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잡는’ 로맨스 스캠꾼과 직접 대화해보니…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10.05 09:24:02
  • 호수 13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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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서도 빠지는 구애의 덫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그는 UN에 소속된 의사이기도 하고, 미군일 때도 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노인일 때도 있고, 집안에서 재산을 상속받을 청년이기도 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한국인이 아니며 외국에 있다. 그들은 SNS를 통해 “내가 한국에 가면 2배로 돈을 갚을게. 나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니?”라고 말하며 자신의 통장을 보여준다.

로맨스 스캠(Romance Scam)은 SNS에서 이성 혹은 동성에게 호감을 산 후 다양한 수단으로 돈을 빌려 갈취하는 사기 수법으로 로맨스(romance)와 스캠(scam)의 합성어다. 이들은 주로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계좌 추적이 어렵고, 검거된다고 해도 ‘사기죄’만 적용받아 ‘전자금융 거래법’을 적용받는 보이스피싱에 비해 양형기준도 낮다.

결국은 돈
느는 추세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상대를 믿고 돈을 준다는 게 말이 될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기가 가능한 것은 SNS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만나본 적 없는 상대방의 개인정보를 쉽게 알 수 있다. 또 인터넷으로 쉽게 상대방에게 접근할 수 있고 대화도 할 수 있다.

온갖 달콤한 말로 꼬셔 상대방을 이용한다. 직접 만날 필요가 없이 메시지만 주고받는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에 따르면 미국 내 로맨스 스캠 피해 건수는 2018년 2만1400건, 피해 금액 1억4300만달러(약 1600억원)에서 2020년 3만2800건, 피해 금액 3억400만달러(약 3356억원)로 증가했다.

2년 만에 피해 건수는 53%, 피해 금액은 137%나 급증한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언택트, 비대면 확산이 로맨스 스캠의 증가 원인 중 하나라고 평가한다.

국내에선 로맨스 스캠을 ‘기타 범죄’로 분류한다. 이 때문에 정확한 범죄 발생 통계가 확인되진 않는다. 하지만 사이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로맨스 스캠이 포함된 인터넷 사기 범죄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7년에는 10만7271건, 2018년 12만3677건이 발생했고, 2019년에는 15만1916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31일 개인 SNS로 메시지가 왔다. 기존에 알던 사람도 아니었고 한국인도 아니었다. 말투와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부터가 전형적인 로맨스 스캠 사기꾼인 것이 티가 났다. 

상대방은 “안녕, 나의 친구야. 이렇게 멋진 친구와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데이비스이고 샬롯 노스 캐롤라인 미국입니다. 당신은 누구시죠?”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상대방은 프로필로 벚꽃 사진을 설정해놨고, 아이디는 중국어였다. 어설픈 한국어는 인터넷 번역기를 사용한 느낌이었다. 데이비스는 재차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아내가 없지만 딸이 있었고 한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두 번이나 방문했다고 자신을 설명했다.

데이비스와 딸은 한국에서 부산과 제주도를 방문했다. 아름다운 나라였고,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덧붙였다.

그는 곧 결혼과 아이의 여부를 물었고 “없다”고 답하자 “나는 혼자야. 몇 년 전에 아내를 잃었지. 그래도 나에겐 사랑스러운 딸이 있어. 미국에 온 적이 있니?”라고 물었다.

이런 식의 사적인 대화가 계속됐다. 곧바로 답장을 보내지 않으면 재촉했다. 이어 “너는 무슨 일을 하니? 나는 정형외과 의사다. UN 의료팀과 함께 일한다. 지금 예멘에서 평화 유지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들 중 부상당한 군인을 돌본다”고 말했다.

불쑥 SNS로 시작해 투자 사기로 진화
피해 늘지만 잡히지 않는 ‘기타 통계’

그는 정말 ‘연인’처럼 연락했다. 사랑한다며 꽃 사진을 보내기도 했고, 자신의 딸을 소개하기도 했다. 딸 이름은 ‘신디’로 8살이었다. 지금은 기숙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의사 생활 때문에 아이를 자주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도 전했다.

이런 식의 대화가 지속됐다. 그는 로맨틱한 음악 유튜브 링크를 보내며 “친애하는 나의 아내” “허니” “아이 러브 유”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나는 한국에서 너를 만나고 싶다”라는 말을 했다. 정말 ‘연인’인 양 말이다. 호응하는 답장을 보내지 않아도 데이비스는 지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대화가 이어지자 UN 의사로 일하는 것이 너무 위험하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은퇴하면 한국에서 살고 싶다며, 데이비스가 있는 캠프가 공격당해 본인의 상황이 매우 위험하다고도 말했다. 

