화폐를 해결해주겠다”고 답했다. 이를 거절하자 C씨와의 연락은 끊겼다. B씨의 피해 금액은 1650만원이다.

지난해에는 로맨스 스캠 투자 사기로 큰 돈을 날린 사례도 있었다. 자영업을 해온 D씨는 지난해 5월 글로벌 상장지수펀드(ETF) 브랜드인 ‘아이 쉐어즈(iShares)’를 사칭한 신생 암호화폐 거래소에 3억5000만원을 투자했다. 

지인 소개로 접속한 텔레그램 단체방에서 만난 홍콩 시민운동가가 추천한 거래소였다. 그는 텔레그램에서 투자자에게 특정 코인 종목의 매수·매도 정보를 흘렸다. D씨는 실제로 ‘승률 100%’라는 그의 지시대로 코인을 사고팔았고 매일 평균 10% 수익을 올렸다.

단체방에는 수익 인증 사진이 올라왔다. 100만원으로 시작한 C씨의 투자금은 350배로 늘어났다. D씨는 이내 텔레그램 단체방을 맹목적으로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파국을 맞이한 건 불과 두 달이 지난 후였다. 두 달이 지나자 거래소는 출금도 거부한 채 잠적했다.

당시 코로나19로 운영이 어려워져 D씨는 자신의 가게를 정리했고, 돈은 공중분해됐다. D씨는 “경찰에 신고하러 갔지만 잡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고 말했다.

투자 텔레그램 방은 D씨를 비롯해 70명 이상의 피해자로부터 최소 48억여원을 편취했다. 가짜 코인 거래소였고, 로맨스 스캠 사기를 벌였던 조직이 만든 것이었다.

모바일 채팅 앱에서 만난 중국인에게 2억5000만원을 사기당한 E씨도 있다. E씨가 사기 사실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피해액이 바이낸스와 후오비 글로벌로 빠져나갔다.

E씨의 사건을 접수한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이들 거래소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해외 거래소라 한국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활용해 거래소에 등록된 신원 정보 협조를 요구한 것이다. 아이쉐어즈 사칭 사기로 코인 셜록에 접수된 국내 피해자들의 신고 건수는 77건에 이른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피해 규모가 훨씬 클 것으로 전망된다.

날뛰어도
잡기 어려워

하진규 법률사무소 파운더스 변호사는 “로맨스 스캠이 대부분 해외 앱과 대포통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주범을 잡기는 어렵다”며 “인스타그램처럼 유명한 앱을 사용해도 가짜 계정인 탓에 본범을 잡는 것은 보이스피싱과 마찬가지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현금 인출책이나 대포통장 계좌주들은 사기 방조 혐의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처벌할 순 있다”고 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경찰청-인터폴 로맨스 스캠 합동단속

경찰청은 지난 7월부터 10월 말까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와 함께 경제범죄 3차 합동단속을 추진한다고 지난 7월4일 밝혔다.

한국 경찰은 보이스피싱 등 초국경 경제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2020년 3월 인터폴에 3년간 17억원을 펀딩했고 매년 합동단속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두 차례 합동단속으로 경찰청에 관련 범죄자 86명을 송환했으며, 범죄 수익 23억원을 동결했다.

이번 합동단속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시아 11개국, 유럽 8개국, 아프리카 4개국, 미주 2개국 등 총 25개국이 참여한다.

단속 대상 범죄는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투자사기 ▲몸캠피싱 ▲자금세탁 등이다. 참가국들은 사건정보와 수법을 공유하고, 해외거점 콜센터를 합동단속한다.

또 주요 피의자를 합동단속하고 강제송환하며, 범죄 수익을 동결·환수하게 된다.

경찰청은 “국가수사본부 및 각국 인터폴 등과 협업해 보이스피싱 등 주요 경제범죄 피의자를 검거하고 범죄자금을 동결하는 등 단속성과를 최대화하겠다”고 밝혔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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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