식량은 모두 약탈당했고 쉬지도 씻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밥은 하루에 한 끼만 먹을 수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나는 너무 피곤하다” “안정된 생활과 아내를 가지고 싶다” “너와 동거해서 같이 살고 싶다”고 호소했다. 

그는 계속해서 연락을 했다. 연락하는 빈도만 확인해도 그가 UN 소속 의사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대화에 시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친분이 쌓였다고 생각한 건지, 그는 어느 날부터 예멘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사달라고 부탁했다. 이유는 곧 예멘에서의 근로 계약이 종료돼 한국에 오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예멘 정부와 UN이 자신을 이라크에서 근무시키려고 회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이라크로 갈 생각도 없고, 한국으로 무조건 갈 거라고 밝혔다. 이 계획을 바꾸려면 한국행 비행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UN 의사
달달 메시지

도와줄 수 없다고 하자 “제발 도와줘. 내가 한국에 가면 꼭 돌려 주겠다. UN 의사가 한국으로 오려면 한국에 있는 지인이나 배우자가 수수료를 지불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계속 돈이 없다고 하자 이내 연락이 끊겼다.

이것이 전형적인 로맨스 스캠이다. SNS로 연인처럼 대화를 이어가다가 돈을 요구한다. 본인은 특수한 직업이라는 것을 계속 어필했다. 로맨스 스캠의 사기꾼은 대부분 의사, 변호사, 군인 등 특수직종 사람들이었다.

기혼자가 로맨스 스캠 사기에 걸리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 7월27일 A씨는 SNS을 통해 알게 된 외국인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 외국인은 원유 배달을 하는 사람으로, A씨에게 항상 다정하게 대화했다. 

외국인은 A씨에게 “원유 대금이 모자란다. 내 은행 사이트를 알려줄 테니, 나 대신 내 통장에 3만달러 돈을 받고 이체해달라”고 부탁했다. A씨는 자신의 돈이 아니기 때문에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계좌에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상황을 물어본 A씨에게 외국인은 “송금 수수료로 500만원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돈이 필요한 것에 부담을 느끼고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침저녁으로 계속 연락이 왔고, 다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외국인은 이번에 방법을 바꿨다. 아들이 있는데 몸이 아파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400만원을 빌려주면 한국에 올 때 두 배로 갚겠다고도 했다. 통장도 보여줬다. 통장에는 35억원이 있었다. 그 뒤로 외국인은 ▲배 고장 수리비 ▲변호사 비용 ▲구조 비용 등 계속 돈을 요구했다. 벌금이 있다며 벌금도 요구했다.

A씨는 모든 돈을 주고 나서야 이것이 로맨스 스캠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피해 금액은 7000만원. 경찰에 신고했지만 피해 금액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여기에 더해 남편이 이 사실을 알면 이혼을 요구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살고 있다. 

전형적 방법
그래도 속아 

A씨는 “빌려준 돈은 모두 대출받은 돈이다. 한국에 오면 두 배로 갚아주겠다는 말을 의심 없이 믿었다. 또한 가족들이 알게 되는 게 무섭다. 처음에는 죽을까 생각도 했다. 남편에게는 말하고 이혼하자고 해야 하는 게 아닌지…”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로맨스 스캠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이번에는 SNS로 신뢰를 쌓은 후 ‘수익률이 좋은 가상자산 투자를 함께하고 싶다’고 제안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상대방이 의심하지 않도록 처음 몇 번은 수익을 발생시켜 주고 약간의 손실도 나도록 위장한다. 이렇게 상대방은 로맨스 스캠 사기라는 것을 감쪽같이 속는다.

B씨는 SNS로 말레이시아 사람 C씨와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나갔다. C씨는 곧 카카오톡 아이디를 물어봤고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카카오톡으로 넘어간 후 C씨는 자신을 블록체인 전문가라고 밝히며 “블록체인으로 돈을 많이 벌고 있다. 어플을 다운로드해 암호화폐를 산 뒤, 다른 코인 주소로 옮겨 어플을 통해 선물거래를 하는게 아니라 다른 해외사이트로 암호화폐를 옮기고 거기서 수익을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익이 났다. B씨는 다시 “코인 충전 이벤트가 있다. 5만 암호화폐를 충전하면 8500 암호화폐를 주는 행사”라고 설명했다.

당장 돈이 없었다. 하지만 B씨는 C씨의 조언으로 수익을 얻은 적이 있기 때문에 C씨를 신뢰하고 있었다. B씨는 돈을 빌려서 코인 충전 이벤트에 참여했다. 하지만 5만 암호화폐 조건을 만족시키진 못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조건이 안 되니 신용에 문제가 생겼다고 출금 거부를 해버렸다. 계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1만 암호화폐를 더 내야 한다고 했다. 그제야 B씨는 C씨가 사기꾼인 것을 알게 됐다.

“한국 가려면 한국인이 수수료 내줘야”
“사기당해도 이혼당할까 혼자 속앓이”

돈을 찾아야 했던 B씨는 C씨에게 “너를 경찰서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C씨는 “너가 몸캠을 찍어서 나에게 보내주면 나머지 묶여있는 암호화폐를 해결해주겠다”고 답했다. 이를 거절하자 C씨와의 연락은 끊겼다. B씨의 피해 금액은 1650만원이다.

지난해에는 로맨스 스캠 투자 사기로 큰 돈을 날린 사례도 있었다. 자영업을 해온 D씨는 지난해 5월 글로벌 상장지수펀드(ETF) 브랜드인 ‘아이 쉐어즈(iShares)’를 사칭한 신생 암호화폐 거래소에 3억5000만원을 투자했다. 

지인 소개로 접속한 텔레그램 단체방에서 만난 홍콩 시민운동가가 추천한 거래소였다. 그는 텔레그램에서 투자자에게 특정 코인 종목의 매수·매도 정보를 흘렸다. D씨는 실제로 ‘승률 100%’라는 그의 지시대로 코인을 사고팔았고 매일 평균 10% 수익을 올렸다.

단체방에는 수익 인증 사진이 올라왔다. 100만원으로 시작한 C씨의 투자금은 350배로 늘어났다. D씨는 이내 텔레그램 단체방을 맹목적으로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파국을 맞이한 건 불과 두 달이 지난 후였다. 두 달이 지나자 거래소는 출금도 거부한 채 잠적했다.

당시 코로나19로 운영이 어려워져 D씨는 자신의 가게를 정리했고, 돈은 공중분해됐다. D씨는 “경찰에 신고하러 갔지만 잡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고 말했다.

투자 텔레그램 방은 D씨를 비롯해 70명 이상의 피해자로부터 최소 48억여원을 편취했다. 가짜 코인 거래소였고, 로맨스 스캠 사기를 벌였던 조직이 만든 것이었다.

모바일 채팅 앱에서 만난 중국인에게 2억5000만원을 사기당한 E씨도 있다. E씨가 사기 사실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피해액이 바이낸스와 후오비 글로벌로 빠져나갔다.

E씨의 사건을 접수한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이들 거래소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해외 거래소라 한국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활용해 거래소에 등록된 신원 정보 협조를 요구한 것이다. 아이쉐어즈 사칭 사기로 코인 셜록에 접수된 국내 피해자들의 신고 건수는 77건에 이른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피해 규모가 훨씬 클 것으로 전망된다.

날뛰어도
잡기 어려워

하진규 법률사무소 파운더스 변호사는 “로맨스 스캠이 대부분 해외 앱과 대포통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주범을 잡기는 어렵다”며 “인스타그램처럼 유명한 앱을 사용해도 가짜 계정인 탓에 본범을 잡는 것은 보이스피싱과 마찬가지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현금 인출책이나 대포통장 계좌주들은 사기 방조 혐의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처벌할 순 있다”고 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경찰청-인터폴 로맨스 스캠 합동단속

경찰청은 지난 7월부터 10월 말까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와 함께 경제범죄 3차 합동단속을 추진한다고 지난 7월4일 밝혔다.

한국 경찰은 보이스피싱 등 초국경 경제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2020년 3월 인터폴에 3년간 17억원을 펀딩했고 매년 합동단속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두 차례 합동단속으로 경찰청에 관련 범죄자 86명을 송환했으며, 범죄 수익 23억원을 동결했다.

이번 합동단속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시아 11개국, 유럽 8개국, 아프리카 4개국, 미주 2개국 등 총 25개국이 참여한다.

단속 대상 범죄는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투자사기 ▲몸캠피싱 ▲자금세탁 등이다. 참가국들은 사건정보와 수법을 공유하고, 해외거점 콜센터를 합동단속한다.

또 주요 피의자를 합동단속하고 강제송환하며, 범죄 수익을 동결·환수하게 된다.

경찰청은 “국가수사본부 및 각국 인터폴 등과 협업해 보이스피싱 등 주요 경제범죄 피의자를 검거하고 범죄자금을 동결하는 등 단속성과를 최대화하겠다”고 밝혔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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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